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27] 정치읽기
― 개혁이나 혁명을 어떻게 이루는가

 


  프랑스혁명을 다룬 책을 읽다가 자꾸 책을 덮습니다. 속이 메스껍기 때문입니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임금이 누군가를 죽이는’ 이야기라든지,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서 ‘백성을 괴롭히던 사람을 붙잡아 죽이는’ 이야기로구나 싶습니다. 아주 쉽게 대단히 자주 ‘사람 머리를 칼로 잘라 창에 꽂고 흔들며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런 죽음수렁이 혁명일까요. 누가 누구를 죽여야 혁명이 이루어지나요. 이런저런 사람은 밥을 먹을 값어치 없으니 목아지를 뎅겅 잘라 죽이면서 손뼉치고 낄낄거리며 잔치를 벌여야 혁명인가요.


  평화나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은 몇몇 사람이 밥을 혼자 차지한 채 꽁꽁 숨기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전두환·노태우 추징금’을 못 걷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지요. 이 나라 여느 사람들이 카드빚 10만 원만 밀려도 신용불량자가 되고, 100만 원이 없어 압류를 쉽게 받기도 하는데, 돈 한 푼 없다고 하는 옛 대통령은 거들먹거리면서 잘 살아가요. 이들은 아무 거리낌이 없어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정치라 하는 얼거리가 있으니 바보스러운 일이 벌어집니다. 임금도 대통령도 굳이 있어야 할 까닭 없어요. 대표나 우두머리가 꼭 있어야 할 까닭 없어요. 평화와 평등을 바라는 사회에 어떻게 대표나 우두머리가 있겠어요. 모든 사람이 저마다 대표이면서 우두머리예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저마다 딱 하나뿐인 목숨이면서, 저마다 아주 밝게 빛나는 숨결이에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뜻있고 값있는 빛인 터라, 누구나 대표이면서 우두머리입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임금이나 대통령은 일을 하지 않아요. 일을 하는 척하지만, 정작 아무 일을 하지 않아요. 장관이나 벼슬아치도 일을 하지 않아요. 모두 일을 하는 척할 뿐입니다. 관리나 공무원 모두 일을 하지 않아요. 다들 일을 하는 척일 뿐이에요.


  일이란 무엇일까요? 돈을 버는 직업이 일인가요? 아닙니다. 밥과 옷과 집을 빚을 때에 비로소 일입니다. 돈을 벌어 밥과 옷과 집을 장만한다고 하지만, 돈이란 밥도 옷도 집도 아니에요. 돈은 돈일 뿐입니다.


  궁월이나 청와대나 국회의사당 짓느라 억수로 큰 돈이나 품이나 겨를을 들일 까닭이 없습니다. 임금은 임금 스스로 논밭을 일구어 이녁 밥을 얻어야 합니다. 대통령은 대통령 스스로 실을 잣고 베틀을 밟고 바느질을 해서 옷을 얻어야 합니다.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세무사도 모두 스스로 땅을 일구고 실을 훑으며 나무를 만져야 합니다.


  정치가 무엇인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정치란,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억누리는 권력기구입니다.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짓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를 한들, 사회나 나라를 올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정치꾼은 밥을 어떻게 먹나요? 남이 해 주는 밥을 먹나요? 그러면, 정치꾼 몫만큼 누가 더 일을 해야 하지요? 정치꾼이 입는 옷은? 국회의원 같은 이들이 타는 자가용은 누가 일해서 굴리도록 하지요?


  세금을 어디에 쓰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세금 가운데 아주 큰 몫은 군대를 거느리는 데에 쓰는데, 군대 거느리는 자리보다 ‘정치꾼과 공무원 품삯’ 치르는 데에 세금을 더 크게 씁니다. 다시 말하자면, 대통령이나 정치꾼이나 공무원을 모시려고 세금을 걷는 꼴입니다. 이들 품삯으로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나가지요. 이들이 직업을 얻어 아침저녁으로 다니는 공공기관 건물을 짓느라 세금을 어마어마하게 쓰지요. 이들이 공공기관 건물에서 서류를 쓰고 컴퓨터를 만지며 낮에도 전기불 켜고 에어컨과 난방기 돌리느라 세금을 엄청나게 씁니다.


