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눈높이에 맞추어 새롭게 고쳐쓴 《지상에 숟가락 하나》라고 하는 《똥깅이》를 읽는다. 왜 청소년 눈높이에 맞추어야 할는지 잘 모르겠다. 여느 어른이 읽을 만한 책이라면 청소년도 읽을 만해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 눈높이에 맞추려 한다면, 새로운 작품을 써야 알맞지 않을까. 제주섬에서 일어난 일을 차근차근 적바림하는데, ‘부연 설명’ 같은 글이 죽 이어진다. 너무 ‘청소년 눈높이’를 따졌다고 할까. 청소년 스스로 헤아리고 살피며 읽도록 쓰면 될 노릇인데, 너무 ‘친절하구나’ 싶다. 청소년은 코흘리개 아이가 아닌 만큼 스스로 숟가락을 쥐어 밥을 퍼서 먹는다. 청소년쯤 되면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청소년이라서, 요즘 아이들이라서, 1940∼50년대 이야기를 못 알아듣지 않는다. 청소년이거나 요즘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찾아보고 살펴보면서 지난날 발자국와 삶자락을 톺아보기도 한다. 교훈이나 역사지식은 살며시 내려놓고, 현기영 님이 제주에서 나고 자라며 겪고 즐긴 삶을 도란도란 이야기꽃으로 피우기만 하면 넉넉하리라 느낀다. 4347.2.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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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깅이- 청소년을 위한 <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 지음, 박재동 그림 / 실천문학사 / 2009년 1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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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06] 사회

 


  기차에서 어느 할매가 시끄럽단다.
  그런데, 이녁 손자한테도
  너 시끄러워, 하고 다그칠 수 있을까.

 


  모든 이야기는 늘 ‘사회’를 말합니다. 어느 책이나 글을 읽든, 이 책과 글에서 ‘사회’를 느낍니다. 따로 시나 소설이나 수필이 되어야 문학이 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모든 글이 문학이요 사회입니다. 기찻간에서 까르르 웃는 아이나 답답해 우는 아이더러 “시끄러워!” 하고 소리지르는 할매나 할배도 우리 사회를 보여줍니다. 이녁들은 이녁 손주가 까르르 웃거나 답답해서 울 적에도 “시끄러워!” 하고는 주디를 닫으라고 닦달할까요? 까르르 웃는 아이와 함께 웃고, 버스나 기차에서 오래 시달리며 괴로운 아이가 울 적에 포근히 달래려 하겠지요. 나와 너를 가르는 모습에서 사회를 읽고, 나와 너를 다르게 대접하는 매무새에서 사회를 느낍니다. 4347.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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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시간 마실길

 


  충청북도 음성에서 전라남도 고흥으로 여덟 시간 걸쳐 돌아온다. 다른 때와 견주면 한 시간 일찍 돌아온다. 오늘은 조치원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꼭 15분이었고, 순천 버스역에서는 5분만 기다리고 고흥 들어가는 버스를 잡았다. 순천 기차역에서 순천 버스역까지 택시를 탔기에 고흥으로 들어가는 시외버스를 다른 때보다 일찍 잡았다고 느낀다.


  시골집에서 시골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서 한 시간 지나고 나서 나란히 똥을 눈다. 큰아이는 어제 똥을 못 누어서 오늘 어찌 될까 살짝 안쓰러웠는데, 기차와 버스에서 똥이 마렵지 않다고 집으로 와서 똥을 누니 고맙다. 작은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아침에 똥을 두 차례 누었는데 한 차례 더 누었다. 이제 다들 속이 시원하겠지?


