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 15. 시골사람과 서울사람
― 삶과 사랑을 곱게 담는 말
시골에서 흙 만지며 살아가는 분들은 ‘서울’에서 온 사람이건, 부산이나 대구나 인천에서 온 사람이건, 수원이나 춘천이나 여수나 창원에서 온 사람이건, 모두 ‘서울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충청도 시골에서건 경상도 시골에서건 전라도 시골에서건,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는 ‘도시에서 온 사람’은 모두 ‘서울사람’으로 여깁니다. 우리 수도 이름이 처음부터 ‘서울’이지는 않았는데, 시골 어른들 입에는 ‘서울사람’이라는 말마디가 퍽 오랫동안 익숙합니다.
오늘날 사회 흐름 돌아보면, 한자말이나 영어가 한국말에 꽤 많이 스며들었어요. 지난날에는 ‘도시’라는 낱말 쓰지 않았어요. ‘문화’나 ‘예술’이라는 낱말도 안 썼어요. ‘교육’이나 ‘산업’이라는 낱말도 안 썼어요. 백 해나 이백 해, 오백 해나 천 해쯤 앞서를 되짚는다면, 그때에는 오늘날보다 ‘도시’라 일컬을 데는 거의 없다시피 해요. 어디나 ‘시골’이었어요. 어디나 ‘시골’이기에 굳이 ‘도시’를 가리킬 낱말이 없을 수 있어요. 다만, 십 리나 백 리를 걸어 사람들 많이 북적이는 곳으로 가면 닷새나 이레마다 여는 저자가 있습니다. 흔히 ‘오일장’이나 ‘칠일장’이라 말하잖아요. 장터를 여는 복닥거리는 곳에는 관청이 있고, 관청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 많이 살겠지요. 이런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 시골쯤 될 테고, 이런 곳에서 많이 떨어진 곳이 두메쯤 될 테지요.
이런 흐름을 생각하면서 ‘서울사람’이라 부르는 말을 천천히 깨닫습니다. 그리고 ‘시골’이라는 낱말을 새롭게 돌아봅니다. 오늘날에는 으레 ‘농촌’이라는 한자말 쓰지만, 농촌이란 바로 예부터 ‘시골’이라 가리키는 곳이었으며, 이 나라는 거의 모두 시골이었어요. 농촌이었다는 뜻입니다.
곽재구 님 시집 《서울 세노야》(문학과지성사,1990)를 펼쳐 〈도문 장터〉라는 시를 읽다가 “눈 내리는 도문 닷새 장터에서 / 도라지 파는 민기수 씨와 틀국수 시켰네”와 같은 글월 만납니다. 문득 시집을 덮습니다. 나라에 널리 알려진 어느 노래꾼이 부르는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와 같은 노랫말을 곱씹습니다. 그렇지요. 시골사람은 한자말로 ‘오일(五日)장’처럼 쓸 일이 없어요. ‘닷새장’이거나 ‘닷새장터’입니다. 백 해나 이백 해 앞서 살던 이들은 어쩌면 ‘닷새저자’라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날이 갈수록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처럼 말하는 사람을 보기 어렵습니다. 유치원에서도 초등학교에서도 이처럼 말하는 교사는 드뭅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도 이렇게 말하는 교사는 드물어요. 대학교에는 훨씬 드물 테지요. 공공기관이나 회사에서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요. 어느새 “일일 이일 삼일 사일 ……” 같은 낱말만 퍼집니다.
여섯 살 우리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주며 노는 이모부가 “두 장 말고 세 장이요, 세 장 말고 네 장이요.” 하고 말합니다. 노래를 다 마치고 나서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엽서나 종이를 셀 적에는 “세 장 네 장” 아닌 “석 장 넉 장”으로 센다고 알려줍니다. 아이들 이모부는 서른 살 조금 넘었는데, 이제껏 “석 장 넉 장”처럼 쓰는 말을 들은 적 없다고 합니다.