  어떤 정부기관이건 따로 있을 일이 없습니다. 어떤 공공기관이건 따로 세울 일이 없습니다. 어디에서나 조그맣게 마을이 이루어지면 됩니다. 마을마다 숲을 이루고 냇물이 흐르며 나무가 자라면 됩니다. 마을마다 오순도순 어울려 잔치를 벌이고 품앗이를 하면 됩니다.


  청와대 헐고 숲을 이루어야지요. 세무소와 법원 허물어 밭을 이루어야지요. 경복궁도 광화문도 굳이 문화재로 삼지 않아도 돼요. 들이 되고 냇물이 흐르도록 하면 돼요.


  씨를 뿌리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니 나라살림이 버겁습니다. 흙을 만지지 않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으니 이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시골에서 흙을 만져 풀과 열매와 곡식 돌보는 사람이 없다면, 정치이고 사회이고 문화이고 경제이고 과학이고 몽땅 무너집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이 있기에 정치를 하느니 사회를 지키느니 문화를 닦느니 경제를 세우느니 과학을 밝히느니 교육을 하느니 하고 말합니다.


  가만히 헤아려 봐요. 스스로 흙을 만지며 조그맣게 이루는 마을살이가 바로 정치요 사회이며 문화이고 과학이면서 교육입니다. 메주를 띄우고 간장과 된장을 담그던 삶이 과학이자 문화이며 교육입니다. 논일 밭일 숲일 모두 교육이고 정치이며 사회입니다. 품앗이와 두레와 잔치가 바로 정치이자 문화이고 교육입니다.


  뜻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대서 개혁이나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총칼을 들고 뒤집어엎어야 혁명이나 개혁이 되지 않아요. 서로서로 흙을 만질 때에 개혁도 되고 혁명도 되어요. 다 함께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보금자리 일구면서 숲을 누릴 적에 평화와 평등 이루어져요. 4346.7.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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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빨래터에서 읽는 《원주통신》

 


  박경리 님이 원주에서 흙 만지며 산 지 다섯 해 즈음 될 무렵 내놓았다고 하는 《원주통신》(지식산업사,1985)을 새롭게 읽는다. 곰곰이 돌아보니, 나는 이 책을 아직 도시에서 지낼 적에만 읽었고,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들여다본 적 없구나 싶다.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 〈숨어있는 책〉을 나들이하다가 《원주통신》을 다시 만나면서 생각한다. 2010년 여름부터 식구들과 함께 시골에서 살아가는데, 이제 이 책을 다시 읽으면 느낌이 남다르지 않을까 하고.


  ‘씨앗을 닮으려는 흙일은 즐겁다’라 이름을 붙인 글부터 읽는다. 박경리 님이 후줄그레한 차림새로 흙을 만지며 일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단다.


.. 언제였는지 내가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서 흙일에 열중해 있을 때 찾아온 사람은 적잖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선생님 오래 사시려고 일을 합니까 하고 말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던 나는 곧 분개를 했다. 상대가 관리였기에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요즘 유행인 핼드클럽에서 하는 운동으로 착각한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어디 그 사람뿐이랴. 대개 모든 사람들은 일하는 내 꼴을 보면 의외라는 표정이었고 이곳의 어느 소녀는 소위 여류작가인 나를 보고 실망했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목걸이하고 귀걸이하고 매끄러운 손에 매니큐어나 하고 있어야만 여류작가냐? … 모리악은 소설가란 하나님을 닮으려는 사람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씨앗을 닮으려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  (63∼64쪽)


  박경리 님이 아이들 낳아 돌보는 삶을 도시에서 그대로 이었다면, 아마 박경리 님 마음에도 “소설가는 하느님을 닮으려는 사람”이라는 생각만 있었으리라 느낀다. 이녁 스스로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가다 보니 “소설가는 씨앗을 닮으려는 사람”이라고 깨달았으리라 느낀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은 ‘풀을 닮고 나무를 닮다가, 스스로 풀이 되고 나무가 되려는 사람’일 때에 아름다운 빛이 환하게 드리운다고 생각한다. 곧, 처음에는 씨앗을 닮으려 할 테지만, 어느새 스스로 씨앗이 된다고 본다. 마음속에 하느님을 품는다는 말은, 하느님을 닮으려고 애쓴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하느님이 된다는 뜻이다.


