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놀이 4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지 않은 오늘 낮, 아이들이 슬쩍 마당으로 내려서더니 맨발로 빙빙 돌면서 논다. 너희한테는 달리기가 참 좋지. 날마다 키가 자라면서 날마다 발도 다리도 간지러울 테지. 이렇게 달리고 뛰어야 몸이 쑥쑥 크면서 튼튼해질 테고, 너희 통통통 발소리 듣는 우리 집 풀과 나무도 한결 즐겁게 하루를 누리리라 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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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amata (Hardcover, Deluxe)
W. Eugene Smith / Henry Holt & Co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7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삶을 사진으로
― Minamata
 유진 스미스(William Eugene Smith) 사진
 에일린 미오코 스미스(Aileen Mioko Smith) 글
 Holt, Rinehart & Winston,1972

 


  유진 스미스 님 사진 한 장으로 ‘미나마타병’을 바라보는 언론 흐름과 사회 흐름과 정치 흐름이 아주 뒤바뀌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나는 달리 생각합니다. 사진 한 장 때문에 뒤바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유진 스미스 님은 ‘사진 한 장’만 찍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야기 있는 삶을 살피면서 사진으로 사람들 웃음과 눈물을 나란히 보여줍니다.

 


  사진책 《Minamata》(Holt, Rinehart & Winston,1972)를 읽습니다. 유진 스미스(William Eugene Smith) 님 옆지기인 에일린 미오코 스미스(Aileen Mioko Smith) 님이 글을 넣습니다. 그리고, 1975년판부터는 ‘하라다 마사즈미(原田正純)’ 님이 ‘미나마타병과 얽힌 자료’를 붙였다고 합니다. 고개를 살짝 갸우뚱합니다. 무척 낯익다 싶은 이름 ‘하라다 마사즈미’를 사진책 《Minamata》 간기에서 보다니?

 


  설마 싶어 알아봅니다. 아하, 그렇군요. 하라다 마사즈미 님 책 가운데 두 가지가 한국말로 나온 적 있어요. 하나는 어린이문학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우리교육,1995)이고, 하나는 학술책 《미나마타병》(한울,2006)입니다. 그렇군요. 조금 더 알아보니, 한국에서 처음으로 밝혀진 환경병이자 공해병인 ‘울산 온산병’을 이 나라에 알린 사람이 바로 하라다 마사즈미 님이라고 해요. 하라다 마사즈미 님은 2012년 6월 11일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제껏 겪거나 본 적 없던 무시무시한 죽음수렁에 빠진 채 두려움에 떨던 일본 어느 시골자락 바닷마을 사람들한테 ‘의사이자 박사인 동무’가 되어 주면서, 일본 환경병이자 공해병을 밝히고 알릴 뿐 아니라, 미나마타사람을 힘껏 도운 하라다 마사즈미 님이에요. 환경문제요 공해병을 지구별에 널리 알리면서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이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나아가야 하는 대목을 생각하던 유진 스미스 님한테 하라다 마사즈미 님은 새삼스럽게 ‘일동무’가 되었겠지요.

 


  사진책 《Minamata》를 보면 껍데기가 시커멓습니다. 첫 쪽을 넘기면 고기잡이를 하는 뱃사람 모습이 나옵니다. 둘째 쪽에는 공해덩어리로 끔찍하게 죽어버린 바닷물 모습이 나옵니다. 이 다음에는 다시 고기잡이를 하는 뱃사람 모습이 나와요. 나무로 지은 배를 타고 그물로 고기를 낚는 여느 바닷마을 사람들 모습을 봅니다. 이 다음에는? 바다에서 고기잡이배가 낚아올린 어마어마하게 많은 고기떼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어요.

