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큰아이가 아버지한테

 


  어느 날 큰아이가 아버지한테 말한다. “아버지, 그림책 꽂을 자리 없으니 이제 내 책 사지 마요.” 그래 우리 조그마한 집에 방이며 마루이며 네 그림책 넘쳐서 바닥에서 뒹구는데 네 그림책을 자꾸 사기만 하는구나. 이제 네가 안 읽는 그림책은 도서관으로 옮겨야 할 텐데 말야. 아니면, 네 그림책 장만해서 우리 서재도서관에 놓은 다음, 우리 집에 쌓인 책을 서재도서관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그림책을 집으로 가져오든지. 집부터 정갈하게 치우고서 책을 읽든 사든 해야겠구나. 4346.8.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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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되고 싶으면

 


바보가 되고 싶으면 따져라!
나이를!
학벌과 학력을!
가진 돈과 집과 땅을!
얼굴과 몸매와 키를!
옷차림과 매무새를!
말투를!

 


4339.10.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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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에 쓴 글을 문득 떠올려 다시 읽고는, 참 재미난 글 쓴 적 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러고 보니 '등짐'이라는 이름으로 꼭 글 하나 써서, 사람들한테 이야기하고 싶었군요. '책'과 얽힌 일을 하는 사람들이 퍽 많아요. 등짐을 지며 책일 하는 사람 이야기는 아직 거의 어느 누구도 쓴 적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등짐을 지면, 혼자서 네 시간쯤 들여 책 2만 권을 나를 수 있어요.

 

 

등짐

 


  지난 2006년 10월 어느 화요일, 내 어버이 이삿짐을 나르느라 오랜만에 등짐을 집니다. 책상자 하나를 밑에 깔고, 위에도 책이 잔뜩 담긴 바구니를 얹습니다. 책바구니를 혼자서 앞으로 안으며 들자면 허리가 너무 아프고 힘듭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등짐으로 들면 책상자 하나 더 나를 수 있고 허리도 덜 아픕니다. 함께 짐을 나르는 다른 분은 등짐을 안 집니다. 아마 힘들어서일 수 있고, 등짐을 져 보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예전에, 그러니까 어린 날과 젊은 날 무척 힘들게 살아오신 줄 압니다. 그렇지만 교감을 거쳐 교장이 된 이제는 딱히 힘들 일이 없다고 느낍니다. 몸으로는 말이지요. 그리하여 제 느낌으로는 일을 하실 줄 잊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더욱이 이삿짐 나르기는 거의 안 해 보셨겠지요. 문득, 2000년이었나, 언젠가 아버지가 제 살림집 이사할 때 도와주신 일이 떠오릅니다. 그때 제 방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더미를 보며 “아유, 뭔 책이 이렇게 많아? 아유…” 하면서 진저지를 치셨습니다. 저는 이때 책꾸러미를 넷씩 날랐습니다. 왼겨드랑이와 오른겨드랑이에 책꾸러미를 하나씩 낀 뒤 왼손과 오른손으로 하나씩 들면서.

 

  바구니에 담긴 책은 끈으로 묶었으면 얼추 세 묶음. 이만한 책을 바구니에 담으면 하나만 따로 들기도 벅찹니다. 척 보아도 이삿짐을 안 날라 본 티가 납니다. 그동안 포장이사만 하셨으니, 이삿짐 꾸리는 법도 잊으셨겠네요.

