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여관에서 묵으며

 

 

  전남 순천에 있는 헌책방 〈형설서점〉에서 사진잔치를 연다. 책방에 내 책들 갖다 놓아야 하고, 사진을 붙여야 하며, 도록과 엽서와 포스터를 갖다주어야 하기에 짐이 많았는데, 헌책방지기가 순천서 고흥으로 나들이를 와 주셨기에 홀가분하게 순천마실을 한다. 문방구에 들러 이것저것 장만하고 밥집에 들러 아이들 밥을 먹인다. 붙일 사진을 골판색종이에 붙인다. 이러구러하느니 시간이 퍽 늦어 여관에서 묵고 이튿날 더 일을 해서 마무리짓기로 한다.


  작은아이는 바깥에서 오줌을 누거나 똥을 눌는지 모르나 늘 옷을 여러 벌 챙겨 다닌다. 큰아이 갈아입힐 옷은 미처 챙기지 않았다. 저녁에 느즈막하게 시골집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으니까. 아이들은 한창 신나게 뛰놀 나이인 터라, 갈아입혀야 할 옷이 있어야 한다. 저녁에 깊어 이마트에 들른다. 큰아이 새 치마와 속옷 한 벌 장만한다. 큰아이 새 치마 장만할 적에는 제대로 못 보았는데, 새 치마 천이 좀 두꺼운 듯하다. 더운 여름날 입기에는 이튿날에 좀 땀 많이 쏟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여관에서 빨래한 치마로 갈아입혀야지.


  개구지게 뛰논 아이들은 쉬 곯아떨어진다. 한참 자장노래를 부른다. 아이들 다리를 주무른다. 발가락 하나하나 만지작거리면서 부디 즐거이 잠들고는 이튿날에 새롭게 뛰놀 수 있기를 빈다. 이 조그마한 발로 새삼스레 재미나게 새 놀이를 찾고 이 땅 튼튼하고 야무지게 디딜 수 있기를 빈다. 4346.8.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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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 사진기 없는 사진작가

 


  내가 쓰는 사진기는 형한테서 받은 기계이다. 내가 쓰던 사진기는 한 해 반쯤 모두 망가져서 더는 쓸 수 없다. 형은 동생이 사진작가 길 씩씩하게 걸어가라며 사진기를 물려주었다. 게다가 렌즈도 하나 넘겨주었다. 그런데 이 사진기도 요 며칠 간당간당하다. 그제 낮에는 멀쩡하던 사진기가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 어제는 겨우 다시 살아나는가 싶더니 오늘도 죽었다 살았다 되풀이하면서 찍히다 안 찍히다 오락가락한다.


  사진기 한 대로 사진을 너무 많이 찍은 탓일까. 여러 해째 쓰는 캐논450디는 이제 조용히 내려놓고 새로운 사진기 장만할 길을 찾아야 할까. 캐논 회사에서는 어느덧 700디 기종까지 내놓았다. 나는 빛느낌 때문에 450디를 오랫동안 쓴다고 말하며 살았지만, 형한테서 받은 사진기도 한 번 부품갈이를 해서 썼는데 다시 죽을 동 살 동하는 모습을 보자니, 아무래도 새 사진기로 가야 하는구나 싶다.


  새 사진기는 어떻게 장만해야 할까. 어떤 새 사진기를 장만할 수 있을까. 새 물건이 아니어도 될 텐데, 언제쯤 새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길 앞으로도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을까. 사진기 없는 사진작가로 살아가려나, 내 사진삶 뒷바라지 해 줄 손길을 받을 수 있을까. 어쨌든, 오늘까지 해마다 삼만 장씩 사진을 베풀어 준 내 헌 사진기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다. 이제껏 많이 힘들었지? 내 사진기야. 참말 네가 쉴 때가 다가왔는가 보다. 4346.8.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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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남기는 마음

 


