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곳에서 살더라도

 


  오늘 설날을 보내고 하루를 더 묵으면 이튿날 고흥 시골집으로 돌아간다. 인터넷을 켜서 날씨를 살피니, 이튿날에는 비가 온다는데, 아이들과 찾아온 음성 할매 할배 댁은 이튿날 낮에 4℃쯤 된다 하고, 우리 고흥 시골집은 낮에 17℃쯤 된단다. 그저 숫자일 뿐이지만,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참말 우리 시골집 고흥이 이렇게 포근한 곳이로구나. 음성에는 군데군데 얼음덩이와 눈밭이 있다. 아이들은 눈이라면서 손이 꽁꽁 얼어 빨갛게 되도록 눈덩이와 얼음덩이 만지면서 논다.


  추운 곳에서 살다 보면 마음도 춥거나 차가워질까 헤아려 본다. 따스한 곳에서 살면 마음도 따스하거나 포근할 수 있는지 곱씹어 본다. 추운 곳에서 살면서 마음 따스한 이웃이 있다. 따스한 곳에서 살지만 마음 차가운 이웃이 있다.


  왜 다를까. 왜 추운 곳에서도 따스한 마음 될 수 있을까. 왜 따스한 곳에서 추운 마음이 되고 말까.


  돈이 많대서 넉넉한 마음씨 되지 못하기 일쑤이다. 가난하지만 넉넉한 마음씨로 살아가는 이웃이 있다. 왜 그럴까. 왜 다를까.


  책을 많이 읽었으나 넉넉하며 아름다운 마음씨를 건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책을 읽은 적 없으나 늘 넉넉하며 아름다운 마음씨로 웃는 이웃이 있다. 왜 그럴까. 왜 다를까.


  천천히 어둠이 걷히며 새벽이 다가온다. 가만히 동이 틀 무렵 아이들이 깨어나겠지. 다 함께 웃음으로 맞이하는 설날 누리자. 서로서로 사랑스레 노래하는 새 하루 즐기자. 4347.1.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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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설을 앞두고
음성 할매 할배 계신 댁에 찾아와
이틀째 지낸다.
자장노래 부르며
두 아이 재운다.
작은아이는 곯아떨어지고
큰아이도 곧 꿈나라 간다.
이제 노래는 그만하자 생각하며
살며시 눈을 감는다.

 

노래를 그치니
바깥에서 여러 소리 들린다.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자동차 달리는 소리,
자동차 멈추는 소리,
자동차 자동차 자동차.

 

큰길이 삼십 미터쯤 앞에 있는데
창문을 꼭꼭 닫고
두꺼운 천을 드리웠어도
바깥소리 자꾸 스며든다.

 

나지막하게 다시 자장노래 부른다.
아이들이 깊이 고이 보드라이
꿈속 노닐 때까지.

 


4347.1.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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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두 아이를 옆에 누여 자장노래를 부르려 하면, 이제 두 아이는 서로서로 겨루듯이 노래를 부른다. 한참 동안 서로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부른다. 두 아이가 노래를 마치고 숨을 돌리는 틈을 타서 나도 노래 한 가락 뽑을라치면, 어느새 작은아이가 끼어들어 종알종알 새 노래를 부른다. 작은아이가 노랫말을 엉터리로 종알종알 부르면, 큰아이는 “아이 참, 아니잖아.” 하면서 또박또박 노랫말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살뜰히 부른다.


  두 아이가 신나게 노래를 부르니 나는 조용히 있을 적이 잦다. 그러나 이내 큰아이가 “아버지 노래 불러 줘요.” 하고 조른다. 그러면 작은아이는 어느새 또 끼어들어 또 종알종알 부른다. 이때에 작은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부르면, 작은아이가 아무렇게나 종알거리던 노래를 그치고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부른다.