 


  무엇을 말하는 사진들일까요? 아니, 무엇을 말하는 사진들이라 생각하나요?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과 물고기가 있는데, 바닷물은 끔찍하게 지저분하다? 무슨 얼거리가 될까요? 이 다음에는 어느 어머니가 이녁 딸아이를 씻기는 사진입니다. 딸아이는 나이가 제법 많아 보이지만 몸집이 퍽 작고 삐쩍 말랐습니다.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해, 어머니가 살포시 안아서 함께 알몸이 되어 몸을 씻습니다. 이 아이는 왜 이런 몸이 되어 이렇게 몸을 씻어야 할까요? 이 다음에는 구부러져서 안 펴지는 손가락이 뭉텅이처럼 된 손 모습이 나옵니다. 이 사진은 또 무엇을 말할까요? 왜 이런 손, 왜 이런 몸이 될까요?

 


  파리약을 뿌리면 파리가 죽습니다. 모기약을 뿌리면 모기가 죽습니다. 파리약을 뿌리면 잠자리도 죽고, 모기약을 뿌리면 나비도 죽습니다. 파리, 모기, 잠자리, 나비가 죽으면, 새들은 아무것도 못 먹습니다. 자동차가 끝없이 달리며 배기가스를 내뿜고 기름을 길바닥에 흘리면 흙이 더러워집니다. 한국에 오랫동안 머물던 미군부대는 이 나라 땅바닥에 썩은기름(폐유)을 어마어마하게 몰래 버렸다고 합니다. 아마, 미군부대 있던 땅에서 다시 농사를 지으려면 쉰 해 아닌 백 해는 더 있어야 할는지 몰라요. 죽어버린 땅은 언제나 되어야 다시 돌아올까요. 땅이 죽어버렸으면 사람들은 무엇을 얻으며 먹고살 만할까요. 그리고, 바다와 냇물을 잔뜩 더럽히거나 망가뜨리면, 사람들은 무엇을 마시며 목숨을 건사할 만할까요. 나아가, 공장과 발전소와 고속도로와 자가용과 비행기가 끝없이 내달리며 굴러간다면, 우리들이 늘 마셔야 하는 바람을 어떻게 지킬 만할까요.

 


  그러면, 사진책 《Minamata》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라 할까요? 사회고발일까요? 공해병에 눈을 감거나 등을 돌리면서 거짓말을 한다든지 핑계만 대는 일본 정치꾼과 기업인 잘잘못 밝히는 책이라 할까요?

 


  사진책을 찬찬히 넘깁니다. 슬픔 가득한 낯빛으로 어깨띠와 머리띠를 두르고 두 손에 팻말 든 할매 할배 모습이 나옵니다. 입을 굳게 다문 정치꾼인지 기업인 얼굴이 보입니다. 집회와 시위를 하다 지쳐서 곯아떨어진 시골사람들 푼더분한 모습이 나옵니다. 사람이 죽고 쓰러지는 판이지만, 마을잔치를 벌이면서 웃고 노래하며 떠드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슬프면서 힘겹게 기나긴 나날 싸우면서 ‘우리가 왜 이렇게 아프고 우리 아이들이 왜 이렇게 온몸 뒤틀리면서 이른 나이에 죽어야 하는지를 밝혀 다오!’ 하고 외치는 사람들이, 한창 싸우다가도 쉬는 틈에는 서로 깔깔 하하 웃을 만한 놀이판을 벌이기도 합니다.

 


  혼자서 옷을 벗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 덩치 큰 누나를 돕는 어린 동생이 있습니다. 젓가락을 아슬아슬하게 쥐는 덩치 큰 누나는 고개를 반듯하게 세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수화기를 붙들고 누군가하고 전화를 하면서 환한 웃음꽃을 피웁니다. 온통 일그러진 얼굴로 찍힌 사진을 고작 열 몇 살쯤 되는 나이에 영정사진으로 쓰면서 이승을 떠난 아이들이 고스란히 사진틀에 갇힌 모습으로 꽃다발에 둘러싸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진일까요?

