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벼리 마음속은

 


  조각을 맞추어 무언가 만드는 장난감이 있다. 아이들 외삼촌이 어릴 적 갖고 놀던 장난감을 물려받았다. 큰아이는 이 조각들을 요모조모 맞추면서 언제나 다른 것으로 만든다. 기차가 되고 버스가 되며 비행기가 된다. 나비가 되거나 집이 되기도 한다. 아무튼, 무엇이 되건 하늘을 휭휭 난다. 마당으로 들고 나가서 하늘을 나는 듯이 갖고 논다. 아이가 이렇게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 또한 어릴 적에 연필로도, 막대기로도, 하늘을 휘휘 날리면서 놀았다고 떠올린다. 때로는 손에 아무것도 안 쥔 채 손에 무엇이 있는 양 하늘로 날리면서 놀기도 했다. 아이들 마음속에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헤아려 본다. 4347.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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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아홉 권으로 이루어진 ‘아나스타시아’ 이야기 가운데 일곱째 권이 2012년에 나왔고, 이 책을 일찌감치 읽었다. 다 읽고 한 해 넘게 책상맡에 두면서 늘 바라본다. 일곱째 책에서 우리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 스스로 우리 시골마을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삭히면서 마음밥으로 삼으면 즐거울까 하고 생각한다. 어느 책이든 지식얻기나 정보얻기를 꾀하려고 읽지 못한다. 지식이나 정보를 얻자면서 읽는 책이란 부질없다. 삶을 깨닫고 사랑을 느끼며 꿈을 키우도록 돕는 책을 읽어야 비로소 즐겁다. 문학을 읽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문학비평을 하려고 문학을 읽지 않는다. 시를 왜 읽는가. 시인이 되려고 시를 읽지 않는다. 인문책을 왜 읽겠는가. 인문학자가 되거나 지식을 내세우려고 읽지 않는다. 스스로 제 보금자리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빛과 기운과 꿈과 사랑을 다스리고 싶으니 인문책을 읽는다. ‘아나스타시아’ 이야기인 《삶의 에너지》란 무엇일까. 살아가는 기운, 또는 살아가는 빛이란 무엇일까. 어떤 힘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는가. 어떤 즐거움과 보람을 누리면서 삶이 환하게 빛나는가.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무엇을 배우거나 물려받아야 할까.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삶자리와 마을과 사회를 물려주려는 꿈을 꾸어야 하는가. 모든 실마리는 우리 마음속에 있고, 《삶의 에너지》는 우리들이 저마다 스스로 실마리를 찾도록 도와준다. 4347.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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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에너지
블라지미르 메그레 지음, 한병석 옮김 / 한글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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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사람은 복숭아를 무척 좋아한다. 복숭아를 뜻하는 이름 ‘모모’는 그야말로 아주 흔하다. 흔한 이름이지만 참 자주 쓰고, 언제나 애틋하게 아낀다. 모모라든지 모모코라든지 모모짱이라든지 모모코짱이라든지 모모네라든지, 복숭아를 가리키는 이름을 살가이 쓴다. 그러면, 한국사람은 무엇을 좋아할까. 어떤 이름을 곳곳에 예쁘게 붙이면서 즐겁게 부를까. 다섯 권만 번역된 ‘분홍꼬마 몽이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영차영차 몽이》를 큰아이가 덥석 집으며 읽는다. 일곱 살로 접어든 요즈음 한글을 제법 읽어낸다. 아직 다 읽지는 않지만, 따로 가르쳐 주지 않은 글까지 ‘아이한테 익숙한 글과 맞추어’서 생각해 낼 줄 안다. 조그맣고 예쁜 그림책에 흐르는 글을 그림결을 살피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해서 글을 알아맞히기도 한다. 아이가 그림책을 즐기고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그림책은 어여쁜 그림이면 참 좋기도 하지만, 이야기와 줄거리 또한 아름다울 때에 참 좋다. 이야기와 줄거리가 아름답지 않으면 아이들이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림책 이야기와 줄거리가 사랑스러워야 한다. 서로를 아끼고 믿고 기대고 도우면서 빙그레 웃음짓는 사랑이 흘러야 한다. 이런 지식이나 저런 학습을 아이한테 심으려고 하는 그림책은 아이들이 그리 달가이 여기지 않는다. 곰곰이 돌아보면, 재미있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그림책이야말로 훌륭한 ‘학습 효과’가 있다. 바로, 사랑을 가르치고 꿈꾸도록 이끄는 배움빛이 있다. 4347.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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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차영차 몽이
토요타 카즈히코 지음, 하늘여우 옮김 / 넥서스주니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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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995) 위의 4 : 무대 위의 상황