  아이들 노래를 들으며 생각한다. 두 아이가 참 많이 컸구나. 앞으로 두 아이는 더욱 크겠지. 더 크고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이 넘어도 아버지더러 노래 불러 달라고 바랄까. 앞으로는 이 아이들이 늘 노래를 불러 주는 한편, 이 아이들이 낳아 돌볼 아이들이 나한테 노래를 불러 주려나. 또는 이 아이들이 낳은 아이한테 내가 노래를 불러 주려나.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기다가, 내가 스물 몇 해 앞서 즐겁게 부르던 노래 몇 가지를 노랫말을 고쳐서 부른다. 새 노랫말에는 두 아이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시골숲을 예쁘게 가꾸는 이야기를 넣는다. 작은아이는 곧 곯아떨어진다. 큰아이는 조용히 숨을 죽이며 듣는다. 작은아이는 코를 골면서 노래를 살결로 받아들이겠지. 큰아이는 나긋나긋 마음 깊이 이야기를 아로새기면서 고운 꿈을 꾸겠지.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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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의 힘 세계사 시인선 109
이지엽 지음 / 세계사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48

 


시와 봄길
― 씨앗의 힘
 이지엽 글
 세계사 펴냄, 2001.4.5.

 


  겨울에도 퍽 포근하게 바람이 부는 남녘에서는 유채잎이 넓적넓적 벌어집니다. 머잖아 유채꽃 노란 물결 일렁이겠다고 느낍니다. 냉이꽃은 진작에 올라왔습니다. 다만, 냉이꽃잔치까지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설을 지나고 이월로 접어들면 곳곳에 냉이꽃잔치 이루어지겠지요. 냉이꽃잔치 둘레에 꽃다지꽃잔치와 꽃마리꽃잔치 이루어질 테고, 봄까지꽃과 코딱지나물꽃과 별꽃이 함께 봄꽃잔치를 베풀리라 생각해요.


  따스한 곳뿐 아니라 추운 곳에서도 봄꽃잔치를 앞두고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웁니다. 흰눈이 쌓인 얼어붙은 땅바닥에 납작하게 잎사귀 살몃살몃 벌린 풀을 볼 수 있습니다. 아기 새끼손톱보다 훨씬 작은 떡잎을 빼꼼 내민 풀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마다 겨울눈 도톰하고 단단하게 맺습니다. 들판과 숲에 쌓인 흰눈이 녹으면서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면 모두 한꺼번에 깨어나 까르르 하하하 호호 히히 웃음노래 들려주리라 생각합니다.


.. 물은 징검다리 건너뛰면서 / 마음은 늘 개울에 빠져 발이 시렸구나 ..  (내 마음의 곡선)


  봄이 오면 숲과 들에 진달래 핍니다. 진달래 피는 곁에 찔레가 핍니다. 찔레 곁에는 민들레가 핍니다. 민들레 곁에는 제비꽃이 핍니다. 제비꽃 곁에는 괭이밥꽃이 핍니다. 괭이밥꽃 곁에는 토끼풀꽃이 핍니다.


  온갖 꽃이 얼크러집니다. 숱한 풀이 뿌리를 나누고 줄기가 만납니다.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내면서 자랍니다. 서걱서걱 바람 따라 나부끼면서 춤을 춥니다. 풀내음이 짙어 풀벌레 깃들고, 풀벌레 깃드는 곳에 풀개구리 노래합니다. 풀개구리 노래하면서 새들이 내려앉고, 새들이 내려앉는 언저리에서 흐르는 냇물에는 다슬기 있습니다. 다슬기는 개똥벌레가 잡아먹고, 개똥벌레는 별빛마냥 고운 빛을 들판에 남깁니다.


  송알송알 복닥복닥 왁자지껄한 봄입니다. 한꺼번에 눈을 뜨면서 활짝 깨어나는 봄에는 어디에서나 노래입니다. 시골 흙지기도 노래요, 시골 풀벌레와 멧새도 노래입니다. 개구리도 노래이고, 나무와 꽃도 노래입니다. 구름과 무지개도 노래이면서, 하늘과 바다도 노래예요.


.. 어느새 봄이다 / 고개 들고 보니 정말 환한 봄날이다 ..  (나는 왜 詩를 쓰는가)


  이지엽 님은 시집 《씨앗의 힘》(세계사,2001)에서 봄을 노래합니다. 시를 쓰는 까닭은 봄을 누리기 때문이라고 속닥속닥 노래합니다. 봄에 봄을 누리니 저절로 노래가 나옵니다. 봄에 봄을 맞이하니 시나브로 노래가 터져나옵니다.


