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도시, 어두운 시골

 


  2013년 오늘날 한국을 돌아보면, 99.9%에 이른다고 할 만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정치활동·경제활동·문화활동·사회활동·교육활동을 하고, 사회운동이나 문화운동이나 정치운동이나 노동운동이나 교육운동 또한 도시에서 한다. 군청이 있는 읍내라든지 소재지가 있다는 면내조차 도시하고 똑같이 닮은 오늘날인 터라, 주소가 시골이라 하지만 막상 시골사람인 사람은 매우 드물다. 흙을 만지거나 밟으며 시골살이 누리는 사람은 아주 적다. 고향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그 고향에 한 해에 몇 차례 며칠쯤 머무는가. 고향인 시골에 찾아갔다 하더라도 흙을 밟고 흙내음 맡으며 흙빛을 손가락에 묻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도시는 밝다. 도시는 한밤에도 전기로 불을 밝혀 아주 밝다. 도시는 밝은 나머지, 밤에 달도 별도 만나지 못하고, 도시사람은 미리내가 무언지조차 모른다. 도시사람은 낮에도 구름이나 무지개나 하늘이나 해를 살피지 않는다. 도시사람은 저녁에 잠자리에 든다 하더라도 깜깜한 어두움 드리운 집에서 잠들지 않는다. 집 둘레에 전기불빛이 환하다. 가게마다 켠 등불이 밝고, 자동차 지나다니며 등불을 번쩍인다.


  시골은 어둡다. 시골에도 찻길 한켠에 등불을 밝히곤 하지만, 시골은 어둡다. 저녁이 되어 잠자리에 들라치면 아주 깜깜하다. 아주 깜깜한 시골에서는 달도 보고 별도 보며 미리내도 본다. 다만, 마을 할매와 할배가 농약치기를 그치지 않는데다가 논도랑을 몽땅 시멘트도랑으로 바꾼 탓에 다슬기가 깃들지 못해 개똥벌레가 반작반짝 꽁지불 빛내며 날아다니는 모습은 좀처럼 못 본다.


  도시사람도 ‘나비’라는 낱말이나 ‘새’라는 낱말을 안다. 그러나 나비를 보면서 나비를 그린다거나 새를 보며 새를 노래하는 도시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나비는 어디에서 먹이를 찾거나 날갯짓을 쉬며, 새는 어디에서 먹이를 찾거나 새끼를 낳거나 둥지를 트는가를 생각할 줄 아는 도시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도시사람은 전기 없는 도시를 생각하지 못한다. 도시사람은 어두운 밤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면, 오늘날 시골사람은 전기 없이 얼마나 잘 살아갈까. 오늘날 시골사람은 어두운 밤을 얼마나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갈까. 4346.7.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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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을 읽습니다. 즐겁게 읽습니다. 다 읽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아로새깁니다. 이윽고 책을 덮고는 책꽂이에 얌전히 꽂습니다. 눈을 들어 내 보금자리 살림살이를 바라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로새긴 다음 내 삶이 어떻게 거듭날 때에 기쁜가 하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누린 즐거움을 떠올립니다. 내가 누린 즐거움을 내 살가운 벗한테 글월 하나 띄우듯 살짝 적바림합니다. 서로서로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기쁨을 노래하며 마음빛 밝힐 수 있기를 꿈꿉니다. 둘이 함께 삶을 사랑하면서 누리는 길을 찾고 싶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내 삶을 읽습니다. 책을 읽기 앞서도 내 삶을 읽는데, 책을 읽으면서 곰곰이 헤아린 내 이웃 삶을 마음자리에 나란히 둡니다. 나와 이웃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나와 이웃이 누리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돌아봅니다. 글을 쓰는 이는 아름다움을 글꽃으로 피웁니다. 글을 읽는 이는 아름다움을 삶꽃으로 맺습니다. 4346.7.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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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3.7.13. 큰아이―이오덕 할배한테 꽃을

 


  이오덕 님 일기책 다섯 권을 기리는 책잔치에 아이들과 마실을 간다. 잔치마당 들머리에 커다란 그림판이 하나 붙는다. 이 그림판에 이오덕 님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쓰라고 하는데, 아직 아무도 안 쓴다. 큰아이와 내가 매직을 하나씩 손에 쥔다. 나는 나대로 나비와 꽃을 그리고,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나비와 꽃을 그린다. 서로서로 마음속에서 고운 그림을 끌어내어 찬찬히 빈자리 채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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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29. 2013.7.10. ㄱ

 


  시골은 도시와 달리 막비가 퍼붓지 않는다. 흙과 숲과 나무와 풀이 있으니 드세게 빗줄기 퍼붓더라도 이내 개어 물기가 찬찬히 마른다. 비가 말끔히 갠 이듬날부터 마당에 ‘나무로 된 살림살이’를 내놓아 볕바라기 시킨다. 이불과 깔개와 베개를 평상에 올려놓고 말린다. 한창 해바라기 시키며 따끈따끈 잘 마르며 눅눅한 기운 가시는데, 두 아이는 평상에 놓은 여러 가지를 놀잇감으로 삼는다. 큰 깔개와 큰 베개에 드러누워 만화책을 본다. 얘야, 너희 거기 드러누워 놀라고 내놓지는 않았는데. 하기는. 너희도 볕바라기 하면서 살갗을 까맣게 태워도 되겠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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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 한 줄기

 


  시골에서 쓰는 찬물은 쓰면 쓸수록 차가운 기운이 짙다. 한여름이건 한겨울이건 시골물은 찬물이다. 입으로 마셔서 몸으로 받아들일 때나 손발로 적셔 살갗으로 맞아들일 적이나 언제나 찬물인 시골물이다.


  도시에서 쓰는 물은 언제나 찬물이 아니다. 아무리 쓰고 써도 물 기운은 똑같다.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도시에서는 찬물을 쓸 수 없다. 도시에서 먼 시골자락 멧골마을 여러 곳을 시멘트 울타리 세워 물을 잔뜩 가둔 댐부터 시멘트관으로 잇고 이어 도시로 끌어들이는 물에는 찬 기운이 서리지 않는다.


  물을 마시거나 물로 살갗을 적시면서 물빛과 물내음과 물맛을 어느 만큼 느끼는가 하고 돌아본다. 도시사람과 시골사람은 저마다 어떤 기운을 물에서 얻는가 헤아린다. 물빛을 바라보며 물을 마시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물내음을 맡으며 물을 쓰는 사람은 몇이나 있는가. 물맛을 짚으며 물을 누리는 사람은 한국땅에 있기는 있는가.


  비오는 날에 비를 기쁘게 맞으며 걷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시골에서 손으로 냇물을 떠서 마시려고 하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 4346.7.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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