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를 이기는 글쓰기

 


  끝날 듯 끝날 듯하면서 끝나지 않는 일이 있다. 서울시 공문서를 손질해 주는 일을 한다. 내가 할 몫은 끝났으나, 새로운 몫이 자꾸 생긴다. 새로운 몫을 더 맡으며 일을 하다가 생각한다. 아직 새로운 몫이 있으면 내 일은 더 있는 셈이요, 더 배우고 살필 대목이 있다는 뜻이라고.


  서울마실을 하기 앞서까지 엉덩이가 아프도록 걸상에 앉았고, 서울마실을 마친 뒤로도 몸을 못 쉬고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걸상에 앉는다. 일을 쉬며 밤잠을 잘 적에는 엉덩이가 아파 모로 눕는다. 나중에는 허벅지까지 아프다.


  옛날 사람들이 책상맡에서 손으로 원고지에 글을 쓸 적에는 엉덩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하루 내내 책상맡에서 타자를 하거나 주판을 놓아야 하던 경리들은 엉덩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자리에 못 앉도록 일으켜세워 하루 내내 일을 시킬 적에도 몸이 고단할 테지만, 자리에 꼼짝없이 앉혀서 하루 내내 일어서지 못하도록 시킬 적에도 몸이 고달프리라 느낀다. 사람은 일어서기도 하고 앉기도 해야 한다. 눕기도 하고 걷기도 해야 한다. 조금만 더 하자는 마음으로 버틴다. 얼마쯤 버티면 이 일을 마칠 수 있을까. 엉덩이에 살점이 많은 우리 몸 얼거리를 새삼스레 돌아본다. 엉덩이에 살점이 많아야 더 오래 걸상에 앉을 만할까. 엉덩이에 살점이 없으면 누워서 쉬기도 어렵겠지. 4347.2.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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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품은 여우 내 친구는 그림책
이사미 이쿠요 글.그림 / 한림출판사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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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6

 


사람이 참새보다 낫지 않다
― 알을 품은 여우
 이사미 이쿠요 글·그림
 허앵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1994.5.1.

 


  가끔 도시로 일을 하러 다녀옵니다. 전남 고흥은 어느 도시하고도 참 먼 시골이기에, 어디로든 도시로 일을 하러 가자면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섭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올 적에는 언제나 저녁별이나 밤별을 등에 업습니다.


  엊그제 이틀치기로 서울과 인천을 다녀오면서 밤 열두 시 언저리에 고흥에 닿았습니다. 서울과 인천에서는 별을 보지 못했고 별을 볼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인천은 서울보다 건물이 낮지만, 시골처럼 한 층짜리 집이 죽 늘어서지는 않습니다. 골목동네에서도 곳곳에 빌라가 많으니 별바라기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하늘이 너무 좁아요. 서울에서는 밀려드는 자동차 물결 때문에 하늘 볼 틈이 없지요. 게다가 깊은 밤까지 불빛이 밝은 서울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별이건 달이건 떠올리지 않으리라 느껴요.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고흥읍에서 내려 택시를 불러 탑니다. 택시 창밖으로 별을 봅니다. 읍내를 벗어난 택시는 바다도 멧자락도 들도 하늘도 모두 깜깜한 길을 조용히 달립니다. 이곳에서는 택시나 버스를 타고 움직이면서 별바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택시를 내립니다. 천천히 걸어 집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모두 잠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낮 동안 마당에서 놀며 어지른 것을 치웁니다. 마루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루며 방이며 부엌이며 어지럽습니다. 몸이 고단하지만 이대로 두고 쓰러질 수는 없습니다. 한참 치우고 걸레질을 합니다. 한숨을 돌리려고 마당으로 다시 내려섭니다. 별바라기를 합니다. 이 좋은 별을 보며 살자고 시골로 왔지, 하고 헤아립니다. 이 좋은 별빛을 받는 시골에서 푸르게 자라는 풀과 꽃과 나무를 누리자고 조용조용 살아가지, 하고 돌아봅니다.

