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쑥 책읽기

 


  오천 해를 자랑한다는 한겨레 옛이야기를 살피면, 범과 곰이 마늘이랑 쑥을 먹고 사람이 되려 하는 대목이 있다. 그래, 범과 곰은 마늘이랑 쑥 두 가지를 먹고 숲속에서 빗물과 햇살과 풀밭에서 지내면 ‘사람이 되는’구나. 그러면, 우리들 사람도 마늘과 쑥을 꾸준히 먹을 때에 사람다운 빛을 보여준다고 할 만할까? 마늘과 쑥을 늘 먹지 못한다면 사람다운 빛, 곧 사람빛을 잃는다고 할 만할까?


  그런데, 곰곰이 헤아려 보면, 마늘과 쑥은 ‘사람이 먹는 풀’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보여주는구나 싶다. 먼저, 마늘은 ‘사람이 키운 풀’이다. 쑥은 ‘숲에서 스스로 돋는 풀’이다. 곧, 마늘을 들며 ‘사람이 손수 사랑을 담아 돌보며 얻는 고마운 풀’이 있다고 밝히는구나 싶다. 쑥을 들면서 ‘사람 둘레에서 사랑스레 스스로 돋는 고마운 풀’이 함께 있다고 보여주는구나 싶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스스로 씨앗을 심어서 돌보는 풀 한 가지하고, 숲에서 스스로 씨앗을 맺고 흙으로 드리우면서 씩씩하게 돋는 풀 두 가지, 이렇게 나란히 섞어서 먹을 때에 아름다운 빛이 된다는 이야기라고 느낀다.


  이를테면, 마늘과 벼와 보리와 수수와 서숙과 무와 오이 같은 여러 가지는 사람이 사랑을 들여 심어서 거두는 고마운 먹을거리이다. 쑥과 냉이와 질경이와 민들레와 고들빼기와 미나리와 부추와 도라지 같은 여러 가지는 사람이 씨앗을 안 심어도 스스로 씩씩하게 돋아서 얻는 고마운 먹을거리이다.


  하나는 스스로 일구고, 다른 하나는 숲에서 얻으라는 사람살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뿌리거나 나누는 사랑이 하나 있고, 다 함께 어우러지는 지구별에서 샘솟는 사랑이 둘 있구나 싶다. 4346.7.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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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방송 책읽기

 


  고흥읍에서 순천역으로 시외버스를 달리는 길에, 시외버스 일꾼이 교통방송 라디오를 듣는다. 저 라디오 좀 끄면 안 될까. 저 라디오 듣고 싶으면 혼자 귀에 소리통 꽂고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귀로는 소리에 마음을 쓰고, 눈과 몸과 손으로는 버스 운전대에 마음을 쓸 수 있는가. 자동차를 몰 적에 텔레비전 보지 말라 하고 손전화 켜지 말라 한다면, 자동차를 몰며 라디오도 들어서는 안 될 노릇 아닌가.


  아이들한테 밥을 먹이고 이래저래 놀리다가 문득문득 교통방송 소리를 듣는다. 곰곰이 생각한다. 교통방송에서 나오는 이야기란 거의 모두 ‘길 막힌다’는 소리라고 느낀다. 이리 돌아가든 저리 거쳐 가든 언제나 ‘길 막힌다’는 소리로구나 싶다. 이 얘기 아니라면 ‘길 안 막힌다’는 소리일 테지. 그러니까, 길이 막히면 막힌다 하고, 안 막히면 안 막힌다는 소리이다. 그러니까, 자동차를 모는 사람으로서는 이리로 가든 저리로 가든 교통방송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 막힐 길을 가야 하는 시외버스로서는 뚫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고흥과 순천 사이에 교통사고가 났다면 어쩌겠는가. 교통사고 때문에 흩어진 조각 치울 때까지 길에서 멀뚱멀뚱 서야지, 돌아갈 길이 없다. 돌아가야 하는 길이라면 사고 현장 둘레에서 마련한다. 길이 안 막힌다 할 때에도 교통방송을 들을 일이 없다. 안 막히니까 시원스레 잘 달린다.


  굳이 라디오를 들어야 한다면, 버스 일꾼한테 도움이 될 이야기를 들려주어야지 싶다. 이를테면, 봄에는 봄꽃과 봄바람과 봄내음 이야기를 들려주고, 여름에는 여름꽃과 여름바람과 여름내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지 싶다. 가을에는 가을빛을 들려주고 겨울에는 겨울빛을 알려주어야지 싶다.


  아름다운 이야기 담은 책을 읽어 준다든지, 어른뿐 아니라 아이도 들을 만한 아름다운 시를 읽어 준다든지, 어른과 아이 모두 즐겁게 누릴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준다든지 할 라디오라고 느낀다.


