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끝나는 비 (도서관일기 2014.2.2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겨울이 끝나는 비가 내린다. 다 읽고 갈무리한 책을 옮기려고 서재도서관으로 간다. 이번에 새로 나온 내 책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도 두 권을 들고 간다. 곱게 나온 책을 얻어 책꽂이 한쪽에 꽂는다. 어느새 내 책으로도 책꽂이 한 칸이 다 찬다. 이제부터 가야 할 길이 멀 테지. 겉꾸밈도 속알맹이도 나란히 고운 책이 태어날 수 있도록 즐거우면서 신나게 이 길을 걸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봄을 코앞에 둔 들녘은 누런 빛이 아주 눈부시다. 빗물을 머금으면서 더욱 싯누렇다. 이월 끝자락과 삼월 첫무렵에만 만날 수 있는 고운 빛이다. ‘지는 꽃도 아름답다’와 같은 말이 있으나 ‘지는 풀도 아름답다’라든지 ‘시든 풀도 아름답다’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하다. 시골에서 풀과 함께 살아가노라면, 새로 돋는 풀뿐 아니라 시들어 쓰러진 누런 풀잎도 얼마나 고운지 모른다.


  내 책을 꽂은 뒤, 몇 가지 책을 챙긴다. 요즈막에 우리 집에 눌어앉은 개 한 마리가 있기에 문득 《떠돌이 개》라는 그림책이 생각났다. 1994년에 처음 한국말로 나오고 2003년에 새롭게 나왔으나 곧 판이 끊어진 그림책이다. 떠돌이라 할는지 나그네라 할는지, 바야흐로 사람 손길에 얽매이지 않고 홀가분한 삶을 되찾았다고 할는지, 개 한 마리 이야기를 곰곰이 돌아본다.


  이원수 님 동화책 《잔디 숲속의 이쁜이》를 챙긴다. 지난날 《보리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어린이 국어사전에 넣을 보기글(용례)을 모으려고 이원수 님 동화책을 모두 새롭게 읽으며 ‘낱말 쓰임새’를 살폈다. 이 동화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내 책들로 서재도서관을 꾸려 놓으니, 언제라도 다시 들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책을 알뜰살뜰 간직할 수 있어 좋다. 이 책들을 이웃한테도 얼마든지 보여주고 책을 함께 나눌 수 있으니 더 좋다.


  아이들과 서재도서관에 왔을 적에 아이들이 놀다가 아무렇게나 둔 장기알을 바라본다. 이제 장기알은 짝이 안 맞는다. 아이들이 커서 장기를 둘 만한 나이가 되면, 그때 장기알을 새로 장만해야겠지. 아이들한테는 장기알이 아직 장기알이 아닌 온갖 놀잇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아이들한테 책들도 아직 책이라기보다는 놀잇감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 머잖아 이 아이들한테도 이 책들이 모두 살가운 마음밥이자 사랑밥이자 노래밥이자 꿈밥이 되리라 생각한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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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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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농림 수탈상 (도서관일기 2014.2.1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미승우 님이 쓴 《일제 농림 수탈상》이라는 책이 있다. 1983년에 나온 책인데, 그리 널리 읽히지 못했다고 느낀다. 이 책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책을 읽었다거나 안다고 하는 사람도 거의 만난 일이 없다. 아니, 이 책을 안다는 사람은 이제껏 딱 한 번 만났다.


  미승우 님은 《일제 농림 수탈상》이라는 책에서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이 나라 숲과 들을 얼마나 짓밟으면서 무너뜨렸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읽으면 읽을수록 슬픈 이야기가 흐른다. 이 나라에 아름드리나무가 거의 없는 까닭을 알 만하고, 이 나라 정부가 숲을 제대로 건사할 줄 모르는 까닭을 짚을 만하다. 일제강점기가 끝났어도 도시이든 시골이든 아름드리나무가 없다. 일흔 해를 살아낸 굵은 나무를 찾아보기 어렵다. 숲이 없고 숲을 가꾸지 않는다.


  중국이 티벳에 탱크와 군인을 거느리고 쳐들어간 까닭 가운데 하나는 ‘티벳에 있는 지하자원과 숲’을 가로채려 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티벳을 티벳이라 가리키지 않고 ‘서장(西藏)’이라 가리키는데, 이 이름은 ‘서쪽에 있는 보배 곳간’이라는 뜻이다. 티벳에서는 지하자원을 함부로 파내지 않을 뿐 아니라, 나무도 함부로 베지 않으니, 중국 정부로서는 두 가지를 가로채고 티벳 사람들을 ‘노역 광부와 벌목꾼’으로 부리려는 꿍꿍이를 오늘날까지 잇는다. 이웃나라를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제국주의 권력은 언제나 숲을 망가뜨린다. 지하자원을 개발한다는 허울을 내세워 끝없이 자본주의 물결을 탄다.


  서재도서관 어느 책시렁에 틀림없이 《일제 농림 수탈상》을 꽂았지만 도무지 어디에 꽂았는지 떠오르지 않아 한 해 남짓 찾다가 그만두었다. 그런데, 찾기를 그만두고 얼마 안 되어 뜻밖이다 싶은 자리에서 이 책을 찾는다. 오스카 루이스 님이 쓴 《가난이 낳은 모든 것》이라는 책과 함께 좀 뜬금없다 싶은 책시렁에 덩그러니 꽂았더라. 두 책 모두 어디로 갔는가 한참 찾았는데, 곰곰이 되짚어 보니 한창 책시렁을 새로 짜서 붙이고 책상자를 끌르고 하면서 ‘이 책은 잘 건사해야 하니 다른 곳에 둘 마음으로 살짝 그 자리에 두고’는 그만 깜빡 잊은 듯하다.