 

  등짐을 나르는 동안 이마에 맺힌 땀이 방울이 져서 뚝뚝 떨어집니다. 아귀힘은 조금씩 풀리고 팔뚝이며 어깨가 뻐근합니다. 그래도 마지막 등짐까지 다 나릅니다. 지난날 출판사 영업부에서 일할 때 저한테 등짐을 가르쳐 준 배본회사 아저씨가 생각나네요. 도매상에서 전집상자를 전문으로 나르던 아저씨들도 생각나고요. 배본회사 아저씨는 젊은 나이에 그만 허리가 삐끗하고 말았는데, 힘으로 날라서 삐끗한 게 아니라, 꽤나 많은 책을 나르는 동안, 그 출판사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고개 한 번 내밀지 않고 안 도와주느라, 혼자서 낑낑대며 일을 하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지며 삐끗했다고 들었습니다. 도매상 전집상자 짐꾼 아저씨는 쉰 줄이 넘은 듯했는데도 손수 만든 등지게에 상자 넷을 싣고 척척 거뜬히 날랐습니다. 이분들이 등짐을 나를 때 보면, 어느 누구도 서두르지 않고, 더 많이도 더 적게도 나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같은 빠르기로 같은 무게 짐을 나를 뿐입니다. 자칫 힘으로 짐을 날랐다가는 얼마 나르지 못하고 몸이 다치거나 지쳐 버리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충주에서 서울로, 또 서울에서 충주로 오가면서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죽어라 달렸어요. 이렇게 죽어라 달리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쉼없이 달렸어요. 그래, 이렇게 달려서 목적지에 닿으면 거의 뻗습니다. 그리곤 몸이 되살아나기까지 한 시간 남짓을 해롱해롱 한숨만 들이켜면서 쉬지요. 요새는 죽어라 달리지 않습니다. 때때로 발판을 힘껏 밟기도 하지만, 몸에 어느 만큼 땀이 나야 달리기도 덜 고단하고 꾸준하게 달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머지않아 겨울이 다가오는데, 겨울철에는 땀이 식지 않도록 알맞게 달려야 합니다. 땀이 식으면 추워서 못 달려요. 백오십 킬로미터쯤 되는 길을 한나절 동안 달리자면 그야말로 처음과 끝이 똑같을 만큼 꾸준하게 달려야 합니다.

 

  예전에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쓸 때면, 서너 시간이고 대여섯 시간이고 거의 꼼짝도 않고 기계처럼 글을 써댔습니다. 참 엄청나게 많이 썼어요. 요새는 한두 시간 앉아서 쓰면 참 오래 쓰는 셈인데, 어느 만큼 쓴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바람도 쐬고 설거지나 청소나 책 갈무리를 합니다. 살짝 드러누워 허리를 펴기도 하고, 책도 읽습니다. 가끔 자전거 타고 이웃마을에 나들이를 가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글쓰기를 할 때 한 자리에서 꿈쩍 않고 밀어붙이듯 글을 쓰면 훨씬 많이 쓸 수는 있지만, 나중에 다시 보면 썩 내키지 않는 글이 꽤 보입니다. 이와 달리, 쓰는 틈틈이 쉬고 한숨을 돌린 뒤 다시 글을 되짚으면서 차근차근 쓰노라면, 시간이 제법 지난 다음 다시 보아도 그럭저럭 마음에 들곤 해요.

 

  모처럼 등짐을 져서 그런지, 어제 하루는 거의 누워 지내다시피 했어요. 글을 쓰건 책을 읽건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참 힘들었습니다. 누워 있어도 등허리가 쑤셨고요. 하루 더 지난 오늘은 퍽 나아졌습니다. 하루 더 가면 거의 다 풀리겠지요. 4339.10.19.나무/4346.8.4.손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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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떠나는 책읽기

 

 

