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쌀

 


  한밤에 깨어나 새벽녘에 글일을 마치고 아이들 곁에 드러누우려 들어가려다가 문득 한 가지 깨닫는다. 아차, 어제 아이들 저녁 먹이고 나서 쌀을 안 불렸네. 누런쌀로 밥을 지어 먹는 살림이니 미리 불려야 하는데. 그래도 우리 집 물은 시골물이라 도시에서 쌀을 불릴 적보다 한결 빨리 잘 붇는다. 이제 새벽 네 시 오십 분이니 아침 여덟아홉 시쯤이면 잘 붇겠지. 한두 시간 더 기다려야 하면 다른 주전부리 준 다음 느긋하게 차려도 된다. 쌀 다 씻어 불렸으니 즐겁게 쉬자. 4346.8.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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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8. 2013.8.1.

 


  넓적한 칡잎 하나 톡 뜯고는 이야호 소리를 지르며 춤추는 사름벼리. 얘야, 도시에서 시골 놀러온 어른들은 이런 멧길 걷다가 칡덩굴 새싹 돋은 모습 보고는 칡싹 걷느라 바쁘더라. 우리는 따로 칡싹 뜯어서 먹지 않아도, 칡잎 만지고 칡내음 맡으면서 칡숨 소담스레 받아들일 수 있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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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8. 멧길 (2013.8.1.)

 


  자동차 드나들어 관광지 되기를 바라는 시골 군청 행정으로 오솔길 넓혀 찻길처럼 만들지만, 이곳까지 관광 다니는 사람은 드물다. 가끔 구경 삼아 지나다니는 사람 있기는 한데, 이러한 멧길은 다시 오솔길로 돌아가 자동차 아닌 두 다리로 찬찬히 사뿐사뿐 오르내릴 때에 한결 빛나면서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멧길은 자동차로 슥슥 오르내려서는 멧길이 아니다. 숲바람 쐬고 숲소리 들으며 두 다리로 호젓하게 걸어야 비로소 멧길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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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놀이 5

 


  골짝물놀이 실컷 즐기고 나서 멧길을 내려온다. 아이들은 내리막길에서도 씩씩하게 달린다. 아니, 내리막길이기에 한결 신나게 달린다. 그러더니 아버지가 저 뒤에서 자전거 천천히 끌고 내려오는 줄 깨닫고는 “아, 아버지 같이 가야지?” 하면서 나한테 다가온다. 그러다가 다시 달려 내려간다. 큰아이가 앞장서고 작은아이가 뒤따른다. 온갖 손짓 발짓 하면서 춤추듯이 달리며 논다. 4346.8.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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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를 어떻게 읽을까

 


  동시는 동시 그대로 읽으면 넉넉하리라 생각합니다. 동시를 읽으면서 이 글이 ‘문학’인지 아닌지 따질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시를 읽고 나서 ‘문학비평’을 할 일 또한 없다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동시읽기’ 하고 나서 ‘이야기꽃’ 펼치면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동시읽기’란 ‘문장분석’이나 ‘교훈분석’이 아닙니다. 동시로 담은 글줄(문장)을 파헤칠 때에도 여러모로 뜻이 있지만, 무엇보다 어떤 이야기를 담은 글인가 하고 읽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무런 이야기 없이 겉치레나 겉멋으로 운율이나 율격이나 형식만 갖추었다면, 이런 동시를 아이들한테 읽힐 뜻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문장수련’을 하려고 동시를 읽지 않으니까요. 아니, 아이들은 벌써부터 ‘문장수련’을 할 까닭이 없으니까요.


  동시를 읽는다면, 즐겁기 때문에 읽습니다. 삶을 즐기고 노래를 즐기고 싶어 동시를 읽습니다.


  운율이나 율격을 맞추면 한결 낫지 않느냐 할 수도 있지만, 운율이나 율격은 글잣수나 줄간격이나 줄나눔에는 없어요. 마음속으로 한 올 두 올 읊으면서 즐기는 운율이요 율격입니다.


  동시를 쓰는 어른이 굳이 줄을 알뜰히 나누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이녁 마음이 흐르는 결을 살펴 즐겁게 동시를 쓰면 됩니다. 동시를 읽는 즐거움까지 어른들이 섣불리 재거나 따져서 ‘이렇게 읽으라’ 하는 뜻으로 쓸 까닭이 없어요. ‘저렇게 읽으라’ 하는 틀을 보여주는 동시라면 아이들도 따분하게 여깁니다.


  말장난이나 말재주 피우는 동시를 아이들이 몇 차례나 되읽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한국말 배우도록 돕는다는 동시를 쓰는 어른이 있기도 한데, 아이들한테 ‘한국말 배우기’ 시키려고 동시를 읽힌다면, 퍽 서글픈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동시는 동시 그대로 즐기면 될 노릇이에요. 즐겁게 동시 한 줄 즐기다 보면, 저절로 한국말 사랑스레 배울 테지요. 처음부터 ‘국어학습(한국말 배우기)’을 내세우며 쓰는 동시란,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크나큰 짐덩이밖에 안 되리라 느껴요.


  동시는 삶으로 읽습니다. 어른시도 삶으로 읽습니다. 모든 시는, 또 모든 글은 삶으로 읽습니다. 삶으로 읽지 않는 글이란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달리 일구는 삶대로 동시를 읽어요.


  누군가는 도시 한복판 50층짜리 아파트에서 살아가며 동시를 읽어요. 누군가는 오래된 도심 작은 골목집에서 살아가며 동시를 읽어요. 누군가는 시골 읍내 상가 건물에서 살아가며 동시를 읽어요. 누군가는 바닷마을 흙집에서 살아가며 동시를 읽어요. 생각해 보셔요. 어디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동시를 읽는 마음이 다를 테지요.


  어버이한테서 늘 사랑받는 하루 보내는 아이는, 사랑 가득한 눈길로 동시를 읽습니다. 어버이한테서 늘 꾸지람받고 학교에서도 으레 꾸중덩어리 되는 아이는, 고단한 짐에 짓눌린 채 동시를 읽습니다. 운동장에서 흙먼지 마시며 뛰논 뒤에 읽는 동시하고, 피시방에서 여러 시간 인터넷게임을 한 뒤에 읽는 동시는 맛이 다릅니다. 독후감숙제 때문에 읽는 동시하고, 어린이 스스로 책방마실 하면서 고른 책을 독후감숙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호젓하게 읽는 동시는 아주 크게 다릅니다.


  언제나 삶으로 읽는 동시요 글입니다. 곧, ‘동시읽기’뿐 아니라 ‘동시쓰기’도 삶으로 쓴다고 할 만합니다. 다 다른 어른들이 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다 다른 결로 동시를 써요.


  동시를 읽거나 글을 읽는다고 한다면, 내 삶에 비추어 내 이웃 삶을 읽는 셈입니다. 동시를 쓰는 사람은, 이녁 삶을 담은 글을 내놓아 이녁을 둘러싼 이웃들한테 아름다운 이야기 한 자락 들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 #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큰아이를 도시에서 낳았고, 작은아이 낳을 무렵 시골로 삶터를 옮겼습니다. 도시를 떠나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아가며 누린 ‘동시읽기’를 내 살가운 이웃과 나누고픈 마음으로 ‘동시를 어떻게 읽을까’ 하는 실마리를 한 타래 두 타래 풀어습니다.


  나로서는 시골빛으로 헤아리는 글빛(동시빛)입니다. 시골마을 이야기를 동시 이야기와 아울러 한껏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6.8.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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