 


.. “아주 먹음직스러운 알이네. 한입에 삼켜버리자. 아니, 잠깐!” 여우는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먹을 거라면 이 알을 따뜻하게 품어서, 태어난 아기 새를 꿀꺽하자.” ..  (2쪽)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을 한참 바라봅니다. 이불을 여미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습니다. 코를 부비고 다리를 주물러 봅니다. 어른인 나와 견주어 조그마한 발을 조물주물 주무릅니다. 이 작은 발로 오늘 하루 얼마나 신나게 뛰놀았니, 이 작은 발로 얼마나 개구지게 뛰고 날면서 하루가 신났니.


  아이들이 있기에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웃고 노래하기를 바라니까, 자동차 걱정을 하지 않는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다시금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온갖 놀이를 찾아내고 지으면서 자라기를 바라니, 어디에서 무엇을 만져도 근심할 일이 없는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구나 하고 곰곰이 되새깁니다.


  아파트 아닌 다세대주택에서 살아도 아이들이 집안에서 뛰도록 두기 어렵습니다. 아파트숲 아닌 골목동네에서 살더라도 아이들은 자동차 걱정을 해야 합니다. 나라에서 어린이집 보육비를 대준다 하더라도 썩 반갑지 않습니다. 보육비를 대주는 일보다 어린이집이 어떤 노릇을 하는가를 살펴야지 싶어요. 아이를 낳아 보살피는 삶은 돈으로는 가꾸지 못해요. 아이는 언제나 사랑으로 낳고, 사랑으로 보살핍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스럽게 놀고, 사랑스럽게 노래합니다.

 


.. 큰 소리에 여우가 눈을 떠 보니, 족제비가 알을 깨뜨리려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크릉, 크릉! 무슨 짓이냐, 내 알이야!” 여우는 새처럼 입으로 쿡쿡 족제비를 찌르며, 털북숭이 꼬리로 힘껏 때렸습니다 ..  (15쪽)


  이사미 이쿠요 님 그림책 《알을 품은 여우》(한림출판사,1994)를 읽습니다. 우리 집 일곱 살 큰아이는 “왜 여우가 알을 품어?” 하고 묻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닌 적 없고 다큐영화도 거의 본 일이 없는 일곱 살 큰아이는 여우가 새끼를 낳는지 알을 낳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요즈막에는 ‘새는 알을 낳는다’는 대목 하나는 조금 알아챘습니다. 아이는 그림책을 보다가 “족제비가 왜 알을 먹으려고 해?” “배고파서.” “족제비가 알을 먹으면 새가 태어나지 못하잖아.” “그러게. 새가 태어나지 못하지. 그런데 족제비는 배고프니까 알을 먹어야 해.”


  큰아이는 눈치를 채지 못했을까요. 아니,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를 어느덧 잊었을까요. 여우도 알을 먹을 생각이었어요. 여우도 알을 먹으려 합니다. 다만, 알에서 새끼 새가 깨어나면 더 맛나게 먹을 생각이에요.


.. 여우는 매일 매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알을 고이고이 품었습니다 ..  (26쪽)


  내가 낳은 목숨이든 남이 낳은 목숨이든 모두 같습니다. 내가 돌보는 목숨이든 남이 돌보는 목숨이든 모두 같습니다. 내가 낳은 아이와 내가 씨앗을 심어 돌보는 밭이 서로 같습니다. 내가 쓴 글과 내가 장만한 책이 서로 같습니다.


  목숨은 어디에서나 같습니다. 같은 값이라서 같지 않습니다. 같은 사랑이라서 같습니다. 한국사람이 일본사람이나 중국사람보다 더 낫지 않습니다. 미국사람이 버마사람이나 라오스사람보다 더 낫지 않습니다. 어른이 아이보다 낫지 않으며, 아이가 어른보다 낫지 않습니다.