  사람들이 휴가를 얻어서 어디론가 떠납니다. 아니, 도시에서 살아가며 회사나 공장을 다니던 사람들이 이레쯤 쉴 겨를을 얻어, 비로소 식구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보내면서 어디론가 먼길을 나섭니다. 물 맑고 바람 시원한 데를 찾아서 떠나는 일이 휴가라기보다, 여느 때에는 눈 마주치며 말 섞기조차 못하던 한식구가 모처럼 스물네 시간을 이레쯤 함께 보내는 겨를이 휴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나도 2003년 8월 31일까지는 회사(출판사)에 다녔습니다. 그러니, 이때에는 나도 휴가라는 며칠 쉴 틈을 얻었습니다. 출판사라는 회사는 거의 다 서울에 있으니, 내 삶자리도 서울이었습니다. 나는 나한테 주어진 휴가라 하는 틈에 기차를 타고 부산과 대구에 있는 헌책방을 찾아갔고, 대전이나 청주에 있는 헌책방을 드나들었습니다. 지난날 나한테 휴가라 하면, 가까이에서 쉬 찾아가지 못하는 곳에 있는 헌책방까지 마실을 가서 내 마음눈 트도록 돕는 아름다운 책 만나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휴가철이 되면 책방은 아주 조용합니다. 오늘날 책방은 휴가철 아니어도 참 조용합니다. 아니,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처럼 큼지막하게 올려세운 곳 말고, 동네나 마을을 오래도록 지키며 책사랑 나누던 작은 책방은 책손이 뜸해서 더없이 조용합니다. 오늘날 여느 사람들이 찾아보려는 책은 커다란 책방 아닌 자그마한 책방에도 다 있는데, 하나같이 굳이 커다란 책방으로 몰립니다. 커다란 책방 구석구석 조용히 꽂힌 작은 책을 찾으려는 손길이기에 그야말로 커다란 책방으로 찾아갈까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쉬려고 물 맑고 바람 시원한 데를 찾아가려 한다면, 여느 때에 늘 물 맑고 바람 시원한 터전을 누릴 때에 가장 즐겁고 아름다우며 신나고 사랑스러운 삶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 해 가운데 고작 이레쯤 맑은 물이랑 시원한 바람을 누린다면, 이러한 삶이 즐거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한 해 삼백예순닷새 내내 맑은 물이랑 시원한 바람을 누릴 수 있어야, 비로소 삶이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다면, 하루만 읽고 덮는 책이라면 안 읽어도 됩니다. 책을 읽으려 한다면, 한 해 내내 읽을 책일 때에 읽으면 즐겁습니다.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을 어른 스스로 기쁘게 찾아서 읽고, 책시렁에 곱다시 얹으면 아주 즐겁습니다.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지 않은 책은, 참말 어른들 스스로 읽을 만하지 못한 책입니다. 아이들한테 들려줄 만하지 못한 이야기는, 참말 어른들 스스로 들을 만하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한테 먹이지 못할 만한 밥을 어른들이 굳이 먹어야 할까요. 아이들한테 선물로 주지 못할 만한 것을 어른들이 애써 장만하고 사들여 갖추어야 할까요. 몸과 함께 마음이 사랑스럽도록 책 하나 찾고 싶어, 나는 내 몸과 마음에 가장 걸맞다 싶은 조그마한 책방으로 아이들과 함께 사뿐사뿐 마실을 다닙니다. 4346.8.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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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야누슈 코르착 지음, 노영희 옮김 / 양철북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을 우리에 가두는 어른들

- 배움책 읽기

 


- 책이름 : 아이들
- 지은이 : 야누슈 코르착
- 옮긴이 : 노영희
- 펴낸곳 : 양철북 (2002.12.18)
- 책값 : 8500원

 


 ㄱ. 1942년 8월 6일


  유럽에서 큰 전쟁이 다시 터지고 유대사람이 하나둘 끌려가던 1942년 8월 6일, 야누슈 코르착 님은 아이들 손을 잡고 폴란드 거리를 걸었습니다. 고아원 교사 스테파니아 님도 아이들 손을 잡고 걷습니다. 나라가 보살피지 못하고, 사람들이 내버린 아이들은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책을 손에 들고 단출하게 옷을 차려입은 채 트레블링카 가스실이 마지막역인 화물차에 올랐습니다.


