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사람 100만 원 책읽기

 


  요 한 주 사이 면사무소에서 ‘논둑과 밭둑에 불 지르지 마라’는 방송을 날마다 해댄다. 산불로 옮겨 붙을 수 있다면서, 쓰레기를 태울 때뿐 아니라 논둑이나 밭둑에 불을 붙일 때에도 벌금을 100만 원씩 물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렇지만, 우리 마을이나 이웃 여러 마을 모두 논둑과 밭둑에 불을 놓는다. 논 한복판에도 불을 놓는다. 다른 시골보다 한결 따스한 고흥에서는 이즈음부터 논둑이며 밭둑이며 ‘수많은 풀’이 싹틀 즈음이니, 꼭 요즈음에 불을 놓는다. 마을사람으로서는 불을 놓으면 농약을 덜 쳐도 되고, 풀이 탄 재가 거름 노릇을 하니 좋다고 여긴다. 이와 달리 면사무소 공무원은 ‘산불 막기’만을 이야기한다.


  집에서 빨래를 하는데 면사무소 방송이 또 들린다. 복복 비빔질을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고흥에서는 ‘친환경농업’을 한다면서 여러모로 이름을 내걸지만, 막상 친환경농업에 걸맞는 정책이나 대책을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 내놓지 않는다. 기껏 하는 일이란 ‘친환경 농약’을 돈 주고 사다가 뿌리라고 하는 말뿐이다. 논둑과 밭둑에서 돋는 풀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논둑과 밭둑에는 어떤 풀이 돋을까?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풀이 논둑과 밭둑에 돋을까? 우리들이 나물로 먹는 풀이 논둑이나 밭둑에 돋을까?


  논임자나 밭임자라 하더라도 모닥불조차 피우지 못하게 한다고, 벌금 100만 원을 물리겠다고 하는 으름장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일까 궁금하다. 군청과 면사무소, 여기에 농협까지, 이들은 시골마을 사람들이 시골 논밭과 흙을 어떻게 다루거나 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궁금하다. 4347.1.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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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꽃

 


모과꽃은 모과꽃 그대로 곱다.
모과꽃이 짙붉지 않다며
짙붉은 물감을 발라야
모과꽃이 곱지 않다.

 

동백꽃은 동백꽃 그대로 맑다.
동백꽃이 너무 붉다며
사포로 벅벅 문질러야
동백꽃이 맑지 않다.

 

깨꽃은 얼마나 예쁜가.
함박꽃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후박꽃은 얼마나 반가운가.
모시꽃은 얼마나 빛나는가.

 

꽃은 늘 꽃이다.
햇볕이 포근히 드리운다.

 


4347.1.2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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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31. 그예 사랑하면 넉넉하다

 


  전문가 되는 일이 그다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문가 되면 무엇이 좋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밥을 잘 차리는 전문가 되어야 할는지, 빨래를 잘 비비고 짜는 전문가 되어야 할는지 잘 모르겠어요. 자전거를 잘 타는 전문가 된다든지, 노래를 잘 부르는 전문가 되어야 할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책을 잘 읽거나 글을 잘 쓰는 전문가는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거나 말을 솜씨 있게 잘 하는 전문가는 얼마나 즐거운 삶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 전문가 되면 사랑스럽게 삶을 누릴까요. 사진을 잘 읽거나 잘 말하는(비평하는) 전문가 되면 멋있게 삶을 누릴까요.


  전문가 되는 일이 그리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이 될 때에 그예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삶을 즐겁게 누릴 적에 노상 즐거운 하루가 되리라 느낍니다. 삶을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면 언제나 사랑을 꽃피우리라 느낍니다.