 

배우들은 대본대로 연기하는 것이 아니고 무대 위의 상황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대사를 만들고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 연기를 펼칩니다
《안치운-추송웅, 배우의 말과 몸짓》(나무숲,2004) 28쪽

 

 무대 위의 상황
→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
→ 무대에서 일어나는 상황
→ 무대에서 펼쳐지는 상황
→ 무대 상황
→ 무대 흐름
 …

 

  무대 위가 있고 무대 아래가 있습니다. 배우는 무대에 올라가서 연기를 선보일 테니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따라 연기를 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농사꾼이 “논 위에서 김을 맨다”고 하지 않습니다. “논에서 김을 맨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래꾼이 “공연장 위에서 노래를 한다”고 하지 않으며 “공연장에서 노래를 한다”고 합니다. 연극 배우도 “무대에서 연기를 한다”고 적을 때가 가장 알맞다고 느낍니다. 굳이 ‘위아래’를 갈라야 하지 않습니다. 관객을 부른다고 할 적에도 “무대로 나오셔요” 하고 말하면 됩니다. 배우가 무대 아래쪽으로 내려간다면, 이때에는 “무대 아래”가 될 테지만, 다시 무대로 돌아가면 “무대로 돌아오셔요” 하고 말해야겠지요. 조금 더 살피고 한 번 더 돌아보면서 글을 가다듬습니다. 4340.5.9.물/4342.6.6.흙/4347.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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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은 대본대로 움직하지 않고 무대 흐름에 맞추어 그때그때 말을 만들고 관객한테서 웃음을 끌어내는 연기를 펼칩니다

 

“연기(演技)하는 것이 아니고”는 “연기하지 않고”나 “움직이지 않고”로 다듬고, ‘상황(狀況)’은 ‘흐름’으로 다듬습니다. ‘즉흥적(卽興的)으로’는 덜어도 되고, ‘그때그때’나 ‘그 자리에서’로 손보아도 됩니다. “관객(觀客)의 웃음을 유발(誘發)하는 연기”는 “관객을 웃기는 연기”나 “사람들과 함께 웃는 연기”나 “사람들한테서 웃음을 끌어내는 몸짓”으로 손질해 줍니다. ‘대사(臺詞)’는 전문용어로 여길 수 있지만, ‘말’로 다듬을 만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733) 위의 5 : 네 살 위의 여학생

 

점자 동아리에서 만난 네 살 위의 여학생이었다
《고바야시 데루유키/여영학 옮김-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강,2008) 52쪽

 

 네 살 위의 여학생
→ 네 살 위 여학생
→ 네 살 위인 여학생
→ 네 살 많은 여학생
 …


  이 자리에서 한자말 ‘연상’을 넣었어도 “네 살 연상의 여학생”처럼 적었겠지 싶어요. 한자말을 안 쓰고 ‘위’를 적었어도 토씨 ‘-의’를 붙이니 아쉽고요.


  토씨 ‘-의’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면 ‘위’라는 낱말을 쓰지 말고 “네 살 많은 여학생”처럼 적으면 됩니다. 또는 ‘위’를 그대로 둔 채 말끝을 ‘-인’으로 붙입니다.


