붓꽃이랑

 


삼월부터 오월까지
쏙쏙 돋은
푸른 잎사귀 사이
가늘고 긴 대롱에
노랗게 몽우리 지며
빗물 먹고 피어난
붓꽃.

 

곁에는
무리지어 앙증맞게 웃는
돗나물꽃.

 

옆에는
동그스름 넓적한
머위잎.

 

둘레에는 함박꽃과 장미꽃과
하얗게 찔레꽃.

 

그리고 뽁뽁 뜯고 뜯으면
새로 돋고 자라는
부추풀.

 


4346.5.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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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빔 좋은 어린이

 


  여섯 살 사름벼리 여름치마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아직 이웃들한테 말을 여쭙지 못한다. 집 안팎으로 하는 일이 많아 미처 이런 말을 못 여쭈는 셈일까. 여태껏 여러 좋은 이웃들이 선물해 준 고마운 옷들로 큰아이는 씩씩하고 즐겁게 옷을 입으며 지냈다. 어쩌면, 큰아이는 옷집에 가서 새로 사는 옷보다 이웃이 선물해 주는 옷을 더 좋아하는지 모른다. 워낙 선물받는 옷, 그러니까 물려받는 옷에 익숙하니까. 곰곰이 돌아보면, 아버지로서 큰아이한테 치마를 사 준 일이 꼭 두 차례인데, 큰아이가 세 살 적에 인천 큰아버지가 옷값을 주어 처음으로 사 주었고, 올봄에 네식구 함께 읍내마실을 하며 두 번째로 사 주었다. 그리고 어제, 큰아이 옷가지를 죽 살피고 보니, 여름에는 날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큰아이가 날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하더라도 여름치마가 살짝 빠듯하겠다고 느꼈다. 있는 대로 돌아가며 입혀도 되지만, 어쩐지 새 치마 한 벌 사야겠구나 싶어, 부러 읍내마실을 해서 삼만육천 원 값을 치르고 여름빔을 마련했다. 큰아이가 이제껏 보여준 모습을 돌아보면, 다른 옷가지나 선물은 조금 들고 다니다가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맡겼다. 이번에 장만한 여름빔은 처음부터 끝까지 큰아이 스스로 든다. 두 시간 남짓 옷가방 들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비닐가방은 아버지한테 넘기고 여름빔 긴치마만 품에 안고 다닌다. 그래, 이토록 좋아하는 네 긴치마인데, 즐겁게 장만해 주어야지. 사서 장만하든 재봉틀로 박아서 장만하든, 네가 좋아하는 대로 장만해야지. 4346.6.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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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30 16:43   좋아요 0 | URL
벼리의 행복한 마음이 아버지가 새로 사주신 치마를 양손에 꼭 들고 웃는 얼굴에
고스란히 다 나와 있네요~?^^
벼리의 표정을 보니, 저까지 함께 즐거워집니다.~
행복한 여름아이 샤름벼리~!

숲노래 2013-06-30 20:38   좋아요 0 | URL
어제오늘 즐거이 입었으니
내일은 신나게 빨아
잘 말려야지요~ ^^
 

책 사이에 드리우는 빛

 


  책에는 빛이 서립니다. 책에는 다른 어디에도 서리지 않는 빛이 곱게 서립니다. 나는 이 빛을 ‘책빛’이라고 말합니다.


  책빛은 언제나 곱게 서립니다. 이 빛을 알아채는 사람과 안 알아채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빛은 이 빛을 알아채는 사람한테만 곱지 않습니다. 이 빛을 안 알아채는 사람한테도 늘 곱게 서립니다. 다만, 안 알아채기 때문에 못 받아들일 뿐입니다. 마치 햇볕이 어디에도 곱게 드리우지만, 햇볕이 드리우는 줄 모르고 지하철을 타거나 건물에서 형광등 켜고 일하는 사람이 많듯, 햇볕도 책빛도, 또 사랑빛과 푸른 숨결도 어디에나 찬찬히 드리우거나 서립니다.