 


  삶에는 웃음이 있습니다. 삶에 웃음이 있는 만큼, 삶에 눈물이 있습니다. 삶에 노래가 있습니다. 삶에 노래가 있는 만큼 고요함이 있습니다. 삶에 낮이 있으며 밤이 있습니다. 삶에 아침과 저녁이 있습니다. 삶에 더위와 추위가 있고, 삶에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있어요. 삶에 가시내와 머스마가 있어요. 삶에 어른과 아이가 있어요. 그리고, 이 삶에 평화와 전쟁이 있을까요? 아니, 삶에는 평화만 있을 노릇인데, 누군가 억지로 전쟁을 만들어서 삶을 망가뜨리려 하지는 않나요? 이 삶에는 아름다움과 꿈이 있을 뿐이었는데, 어느 누군가 돈을 혼자 차지하면서 배를 떵떵거리고 싶은 나머지 차별과 불평등과 따돌림 따위를 만들지 않았나요?

 


  잘생긴 아이도 못생긴 아이도 없습니다. 어버이한테는 모든 아이가 ‘내 아이’요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잘생긴 어버이도 못생긴 어버이도 없습니다. 가난한 어버이나 돈있는 어버이도 없어요. 아이들한테는 모든 어버이가 똑같이 ‘내 어버이’요 ‘사랑스러운 어버이’예요.

 


  보도를 한대서 보도사진일 테고, 다큐멘터리를 그린대서 다큐사진일 텐데, 유진 스미스 님 사진책 《Minamata》에는 어떤 이름을 붙이면 어울릴까요. 보도사진? 다큐사진? 고발사진?

 


  한참 들여다보고 다시 들여다보며 생각합니다. 뱃전에서 모래밭으로 껑충 뛰어내리는 바닷사람 모습 찍은 조그마한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혼자서 낑낑거리며 밥통에서 밥 한 그릇 푸는 아이 사진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죽음을 앞둔 듯한 사람이 드러누운 자리 옆으로 기자들 빼곡하게 몰려든 사진을 쳐다보다가, 어머니 품에 안겨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아이 사진을 쳐다봅니다. 아마, 이렇게 활짝 웃던 아이가 바로 옆에서 어머니 손으로 기저귀를 갈아채워야 하는 아이일 테지요. 미나마타 어머니들은 이녁 딸아들이 열 살이 넘고 스무 살이 되어도 기저귀를 채워서 똥오줌을 받아야 하고, 기저귀를 빨래해야 합니다. 고단할 테지요. 슬프기도 할 테지요. 그런데, 고단하기만 할까요. 슬프기만 할까요.

 


  한쪽에서는 공해병 때문에 시름시름 앓을 뿐 아니라 죽어나가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도시에서 놀러온 사람들이 여름철 물놀이를 한껏 즐깁니다. 어느 아이는 아파서 괴롭다 외치지만, 다른 아이들은 아이답게 맑게 웃으며 서로 얼크러져 놉니다.

 


  삶은 무엇이고, 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 손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삶은 어떻게 빛나며, 이 삶에 드리우는 빛을 짓밟거나 망가뜨리려는 손길은 어디에서 나타날까요.

 


  일본사람도 ‘미나마타병’ 이야기를 사진으로 아주 많이 찍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본은 그야말로 ‘사진나라’이니, 어느 나라 사진작가보다 훨씬 많은 사진작가들이 미나마타 조그마한 바닷마을로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수없이 찍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미나마타 조그마한 바닷마을 사람들은 누구한테 마음을 열었을까요. 미나마타 자그마한 시골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삶을 일구면서 어떤 사랑을 속삭이는 하루를 내보여 ‘이녁 마을에 찾아온 손님’ 앞에서 보여주면서 ‘미나마타 이야기’를 어떻게 알리고 싶었을까요.

 


  미나마타 바닷마을 사람들은 ‘우리는 피해자예요!’ 하고 외쳤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미나마타 바닷마을 사람들은 ‘우리는 사람이에요!’ 하고 외쳤으리라 느낍니다. 사진작가 유진 스미스 님은 미나마타 바닷마을로 찾아가서 마을사람들 목소리와 눈빛과 몸짓과 꿈과 사랑을 조곤조곤 나누면서 이야기 하나를 시나브로 길어올렸으리라 느껴요.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삶을 사진으로 그리면서 태어난 《Minamata》라고 느껴요. 삶은 웃음이면서 눈물이고, 삶은 꿈이면서 빛이며, 삶은 노래이면서 사랑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책 《Minamata》라고 느껴요.