  사진을 잘 찍는 일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을 잘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아름답게 마주하고 즐겁게 누리면서 사랑스레 가꿀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삶을 아름답게 마주하고 즐겁게 누리며서 사랑스레 가꿀 수 있어야 하고, 살림살이도, 보금자리도, 이웃과 동무도, 하고 싶은 일과 놀이도, 책과 노래도, 춤과 웃음도, 한결같이 아름답고 즐거우며 사랑스러운 빛이 드러나도록 마음을 기울여야지 싶어요.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그럴듯하게 찍은 사진이 아름다울까요. 즐거움이란 무엇인가요. 겉치레를 할 때에 즐거운가요. 사랑스러움이란 무엇인지요. 전문 솜씨나 큰 권력이나 많은 돈으로 사랑이 되나요.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솜씨를 키우는 길보다, 스스로 삶을 가꾸는 마음씨를 보듬을 때에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남들이 우러러볼 만한 재주를 뽐내는 길보다, 스스로 삶을 일구는 마음결을 보살필 때에 즐겁다고 느낍니다. 남들보다 앞서거나 높이 오르는 자리를 차지하는 길보다, 스스로 삶을 알뜰살뜰 어루만지면서 이웃과 오순도순 속삭이는 마음빛이 될 때에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우면 됩니다. 즐거우면 웃습니다. 사랑할 때에 넉넉합니다. 사진 한 장에, 글 한 줄에, 그림 한 자락에 아름다움과 즐거움과 사랑스러움을 따사롭게 담는 이웃이 되어 함께 삶을 빛내요. 4347.1.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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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680) 퍼실리데이터(facilitator)


  서울시 공문서에 나온 한자말과 영어를 손질해 주는 일을 맡아서 하다가, “분임토의를 원활하게 운영하고 문제해결 및 의사결정 과정을 관리하는 퍼실리데이터 역할은 정책협의회 위원으로 함”과 같은 글월을 보았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스스로 쉽고 바르며 곱게 글을 쓰면 좋으련만, 이와 같은 글을 쓰고 나서 한자말과 영어를 다듬어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글월을 손질해 주다가 ‘퍼실리데이터’라는 낱말을 보면서 고개를 한참 갸우뚱합니다. 이런 낱말을 누가 언제 쓸까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칠 적에 이런 낱말은 얼마나 자주 나타날까요.


  영어사전을 뒤적이니 ‘facilitator’는 “(1) (지시하는 사람이 아닌) 조력자 (2) 일을 용이하게 하는 것, 촉진제”라고 나옵니다.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다시 서울시 공문서를 헤아립니다. 공문서에서 이런 낱말을 쓰면, 공무원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알아들을 만할까요. 이 나라 여느 사람들더러 영어를 배우라는 뜻으로 공문서에 이런 낱말을 집어넣어서 영어 교육을 시키려는 뜻일까요.


  영어사전에 나오는 대로 ‘조력자’로 손질해 줄까 하다가, 아무래도 이런 낱말도 쉽지는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이런 말을 쓰기 어려워요. 청소년한테도 그리 쉽지 않으며, 여느 어른한테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도움이’라는 낱말로 고쳐 줍니다. 4347.1.28.불.ㅎㄲㅅㄱ


* 새로 쓰기
- 분임토의를 잘 운영하고 문제를 풀며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을 다루는 도움이 노릇은 정책협의회 위원으로 함
- 분임토의를 매끄럽게 이끌고 문제를 풀며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을 맡는 도움이는 정책협의회 위원으로 함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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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8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01-28 10:42   좋아요 0 | URL
회의 진행을 맡는다면 '회의 진행자'나 '진행자'라 하면 될 텐데, 왜 영어로 이런 이름을 가리켜야 하는지 알쏭달쏭하네요. 참말... 온 나라 사람한테 영어를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가 봐요......
 

사름벼리 동생을 부르다

 


  마당에서 함께 뛰노는 두 아이. 사름벼리는 동생 앞에서 춤을 추어 준다. 동생은 좀처럼 춤을 안 춘다. 얘, 네 누나는 너더러 함께 춤추자 하는데 넌 왜 이리 춤도 안 추니. 옆에서 누나가 재미나게 놀아 주려 하는데, 동생은 누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데로 가서 놀려 한다. 누나가 동생을 부른다. “보라야, 가지 마!” 그러나 동생은 저리 가고 만다. 뭐, 저리 가더라도 우리 집 마당 언저리인걸. 4347.1.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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