  책에 서리는 빛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무를 베어 종이로 만든 사람들이 저마다 복닥이거나 부대끼면서 빚는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빛 한 줄기 되어 책에 서립니다. 나무들 우거진 숲을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 손길과 숨소리와 마음결이 고스란히 종이 한 장에 스며듭니다. 햇살은 나무로 드리우며 나무를 살찌우고, 나무는 사람한테 와서 종이가 되어 포근한 기운을 보여주며,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 한 자락 알뜰살뜰 엮어 책 하나를 새롭게 빚습니다.


  빛이 된 이야기는 이야기빛일 텐데, 사람들 가슴에 살포시 내려앉으니 이야기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이야기빛은 이야기씨앗이 되면서 이야기나무로 자라고, 이야기꽃으로 피어납니다. 이야기꽃은 고소한 이야기밥이 되어 스며들고, 다시 이야기바람이 되어 시원한 생각 간질입니다.


  빛이 없거나 볕이 없는 데에서도 목숨이 싹틀까요. 빛이 없거나 볕이 없는 곳에서도 사람이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울 수 있을까요. 책은 인쇄소와 제본소에서 척척척 찍어서 나오는 물건처럼 보이지만, 똑같은 모습으로 천 권 이천 권 만 권 십만 권 찍힌다 하더라도 저마다 고운 나무숨 담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아파트에서 형광등 켜고 읽을 수 있다지만, 석유와 천연가스 바닥이 나면 햇살이 드리우는 아침과 낮과 저녁 아니고서는 읽을 수 없습니다. 아니, 책이란, 형광등 불빛 아닌 햇살을 쬐며 읽을 때에 비로소 책이라 할 만합니다. 햇살이 있는 곳에서 읽으며 따스한 기운 받아먹고, 햇살이 온누리에 골고루 내리쬐도록 마음을 기울이도록 북돋우며, 햇살처럼 따스한 사랑이 내 마음에 서려 날마다 새롭게 웃고 뛰놀도록 이끌어, 바야흐로 ‘책’이 되고 ‘책빛’이라 할는지 모릅니다. 4346.6.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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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Silver Spoon 5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51

 


좋은 사람으로 살기
― 은수저 5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3.5.25./5500원

 


  꽃도 바람을 마시고 살아갑니다. 벌레도 바람을 마시며 살아갑니다. 사람도 바람을 마시며 살아가요. 지구별에서 바람을 안 마시며 살아갈 수 있는 목숨은 없습니다. 밥도 먹고 물도 마셔야 살아가는 목숨일 테지만, 다른 무엇보다 바람을 마시지 않으면 누구나 숨을 잇지 못해요.


  집도 숨을 쉬고 책도 숨을 쉽니다. 연필도 숨을 쉬고 호미도 숨을 쉽니다. 어느 것이든 숨을 쉽니다. 목숨이 없다고 여기는 쇠붙이와 플라스틱 또한 숨을 쉬지요. 그래서 집은 숨을 쉬고 뱉으면서 제자리를 지킵니다. 쇠붙이와 플라스틱도 숨을 쉬고 뱉으면서 둘레에 쇳내음과 플라스틱내음 퍼뜨립니다.


  바람이 맑구나 싶은 곳은, 이곳 둘레에 있는 목숨들이 맑은 숨결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바람이 안 맑구나 싶은 곳은, 이곳 둘레에 있는 목숨들이 안 맑은 숨결로 살아가기 마련이에요. 쓰레기 가득 쌓인 곳에서는 쓰레기내음이 나지요. 찻길에서는 아스팔트내음이 나고, 아파트에서는 시멘트내음이 나요. 숲에서는 풀내음과 나무내음과 꽃내음이 납니다. 모두들 숨을 쉬고 뱉습니다.