 


  그렇지요. 고발하려고 사진을 찍는들 고발할 만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보도하려고 사진을 찍는들 보도할 만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사진을 생각해야 할 노릇입니다. 삶을 사랑할 노릇입니다. 꿈을 노래할 노릇입니다. 바닷마을에서 물고기를 낚으며 물고기를 먹던 사람들은 앞으로도 물고기를 낚으면서 물고기를 먹으며 살아갈밖에 없어요. 이 삶을 사진으로 보셔요. 4346.8.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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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Eugene Smith, 《Minamata》

 


  유진 스미스 님 사진책 《Minamata》를 오늘 드디어 구경한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난 옆지기가 미국에서 한 권 찾아서 장만해 주었고, 오늘 항공우편으로 우리 시골집까지 날아왔다.


  사진책 《Minamata》는 미국에 있는 어느 헌책방에서 찾았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헌책방을 찾아다니며 사지는 않았고, 인터넷으로 알아보았다고 한다. 적잖은 돈을 들여야 한 사진책이지만, 사진책 《Minamata》쯤 되면, 한국돈 백만 원을 들여서 장만할 만한 값이 넉넉하다고 생각한다. 1972년에 나온 첫판이라면 오백만 원쯤 들어야 하고, 유진 스미스 님 이름이 적힌 첫판이라면 천만 원쯤 들여야 한단다.


  한국에서는 이 사진책을 한국말로 만날 수 없을까. 어느 소설책은 선인세로 7억이니 10억이니 13억이니 하고 내주면서 펴내는데, 선인세 1억쯤 덜 주면서 사진책 《Minamata》를 한국말로 펴내어, 한국 사진문화와 책문화 모두 북돋우는 길을 걸어갈 뜻과 돈이 함께 있는 출판사는 없을까.


  한 장씩 넘기며 사진 몇 장 찍는데 더없이 애틋한 이야기를 새록새록 느낀다. 사진을 찍는 손길이 되려면, 사진을 빚는 눈길이 되려면, 사진을 나누는 삶길이 되려면,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은 어디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사랑을 씨뿌리며 돌보아 거둘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헤아려 본다. 사진책 《Minamata》는 미나마타병을 ‘고발’하는 책이었을까? 글쎄. 사진책 《Minamata》는 일본과 환경병과 돈에 눈이 먼 정치꾼과 기업인을 ‘꾸짖는’ 책이었을까? 글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읽는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꿈을 사진으로 만난다. 4346.8.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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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01 20:17   좋아요 0 | URL
평소 만나고 싶은 사진책을, 옆지기님께서 그 마음 잘 아시고
미국에서 찾고 장만하셔서 보내온 책이라 더욱 반갑고 좋으실 것 같아요~^^
책소포를 받고 그 포장을 조심스레 뜯고 여는..설레는 마음이 보이는 듯 해요~

숲노래 2013-08-01 23:08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미국까지 갔는데
남편 선물로 한 권쯤 찾아내 달라고 부탁하고 졸라서
겨우 얻은 책이랍니다.

책값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아직 잘 몰라요.
다만, 이 사진책 값은... 아주 엄청나답니다 ^^;;;;;

그래서, 다음에 올린 느낌글에
이 사진책 사진을 참 잔뜩 올렸어요.
어차피, 이 사진책 실물로 사서 보실 분
거의 없을 듯하고,
실물로 사서 보기란 아주 힘들거든요.
 

= 8. 바다 : 바다만큼 드넓은 말 =

 

 

 물결
  “물이 움직이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을 ‘물결’이라고 해요. 한자말로는 ‘파도’라고 합니다.

 

 바닷가
  “바닷물과 땅이 서로 닿은 곳”을 ‘바닷가’라고 해요. ‘냇가’는 “냇물과 땅이 서로 닿은 곳”이에요. 바다나 내나 못하고 땅이 닿은 자리는 모두 ‘물가’입니다.