  닮으려고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닮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되면’ 넉넉하다. 스스로 사랑이 되면 즐겁고, 스스로 꿈이 되면 기쁘다. 스스로 빛이 될 때에 밝고, 스스로 하늘이 되고 흙이 될 때에 포근하다.


  마을빨래터 청소를 모두 마친다. 나도 큰아이와 함께 빨래터 바닥에 철푸덕 앉는다. 바가지로 물을 퍼서 아이들 몸에 끼얹고 내 몸에도 끼얹는다. 시원하구나. 햇볕 고스란히 받지만, 졸졸 흐르는 골짝물 이어지는 빨래터에 온몸 맡기며 앉으니 더없이 시원하구나.


  아이들은 더 놀라 하고, 나는 《원주통신》을 조금 더 읽는다. ‘생명은 시행 아닌 진실 자체’라 이름 붙인 글을 읽는다.


.. 씨를 말려서는 아니 된다. 어떠한 것이든 생명인 씨를 말려서는 아니 된다 … 살구가, 자두가 여물 무렵이면 우리 뜰에는 어디서 오는지 꾀꼬리들, 까치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든다. 그러면 나는 인심 후하게 멀리서 새들을 숨어 본다. 먹고 살아라 새야 … 오늘의 문명은 날이면 날마다 세계 도처에서 도전과 승부욕에 불타게끔 사람들을 세뇌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모두 서로가 적인가. 모든 생명은 모두 서로가 적인가. 자연도 인간의 적인가. 적이라 생각하는 한에 있어서 무서운 보복은 불가피한 것이 아닐까 ..  (23∼25쪽)


  박경리 님이 1985년에 내놓은 《원주통신》은 책이름처럼, 시골마을에서 살아갔기에 쓸 수 있는 글을 모았다. 시골마을에서 햇살과 바람과 비와 흙과 풀과 나무와 새와 벌레와 짐승하고 얼크러지면서 시나브로 태어난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았다. 모처럼 눈을 트는 글 몇 줄 읽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시골빛 되는 이야기를 쓰는 한국 작가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오늘날, 맑은 삶 한 자락 고맙게 살펴 읽는다. 자, 아이들아 이제 집에 가서 더 놀자. 4346.7.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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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18 09:16   좋아요 0 | URL
먹고 살아라 새야...
함께살기님 덕분에 이 아침, 박경리 선생님의 <원주통신>이야기와
아름다운 글로 하루를 엽니다.
기쁘고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3-07-18 10:29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다른 판으로 나오는지 살펴본다고 했다가
미처 살펴보지 않았네요 @.@
에구구~
 

[아버지 그림놀이] 그림 선물 (2013.7.15.)

 


  그림을 그린다. 선물할 생각으로 그린다. 입으로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으로는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선물받을 사람한테 예쁜 이야기 흐를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림을 그린다. 우리 집 벽에 붙이려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이웃한테 선물을 하려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구나 싶다. 우리 식구들 날마다 들여다볼 그림을 그리기도 하면서, 내 반가운 이웃들 언제나 돌아보면서 고운 빛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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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18 09:21   좋아요 0 | URL
우와~!!!
그림을 보는 순간, 마음이 마구마구 즐겁고 기쁘네요!^^
어쩜 이리 맑고 아름답고 즐거운 삶 이야기..모두 어울려 빛나고 예쁜 노래를 부를까요~?^^

숲노래 2013-07-18 10:28   좋아요 0 | URL
예쁜 책 만드는 출판사에
좋은 돈 많이 들어와
앞으로도 즐겁게 책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렸어요..
 