- “어머니나 쌍둥이 동생들은 야구 응원하러 안 와?” “글쎄. 집안일이 바빠서.” (9쪽)
- “고교야구는 한 번만 져도 끝나는 거지?” “응.” “고시엔에 가려면 한 번도 지면 안 되는 거, 맞지?” “여름엔, 가을에는 선발이니까.” “그리고, 거기서 또 프로가 된다는 꿈을 이룬다는 건.” “그래, 모두가 프로를 꿈꾸는 건 아니지만, 꿈을 이루는 사람은 한손에 꼽을 정도지.” (59쪽)

 


  아이들이 나무로 깎은 장난감을 갖고 놀면 나무내음을 마십니다. 아이들이 플라스틱으로 찍은 장난감을 갖고 놀면 플라스틱내음을 마십니다. 집안 살림살이가 나무로 짠 것들이라면 나무내음이 온 집안에 감돕니다. 집안 살림살이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들이라면 플라스틱내음이 온 집안에 떠돌아요.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냄새를 맡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려는 대로 숨을 들이켭니다. 스스로 살고 싶은 결대로 맑은 숨이나 안 맑은 숨을 마십니다.


  어른들이 곱고 상큼한 말마디로 이야기꽃 피우면, 아이들은 저절로 곱고 상큼한 말마디를 배웁니다. 어른들이 곱지 않고 상큼하지 못한 말마디를 자꾸 쓰면서 말버릇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아이들 또한 곱지 않고 상큼하지 못한 말마디를 자꾸 쓰면서, 말버릇뿐 아니라 마음가짐과 생각 또한 곱지 않으면서 상큼하지 못한 길로 접어듭니다. 삶이 그대로 생각이 되고, 생각이 고스란히 말로 나타납니다. 말은 생각을 보여주고, 생각은 삶을 드러냅니다.


- “자! 이 개를 여기서 기르면 안 됩니까?” “왜 안 돼? 여기 돌아다니는 고양이도 다 주워 온 놈들이고, 어차피 온 교내가 동물 천지니까, 한두 마리 는다고 보이지도 않아요.” (13쪽)
- 하치켄이 왜 그렇게 마음이 좋은지 알겠어. 펫도 그렇지만, 아버지나 본인 스스로나 자기에게 너무 많은 걸 강요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19쪽)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생각합니다. 좋은 밥과 좋은 꿈과 좋은 사랑을 생각합니다. 좋은 집과 좋은 보금자리와 좋은 살림을 생각합니다.


  ‘좋다’고 할 적에는 ‘비싸다’하고 같지 않습니다. 비싼 물건은 비쌀 뿐입니다. 값있는 물건은 값있을 뿐입니다. 좋다고 말하려면 좋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좋은 생각을 싹틔우며 좋은 사랑이 자라도록 북돋웁니다. 좋은 책이라 한다면, 사람들 스스로 좋은 삶으로 거듭나서 좋은 이야기를 퍼뜨리도록 이끌겠지요.


  그런데, 제아무리 좋은 책이라 하더라도, 사람들 스스로 좋은 마음 되고 좋은 눈길 되지 않는다면, 좋은 이야기가 어떻게 좋고 얼마나 좋은가를 못 알아채곤 해요. 좋지 않은 넋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일깨우는 좋은 책도 있다고 할 만하지만, 마음밭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일깨울 수 있는 좋은 책이란 없다고 느껴요. 스스로 마음을 열어 좋은 씨앗을 심으려 하는 매무새일 때에, 좋은 책도 비로소 좋은 책으로 스며들어요. 스스로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한테는 ‘좋은’ 책이 아닌 ‘훌륭한’ 책이나 ‘뛰어난’ 책이 될 뿐이에요.


- “축제를 만들어 가는 신바람을 잘 못 따라가겠어. 우린 중학교 때 그런 행사가 없었거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팍팍 생각해서 내놓지 않으면 피자파티 때처럼 얼떨결에 성가신 일만 떠맡게 될걸?” “윽.”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 (69쪽)
- “미카게는 이렇게 일찍부터 기운도 좋다. 안 피곤해?” “어? 물론 피곤하긴 하지. 음, 그래도 농번기의 일손 돕기에 비파면 편한 거야!” (175쪽)

 


  아라카와 히로무 님이 그린 《은수저》(학산문화사,2013) 다섯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을 두고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어떠한 꿈을 가리켜 좋은 꿈이라 할 만할까요. 어떠한 이야기를 놓고 좋은 이야기라 하는가요.