 

 물고기
  “물에서 사는 고기”라서 ‘물고기’예요. 냇물이나 못물처럼 민물에서 사는 고기는 ‘민물고기’이고, 바닷물에서 사는 고기는 ‘바닷물고기’입니다.

 

 갯벌
  “바닷물이 드나드는 모래톱이나 둘레 넓은 땅”을 ‘갯벌’이라고 합니다. 갯벌에는 ‘개흙’이 있고, 개흙은 여느 땅, 이를테면 논이나 밭에 있는 흙하고 달라요. 갯벌은 땅에서 바다로 흘러나오는 모든 것들이 마지막으로 닿으면서 걸러지는 곳이에요. 이러다 보니 갯벌을 이루는 개흙은 온갖 것이 두루 섞이면서 삭히는 자리이고, 이 개흙은 거무스름하면서 미끈미끈합니다.

 

 늪
  “땅바닥이 우묵하게 빠지고 물이 늘 고인 곳”을 ‘늪’이라고 해요. 한자말로는 ‘습지’라고 가리키기도 해요.

 

 못
  “넓고 오목하게 팬 땅에 물이 고인 곳”을 ‘못’이라 합니다. 못 가운데 연이 자라며 연꽃 피우는 데는 ‘연못’이에요. ‘늪’은 저 스스로 생기지만, ‘못’은 사람들이 따로 파기도 해요. 시골에서 논밭에 물을 대려고 파는 못물을 한자말로 ‘저수지’라고도 하지만, 그냥 다 ‘못’입니다. 조그맣게 파는 못이나 조그맣게 생긴 못을 ‘둠벙’이라고도 하고, ‘웅덩이’는 ‘둠벙’과 같은 낱말이에요.

 

 뭍
  뭍에서 살아가는 짐승은 ‘뭍짐승’이에요. ‘뭍’은 “바다를 뺀 모든 곳”을 가리켜요. ‘땅’도 ‘뭍’과 같은 낱말인데, ‘땅’은 “흙”이나 “논밭”이나 “어느 곳”을 가리키곤 하지만, ‘뭍’은 “섬 아닌 땅”을 가리키는 자리에만 써요. 바다에서 바라보는 땅을 ‘뭍’이라 할 수 있어요.

 

 미세기
  “밀물과 썰물을 통틀어” 가리키는 ‘미세기’입니다. 밀물은 밀려서 들어오는 물이고, 썰물은 쓸려서 나가는 물입니다.

 

 소금밭
  “소금을 얻는 밭”이 ‘소금밭’이에요. 바닷물을 끌어 들여서 논처럼 만들고, 햇볕에 바닷물이 마르게 해서 소금을 얻는답니다.

 

 대목
  “설이나 한가위를 앞두고 북적거리며 장사가 잘 되는 때”를 가리켜 ‘대목’이라 합니다. 한편, “도드라지는 어느 한 곳”을 나타내는 자리에도 써요. “눈여겨볼 대목이다”나 “아쉬운 대목이 많다”라든지, “노래를 부르다가 한두 대목씩 잊었다”나 “이 책에서는 바로 그 대목이 재미있어요”처럼 씁니다.

 

 걸맞다
  “서로 어울릴 만큼 비슷하다”를 뜻하는 ‘걸맞다’입니다. “입학식 자리에 걸맞게 차려서 입은 옷”이나 “나한테 걸맞지 않은 책”처럼 써요. ‘들어맞다’는 “꼭 맞다”를 뜻합니다. “생각한 대로 들어맞다”나 “어제 한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다”처럼 쓰지요. ‘알맞다’는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다”를 뜻합니다. “나들이를 하기에 알맞게 따뜻하다”나 “얼음을 알맞게 넣어서 먹는다”처럼 씁니다.

 

 거북하다
  “몸이 무겁거나 힘들어 가볍게 움직일 만하지 않다”를 뜻하는 ‘거북하다’예요. 이 뜻이 그대로 이어져 “마음에 들지 않아 힘이 들다”를 뜻하는 자리에도 써요. “뱃속이 거북하다”나 “발바닥이 아파서 걷기 거북하다”처럼 쓰고, “거친 말은 듣기에 거북하다”나 “어두운 곳은 어쩐지 있기가 거북하다”처럼 써요.