  코르착 님을 아는 동무들은 독일군 손아귀에서 코르착 님이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애를 썼지만, “당신 아이가 아프고 불행하고 위험한데 이 아이를 버리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2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꾸하면서 폴란드 거리 곳곳에 버려진 고아들을 거두어서 보살피다가 가스실로 갔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1904년에 의사 자격을 얻은 뒤 러일전쟁 때 군의관으로 징병된 코르착 님은 전쟁을 겪은 뒤, “전쟁은 참으로 혐오스러운 것이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굶주리고 학대받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국가든 참전하기 전에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이 다치고 죽고 고아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사회를 개혁하려면 먼저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편, 아이들이 어른들한테 빼앗기고 잃어버린 ‘우러름’, ‘사랑, ‘믿음’을 되돌려 주고자 애쓴 사람이 야누슈 코르착이라고 하는 폴란드사람입니다.


아이가 어른과 다른 점은 단 하나,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뿐입니다.
생계를 어른에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어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35쪽)


  “아이들을 알려고 하기 앞서 나부터 먼저 알려고 애쓰라”고 말하는 코르착 님입니다.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되었으나 의술만으로는 아픈 마음을 다스릴 수 없다고 느껴 교육자가 되고, 고아원장이 된 코르착 님입니다. “비밀을 캐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는 비밀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어린이가 누려야 할 권리, 어린이한테 지켜 주어야 할 권리를 말하고, 몸으로 한껏 지키려 애쓴 코르착 님입니다.


아이가 숟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고 있을 때
그 숟가락을 빼앗아 버린다면,
단지 물건 하나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던
손의 일부를 빼앗는 것입니다. (38쪽)


  우리들은 무엇을 하는 어른일까요. 우리들은 아이들이 무엇을 누리거나 얻도록 힘을 쓰거나 마음을 기울이는 어른일까요. 아이들 권리조차 지켜 주지 못하면서, 아이들 손가락에서 숟가락마저 빼앗아 버리는 못난이는 아닐는지요. 주먹을 들어 머리통을 내갈기거나 손바닥을 펴서 뺨따귀를 때리는 바보는 아닐는지요.

 


  ㄴ. 아이한테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아주 알뜰히 ‘좋은 책’을 기꺼이 사줍니다. 돈이 얼마가 들든 그다지 마음쓰지 않습니다. 아이가 이 책들을 다 읽어내고 속으로 삭히는지는 그다지 헤아리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들은 깜냥으로 끝없이 책을 사줍니다. 그런데 이런 ‘책 사주기’는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부터 끊어집니다. 이때부터는 학원교재, 문제집, 참고서, 학습지뿐입니다. 이제는 과외비에 돈 대느라 바쁩니다.


  책이 아닌 문제집과 참고서를 어버이한테서 받는 아이들은 대학바라기만 합니다. 아니, 대학바라기만 하라는 뜻으로 아이들한테 문제집과 참고서를 잔뜩 안기는 어버이입니다. 다른 책 들출 겨를을 주지 않습니다. 다른 책은커녕 영화나 연극을 느긋하게 누리도록 이끌지 않는 어버이입니다. 아니, 아이들한테 꽃내음이나 나무내음 맡도록 북돋우지 않는 어버이입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아이들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숲에서 멀어지고 들에서 멀어집니다. 바다와 하늘에서 멀어지는 아이들이요, 논과 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까맣게 모르는 채 교과서를 비롯해서 문제집과 참고서에 코만 박는 아이들입니다.


무슨 놀이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노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놀이를 할 때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느냐가 중요합니다. (42쪽)


  내 어릴 적에, 내 어머니가 책을 사주신 일은 아주 드뭅니다. 아버지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어릴 적에 책을 얼마 안 읽었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노느라 바빴거든요. 놀이란 놀이는 다 하면서 놀던 그때를 생각해 보면, 요즘 아이들은 우리에 갇힌 짐승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좁은 우리에 틀어박혀서 주인이 주는 밥만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짐승과 오늘날 아이들이 무엇이 다를까 잘 모르겠습니다. 좁디좁은 우리에 갇힌 짐승들은 이녁 삶과 달리 ‘사람 눈에는 더럽게 보이고 살도 디룩디룩 찝’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아이들은 머릿속에 지식은 많이 들어가지만 사람답게 자라나는 사랑과 꿈은 익히지 못하고 배우지 못해요.


