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아는 마음

 


  일곱 살 큰아이가 두 팔을 활짝 펼쳐 “안아 줘.” 하고 말할 적에 가슴이 찡합니다. 불쑥 꺼내는 이 말을 어떻게 맞아들여야 좋을까 하고 한참 생각합니다.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도 생각하고, 아이를 재운 밤에도 생각합니다.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처럼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지 떠올려 봅니다. 일곱 살 밑일 적에 겪은 일은 하나도 떠올리지 못하는 터라, 그때까지 어떠했는지 모르겠는데, 일곱 살 뒤부터 누구한테도 “안아 줘.”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안긴 아이는 팔과 다리로 척 붙잡습니다. 안긴 채 움직입니다. 나는 아이를 안고는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요 녀석 재미나게 놀고 싶구나 하고 느끼는 한편, 안긴 아이가 느낄 즐거움과 따스함 못지않게 안은 어른이 느낄 즐거움과 따스함이 크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사랑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사랑은 어디에서 샘솟을까요. 사랑은 언제 깨달을까요. 사랑은 언제부터 느낄까요. 누가 가르치고 누구한테서 배우며 누가 누구하고 주고받는 사랑이 될까요. 간밤에 딱새와 제비가 우리 집 처마에 둥지를 잔뜩 짓고는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처마 밑을 바라보며 딱새와 제비를 부르니 이 아이들이 모두 내 손등에 앉더군요. 함께 새가 되어 훨훨 날며 노래하는 마음이 사랑일까요. 4347.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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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2-16 09:23   좋아요 0 | URL
"안아 줘"할때 하던 일 다 제치고 우선 안아줄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은게 제 바람인데...
아이의 그 말에 가슴 찡하다는 말씀에 저는 또 찡~합니다.

이 장면은 사진으로 보기가 힘들겠네요, 손이 모자라니까요^^

숲노래 2014-02-16 10:25   좋아요 0 | URL
손에 사진기가 있으면 찍겠지만
거의 못 찍는 모습이에요 ^^;;
누군가 곁에서 찍어 주면 찍을 테지만요.

그러나, 아이가 두 팔 벌린 모습은
언제나 마음속에 또렷하게 아로새겼으니
사진으로 안 찍어도
늘 사진처럼 가슴에서 싱그럽게 움직여요~
 

 

책을 본다

 


  책을 본다. 눈앞에 그득 쌓인 책을 본다. 이 많은 책들 가운데 내 마음을 살며시 건드리는 책이 있고, 내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책이 있다. 내 마음을 살며시 건드리는 책을 쓴 사람은 어떤 눈빛일까 헤아려 본다. 내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책을 쓴 사람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까 가누어 본다.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본다. 내 이웃이나 동무는 이녁이 읽고 싶은 책을 본다. 서로 삶이 달라, 서로 읽고 싶은 책이 다르다. 서로 넋이 달라, 서로 바라보는 자리가 다르다. 나는 자가용을 몰지 않을 뿐 아니라, 운전면허조차 따지 않았다. 내 이웃이나 동무 가운데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나는 운전면허책을 들여다보는 틈마저 아깝다고 여겼다.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는 틈도 아깝다고 여겼다. 이동안 내 마음 살찌울 책을 읽자고 생각했다. 이동안 내 눈빛 밝히는 풀과 꽃과 나무를 살살 어루만지자고 생각했다. 자가용을 몰면 책방마실을 하며 장만한 책을 가방에 꾹꾹 눌러담아 땀 삐질삐질 빼면서 어기적어기적 짊어지고 집까지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달리지 않아도 된다. 자가용을 몰면 우체국으로 소포꾸러미 보내러 자전거수레를 몰지 않아도 될 테고, 자가용을 몰면 읍내 저잣거리로 마실을 가서 가방이 무겁도록 짐을 짊어지고 나르지 않아도 되겠지. 그런데, 자가용을 몰면 길바닥만 보고 다른 자동차를 살피기만 해야 한다. 내 보금자리와 이웃마을 사이에 드리운 숲이나 바다나 골짜기를 바라볼 수 없다. 자가용을 모는 사람 가운데 집과 읍내 사이를 오가다가 살며시 멈추고는 바람 한 줄기 쐬며 풀노래를 듣는 사람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로 달릴 때면, 언제나 풀바람을 쐬고 풀노래를 듣는다. 자가용을 빨리 달리면, 집에서 느긋하게 책을 더 오래 손에 쥘 만하다 말할 분이 있을 텐데, 자가용으로 더 빨리 달린대서 책을 더 오래 손에 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더구나, 종이책만 책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겨울바람도 책이요, 봄꽃도 책이다. 멧새 노랫소리도 책이요, 개구리 울음소리도 책이다. 오르막에서 숨을 돌리면서 아이들더러 “얘들아 하늘 좀 보렴. 구름 멋있지 않니?” 하고 말하며 구름바라기와 먼산바라기를 하는 일도 책읽기라고 느낀다.