  자동차 달리는 소리 하나 없고, 빗소리 들으면서 밤새 노래하며 지나가는 소리 듣는 우리 고흥 시골집이 즐겁다. 여덟 시간 걸려 돌아오는 길에 우리 두 아이 잘 견디어 주어서 새삼스레 고맙다. 너희들이 잘 와 주었으니 아버지도 너희를 보듬으며 돌아오면서 몸이 그리 힘들지 않구나. 다만, 어깨는 몹시 뻑적지근하다. 4347.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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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글을 쓰는 작은아이

 


  아이들은 어버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찬찬히 지켜본다. 그러고는 스스로 가만히 따라하곤 한다. 아이들이 쓰는 말이란 모두 어버이가 쓰는 말이요, 여기에 둘레 어른들이 쓰는 말을 곁들인다. 아이들이 누리는 놀이란 어버이가 누리는 놀이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먹는 밥이란 모두 어버이가 늘 먹는 밥이다.


  네 살 작은아이가 그림책에 볼펜으로 금을 죽죽 그린다. 그림도 그린다. 무엇을 하는가 하고 지켜보니, 아버지가 책을 읽으며 하는 양을 고스란히 흉내낸다. 아버지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대목이 있으면 밑줄을 긋는다. 때로는 빈자리에 이런 생각 저런 느낌을 적어 넣는다. 아직 글을 모르고 읽거나 쓰지 못하는 작은아이인 만큼, 글씨 흉내를 꼬물꼬물 그림으로 보여준다.


  큰아이는 두 살 적에 이런 금긋기와 그림그리기를 했다. 큰아이는 무엇이든 스스로 하려 했으니 두 살 적부터 아버지 흉내를 냈고, 작은아이는 누나가 언제나 잘 챙기거나 도와주기 때문에, 두어 해쯤 늦는다고 여길 만하다. 작은아이가 볼펜을 쥐고 ‘아버지가 안 보는 데’에서 몰래 책에 금을 긋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참 예쁘다. 비록 책을 다 어저립히듯이 금을 긋고 그림을 그려서 “아이고, 보라야, 그림책을 하나 새로 사야겠구나.” 하고 말했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맨 처음’으로 금도 긋고 글(그림)도 그린 책은 오래오래 건사하며 애틋하게 되돌아볼 만하리라 느낀다. 4347.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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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도 봉숭아물 들이기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봉숭아’라고만 말했다. 어머니가 ‘봉선화(鳳仙花)’라는 한자말을 쓴 일은 없다. 그런데 국민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은 으레 ‘봉선화’라는 한자말만 쓰고 ‘봉숭아’라는 한국말은 거의 안 썼다. 중학교에서 배운 “울 밑에 선 봉선화야” 같은 노래가 있는데, 언젠가 “울 밑에 선 봉숭아야” 하고 낱말을 고쳐서 부르니, 음악 교사가 길다랗고 굵직한 몽둥이로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나로서는 그 옛날 ‘조선 여느 백성’이 고운 꽃송이를 한자말로 가리켰으리라고는 느낄 수 없어 한국말로 고쳐서 부르지만, 음악 교사는 헛소리 하지 말라고만 윽박질렀다. 겨레말을 빼앗기며 슬픔에 젖었다는 사람들이 ‘봉숭아’라는 꽃이름을 안 쓰고 ‘봉선화’라는 한자말을 썼을까? 나로서는 믿기지 않는다.


  졸린 작은아이 낮잠을 재우는 동안 할머니가 큰아이 손가락마다 봉숭아물을 들여 주신다. 봉숭아잎을 미리 빻아서 봉지에 싸고는 얼려 두셨다고 한다. 그래, 봉숭아물을 꼭 봉숭아꽃이 필 무렵 들여야 하지는 않아. 한겨울에도, 설에도, 봄에도 얼마든지 물들일 만하지. 봉숭아잎을 빻아 얼려 놓을 수 있다면, 언제라도 꺼내서 곱게 물을 들일 만하지.


  나는 우리 어머니 아이일 뿐 아니라, 어여쁜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인 줄 새삼스레 돌아본다. 우리 시골집에는 아직 봉숭아가 피어나지 않지만, 올해에는 길가에서 자라는 봉숭아를 잘 살펴서 잎을 알뜰히 그러모아 틈틈이 빻아 놓아야겠다. 4347.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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