  책을 푸짐하게 사주는 어버이가 그 책들을 아이와 함께 읽고 즐기나요? 아닙니다. 그런 어버이는 아주 드뭅니다. 어린이책에 담긴 깊고 너른 뜻을 제대로 헤아리는 어버이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저 ‘아이가 어리니까 사서 읽히게 하는 것’뿐인 어버이가 거의 모두입니다. 교양이니 교훈이니 학습이니, 또 독서훈련이니 글쓰기지도이니 하는 이름에 휘둘려 아이도 어버이도 제자리를 모르고 제길하고 동떨어집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사람다운 길을 모릅니다.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사람다운 길을 잃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삶을 배우지 못합니다.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스스로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과 꿈을 물려받지 못합니다. 어버이는 이녁 스스로 사랑과 꿈을 한껏 즐기거나 펼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집안일조차 안 하면서 큽니다. 아이들은 밥하기나 반찬짓기조차 안 하면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걸레빨기나 설거지를 제대로 못 배웁니다. 아이들은 씨앗 한 톨 심어서 거두는 손길을 배우지 못할 뿐 아니라, 구경조차 못합니다. 아이들은 꽃내음과 나무내음을 모르면서 어른이 되는데, 어른들도 꽃내음과 나무내음이 이녁 몸과 마음에 어떻게 이바지하는가를 깨닫지 않아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하늘빛을 보지 않아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바람맛을 살피지 않아요. 어버이가 낳아서 아이가 태어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커서 어른이 되면 사랑을 어떻게 하고 꿈을 어떻게 키워 이녁 ‘새 아이들’을 만날 때에 즐거운가를 모릅니다. 아이와 함께 누리는 밥과 옷과 집을 어떻게 건사할 때에 아름다운가를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못합니다.


  돈을 벌 생각과 돈을 쓸 생각만 하면서 자라는 아이요 어른입니다. 돈에 얽매이기만 하는 하루를 보내는 아이요 어른입니다. 삶이 이루어지는 바탕을 모르지요. 삶을 가꾸는 넋을 모르지요. 삶을 빛내는 눈길을 모르지요.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도
그 안에는 수백의 다른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은 서로 다른 난제이고,
서로 다른 과업이며,
서로 다른 염려와 관심을 베풀어야 할 대상입니다. (58쪽)

 


  ㄷ. 사람다운 길


  국제연맹은 1924년에 어린이 인권선언을 뽑고 얼마 뒤에 다시 선언글을 만들지만 ‘말’뿐인 껍데기였답니다. 코르착 님은 국제연맹 선언문이 있기 앞서부터, “선언문은 선의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강요해야 한다. 호의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코르착 님도, 코르착 님네 고아원 아이들도 죽은 지 기나긴 나날이 흘러 1989년, 비로소 ‘어린이 인권협정’이 새롭게 나옵니다. 지구별 여러 나라에서 ‘어린이 인권’을 법으로 다스릴 장치를 마련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인권협정이 있어도 한국에서 살아가거나 자라는 어린이들 모습은 ‘인권을 누리는 모습’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푸름이는 푸름이대로, 또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온갖 짐과 굴레에 갇힌 채 숨조차 제대로 못 쉬며 허덕여요. “사실은 어린이들은 인류, 국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고, 현재 여기에 있는 사람들”인 줄 어른들이 모르기 때문일까요.