  도와주기를 바라는 남들한테 무엇이든 서글서글 들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될까요. 내 몫을 바라지 않으며 손을 내미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될까요. 아마,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좋은 사람이 되기는 될 테지요. 그렇지만, 참으로 좋은 사람이란, 스스로 좋게 살아가고 싶은 길을 생각해서 좋은 마음 되어 씩씩하게 한길을 걸어갈 때에 좋은 사람이라 할 만하다고 느껴요. 스스로 좋은 마음 불러일으키고, 스스로 좋은 꿈을 지으며, 스스로 좋은 사랑을 나눌 때에 참답게 좋은 사람으로 빛나리라 느껴요.


- “넌 겉으로 봐선 괜찮은 것 같잖냐.” “가축은 다치면 즉각 살릴지 죽일지 선택해야 한단 말이야. 아까 그 소도 만약 고관절이라도 탈구됐으면 오늘 저녁에 처리장에 보낸다구.” (80쪽)
- “선생님께 말해서 시간 외 연습을.” “안 돼!” “왜! 못하니까 다른 애들보다 배로 연습해야지.” “안 된다니까! 말도 휴식이 필요해! 피로가 쌓여서 다치기라도 하면 살처분당할 수도 있단 말이야! 혼자서는 못하는 경기니까 말도 생각해 줘야 하는 거잖여!” (108쪽)


  좋은 말과 나쁜 말은 따로 없습니다. 스스로 좋은 마음을 담으면 좋은 말이 됩니다. 스스로 나쁜 말을 실으면 나쁜 말이 돼요. 좋은 글과 나쁜 글도 따로 없어요. 스스로 좋은 생각을 적바림하면 좋은 글이 됩니다. 스스로 나쁜 생각을 감추면 나쁜 글이 돼요.


  좋은 모습을 바라보며 좋은 이야기를 일구면 차츰차츰 좋은 사람으로 달라지리라 생각해요. 좋은 일과 놀이를 즐기며 좋은 말을 나누면 시나브로 좋은 삶으로 거듭나리라 생각해요. 스스로 돌아보기에 가장 좋다고 싶은 길을 걸어갈 때에 좋은 하루가 되고, 스스로 헤아리기에 가장 좋구나 싶은 뜻을 펼칠 때에 좋은 누리가 되리라 생각해요. 4346.6.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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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54] 여름빔

 


  여름을 맞이해 큰아이 새옷 한 벌 마련합니다. 집에 재봉틀 있으면 고운 천 끊어서 긴치마 지을 수 있다고 새삼스레 깨닫지만, 옷집으로 가서 여름빔 한 벌 삽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날, 어머니들이 바느질을 해서 옷을 지은 손길을 떠올립니다. 차근차근 한 땀 두 땀 마음을 기울여 지은 옷을 아이들은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며 오래오래 즐겁게 입었을까요. 사랑 깃든 옷을 사랑스레 입습니다. 웃음 담긴 옷을 웃으며 입습니다. 노래하며 지은 옷을 노래하며 입습니다. 아이한테 옷 한 벌 내어줄 때마다 어버이는 마음 깊이 기쁘며 아름다운 이야기 새록새록 엮었구나 싶어요. 이 옷 입을 아이가 얼마나 좋아할는지 헤아리고, 이 옷 입고 뛰놀 아이가 얼마나 활짝 웃으며 반길는지 생각합니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여름빔 장만하지요.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겨울빔 장만하고요. 밝은 봄에는 고운 봄빔 장만하고, 아름다운 가울에는 아름다운 가을빔 장만합니다. 4346.6.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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