  사람이 참새보다 낫지 않습니다. 이와 똑같이, 참새가 사람보다 낫지 않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낫지 않습니다. 이와 함께, 꽃이 사람보다 낫지 않습니다. 모두 이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목숨이요 숨결이면서 이웃이자 동무입니다. 저마다 한식구를 이루어 저마다 예쁜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 난처해진 여우는 아기 새를 두고 숲 속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둥지 안에 두고 온 아기 새가 걱정되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삐익삐익, 삐익삐익.” 불쌍한 아기 새의 울음소리가 숲 속까지 들려왔습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 ..  (37쪽)


  여우는 새끼 새를 잡아먹지 못합니다. 여우는 새끼 새를 잡아먹을 수 없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알을 고이고이 품”으며 지냈는데, 이 알에서 깨어난 여린 목숨을 어떻게 잡아먹을까요. 아마 여우는 앞으로 ‘풀 먹는 여우’로 달라질는지 몰라요. ‘풀 먹는 여우’로 살다가, 풀이 아파할까 걱정하는 마음이 생기면, 풀조차 안 먹고 ‘바람과 이슬을 먹는 여우’로 다시 태어날는지 몰라요. 하느님 눈물을 쏙 뺄 만큼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여우로 살아갈 테지요. 하느님 웃음을 빙그레 자아낼 만큼 멋지고 예쁘며 즐거운 여우로 살아가겠지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모두 한마음입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른은 모두 한넋입니다. 사랑이 가득 담긴 한마음이요, 꿈이 그득 실린 한넋입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요.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앉아 땅을 봐요. 가만히 서서 두리번두리번 이웃을 둘러봐요. 눈을 살며시 감고 마음속에서 샘솟는 이야기를 느껴요. 우리는 서로서로 어떻게 살아갈 적에 환하게 빛나면서 맑게 노래할 수 있는 숨결일까 헤아려 봐요. 4347.2.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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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 + 1초

 


  2월 19일 수요일 낮에 서울 망원역에서 전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역으로 간다. 그리 멀지 않을 듯했는데 막상 전철로 달리고 보니 그리 가깝지는 않다. 18시 20분에 순천으로 떠나는 시외버스를 탈 수 있을는지 없을는지 아슬아슬하다고 느낀다. 고흥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17시 30분이 막차. 이 버스를 놓쳤기에 순천으로라도 가야 하는데, 순천으로 가는 18시 20분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는 있어도 고흥으로 들어갈 버스가 없다.


  고속터미널역에서 전철이 선다. 서울마실을 하며 장만한 책으로 꽉 찬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두 손에도 책으로 꽉 찬 천가방을 둘 든 채 뒤뚱뒤뚱 달린다. 계단을 헉헉거리며 오르고, 자동계단에서는 살짝 숨을 돌린다. 표 끊는 곳까지 다시 달린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앞에서 표를 끊는 사람들이 아주 느긋하다. 줄을 설 적에는 모두 ‘앞사람이 언제 줄어드나’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제 차례가 되면 참 느긋하게 표를 끊기 일쑤이다. 시계를 보니 버스가 떠나기까지 3분 남는다. 천천히 표를 끊는 사람들이 모두 지나간 뒤 “예약한 표요.” 하면서 카드를 내민다. 바로 표를 끊어 준다. 표를 받아 입술로 문 다음 달린다. 순천으로 떠나는 시외버스가 막 문을 닫고 떠나려 했다. 등에 멘 가방은 짐칸에 얼른 넣는다. 천가방은 손에 들고 버스에 오른다. 내가 오르지마자 버스는 문을 닫고 부릉부릉 움직인다. 흔들흔들한 버스에서 맨 뒤에 있는 내 자리로 간다.


 18시 20분에 고속터미널역에서 빠져나오려는 시외버스는 좀처럼 못 움직인다. 서울에서는 퇴근 시간이다. 한참 걸려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이러다가 순천 버스역에 닿은 뒤 고흥으로 들어가는 시외버스를 놓치려나? 순천에서 고흥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시외버스는 22시 13분이다.


  서울에서 순천까지 달리는 시외버스는 3시간 45분 걸린다고 하는데, 서울에서 벗어나는 데에 퍽 힘들었기 때문인지, 순천 버스역에 22시 12분에 닿는다. 나는 곧바로 22시 13분 버스를 타야 하지만, 순천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은 시외버스에서 내릴 적에도 참 한갓지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내린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내려 짐칸에서 가방을 내린 뒤 오른어깨에만 걸친 채, 천가방 둘을 왼팔뚝에 꿰고는 달린다. 고흥으로 들어갈 마지막 시외버스가 막 버스역을 벗어난다. 부리나케 달려 문을 콩콩 두들긴다. 버스가 멈추어 준다. 됐다, 멈추어 주기만 하면 태워 줄 테지. 그리고, 문을 열어 준다. “고흥 가지요? 표를 미처 못 끊었는데 고흥에 가서 끊어서 드려도 될까요?” “타소.”