“엄마는 어른이 차를 엎지르면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내가 엎지르면 화를 내요!”
아이들은 불공평한 대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종종 울음을 터뜨리지만 어른들은
대수롭지 않고 성가신 것으로만 취급합니다.
그리고 무시할 만한 것으로 여깁니다.
“또 칭얼거리고 징징대네!”
이 말은 아이들에게 쓰려고
어른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53쪽)


  스스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람은 이웃과 동무 누구나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손길 내밀어 도울 줄 압니다. 스스로 사람답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이웃과 동무 모두 어떻게 지내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이웃을 바라봅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내 아이들과 지내는 모습입니다. 교육책이나 육아책 백 권 천 권 읽지 않아도 돼요. 먼먼 옛날부터 어버이 자리에 있던 이들이 책을 많이 읽었기에 아이들을 슬기롭게 가르치지 않았어요. 먼먼 옛날부터 어버이나 어른은 아이들 앞에서 삶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누리려 했을 뿐입니다. 아이들은 그저 어버이와 어른들 곁에서 물끄러미 삶을 지켜보면서 삶을 배우고, 하루하루 꿈을 키웠습니다.


  풀을 베고 열매를 얻으면서 삶을 배웁니다. 풀노래를 듣고 하늘숨을 마시면서 삶을 익힙니다. 냇물이 들려주는 노래와 바다가 베푸는 잔치를 맞아들입니다. 제비춤과 나비춤을 바라보면서 신나는 놀이를 깨닫습니다.


어린이가 어른의 잘못을 따지는 것을
우리는 싫어합니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눈치챌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56쪽)


  교사들이 학생들을 때립니다. 교사들은 ‘사랑 매’라느니 ‘체벌’이라느니 하면서, 마치 ‘교육’을 하는 듯 내세우지만, 교사들이 하는 짓은 교육이 아닌 ‘훈육’이거나 ‘훈련’입니다. 그저 아이들을 길들일 뿐입니다. 아이들이 주먹다짐과 발길질에 길들이도록 몰아세울 뿐입니다. 어른이라는 핑계로 아이들한테 낮춤말과 반말을 일삼습니다. 어른이라고 을러대면서 아이들을 때리고 꾸짖고 들볶고 괴롭힙니다.


  그런데, 이런 어른들 모습 가만히 보면, 술 마시고 담배 태우는 것밖에 할 줄 몰라요. 이 다음으로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극장에 가거나 자가용 몰고 관광지 찾아다니는 것밖에 할 줄 몰라요.


  우리 어른들은 오늘날 놀이를 즐기지 못하고 사랑을 나누지 못해요. 우리 어른들은 오늘날 이녁 스스로 수렁에 갇힌 채 허우적거리기만 해요. 즐겁게 웃지 않는 어른이요, 기쁘게 노래하지 않는 어른이에요. 삶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를 스스로 지어서 부르는 어른이 없어요.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대중가요를 따라부를 뿐이에요. 먼먼 옛날부터 어느 시골 어느 마을이건 누구나 일노래를 삶노래와 사랑노래와 꿈노래로 스스로 지어서 불렀는데, 이제 어느 도시 어느 동네에서도 스스로 삶을 노래하지 않고 사랑도 꿈도 노래하지 않아요.


  사람다운 길은 아주 사라졌을까요.

 


  ㄹ. 흐르는 냇물


  코르착 님이 들려준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한테는 예부터 내려오는 훌륭한 말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어요. 윗물, 그러니까 어른들이 맑고 빛나며 아름다워야 아랫물인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배우고 따르고 우러르고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시원한 윗물일 때에 시원한 아랫물입니다. 따사로운 윗물일 때에 따사로운 아랫물입니다. 착하며 참다운 윗물일 때에 착하며 참다운 아랫물입니다.


  청소년범죄는 청소년이 못나거나 말썽만 일으키기에 터지는 범죄가 아닙니다. 어른들이 저지르는 온갖 범죄를 흉내내고 따라하는 범죄입니다. 청소년들이 범죄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터전을 만들고 만 어른들 탓입니다. 남녀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 재산차별, 생김새차별, 지역차별, 학력차별이 곳곳에 퍼진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느끼면서 자랄까요. 이렇게 ‘차별 넘치는 나라’에서 동무들끼리 따돌리고 괴롭히는 짓이 안 생길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무심한 어른은 화가 났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이 물건들을 꺼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머니가 늘어진다거나 서랍 속에 복잡하다는 이유로요. 다른 사람의 소중한 재산을 이런 식으로 매정하게 다룰 수 있나요? 이렇게 하는데 어떻게 아이가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존중하는 마음을 배우겠어요? 그것은 쓰레기통에 들어갈 휴지 조각이 아니라 소중한 물건이고, 눈부신 꿈의 조각입니다. (131쪽)


  아이들을 아이들답게 받아들이고 껴안으며 토닥거리면서 감쌀 수 있는 마음이 소담스럽습니다. 고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마주할 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데, 아이들에 앞서 어른부터 스스로 좋아요.