 

 드넓다
  “활짝 트이고 아주 넓다”를 뜻하는 ‘드넓다’예요. ‘드높다’는 “아주 높다”를 뜻하고, ‘드세다’는 “아주 세다”를 뜻합니다.

 

 저잣거리
  옛날부터 “여러 가지 물건 사고파는 가게가 있는 곳”을 ‘저자’라 했어요. 오늘날에는 거의 ‘시장’이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가게가 여럿 늘어서면서 거리를 이루”면 이곳을 ‘저잣거리’라 합니다. 책방이 여럿 늘어선 곳은 ‘책방거리’라 합니다.

 

 모래밭
  “모래가 넓게 덮인 곳”을 ‘모래밭’이라 합니다. ‘해수욕장’이라 하는 곳은 모두 모래가 넓게 덮인 ‘모래밭’입니다.

 

 우람하다
  “몹시 크고 튼튼하다”거나 “목소리가 크고 힘차다”고 할 때에 ‘우람하다’라 합니다.

 

 짭짤하다
  “입에 당길 만큼 맛있도록 조금 짜다”를 ‘짭짤하다’고 해요. 이 말뜻을 바탕으로 “어떤 일이나 움직임이 제법 크고 튼튼하다”라든지 “일이 잘 이루어져 얻을 것이 많다”를 뜻하는 자리에도 써요.

 

 비롯하다
  “처음 생기다”와 “처음으로 하다”와 “여럿 가운데 어느 하나를 첫째로 삼아 다른 것이 이어진다”를 뜻하는 ‘비롯하다’입니다. “작은 손길 하나에서 비롯한 사랑”이나 “이 일을 비롯한 때가 언제일까”나 “어머니를 비롯해 우리 식구 모두”처럼 씁니다.

 

 뽐내다
  “어떤 일을 잘 해서 기쁘거나, 솜씨를 남한테 드러내 보이려”는 모습을 가리켜 ‘뽐내다’라 합니다. “내가 남보다 더 좋거나 낫다고 여기면서 내세우려”는 모습을 가리켜 ‘뻐기다’라 해요. “나 스스로 남한테서 좋은 말을 들을 만하다고 여기며 내세우려”는 모습을 가리켜 ‘자랑하다’라 합니다.

 

 살찌우다
  “몸에 살이 붙도록 하다”가 ‘살찌우다’예요. 살이 찐다고 다 좋다 할 수 없지만, 몸이 튼튼하도록 살을 붙인다는 뜻을 바탕으로 “힘이 세지도록 하거나 살림이 넉넉하게 한다”는 자리에 써요. 또는 “마음을 살찌우는 책”이라든지 “생각을 살찌우는 이야기”처럼 씁니다.

 

 슬기롭다
  “옳고 그름을 바르게 살피는 마음가짐”을 ‘슬기’라고 해요. “옳고 그름을 바르게 살필 줄 안다”고 해서 ‘슬기롭다’입니다. ‘똑똑하다’는 “또렷하게 잘 알다”나 “셈을 또렷하게 한다”를 가리킵니다.

 

 주검
  ‘주검’과 ‘송장’은 같은 말이에요. “죽은 사람 몸”을 가리킵니다. 다만, ‘송장’은 사람한테만 쓰는데, ‘주검’은 “새 주검”이나 “들짐승 주검”처럼 쓰기도 해요.