설마 그럴 수 있을까 싶은데, 아무래도 그럴밖에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나이든 어른들부터 말을 옳고 참다우며 사랑스럽게 쓰지 않으면, 젊은이한테 말을 옳고 참다우며 사랑스럽게 물려주지 못해요. 젊은이들이 말을 옳고 참다우며 사랑스럽게 물려받지 못하면, 아이들 또한 말을 옳고 참다우며 사랑스럽게 배우지 못해요.
살짝 어리둥절했지만, 곧 마음을 추스르고는, “한자로 三을 적을 때에 ‘석 삼’이라 하지 ‘세 삼’이라고는 안 해요. 자리에 따라 달리 쓰는 ‘석’과 ‘세’를 잘 살펴봐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제야 ‘석’이라는 숫자말을 조금 깨닫는 눈치입니다. 그렇지만 ‘석’을 어느 자리에 어떻게 써야 하는 줄 알기는 힘들겠지요. 둘레 다른 사람들 가운데 이제껏 ‘석’을 짚거나 알려주는 어른이 없으니까요.
곽재구 님 시집을 다시 펼쳐 〈분꽃이 할매〉라는 시를 읽습니다. “오메 그 자슥 떡쇠 같응 거 오메 그 자슥 떡쇠 같응 거 / 무심결에 옛 사랑말 두 번 뱉았지.”와 같은 글월을 만납니다. 묵은 시집에 나오는 묵은 시에서, 분꽃이 할매가 읊은 ‘사랑말’을 혀에 얹고 또르르 굴립니다. 할매가, 분꽃이 할매가 ‘사랑말’을 읊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할매는 스스럼없이 사랑말을 읊었겠지요. 할매는 거리끼지 않고 사랑말을 노래했겠지요. 즐겁게 이야기하는 사랑말이요, 기쁜 웃음으로 나누는 사랑말일 테지요.
사랑을 담아 사랑말입니다. 꿈을 담으면 꿈말 됩니다. 믿음을 담으면 믿음말 돼요. 생각을 담을 적에는 생각말 되고, 마음을 담으면 마음말 됩니다. 사람은 사람말 하고, 꽃은 꽃말 합니다. 새는 새말 하고, 하늘은 하늘말 해요.
환하게 빛나는 말을 하고 싶다면 빛말을 하면 됩니다. 즐거이 노래하듯 말을 하고 싶으면 노래말(노랫말)을 할 수 있어요. 거꾸로, 말에서 빛이 흘러나오면 말빛이 곱습니다. 말을 노래처럼 구슬 구르는 어여쁜 소리로 들려주면 말노래 되어요. 사랑을 담아 사랑말이라면, 말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말사랑이에요. 사랑을 담아 사랑꿈 되고, 꿈을 사랑하면서 꿈사랑 되어요.
도시(또는 서울)를 떠나 시골로 가는 사람들한테 ‘귀농’이나 ‘귀촌’이라는 이름 붙이곤 하지만, 시골로 가니 ‘시골가기’이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만큼 ‘시골살이’를 누립니다. 시골은 시골일 뿐, ‘촌(村)’도 ‘농촌(農村)’도 아니에요. 서울사람이나 도시내기 같지 않은 누군가를 깎아내리며 ‘촌사람’이라 하기도 하는데, 시골사람은 늘 시골사람입니다. 시골살이 누리는 시골내음 풍기며 시골스러운 시골빛 나누기에 시골사람이에요. 시골마을에서는 시골잔치 이루어지고, 시골숲 푸르며 시골노래 나눕니다. 도시에서도(또는 서울에서도) 도시살이(서울살이) 어여삐 누리면서 도시빛(서울빛) 환하게 가꾸어 도시잔치(서울잔치)에서 도시노래(서울노래) 해맑게 나누는 도시숲(서울숲) 푸르게 가꾼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4346.6.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바로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