새롭게 만난 미꾸라지

 


  마을 빨래터를 한창 청소하는데 나무토막이나 물풀 아닌 뭔가 슥 지나가는 그림자를 본다. 무얼까. 설마 물고기? 빨래터에? 빨래터 바닥에 낀 물이끼를 걷어내고 밀어내며 물을 퍼서 바깥으로 버린다. 이제 아까 새까맣고 길쭉한 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하, 미꾸라지네. 그런데, 미꾸라지가 논 아닌 빨래터에 왜?


  나는 어릴 적에 미꾸라지를 많이 보았고 많이 잡았다. 우리 아이들은 미꾸라지를 오늘 처음 본다. 얘들아, 미꾸라지 한 번 만져 보렴. 미꾸라지는 살짝 만져도 죽지 않아.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미꾸라지를 만지려 하지 않는다. 그저 쳐다보기만 한다. 빨래터 물놀이는 저리 가고 미꾸라지 들여다보는 재미에 폭 빠진다. “벼리야, 미꾸라지 집으로 가져가서 키울까?” “아니.” “그러면, 미꾸라지 여기에 놓아 줄까?” “응. 놓아 줘.”


  빨래터 청소를 마치고 빨래터에 다시 놓아 준다. 빨래터에는 물이끼 많이 끼니까 미꾸라지 먹이는 모자라지 않으리라. 그나저나, 다른 미꾸라지도 빨래터로 스며들 수 있을까. 논에는 온통 농약을 뿌리지만 빨래터에는 농약 뿌릴 일 없으니 미꾸라지 너로서는 이곳이 살 만한 곳 될 테지. 그런데 너 혼자서는 무척 심심할 듯하구나. 4346.7.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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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18 09:26   좋아요 0 | URL
"응. 놓아 줘." 벼리의 마음이 참 예쁩니다..^^
정말 미꾸라지가 또 한 마리 와, 두 마리 함께 정답게 살면 참 좋겠네요~.

숲노래 2013-07-18 10:28   좋아요 0 | URL
다음에 빨래터에 갈 때에 한 마리 더 찾아올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문기자 서평 글쓰기

 


  내가 즐겁게 읽은 책 하나를 다른 사람은 얼마나 즐겁게 읽었을까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살펴본다. 아직 다른 사람 느낌글이 없을 때가 있지만, 곧잘 신문기자 서평이 올라오기도 한다. 신문기자가 신문글로 적은 서평을 읽어 본다. 보도자료에 나온 줄거리를 더 간추려서 적었구나 싶은 서평이 있고, 그나마 보도자료조차 제대로 옮겨적지 못한 서평이 있다. 때로는 보도자료에 기대지 않고 씩씩하게 서평을 써서 신문에 싣는구나 싶기도 한데, 책을 제대로 안 읽고 쓴 티를 물씬 풍기는 글이 꽤 많다. 신문기자이건 아니건 책 한 권 알뜰살뜰 읽은 뒤 즐겁게 삭혀서 아름답게 생각을 꽃피울 때에는 참 멋스러운 느낌글이로구나 하고 생각한다.


  한 주에 몇 권씩 책을 읽어내어 서평을 쓰자니 신문기자로서는 벅찬 노릇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신문기자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 신문기자는 아무나 되어도 되는가?


  아주 똑똑하거나 책을 잘 읽는 사람만 신문기자가 되란 법 없다. 어느 누구라도 신문기자가 못 되란 법이 없다. 그러나, 신문기자가 되어 주마다 몇 권씩 서평을 써야 하는 일을 맡는다면, 이러한 일을 즐겁고 씩씩하며 아름답게 건사할 일이라고 느낀다. 즐겁게 읽고 기쁘게 쓰지 못한다면, 신문기자이든 비평가이든 학자이든 교수이든 모두 부질없는 이름표를 머리에 얹고 살아가는 셈이다.


  운동선수를 생각해 보라. 운동선수가 이녁 운동을 게을리 할까. 농사꾼을 생각해 보라. 농사꾼이 이녁 농사를 게을리 할까.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해 보라.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를 함부로 다루거나 아무렇게나 내팽개칠까. 서평을 써야 하는 신문기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책 읽기 싫고, 글 쓰기 싫으며, 책을 제대로 삭히지 못하겠다는 신문기자는 부디 다른 일자리 찾아볼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4346.7.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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