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38] 한여름 꽃

 


  한여름 나무꽃은
  하야말그스름, 푸르스름, 노르스름,
  곱더라고요.

 


  모든 나무는 꽃을 피웁니다. 모든 풀은 꽃봉오리 터뜨립니다. 알록달록 빛깔이어야만 꽃이 아닙니다. 새하얗거나 새빨간 빛깔이어야 꽃이 아닙니다. 하야스름하거나 푸르스름할 적에도 꽃입니다. 아기 손톱보다 작은 꽃망울이어도 꽃입니다. 깨알만큼 조그마한 꽃송이일 적에도 꽃입니다. 저마다 환하게 빛나는 꽃입니다. 서로서로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꽃입니다. 풀꽃이요 나무꽃입니다. 풀꽃을 마주하면서 풀꽃내음 맡고, 나무꽃 바라보면서 나무꽃빛 받아들입니다. 4346.7.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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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쓰기
― 아름답게 아름답게

 


  아름답게 바라볼 사진을 얻고 싶다면, 마음 깊이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아름답게 일구면 됩니다. 황금분할이나 구도를 맞춘다고 해서 아름답게 바라볼 사진을 얻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이란 구도나 틀이 아닌 마음이요 빛입니다.


  손꼽히는 사진작가 몇 사람 작품을 흉내내거나 따른다고 해서 아름답게 바라볼 사진을 얻지 못합니다. 나는 내 마음을 담아낼 때에 즐겁게 바라볼 사진을 얻습니다. 나 스스로 즐겁게 바라볼 사진이 될 때에 비로소 아름답게 바라볼 사진이 됩니다. 그럴듯하거나 멋들어지다는 모습은 오래도록 바라보기 어려워요. 겉멋이나 겉치레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담아서 찍은 사진 한 장은 썩 그럴듯하지 못하거나 그리 멋들어지지 못하다 하더라도, ‘마음이 담겼’기에 두고두고 바라볼 만합니다. 살짝 흔들리거나 빛이 덜 맞더라도 ‘마음을 담은’ 즐거움을 오래오래 누립니다.


  서로를 아끼는 사랑이나 꿈이란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얼굴이 잘생겼기에 서로를 아끼는 사랑이나 꿈이 되지 않아요. 돈이 많기에 서로를 보살피는 사랑이나 꿈이 되지 않아요. 이름값이 높기에 서로를 어루만지는 사랑이나 꿈이 되지 않아요. 마음으로 우러나올 때에 사랑과 꿈이 되고, 마음으로 샘솟을 때에 사랑과 꿈으로 자라며, 마음으로 빛날 때에 사랑과 꿈을 이루어요.


  사랑을 떠올리면서 ‘사랑스럽게 살자’ 하고 생각해요. 그러면 시나브로 사랑스러운 빛 사진에 담기 마련이고, 사랑스러운 빛을 하나둘 사진으로 담다 보면, 저절로 아름다운 빛깔로 거듭나요. 내 삶을 아끼면서 마음속에 고운 꿈을 심자고 생각해요. 그러면 어느덧 고운 꿈이 아름다운 빛살로 태어나요. 사랑을 생각하기에 사랑이 되고, 꿈을 생각하기에 꿈이 되며, 아름다움을 생각하기에 아름다움이 됩니다.


  이제껏 아름답다 싶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면, 나 스스로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못했으면, 아름답게 살아갈 마음이 되지 못하고, 온누리를 아름다운 눈길로 바라보지 못해요.


  여느 때에 마음을 아름답게 써요. 이웃을 바라볼 적에 아름다운 눈길로 바라봐요. 동무를 사귈 적에 아름다운 손길을 내밀어요. 풀과 꽃과 나무를 마주하며 아름다운 마음길이 되어요. 아름답게 걸어가는 삶길이 되면, 아름답게 일구는 사진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어요.


  나는 우리 아이들과 마을빨래터를 청소하고 함께 물놀이를 하면서 파랗게 눈부신 하늘에 구름 하얗게 흐르는 모습을 아름답다고 여겨, 사진 한 장을 얻습니다. 아름답게 바라볼 사진은 누구나 언제라도 즐겁게 얻습니다. 4346.7.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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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꽃다리

 


모과나무는 잎 아직
하나 안 달린
벌거숭이일 때에도
모과나무.

 

수수꽃다리는 꽃 아직
하나 안 맺힌
나뭇잎만 푸를 적에도
수수꽃다리.

 

감알 익어도
감꽃 피어도
감잎 돋아도
감나무는

감나무.

 

푸른나무 바라보고
수수꽃다리 꽃망울 마주하는
오뉴월 한낮
볕바람 따끈.

 


4346.5.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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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와 삶터

 


  이십 분쯤 걸려 마을빨래터 물이끼를 걷어냈을까. 물이끼 걷어내며 물을 퍼낸 뒤에는 새롭게 흐르는 시원한 물이 빨래터를 채운다. 이때부터 땡볕에서도 시원한 물놀이를 즐긴다. 시끌벅적한 관광객 없고, 왁자지껄한 자동차 없다. 호젓하며 조용한 놀이터가 된다. 틀림없이 옛날에도 마을빨래터란 빨래를 하는 터이면서 아이들 놀이터였으리라 생각한다. 조금 큰 아이들은 도랑물과 시냇물과 골짝물 찾아다니며 놀았을 테고, 조금 작은 아이들은 빨래터에서 어머니와 함께 물놀이를 했을 테지.


  아이들 놀이터는 따로 있지 않다. 어른들 삶터가 바로 아이들 놀이터이다. 어른들 일터는 곧 아이들 놀이터가 된다. 어른들은 즐겁게 일할 만한 곳이요,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놀 만한 곳일 때에 보금자리이면서 일터이고 놀이터인 삶터가 된다.


  아이들이 따로 놀이터라는 데를 멀리까지 찾아가야 한다면, 아이들도 힘들고 어른들고 힘겹다. 아이들이 집 안팎에서 마음껏 놀 수 없다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아름다운 삶 되기란 어렵다.


  햇살을 누리고 바람을 마시는 삶터가 놀이터이다. 풀내음 맡고 나무그늘 누리는 삶터가 놀이터이다. 4346.7.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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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놀이 1

 


  빨래터를 청소하다가 미꾸라지 한 마리를 만난다. 바가지에 물을 담아 미꾸라지를 옮긴다. 청소를 끝낼 동안 바가지에서 지내도록 한다. 미꾸라지가 나타나서 살짝 잡아 바가지로 옮긴 뒤부터 아이들은 물놀이를 그치고 미꾸라지 쳐다보기에 바쁘다. 미꾸라지를 처음 본 아이들은 ‘미꾸라지’라는 낱말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귀뚜라지’라고 말한다. 집에서 기를는지 논에 풀어놓아야 할는지 다시 빨래터에 놓아야 할는지 큰아이한테 물으니, 이곳에 놓자고 한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논에도 풀어놓으면 언제 또 논에 농약 칠는지 모를 노릇이다. 논에서는 외려 살아갈 길이 없다. 빨래터에서는 그나마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빨래터에 낯 씻으러 들르는 사람들 눈에 뜨이지 말아야 한다. 부디 이곳에서 잘 살아남아 다음에 또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바가지를 기울여 놓아 준다. 4346.7.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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