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과 문방구와 찻집과

 


  오직 책방으로만 꾸리면서 살아남는 곳이 거의 다 줄었다. 오직 책방으로만 꾸릴 적에 참고서와 교재를 하나도 안 다루는 데는 어린이책 전문서점과 헌책방 몇 군데를 빼고는 아예 없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를 보면 문방구가 나란히 딸리고, 찻집을 곁에 둔다. 문방구와 찻집이 책방과 나란히 있으면 더 좋다고 여기니 이렇게 할 수 있겠지. 그러면, 조그마한 책방은?


  붕어빵 한 점 입에 물면서 손에는 조그마한 책 하나 쥘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빈다. 차 한 잔 홀짝이면서 눈으로는 자그마한 책 하나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생겨나기를 빈다.

 

  그러니까, 커다란 찻집 건물 한쪽에 책방이 생길 수 있기를 빈다. 커다란 밥집 건물 한켠에 책방이 들어설 수 있기를 빈다. 차 한 잔 팔아서 건물까지 지었다면, 찻집 한쪽을 책방한테 내주어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밥 함께 누리도록 생각을 기울이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밥 한 그릇 팔아서 건물까지 늘렸다면, 밥집 한켠을 책방으로 꾸며서 사람들이 사랑스러운 마음꽃 함께 피우도록 생각을 쏟는다면 참으로 사랑스러우리라.


  사라진 책방을 어찌하겠는가. 그러나, 책방은 얼마든지 새롭게 열 수 있다. 책방은 이제부터 새롭게 열어야 한다. 잘 팔릴 만한 책을 두는 책방이 아니라, 아름다운 빛을 보여주는 책을 두는 책방과, 사랑스러운 꿈을 나누려는 책을 두는 책방이 골골샅샅 조그맣게 문을 열어야 한다. 4346.8.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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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핑계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 아이들 데리고 가면 여러모로 고단하다.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으레 ‘어른들 생각’만 하지 ‘아이들 생각’은 안 하기 때문이다. 모임을 하는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 술과 담배를 곁들이기를 바랄 뿐, 아이들을 어떻게 놀리거나 함께 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바깥밥 먹으러 다니는 자리 가운데 ‘아이들 먹을 만한 반찬’을 마련해서 주는 데도 드물다. 도시라면 제법 있을 테지만, 도시에서라도 ‘어린이 밥상’을 차림판에 따로 올리는 곳은 찾아보기 아주 어렵다.


  꼭 ‘어른들 모임’ 자리뿐 아니다. 어디에서고 아이들을 찬찬히 생각하지 않는구나 싶다. 밥집에서는 ‘어린이 밥상’을 따로 마련하지 않는다면, 찻집에서는 ‘어린이 마실거리’를 따로 마련하지 않는다. 술집이 줄줄이 늘어선 길거리를 생각해 보자. 술집은 어른들만 들어가는 자리라 하는데, 어른들 들어가서 노닥거릴 술집은 그토록 많으면서, 막상 아이들이 들어가서 쉬거나 놀거나 얘기할 ‘쉼터’는 찾아볼 수 없다.


  옷집을 생각해 보라. 어린이 옷을 파는 가게가 따로 있다. 그러나, 옷집을 빼고는 다른 어느 곳도 아이들 삶을 살피지 않는다. 어린이걸상 두는 가게는 얼마나 될까. 아이들은 누구나 으레 뛰고 달리며 소리를 지르고 싶어하는데, 이런 아이들 놀잇짓을 흐뭇하게 바라볼 만한 어른은 얼마나 될까.


  아이들은 온통 갇힌다. 갓난쟁이 적부터 시설(보육원, 어린이집, 유치원)에 갇히다가 학교(초·중·고)에 갇힌다. 학교에 갇히면서 학원에 함께 갇히고, 대학교바라기만 하도록 내몰린다. 대학교에 겨우 들어가면, 이제는 회사원 되라는 닦달을 받는다.


  아이들은 언제 놀아야 할까. 알쏭달쏭하다. 아이들은 아이들일 적에 놀 수 없도록 갇힌 끝에, 대학생이 되고부터 술집에 드나들고 술이랑 담배에 절어 지내는 길밖에는 아무런 놀이가 없는가. 어른들은 술과 담배 빼고는 할 줄 아는 놀이가 없어, 아이들한테 재미난 놀이를 못 물려주는가. 입을 맞추고 살을 섞는 몸짓 하나 빼고는 아이들한테 물려줄 놀이가 없는가.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는 되도록 안 가려 한다. 아이들도 고단하고 나도 옆지기도 고단하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지 못하도록 다스리거나 꾸짖어야 하는 어른들 모임자리는 어떤 뜻이나 보람이 있을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늘 ‘아이들 핑계’를 댄다. 우리 식구는 아버지나 어머니만 따로 움직이는 일이 드물고, 으레 아이들과 함께 온식구 함께 움직이는데, 아이들이 뛰놀 만하지 못한 데라면 갈 생각이 없다.