  잘 헤아려 보셔요. “누나는 몇 살 위인가요?”처럼 묻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몇 살 위이더라?”처럼 말합니다. 다른 자리에서는 토씨를 어떻게 붙이는가 곰곰이 돌아보면, 실마리를 잘 풀 수 있습니다. 4342.4.12.해/4347.2.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점자 동아리에서 만난 네 살 위인 여학생이었다

 

사람들은 으레 “연상(年上)의 여학생”이나 “연하(年下)의 여학생”처럼 쓰는데, 이 자리에서는 “네 살 위”라고 적어 줍니다. 토씨 ‘-의’를 붙인 대목은 아쉽지만, 이만큼 기울인 마음를 앞으로는 더 넓혀 주면 참으로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26) 위의 6 : 위의 책들

 

물론 위의 책들은 오늘날에는 걸작으로 꼽혀 적극적으로 권해지고 있다
《김미라-책 여행자》(호미,2013) 23쪽

 

 위의 책들은
→ 이 책들은
→ 이런 책들은
→ 이 같은 책들은
→ 이와 같은 책들은
 …


  이 글월에서 가리키는 책들은 어느 책방에서 위쪽에 있는 책이 아닙니다. 책을 이야기하는 글에서 밝히는 목록을 가리키는 대목입니다. 그러니, ‘위’를 넣어서 가리키면 틀립니다. 잘못 썼어요. “이 책들”이라고 적어야지요. 또는 “이런 책들”이나 “이 같은 책들”처럼 가리키면 됩니다. 4347.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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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것도 없이 이런 책들은 오늘날에는 훌륭한 책으로 꼽혀 널리 사랑받는다 

 

‘물론(勿論)’은 ‘말할 것도 없이’로 손보고, ‘걸작(傑作)’은 ‘훌륭한 책’으로 손봅니다. “적극적(積極的)으로 권(勸)해지고 있다”는 “널리 추천받는다”라든지 “두루 사랑받는다”로 손질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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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쓰면 우리 말이 깨끗하다
 (142) 위의 1 : 위의 경우

 

위의 경우와 똑같은 사건이 다르게 평가되었다면 새로운 반응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H.웨이신저,N.롭센즈/임한성 옮김-불완전한 인간》(청하,1986) 20쪽

 

 위의 경우와 똑같은 사건
→ 이와 똑같은 일
→ 이때와 똑같은 일
→ 이 경우와 똑같은 사건
 …


  앞말을 받으면서 ‘위’라는 낱말을 쓰는 분이 퍽 있습니다. 이와 달리, 뒷말을 들려주기 앞서 ‘아래’라는 낱말을 쓰는 분이 꽤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올바르지 않습니다. 책을 쓸 적에, 다루려는 이야기가 종이 위쪽에 나올 수 있습니다만, 앞쪽에 다루려는 이야기가 나온 뒤 뒤쪽에 “위의 경우”처럼 이어진다면, 참 뜬금없는 소리가 돼요. “아래의 경우”처럼 쓸 적에도 똑같습니다. 책 맨 아래쪽에서 “아래의 경우”라 적고는 다음 쪽 맨 윗자리에 다음 이야기가 흐르면 어찌 될까요.


  그러니, 다루려는 이야기를 먼저 들려준 다음,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려 하면, “위의 경우”가 아닌 “이 경우”라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이 경우”는 살짝 손질해서 “이때”로 적을 수 있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이와 똑같은”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4338.2.1.불/4347.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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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와 똑같은 일이 다르게 받아들였다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었다

 

‘경우(境遇)’은 앞말과 묶어 ‘이때’로 손봅니다. ‘사건(事件)’은 ‘일’로 다듬고, ‘평가(評價)되었다면’은 ‘받아들여졌다면’으로 다듬으며, “새로운 반응(反應)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었다”로 다듬어 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604) 위의 2 : 위의 예에서도

 

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규칙이라는 것이 일본과 같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나카네 지에/양현혜 옮김-일본 사회의 인간관계》(소화,1996) 31쪽

 

 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 이 보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 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 이처럼
→ 이와 같이
  …