  네 시간 가까이 달린 시외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한 시간을 달릴 시외버스를 타니 엉덩이가 아프다. 그렇지만 버스를 잡았다. 나한테는 막차인 버스를 두 차례 잇달아 잡았다. 10초와 1초가 더 들었으면 둘 다 놓쳤을 텐데, 10초와 1초 사이로 둘 다 잡았다. 23시 훨씬 넘어 고흥읍에 닿은 뒤에는 택시를 불러서 탄다. 온몸이 쑤시지만 마음은 시원하다. 시골바람을 쐬면서 엉덩이를 살살 쓰다듬는다. 4347.2.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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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4-02-20 19:23   좋아요 0 | URL
제가다 숨을 몰아쉬세 되네요 헉헉

숲노래 2014-02-20 21:13   좋아요 0 | URL
서울에 사는 분들은 17시 30분 '막차'를 느끼기 쉽지 않겠지만,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조차 16시 버스를 타더라도 읍내에 닿으면 모든 군내버스가 끊겨 어차피 이 버스를 타도 택시를 타야 한답니다 ^^;;;

아무튼, 참 먼길 달려서 돌아왔어요 @.@
 

그림책 《들공주》와 《내가 진짜 공주님》

 


  일본사람 나카가와 치히로 님이 1995년에 일본에서 처음 선보인 그림책이 있다. 이 그림책에 붙은 이름은 《のはらひめ》이다. 지난 2001년에 한국말로 옮겨서 한국 어린이도 이 그림책을 볼 수 있으며, 한국책에는 《내가 진짜 공주님》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우리 집 아이들과 한국 ‘번역’책 《내가 진짜 공주님》을 읽으며, 수수하며 예쁜 넋이 잘 드러나는 그림책이라고 여겼다.


  한국말로 나온 ‘번역’책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헌책방 나들이를 하다가 일본책으로 《のはらひめ》를 보고는 기쁜 나머지 냉큼 집어들었다. 일본책에 흐르는 결과 무늬를 헤아려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일본책에 적힌 이름 ‘のはら’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のはら’는 ‘내가 진짜’가 아닐 텐데? ‘ひめ’는 ‘공주’를 뜻한다. 그러면 ‘のはら’는 무엇인가? 일본말사전을 살펴본다. 일본말 ‘のはら’는 ‘들’을 뜻한다고 한다. 무언가 뒷통수를 때리는 느낌이다. 일본책 간기를 살핀다. 일본책에는 영어로 “Princess of the Field”라는 말을 나란히 적는다. 한국책 간기를 들여다본다. 한국책 간기에는 “NOHARA Hime”라고 나온다.


  이런, “내가 진짜 공주님”도 아니요 “우리 집 공주님”도 아니잖은가? 한국 ‘번역’ 그림책을 보면, 이 그림책에서 고빗사위라 할 자리에서 주인공 가시내가 “우리집 공주님”이라고 글을 적는다. 공주 공부를 마치고 어떤 공주가 되고 싶냐고 물으니, 그림책 주인공 가시내는 씩씩하게 한 마디를 적는데, 한국 ‘번역’책에는 “우리집 공주님”이요, 일본 그림책에는 “のはらひめ”, 그러니까 “들공주”라고 적었다.


  일본 그림책에 나온 글을 죽 살펴본다. 아무래도 한국 그림책에 적힌 글하고 다르구나 싶다. 한국에서 이 그림책을 옮기면서 글 줄거리까지 바꾸었구나 싶다. 줄거리뿐 아니라 알맹이까지 바꾸었다. 그림책 주인공 가시내는 ‘들판에서 들내음 마시고 들꽃으로 꽃모자 만들어 쓰면서 노는 공주’가 되고 싶었구나. 다시 그림책을 들여다보니, 겉그림에도 온통 들꽃잔치이다. 겉그림에 나오는 가시내는 들꽃모자를 썼을 뿐 아니라, 치마 주머니에도 들꽃을 한 줌 넣었다. 이 아이는 “들공주”요 “들꽃공주”이다. “들빛공주”요 “풀빛공주”이며 “풀공주”이다.


