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과 책

 


  비가 퍼붓는 날이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건 책방으로 나들이 가는 사람이 있다. 보슬비가 듣는 날이건 구름에 살며시 그늘 드리우는 날이건 책방하고는 등을 지는 사람이 있다. 마음속에 책씨앗 심는 사람은 언제나 다른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책방 나들이를 한다. 마음밭에 책씨앗이 없는 사람은 늘 다른 자리에서 다른 삶을 일군다.


  비가 오면 헌책방에서는 책을 바깥으로 내놓지 못한다. 비가 오는 날이건 비가 안 오는 날이건 새책방에서는 책을 바깥으로 내놓지 않는다. 새책방에서는 우산비닐을 문간에 두는데, 헌책방에서는 양동이를 하나 놓거나, 아예 양동이조차 없곤 하다. 우산은 문간에 기대어 놓거나 바닥에 눕히는 헌책방이다.


  새책방은 문을 굳게 닫은 채, 바깥이 춥든 덥든 아랑곳하지 않기 마련이다. 헌책방은 으레 문을 연 채, 바깥이 추우면 함께 춥고 바깥이 더우면 함께 덥기 마련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와 비내음이 빗물과 함께 헌책방으로 물씬 스며든다.


  비가 쏟아지는 날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 지붕과 길바닥을 때리는 빗소리를 노래처럼 들으면서 책을 즐길 수 있다. 다만, 비오는 날에는 책종이가 살짝 흐늘거린다. 이리하여, 헌책방은 비가 그치면 문을 더 활짝 열어 책시렁마다 스며든 물기가 햇볕에 보송보송 마르도록 한다.


  헌책방에서 책은 바람을 마시면서 자란다. 헌책방에서 책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듯 비닐을 뒤집어쓴다. 헌책방에서 책은 해바라기를 하고, 한갓지게 드러누워 쉬면서, 반가운 책손 한 사람 기다린다. 고운 빛 우산을 쓰고 헌책방으로 찾아올 한 사람을 기다린다. 4346.7.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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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음으로 작은 책을 펴내는 작은 사랑을 들려주는 작은 사람들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지금 여기 독립출판》이 되리라 생각한다. 작은 목소리로 부르는 작은 노래가 서울을 살며시 벗어나 골골샅샅 시골마을까지 스며들어, 흙을 만지고 바람을 마시며 햇살을 쬐는 싱그럽고 푸른 작은 이야기로도 거듭날 수 있으면 좋겠다. 작은 손길로 작은 꿈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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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독립출판
프로파간다 편집부 지음 / 프로파간다 / 2013년 7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3년 07월 1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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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말하는 책들이 꾸준하게 나오기를 바란다. 여러 사람들 여러 갈래 눈길로 여러 마을과 골목과 시골과 숲을 이야기하는 자전거책이 하나둘 나오기를 바란다. 도시를 푸르게 가꾸고 싶은 사람들 자전거 타기를 다룰 줄 알고, 시골을 곱게 보살피고 싶은 사람들 자전거 나들이를 다룰 줄 알기를 바란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아름답다. 그런데,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 한결 아름답다. 자전거를 탈 줄 알면서 두 다리로 즐겁게 걸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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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시클 프린트 1- 도시와 자전거 생활
프로파간다 편집부 엮음 / 프로파간다 / 2013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7월 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07월 1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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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88) -의 : 열정의 뒤늦은 방문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열정의 뒤늦은 방문이 아니라, 열정의 탕진이며 열정의 상실이다
《강제윤-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호미,2013) 155쪽

 

  ‘진정(眞正)’은 ‘참으로’나 ‘참말’이나 ‘무엇보다’로 다듬고, ‘열정(熱情)’은 ‘뜨거움’으로 다듬어 줍니다. ‘방문(訪問)’은 ‘찾아오다’로 손보고, ‘탕진(蕩盡)’은 ‘마구 쓰다’나 ‘헤프게 쓰다’로 손보며, ‘상실(喪失)’은 ‘잃다’나 ‘사라지다’로 손봅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모두 ‘-의’를 넣어서 마치 일본 말투처럼 글을 씁니다. “열정의 탕진”이란 무슨 말이고, “열정의 상실”은 무슨 말일까요. 왜 한국사람이 일본사람 흉내를 내며 이런 말투를 써야 할까요. 한국 말투로 바로잡자면 “탕진하는 열정”이나 “상실하는 열정” 꼴이 되어야 할 텐데, 이렇게 적어도 말느낌은 아리송합니다. ‘탕진’이나 ‘상실’이나 ‘열정’ 같은 낱말이 한국말하고 살가이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구 써댄 뜨거움”이나 “사라진 뜨거움”으로 한 번 걸러 봅니다. 그런데, ‘열정’은 ‘뜨거움’으로 다듬을 만하지만, 이 글월에서는 다른 낱말로 다듬을 때에 한결 나으리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불빛’이나 ‘불꽃’으로 다듬을 수 있어요.

 

 열정의 뒤늦은 방문이 아니라
→ 뒤늦게 찾아온 열정이 아니라
→ 뒤늦게 찾아온 뜨거움이 아니라
→ 뒤늦게 찾아온 빛이 아니라
→ 뒤늦게 찾아온 불빛이 아니라
→ 뒤늦게 찾아온 불꽃이 아니라
 …

 

  이 글을 쓴 분만 탓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늘날 글을 쓴다는 분들은 으레 이렇게 “무엇의 무엇”처럼 ‘-의’를 집어넣어 버릇합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이런 말투가 자주 나오고, 동시집이나 동화책이나 그림책에까지 이런 말투가 흔히 나와요. 이 보기글은 낱말이나 말투를 조금 손보더라도 여러모로 엉성하구나 싶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뒤늦게 찾아온 불꽃이 아니라, 마구 써댄 불꽃이며 사라진 불빛이다.”처럼 보기글을 손보아도 크게 나쁘지 않으나, 글차례를 뒤집어서, “뒤늦게 찾아온 불꽃을 두려워 말고”를 글월 앞으로 빼고, “-을 두려워해야 한다”를 글월 뒤에 놓아야, 비로소 부드럽게 이어지는 한국말이 되리라 생각해요.

 


* 보기글 새로 쓰기
뒤늦게 찾아온 불꽃을 두려워 말고, 헤프게 써댄 불꽃이며 사라진 불빛을 무엇보다 두려워해야 한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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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놀이 5 - 고무통에서 물방울 날려

 


  빗물놀이 마지막은 마당 고무통에 들어가서 물방울 날리기. 쏟아진 빗물이 그득 담긴 고무통에는 큰아이만 들어간다. 작은아이가 들어가기에는 물이 많이 깊다. 큰아이는 동생더러 들어오지 말라 하고는 혼자 들어간다. 이동안 작은아이 옷을 벗긴다. 작은아이는 알몸으로 마당을 달린다. 이윽고 큰아이한테 젖은 옷 모두 벗고 몸 헹군 다음 새 옷 입자고 부른다. 4346.7.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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