  고운 마음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면 어른 스스로 즐겁습니다. 어른 스스로 즐겁게 삶을 누리면, 사회에 어두운 기운 서리지 않아요. 어른 스스로 즐겁게 삶을 누리지 않으니, 이 나라 이 사회 이 마을 이 학교에 갖가지 어두운 기운이 또아리를 틉니다. 어른들 스스로 잔뜩 만들어 놓은 ‘차별’이라는 굴레 때문에 아이들이 슬피 우는데, 이 울음소리를 못 듣거나 안 듣는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모든 사람이 다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낮과 밤, 여름과 가을, 젊은이와 늙은이가 있고,
뜰에는 나비가, 하늘에는 새가 있고,
꽃 색깔이나 사람들 눈 색깔이 저마다 다르듯이
신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였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만 차이를 싫어하고,
생각하고 들여다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는
다양성을 불편해 합니다. (146쪽)


  배움책 《아이들》(양철북,2002)에는 코르착 님이 우리한테 건네는 속깊은 이야기가 담깁니다. 허리를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길 바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허리를 굽히지 말아요.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서로 같은 키가 되어 같은 눈높이가 되셔요. 아이들은 차별이나 따돌림도 싫어하지만, 허리를 굽실거리거나 알랑거리는 사람도 못마땅해요.


  아이들은 짐승우리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어른들도 짐승우리에서 살고 싶은 생각 없으리라 느껴요. 아이들은 따순 보금자리에서 살고 싶어요. 어른들도 따순 보금자리에서 살 때에 즐거우리라 느껴요.


  사랑받고 싶은 아이들이고, 사랑을 나누고 싶은 아이들이에요. 어른들도 사랑받을 때에 흐뭇하고, 어른들도 이웃하고 사랑을 나눌 때에 하하호호 웃음꽃 터뜨리면서 삶이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리라 느껴요. 아이들과 걸어갈 길에서 씩씩하게 두 손 맞잡으면서 노래해요. 아이들과 가꿀 길을 맑은 눈빛과 밝은 꿈으로 보듬어요. 4337.11.8.달/4346.8.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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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8-04 0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책 중 하나랍니다. 함께살기님의 이 글도 참 좋네요. 부모가 일방적으로 골라서 사다준 수십권의 책 속에 파묻힌 요즘 아이들보다 어쩌면 책 몇권 없이도 맘껏 뛰어놀고 크던 예전 아이들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씀, 공감하고 또 반성해보게 됩니다.

숲노래 2013-08-04 04:21   좋아요 0 | URL
이 글은 2004년에 처음 썼어요. 그무렵 쓴 글 뼈대는 거의 그대로 두고, 지난 열 해 동안 새로 배운 '우리 말'에 따라 군데군데 손질을 하고 살을 살짝 덧붙였어요. 둘레에 교사가 되고 싶다 하는 사람 있으면, 맨 먼저 이 책을 읽어 보라 하고, 다음으로 이오덕 선생님 책 읽어 보라고 얘기해요.

오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어른들은 모두 어릴 적 즐겁게 뛰놀던 아이로 살았으리라 생각해요. 오늘 행복을 제대로 못 누리거나 잊은 어른들은 모두 어릴 적 즐겁게 뛰놀지 못한 채 학교공부만 죽어라 해야 했던 분들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러니까... '어른이 되어도 놀아야' 하는걸요... 술 담배 외식 살곶이 관광여행 취미여가 말고, '놀이'를 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