  “위의 예”처럼 말할 수 없습니다. 잘못 쓰는 보기입니다. 이 글월은 “이 예에서도”로 적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예(例)’를 손질해 “이 보기에서도”처럼 적고, 단출하게 “이에서도”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더 단출하게 적어 보자면, “이처럼”이나 “이와 같이”로 적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로 적어도 됩니다. 4339.5.20.흙/4347.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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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규칙이라는 것이 일본과 같이 따로 어느 하나이거나 또렷한 무엇이 아니라

 

‘예(例)’는 ‘보기’로 다듬습니다. “개별적(個別的)이고 구체적(具體的)인 것이 아니라”는 무엇을 말할까 알쏭달쏭한데, ‘개별적’은 “하나씩 따로 나뉘어 있는”을 뜻하고, ‘구체적’은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갖추고 있는”을 뜻합니다. 이러한 뜻을 헤아린다면, “따로 어느 하나이거나 또렷한 무엇이 아니라”로 손질하면 잘 어울리겠다고 느낍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729) 위의 3 : 소파 위의 뚱보 하인

 

기름때 흐르는 소파 위의 뚱보 하인처럼 / 물렁한 뇌수에서 몽상을 하는 / 당신네들 생각을 / 내 피투성이 심장에 대고 문질러 / 마음껏 조롱하리라, 뻔뻔하고 신랄한 나는
《마야꼬프스끼/석영중 옮김-광기의 에메랄드》(고려대학교 출판부,2003) 1쪽

 

 소파 위의 뚱보 하인처럼
→ 소파에 앉은 뚱보 하인처럼
 …


  외국사람이 쓴 시를 한국말로 옮긴다고 할 때에는 훨씬 더 마음을 쏟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시 흐름을 거스르지 않도록 애쓰고, 말맛과 이야기가 알뜰히 어우러지게끔 힘써야 합니다. 뜻을 옳게 살필 뿐 아니라, 한국말다운 글이 되도록 가다듬어야지 싶어요.


  그나저나, “소파 위의 뚱보 하인”은 무슨 소리일까요. 뚱보 하인이 “소파에 앉았다”는 소리일까요, 아니면 뚱보 하인이 “소파 위에 올라섰다”는 소리일까요. 이쪽인지 저쪽인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소파에 앉았다”는 소리 아닐까 싶은데, 앉은 모습이 아니라면 “선 모습”이나 “누운 모습”이나 다른 어떤 모습인지 또렷하게 밝혀야 합니다.


  우리는 “걸상에 앉”습니다. “자리에 앉”습니다. “땅바닥에 앉”습니다. “걸상 위”도 “자리 위”도 “땅바닥 위”도 아닙니다. “저기 풀밭에 앉으렴” 하고 말하지 “저기 풀밭 위에 앉으렴” 하고 말하지 않아요. 풀밭 ‘위’라는 데는 없습니다. 풀밭 ‘위’라면 풀밭 위쪽으로 붕 떠서 ‘하늘에 있으라’는 소리가 됩니다. “소파 위”라는 말도 소파 위쪽 하늘에 있다는 소리가 돼요. 4339.9.8.쇠/4342.6.6.흙/4347.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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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때 흐르는 소파에 앉은 뚱보 하인처럼 / 물렁한 머리에서 바보꿈을 꾸는 / 너희들 생각을 / 내 피투성이 심장에 대로 문질러 / 마음껏 비웃으리라, 뻔뻔하고 날카로운 나는 

 

“물렁한 뇌수(腦髓)에서 몽상(夢想)을 하는”이라면 “물렁한 머리에서 바보꿈을 꾸는”이나 “물렁한 머리로 꿈속이나 헤매는”쯤으로 다듬으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당신(當身)네들’은 ‘너희들’로 손보고, ‘조롱(嘲弄)하리라’는 ‘놀리리라’나 ‘비웃으리라’로 손보며, ‘신랄(辛辣)한’은 ‘날카로운’이나 ‘따가운’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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