 

 정갈하다
  ‘깨끗하다’는 “더럽지 않다”를 뜻합니다. ‘맑다’는 “더럽지 않아 물속이 잘 보인다”나 “더럽지 않아 바람이 시원하다”나 “더럽지 않아 하늘이 탁 트이며 빛깔이 곱다”를 뜻합니다. 뜻은 거의 같지만, 느낌이나 쓰임새가 살짝 달라요. ‘깔끔하다’는 “군더더기나 어수선한 모습이 없다”를 뜻하고, ‘말끔하다’는 “티가 없이 시원스럽다”를 뜻하며, ‘산뜻하다’는 “새로우면서 시원스럽다”를 뜻합니다.‘정갈하다’는 “깨끗하고 깔끔하다”를 뜻해요. 더럽지 않으면서 군더더기나 어수선한 모습이 없는 느낌이 ‘정갈하다’입니다. 가지런한 모습이라든지, 얌전하거나 반듯한 모습을 가리킬 때에 ‘정갈하다’를 쓰곤 해요. 쓰임새를 더 살피면, ‘깔끔하다’는 “솜씨가 야무지며 알뜰하다”를 가리키는 자리에도 씁니다. ‘정갈하다’는 “밥상이 정갈하다”나 “옷차림이 정갈하다”나 “말씨가 정갈하다” 같은 자리에도 써요. “깨끗하면서 보기 좋도록 곱다”를 가리키는 ‘정갈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셈
  “수를 세는 일”을 ‘셈’이라 하고, “돈이 얼마인가 살피는 일”도 ‘셈’이라 해요. 이런 뜻을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따질 줄 아는 마음가짐”을 가리키는 자리에도 씁니다. ‘컴퓨터’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적에, 이 물건을 ‘셈틀’로 쓰면 되겠다고 말한 분들이 있어요. ‘셈’이라는 낱말이 “숫자 세기”부터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가짐”까지 나타내기에 두 가지 느낌을 살려서 ‘셈틀’이라 하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리우다
  “한쪽이 위에 붙은 천이나 줄이 아래로 늘어지다”를 뜻하는 ‘드리우다’는 “빛이나 어둠이나 그늘이나 그림자가 덮이다”를 뜻하는 자리에도 씁니다.

 

 보들보들
  “살갗에 무엇이 닿을 때에 매우 보드랍다”고 하면 ‘보들보들’이라고 해요.

 

(최종규 . 2013 - 숲말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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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01 19:44   좋아요 0 | URL
"밀물과 썰물을 통틀어" 가리키는 '미세기'는
처음 접하는 낱말이에요 ^^;;;
참 우리말은 아름다워요~

숲노래 2013-08-01 23:06   좋아요 0 | URL
'미세기'라는 이름을 쓰는 출판사도 있답니다~
 

아이 그림 읽기
2013.7.27. 큰아이―빨간 해

 


  큰아이가 해를 빨갛게 그렸다. 게다가 햇살이랍시고 빨간 동그라미 둘레에 줄을 죽죽 그었다. 이런 엉터리 해를 어디에서 보았니? 갑자기 확 짜증이 솟는다. 곰곰이 생각하니, 큰아이가 본 어느 만화, 아마 뽀로로 만화였겠지, 그런 데에 나오는 해를 그대로 따라 그렸구나 싶다. 그러면, 그런 만화를 보여준 내가 잘못했다. 아이는 해가 그렇게 나오니 그러려니 하고 여기며 그림으로 옮겼을 뿐이다. 이날 낮,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발포 바닷가로 달린다. 바닷가를 다녀오며 해를 자꾸 쳐다보게 한다. 가물가물 기울어지는 해도 바라보게 한다. 노을이 물들지 않을 적에는 해가 빨갛게 안 보인다. 노을이 아주 붉게 물들어야 비로소 해도 빨갛게 보인다. 저 먼 바다 끝으로 해가 천천히 떨어질 적이 되면 비로소 발그스름하게 보이지만, ‘빨갛게’까지 보이는 일은 드물다. 해를 빨갛게 그리자면, 저 먼 바다 끄트머리에 살짝 고개를 내밀 언저리여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는 아이를 불러 새벽해를 보게 한다. 자, 벼리야, 해가 어떤 빛깔이니. 햇살이 어떻게 퍼지니. 만화로 보는 해가 아니라, 네 눈으로 스스로 본 해를 그리자. 네가 몸으로 느끼고 네가 살갗으로 받아들인 해를 그리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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