  부아가 치민다. 일본사람 나카가와 치히로 님이 아이들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아주 엉터리로 바꾸었을 뿐 아니라, 제빛을 망가뜨리고 말았다. 나카가와 치히로 님이 빚은 다른 ‘번역’ 그림책으로 《작은 새가 좋아요》가 있다. 이 그림책을 보면, 나카가와 치히로 님이 ‘숲·들·꽃·작은 숨결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가를 헤아릴 수 있다. 다른 그림책 ‘번역’도 엉망진창으로 바꾸었을까?


  아름다운 그림책을 아름답게 번역하고 편집해서 우리 아이들한테 베풀 때에 비로소 아름답다. 아름다운 넋이 무엇인가를 헤아리지 않고, 함부로 멋대로 아무렇게나 뒤바꾸는 일은 올바르지 않을 뿐 아니라 아름다울 수 없다. 아이들한테 ‘들꽃’을 이야기하려는 그림책 작가 넋을 송두리째 짓밟은 이 그림책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런 그림책을 ‘번역’해서 내놓는 출판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나카가와 치히로 님 그림책을 애써 번역해 주어 무척 고맙지만, 이야기도 줄거리도 알맹이도 모두 뒤바뀌어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그림책을 빚은 나카가와 치히로 님한테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한테도 모두 잘못을 저지른 셈이니,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루 빨리 《내가 진짜 공주님》을 절판하고, 《들꽃 공주》나 《들공주》라고 이름을 똑바로 바로잡아서 제대로 우리 아이들한테 선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347.2.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과 함께)

 

 

 

 

 

 

 

 

 

 

 

 

 

 

 

+

 

표지를 가득 감싼 '풀꽃'을 보라.

이 표지 그림이 바로 이 그림책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안타깝지만,

이분 다른 '번역' 그림책도

'번역'을 믿을 수 없다.

아주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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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개는 졸졸졸

 


  서울마실을 하던 이른아침에 떠돌이 개가 졸졸졸 따라온다. 우리 집에 눌러앉아 한솥밥을 먹는 떠돌이 개가 내 뒤를 졸졸졸 따라온다. 읍내로 가는 군내버스를 타려고 우리 마을 어귀를 벗어나 이웃 봉서마을까지 걸어가는데 쉬잖고 따라온다. 얘, 나는 군내버스 타고 읍내로 가서 서울까지 가는 시외버스를 탄다구, 네가 따라올 수는 없어. 돌아가라고 말하지만 듣지 않는다. 뭐, 버스 타는 데까지 따라오려는 마음은 떠돌이 개 마음이지. 우리 동백마을부터 이웃 봉서마을까지는 지나다니는 차가 없다. 봉서마을에 이르니 큰길에서 지나가는 차가 있다. 큰길을 건너니 떠돌이 개는 더 따라오지 않는다. 멀거니 나를 바라본다. 그래, 너는 이곳에서 조용히 거닐면서 놀아라. 이곳이 가장 좋은 데야. 4347.2.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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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2-21 13:55   좋아요 0 | URL
아구, 이 녀석도 이젠 한솥밥을 먹는 식구인 줄을 아는군요~~
그런데 여전히 떠돌아 다니기는 해도, 이젠 함께살기님 댁에서 한솥밥도 먹고
머무르기도 하니 이젠 이름을 바꿔주심도 어쩌실지요~
'네맘대로야'라든지 '홀가분 개'로요.ㅋㅋ
'떠돌이 개'라는 말이 어쩐지 조금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이 들어서...소심하게
여쭙니다..^^;;

(보내주신, 도서관 소식지와 너무나 멋진 사진엽서들...너무너무 기쁘고 감사하게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숲노래 2014-02-21 14:35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에요.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아직 마땅한 이름을 짓지 못했어요.
어떤 이름이 좋으려나...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