  ‘어린이 우리 말 이야기책’에 넣을 낱말풀이 마지막 두 낱말을 남깁니다. 원고지 420장에 이르는 글을 비로소 끝맺는구나 싶으며, 살짝 셈틀을 끄고는 마당에서 아이들하고 함께 뛰놀다가 들어와 빨래를 합니다. 아까 작은아이가 똥을 눈 바지를 빨고, 어제 큰아이가 벗은 여름치마 한 벌을 빨래합니다. 이러면서 걸레 한 장을 함께 빨래합니다. 빨래를 하면서 찬물을 한 모금 입에 물고는 한참 생각합니다. 이 차고 시원한 물이 내 몸으로 깃들어 하나되면서 내 마음 또한 맑으며 시원한 빛이 되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빨래를 하다가 몸을 씻습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로 땀을 찬찬히 씻습니다. 빨래를 헹구고 물기를 쪼옥 짠 뒤, 마당으로 내려와 널어 놓습니다. 원고지 420장에 이르는 글을 이레만에 마무리짓습니다. 한 줄 두 줄 이어 420장이 되었고, 마지막 한 줄 두 줄 붙여 420장으로 끝날 테지요. 걸음 하나를 모아 먼길을 나서고, 자전거 발판 한 번 두 번 구르며 이웃마을로 나들이를 떠납니다. 작은 손길 한 번 내밀어 아이들 볼을 어루만지고, 두고두고 이은 작은 손길은 사랑이라는 꽃으로 태어납니다. 4346.8.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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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편지

 


  사진잔치 도록과 엽서를 부치려고 봉투를 쓴다. 방에서 쓸까 하다가 마당 평상 후박나무 그늘이 시원하리라 생각하며 밖으로 나온다. 평상에 엎드려서 봉투에 주소를 적는데, 평상에 떨어진 후박나무잎이 퍽 싱그러우면서 고운 빛이로구나 싶다. 후박나무 가랑잎을 줍는다. 큰아이가 이 모습 보더니 “나뭇잎 왜 주워?” 하고 묻는다. “가랑잎을 하나씩 넣어서 보내려고.” “그래? 그럼 내가 도와줄게.” 큰아이가 후박나무 가랑잎을 모아 온다. 그러더니 강아지풀도 꺾는다. 봉투 옆에 가랑잎과 강아지풀을 얌전히 쓸어 모은다. 4346.8.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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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순이’ 사진잔치 (도서관일기 2013.8.2.)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책순이’ 사진잔치를 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지역서점 문화활동 지원사업’을 꾀하는데, 전남 순천 〈형설서점〉도 뽑혀 이곳에서 벌이는 문화활동 가운데 하나로 내 사진잔치를 연다. 진흥원이 ‘도록 값·엽서 값·포스터 값’을 늦게 치러 주는 바람에 도록과 엽서와 포스터를 8월 2일에야 받는다. 인쇄소에서는 맞돈으로 값을 치러야 인쇄를 해 주니까. 어쨌든 8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전남 순천 〈형설서점〉에서 조촐하게 사진잔치를 연다.


  우리 아이들 책과 노닐며 살아온 여섯 해 발자국 가운데 지난 이태 사이 모습을 추려서 사진 200점을 그러모았다. 이 가운데 서른 점은 조금 크게 만들어서 붙인다. 백일흔 점은 조그마한 사진첩에 담아서 책방 곳곳에 두어 느긋하게 넘겨 보도록 할 생각이다.


  진흥원 지원금 백만 원으로 사진 만들고 도록과 엽서와 포스터를 만든다. 고작 백만 원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으랴 싶기도 하지만, 이만 한 돈을 받으면 이만 한 돈에 맞게 아기자기하게 할 길을 찾으면 되리라 생각하며 여러 날 머리를 기울여 요모조모 꾸몄다. 아주 적은 돈으로 도록을 만들어야 했기에 딱 16쪽짜리 A5판 작은 크기로 208부를 찍었다.


  책순이 무럭무척 자란다. 작은아이도 곧 책돌이로 자라리라. 앞으로 한동안 ‘책순이’ 이야기만 할 텐데, 작은아이가 책하고 신나게 노는 모습 흐드러지면, 이 모습은 ‘책돌이’ 이야기로 남달리 엮을 만할까 하고 헤아려 본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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