  책을 본다. 책방마다 가득 쌓인 책을 본다. 나는 이 많은 책들 가운데 어느 책을 마음밥으로 삼고 싶을까. 나는 이 많은 책들 가운데 어떤 책을 골라서 내 마음빛을 밝히고 싶을까. 남들이 나한테 묻지 않는다. 언제나 내가 나한테 묻는다. 나 스스로 걸어갈 길을 나 스스로 묻는다. 나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삶을 나 스스로 돌아본다. 길동무가 되는 책을 살피면서 하루를 열고 닫는다. 4347.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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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시나브로 좋아진다

 


  한국에서 즐겁게 얼음판을 지칠 수 없어 러시아로 건너간 스물아홉 살 젊은이가 겨울올림픽에서 노랗게 빛나는 메달을 목에 건다. 경기를 마친 뒤 얼음판에 머리를 박고 한동안 있다가 입을 맞춘다. 얼마나 저 얼음판을 지치고 싶었으며, 얼마나 저 얼음판에서 땀을 흘리고 싶었을까. 이녁이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에는 ‘안현수’였으나, 이제부터는 ‘빅트로 안’이다. 그런데, 이름이 무슨 대수인가. 어떤 이름이건 스스로 가장 즐겁게 빛나면서 사랑을 꽃피울 수 있으면 아름다운 숨결이 된다. 러시아에 막걸리 한 잔을 바친다. 4347.2.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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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자동차 놀이 1 - 문을 타고 달린다

 


  선물받은 장난감 자동차를 한손에 쥐고 붕붕 달린다. 마룻바닥을 달리고 방바닥을 달린다. 창호종이문을 달리고 하늘을 달린다. 이불을 달리고 어머니와 아버지 등판과 머리통까지 달린다. 어디로든 달린다. 밥상에서도 달리고, 마당에서도 달리며, 평상에서도 달린다. 그러면 말이야, 저 높은 하늘로도 달리고 바다에서도 달리며 구름과 함께 무지개를 타고 달리기도 해 보렴. 4347.2.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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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46. 함께 노래하는 자리 (2014.2.13.)

 


  두 아이가 고샅에서 논다. 지난날 고샅은 시골아이 누구한테나 놀이터였다. 이제 시골 고샅은 흙길이 아닌 시멘트길로 바뀌었고, 시멘트로 바뀐 시골 고샅에서 뛰노는 시골아이는 없다. 시골 아재 아지매는 모두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나랏님 말씀을 꼬박꼬박 지켰으니까. 시골에서 태어났대서 꼭 시골사람이 되어야 하지는 않으나, 도시에서 태어났대서 반드시 도시에서만 살아야 할까? 시골에서 태어났어도 도시로 갈 수 있으면, 도시에서 태어났어도 시골로 와서 흙을 만지며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올바르지 않겠는가. 도시로 떠나고 싶은 아이들한테는 장학금이니 융자금이니 지원금이니 철철 넘친다. 시골에서 뿌리내리며 살고 싶은 아이들한테는 ‘못난이’라느니 ‘바보’라느니 하는 손가락질이 찰찰 넘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집 아이들은 시골에서 시골아이답게 뛰놀고 노래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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