  숲에서 나무가 얼마나 자랐고, 나무마다 나뭇잎빛 얼마나 다르며 싱그러운가를 이야기한다면 즐거우리라. 꽃망울 터지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비가 날갯짓하며, 어느 시골 하늘에 구름빛 환하다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밝히면 더없이 즐거우리라. 4346.7.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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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아프리카
김민호 글.사진 / 안목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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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43

 


마음에 그리는 사진
― 동백꽃 아프리카
 김민호 사진·글
 안목 펴냄,2013.6.19./18000원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을 찍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쓸 때에는 글을 쓰면 되고, 그림을 그릴 때에는 그림을 그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도 덜도 아니에요. 밥을 지을 때에는 밥을 짓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에는 노래를 불러요. 숲길을 거닐 때에는 숲길을 거닐고, 자전거를 탈 때에는 자전거를 탑니다. 다른 것은 굳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술을 하려고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문화를 빛내려고 사진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진을 찍으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문학을 하려고 글을 쓰지 않아요. 사회를 비평하거나 문학을 평론하려고 글을 쓰지 않습니다. 느낌글(서평)을 쓰든 생각글(주장)을 쓰든 늘 같아요. 내 삶을 한껏 누리면서 쓰는 글입니다.


  아이들과 즐거이 놀려고 노래를 부릅니다. 목소리를 뽐낸다거나 솜씨를 자랑하려고 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그렇지요. 손가락질을 뽐내려고 찍는 사진 아니요, 기계 다루는 솜씨 자랑하려는 사진 아니에요. 좋아하기에 즐기는 사진이고, 사랑하기에 누리는 사진입니다.

 

 


  김민호 님이 아프리카를 즐기면서 빚은 사진과 글로 이루어진 책 《동백꽃 아프리카》(안목,2013)를 읽습니다. 마음으로 그리는 사진을 생각하며 천천히 여러 차례 읽습니다. 저녁에 읽고 아침에 읽습니다. 시골 한낮 풀바람과 나무바람과 논바람 마시면서 읽습니다. 아이들 밥을 차려 주고서 한숨 쉬면서 읽고, 이제 슬슬 아이들과 마을 빨래터에 가서 빨래터 물이끼 걷어내면서 물놀이를 하자 생각하며 한 번 더 읽습니다.


  김민호 님은 책 마지막에 “모두가 주인공인 아프리카(160쪽).”라고 말합니다. 그래요,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아프리카에서도 한국에서도. 지구에서도 우주에서도.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모든 사람은 저마다 주인공입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이녁 삶을 지키고 가꾸고 돌보고 일구고 보살피는 임자입니다.


  나는 내 사진을 찍습니다. 나는 ‘네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나는 내 사진을 찍습니다. 나는 ‘브레송 사진’을 찍지 않아요. ‘김기찬 사진’이나 ‘최민식 사진’을 굳이 내가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어빙 펜 사진’은 어빙 펜이 찍으면 돼요. 나는 내 삶을 누리면서 내 사진을 찍습니다. 나는 내 길을 걸어가면서 내 눈길로 내 보금자리 둘러싼 마을을 바라봅니다.


  아프리카를 천천히 또는 빨리 또는 느긋하게 또는 살짝 바쁘게, 그날그날 다 다른 움직임에 맞추어 돌아다녔을 김민호 님은“아프리카에는 / 바람이 되어 / 이곳저곳을 서성이는 우리의 시간이 있다(100쪽).” 하고 말합니다.

 

 


  이곳에는 이 시간이 있습니다. 이 시골에는 이 시간이 있어요. 전남 고흥 시골마을은 여러 날 햇볕이 따사롭다못해 후끈후끈합니다. 벼는 잘 익고 나무는 무럭무럭 큽니다. 풀은 잘 자라고, 잠자리와 나비는 춤을 한껏 펼칩니다.


  다만, 오늘날 어느 시골이든 농약을 참 많이 쳐요. 우리 식구 살아가는 시골도 여느 시골과 똑같습니다. 우리 집만 농약을 안 쓸 뿐, 이웃집 이웃마을 모두 농약을 칩니다.


  이웃들이 농약을 치면, 농약내음 묻은 바람을 곧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농약내음 묻은 바람이 불면 논배미 개구리 울음소리 줄어들어요. 농약을 많이 친 날에는 개구리 밤노래는 아주 사라지기까지 합니다.