  봄에는 시인이 아니더라도 시인이 됩니다. 봄에는 봄빛을 그득 먹으면서 누구나 시를 쓰고 노래를 부릅니다. 봄에는 흙내음과 풀내음 사이를 감도는 봄내음에 젖어 누구라도 시를 사랑하고 아낍니다. 봄에는 바람결에 묻어나는 풀씨와 꽃가루를 그득 느끼면서 시 한 줄이란 씨앗 한 톨과 같다고 깨닫습니다.


.. 도갑사 가는 길 벚꽃이 피었습니다 / 그 꽃터널 지나며 / 아내는 참 곱다 차암 곱다 / 다시 봐도 환해서 눈 둘 곳을 잃습니다 ..  (꽃터널에서 길을 잃다)


  봄에 봄을 노래하듯이 여름에 여름을 노래합니다. 가을에 가을을 노래하고, 겨울에 겨울을 노래합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를 바라보며 아기를 노래합니다. 아침햇살을 누리며 아침과 햇살을 노래합니다. 저녁노을을 마주하면서 저녁과 노을을 노래해요.


  밥 한 그릇 받을 적에 나락 한 톨과 숟가락을 노래합니다. 구멍 난 자리를 기우며 옷 한 벌과 바늘 한 땀을 노래합니다. 자전거를 노래하고 두 다리를 노래합니다. 흰눈을 노래하고 보슬비를 노래합니다. 뭉게구름을 노래하고 소나기를 노래해요.


  노래하지 못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노래로 태어나지 않을 이야기는 없습니다. 노래하지 못할 꿈은 없습니다. 노래로 거듭나지 않는 꿈은 없습니다. 노래하지 못할 사랑은 없어요. 노래로 맑게 웃지 않는 사랑은 없어요.


.. 마슬 갔다가 돌아오는 깜깜한 저녁 / 어린 나는 그냥 무서워 어머니 손을 꼭 잡고 / 졸린 눈을 비비며 고샅 대숲을 얼른 지나치려는데 / 산기슭께 자물자물거리는 불빛을 보고 / 어머닌 나직하게 중얼거리셨지요 ..  (배꼽)


  겨울나무는 봄나무입니다. 겨울을 견디는 나무마다 봄눈이 그득 맺혔으니, 겨울나무란 봄나무입니다. 봄나무는 여름나무입니다. 봄에 꽃망울 터뜨리는 나무마다 새잎 몽글몽글 돋으려 하니, 봄나무란 여름나무입니다. 여름나무란 가을나무입니다. 여름에 잎사귀 짙푸른 나무마다 꽃송이 떨구며 자글자글 열매가 굵어지니, 여름나무란 가을나무입니다. 가을나무란 겨울나무입니다. 굵어진 열매가 소담스레 익고, 열매와 나란히 잎사귀 붉게 물드는 빛깔이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겨울빛입니다.


  삶이 흘러 사랑이 됩니다. 사랑이 자라 꿈이 됩니다. 꿈이 피어나 이야기가 됩니다. 이야기가 퍼지면서 다시 삶이 됩니다. 지구별은 수많은 푸른 숨결 삶이 모여 사랑이 태어납니다. 수많은 푸른 숨결 삶이 사랑이 되면서 꿈이 꿈틀거립니다. 이 꿈은 새로운 씨앗처럼 뿌리를 내려 이야기로 거듭나고, 어느새 예쁜 삶옷을 새삼스레 입어요.


  시를 쓰는 우리들은 지구별을 어루만집니다. 시를 읽는 우리들은 지구별을 노래합니다. 시를 쓰는 우리들은 지구별을 가꿉니다. 시를 읽는 우리들은 지구별을 지킵니다. 땅바닥에 엎드리며 봄볕 기다리는 풀포기 돋은 흙길을 거닐면서 봄을 마음속에 그립니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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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4.1.30. 큰아이―음성 할매 할배

 


  벼리야, 음성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그림으로 그려서 드리지 않을래? 응, 알았어. 사름벼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예쁜 빛깔 크레용을 써서 척척 그린다. 그러고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 곱다시 ‘사랑’을 넣는다. 어쩜 이렇게 어여쁜 생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니. 네 마음속에 늘 사랑이 있기 때문일 테지. 네 마음속에 깃든 고운 빛을 언제나 그림으로 옮길 수 있겠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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