  집이 가장 좋다. 나는 언제나 아이들 입맛에 맞추어 밥을 짓고, 아이들은 이 집에서 마음껏 뛰고 놀고 소리를 지를 수 있다. 우리 집 둘레로도 아이들이 마음껏 지낼 만한 데가 차츰 넓어질 수 있기를 빈다. 4346.8.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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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골아이

 


나이키 아디다스 필라
네파 노스페이스 케이투

 

면소재지 초등학교
세 아이
군내버스 타고
읍내 놀러가는
옷차림새.

 

요즘 시골아이.

 


4346.7.3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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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먹는 거미

 


  예전 같으면 마을 어디에나 아이들을 풀어놓고는 도랑물에도 들어가도록 할 테고, 논에서 미꾸라지도 잡고 할 테지만, 이제 아이들을 마음놓고 풀어놓을 만한 데는 아주 드물다. 오늘날 논은 온통 농약투성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집 마당은 마을에서 꼭 한 군데뿐인 ‘농약 없는 자리’이다. 우리 집 마당은 거미에 잠자리에 나비에 풀벌레에 멧새에 모두 스스럼없이 찾아와서 쉬거나 놀 터가 된다. 마을고양이도 우리 집 마당과 뒷터를 저희 보금자리처럼 삼곤 한다.


  마당에서 놀다가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를 본 큰아이가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 어떡해? 잠자리!” 어떡하기는. 잠자리 건드려 보았니? 날갯짓을 푸드득하면 아직 기운이 있으니 거미줄 끊어 살려도 되는데, 잠자리 건드렸을 적에 날갯짓이 없으면 벌써 거미가 침을 놓아 숨이 끊어진 셈이니, 거미가 살도록 그대로 두어야 한단다.


  밀잠자리 두 마리가 우리 집 마당에서 놀다가 그만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렸다. 잠자리야, 미처 못 보았니? 너희들은 그야말로 드넓은 들과 숲을 한껏 날아다녀야 할 텐데, 어느 마을이고 들과 숲 어디에나 농약을 잔뜩 뿌리니 어디로도 홀가분하게 다니지 못하다가 그만 숨을 잃는구나.


  한 시간쯤 뒤, 큰아이가 다시 잠자리와 거미를 보러 마당으로 나온다. “어! 잠자리 없어졌어!” 작은아이는 큰아이 꽁무니만 좇으며 돌아다닌다. 아직 말이 또렷하지 않은 작은아이는 “업져졋어!” 하고 따라한다. 그래, 거미가 벌써 말끔하게 먹어치웠구나. 4346.8.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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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팔다

 


  즐겁게 읽은 책을 헌책방에 즐겁게 내놓습니다. 내가 헌책방에 내놓은 책은 누군가 즐겁게 알아보고는 기쁘게 장만해서 읽을 테지요. 내가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가서 알아보고는 기쁘게 장만해서 읽은 책은 누군가 즐겁게 읽고 나서 스스럼없이 내놓은 아름다운 책일 테고요.


  나는 책 한 권 즐겁게 읽고 나서 아름다운 넋을 얻습니다. 그러고는 이 책들을 즐겁게 내놓고는 내 이웃들이 즐겁게 만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언제나 새롭게 나를 일깨우는 책을 만나러 책마실을 다닙니다. 내 이웃은 내 이웃대로 책 한 권 기쁘게 읽고 나서 사랑스러운 넋을 누립니다. 그러고는 이 책들을 살포시 내놓아 다른 이웃과 동무가 사랑스레 만날 수 있기를 바라지요. 늘 새롭게 마음밭 살찌우는 책을 만나고 싶어 책마실을 다녀요.


  책을 파는 사람이 있어 책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사는 사람이 있기에 책을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있어 책을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이 있어 책을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 하나로 얽혀 이어집니다. 서로 아름답게 만나고, 다 함께 기쁘게 어울립니다. 책 하나가 징검돌 되어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글 한 줄이 징검다리 되어 사랑과 꿈이 이곳과 저곳을 따사로이 잇습니다. 4346.8.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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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02 20:59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의 글을 읽으니...'책을 파는 일'의 의미가
한층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숲노래 2013-08-02 21:45   좋아요 0 | URL
책을 파는 사람이 있어 책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후애(厚愛) 2013-08-02 22:08   좋아요 0 | URL
제가 찾고 있는 책들이 알라딘에 없으면 헌책방 가서 찾으면 너무너무 기뻐요.^^
미국에 있을 때는 없어서 못 갔는데 이제 한국에서 사니 언제든지 갈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ㅎㅎ

숲노래 2013-08-03 06:37   좋아요 0 | URL
미국에도 헌책방은 곳곳에 있지만
모두 영어로 된 책이었을 테지요~

늘 즐겁게 책방마실 누리면서
아름다운 책들 포옥 안아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