  도시에서는 시골처럼 농약을 뿌리지 않으니, 한여름에 매미 노랫소리 우렁차곤 한데, 아무리 매미가 우렁차게 노래해도 자동차 지나다니는 소리에 파묻힙니다. 사람들이 창문 닫고 에어컨 돌리면 매미 노랫소리는 아파트에 스며들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삶 누리고 싶을까요.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사진을 찍고 어떤 사진을 읽고 싶을까요. 김민호 님은 “어느 날이었던가 어머니께서 혼자 우물가에 오독하니 앉아 계셨다. 간밤에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시고 그예 상한 속을 우물처럼 담고 계신 것이었으리라. 그때 나는 사람의 눈에서 별들이 태어나는 모습을 보았고 봉숭아물이 반쯤 남은 어머니의 손을 보았다(36쪽).” 하고 말합니다. 김민호 님이 사진을 찍을 적에는 어린 날 마주한 ‘어머니 손’ 이야기가 서리는군요. 당신 어머니 손과 눈과 온몸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오늘 이곳에서 김민호 님 삶을 헤아리는 이야기 들려줄 사진기 단추를 누르는군요.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논밭에 농약을 잔뜩 치곤 하지만, 내다 팔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이기 때문에 농약을 잔뜩 칩니다. 당신이 먹을 곡식이나 열매나 푸성귀라면 농약을 치지 못합니다. 더구나, 당신 딸아들과 당신 손자 먹을 곡식이나 열매나 푸성귀라면 농약 한 방울 못 쳐요.


  어버이 마음이란 한결같아요. 풀을 잡으려고 농약을 치지, 아이들한테 먹이려고 농약을 치지 못해요. 곧, 내다 파는 곡식을 생각할 적에도 ‘내 아이’와 같은 누군가 먹을 곡식이라 여긴다면, 몸가짐 사뭇 달라집니다. 그리고, 이럴 때에는 늙은 당신들 힘겨운 몸 움직여 농약을 뿌리기보다, 도시로 떠난 딸아들 주말에라도 찾아와서 함께 풀을 베자고 부를 수 있어요.


  사진책 《동백꽃 아프리카》를 다시 펼칩니다. 책 첫머리에 “시간의 바느질을 견디어 내신 아름다운 어머니께 드립니다(5쪽).” 하는 인사말 한 줄 나옵니다. 어머니는 아름답고, 어머니 사랑을 받고 자란 김민호 님도 아름답습니다. 사진책 《동백꽃 아프리카》를 펴낸 안목 출판사 일꾼도 아름답고, 이 사진책 장만해서 읽을 사람들도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을 생각하기에 아름다운 삶을 누리고, 아름다운 삶 누리면서 아름다운 눈길과 손길이 되니, 사진기 손에 쥐면 참 아름답다 싶은 사진을 찍어요.


  사랑을 생각하기에 사랑스러운 삶을 누려요. 사랑스러운 삶 누리는 동안 시나브로 사랑스러운 눈길과 손길로 거듭나면서, 연필 손에 쥐면 더없이 사랑스럽구나 싶은 글을 써요.


  살아가고 싶은 길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싶은 꿈을 헤아립니다. 살아가며 누리고 싶은 사진을 생각합니다. 사랑하며 찬찬히 그릴 꿈을 글로 어떻게 담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밭자락에 어떤 씨앗 심을까 생각합니다. 밭자락에 심은 씨앗을 어떻게 돌볼까 헤아립니다. 밭자락에서 거둔 열매를 누구하고 어떻게 나눌 때에 즐거울까 하고 가만히 돌아봅니다. 사진이 태어나는 삶밭을 떠올립니다. 사진이 거듭나는 마음밭을 곱씹습니다. 삶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피우는 사진 한 장 아름답습니다. 4346.7.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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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동백꽃이 피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에는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동백꽃 붉게 피어나는 빛을 가슴에 담으며 아프리카를 떠올리고 그리고 생각하고 만나는 사람은, 아프리카에서도 동백꽃 같은 빛깔과 무늬와 냄새와 결을 바라봅니다. 사진책 《동백꽃 아프리카》는 저마다 다른 빛으로 환하게 피어나는 꽃송이를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한국에서는 한국빛을 느끼고, 아프리카에서는 아프리카빛을 느끼는 삶을 돌아보도록 북돋웁니다. 쑥빛은 어떤 빛일까요. 보리빛과 수수빛은 어떤 빛일까요. 감자빛과 깨빛은 어떤 빛일까요. 웃음 한 자락에 묻어나는 사랑스러운 빛을 사진으로 담는다면 어떤 이야기가 태어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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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아프리카
김민호 글.사진 / 안목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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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17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왠지 좋고 책도 참 좋을 듯 합니다.
이 책, 즐겁게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3-07-17 10:31   좋아요 0 | URL
출판사 블로그에서 책소식은 진작부터 보았지만,
인터넷책방에는 이제서야 떴기에
오늘 비로소 이렇게 짧은 소식부터 띄웠어요~~
 

혀 빼물며 달리는 어린이

 


  아이가 마당을 달릴 적에는 눈치를 못 챘는데, 사진을 찍고 보니 혀를 쏙 빼물고 달린다. 그렇구나, 네 버릇이네. 언제나 노래와 수다를 입에 달고 사느라 혀를 쏙 빼물고 달리려나. 얼굴로 와닿는 바람을 혀끝으로도 마시고 싶어 살짝 입을 벌리고 혀를 쏙 빼물고 달리려나. 4346.7.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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