  2011년 가을이 아련하다. 2014년 새봄을 코앞에 둔다. 시골자락에 보금자리를 튼 서재도서관은 한 살씩 새로 나이를 먹으며 책꽂이 짜임새가 한결 예쁘게 거듭난다고 느낀다. 퍽 느긋하고 넉넉하게 책을 만질 수 있다고 느끼니 좋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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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4
콘노 키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19

 


언제나 반갑습니다
―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4
 콘노 키타 글·그림
 대원씨아이 펴냄, 2014.3.15.

 


  밤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저녁까지 빗줄기가 이어집니다. 여러 날 포근한 날씨였기에 아이들은 내내 바깥에서 뛰놀았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가 내리니, 아이들이 집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합니다. 찬비가 내리지 않고 봄을 부르는 비인데, 마당에서 우산놀이를 하지도 않습니다.


  비가 온다며 집에서만 노는 아이들은 마루와 부엌과 방을 건너뛰면서 복닥복닥 놉니다. 온 마을 뒤지면서 놀던 아이들이 집에서만 있자니 기운을 다스리기란 쉽지 않겠지요.


- “영화 한 편 보러 가는데 이렇게 결심이 필요한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 눈앞에 뒹굴거리는 시간은 전부 내 거, 자유롭게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있었던 그때가 지금 생각해 보면 꿈만 같아.” (15쪽)
- “왜 그래? 리카코 고모.” “그냥.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말똥 시대도 지나고 나니까 눈 깜짝할 사이구나.” (76쪽)

 


  바깥에서 노는 아이들은 으레 흙투성이가 됩니다. 집안에서 노는 아이들은 살림살이와 장난감과 그림책을 방바닥과 마루에 잔뜩 깔아놓습니다. 그림을 그리다가 가위를 들고 두꺼운종이를 오립니다. 이웃 아지매한테서 배운 종이오리기를 해 보기도 합니다. 빛종이를 척척 포개듯이 작게 접은 뒤 가위로 끙끙대면서 요리조리 오린 다음 살살 펼치면 가위질한 대로 대칭 무늬가 생겨요.


  일곱 살 아이는 한글을 거의 떼려고 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펼치고는 어떤 말이 적혔는가를 하나하나 읽어내려 합니다. 그동안 만화책을 그림으로만 보던 아이가, 그림에 따라 어떤 이야기가 흐르는가를 말을 한 마디 두 마디 스스로 읽어내면서 새롭게 맞아들입니다.


  아이한테 틈틈이 시를 써서 내밉니다. 아이가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즐겁게 노는 이야기를 짤막하게 시로 씁니다. 아이가 시골에서 기쁘게 누리기를 바라는 빛을 단출하게 시로 옮깁니다. 오늘은 ‘숲에서 놀다가 / 살며시 / 고개를 들어 / 나무 우거진 사이로 /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 멧새가 날아가는 하늘 / 빗물이 떨어지는 하늘 / 무지개 드리우는 하늘 / 파란 빛과 무늬와 숨결 / 모두 푸른 숲으로 깃들어 / 내 몸이 됩니다.’와 같은 이야기를 적어서 내밉니다. 한글을 읽더라도 아무 글이나 읽기보다는, 마음에 깊이 젖어들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속에서 꿈이 자라고, 가슴속에서 사랑이 일렁이기를 바라요.


- “둘 다 장하기도 하지. 사야도 하루카도 생각보다 침착해서 마음이 놓여.” “너 바보냐. 장하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저 녀석들 앞에선 절대 하지 마. 너무 어려서 슬픔을 표현할 말도 모르고 밖으로 도망칠 방법도 모르는 거야. 저 아이들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것뿐이야.” (22∼23쪽)
- “아빠. 울지 마, 아빠. 아빠. 울지 마, 응? 울면 안 돼. 이빠는 어른이잖아.” “그래. 그래, 그래, 미안하다. 이젠 울지 않을게/” (34∼35쪽)

 


  예쁘게 노는 아이는 예쁩니다. 스스로 예쁜 빛을 띄우면서 웃으니 예쁩니다. 신나게 노는 아이는 신납니다. 스스로 신나게 땀흘리면서 뛰고 달리니 신납니다. 개구지게 노는 아이는 개구집니다. 스스로 개구지게 뒹굴면서 복닥거리니 개구집니다.


  어른도 아이와 같습니다. 즐겁게 일하는 어른은 즐겁습니다. 아름답게 일하는 어른은 아름답습니다. 사랑스레 일하는 어른은 사랑스럽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기에 일을 한다면 오로지 돈만 헤아리고야 맙니다. 무엇을 이루겠다는 뜻으로 일을 한다면 오직 무엇을 이루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야 맙니다.


  먹고살기도 해야 할 테지만, 먹고살기만 하려고 일할 수는 없다고 느껴요.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삶을 즐기고 누리면서 가꾸려고 하는 일이 될 때에 언제나 웃고 노래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오늘날 우리 사회는 스스로 삶을 즐기거나 누리거나 가꾸려고 일하는 얼거리가 못 되는 채, 저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다 보니, 웃음도 노래도 자꾸 사라지는구나 싶어요. 고되더라도 즐겁게 맞이할 수 있는 일이어야 노래를 합니다. 힘들더라도 기쁘게 마주할 수 있는 일이어야 웃습니다.


  산타 할배는 웃는 아이한테 선물을 준다잖아요? 하느님은 웃는 어른한테 사랑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바람님은 노래하는 어른한테 꿈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해님은 춤추는 어른한테 이야기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풀님은 어깨동무하는 어른한테 생각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우리를 둘러싼 하늘과 땅과 숲과 들과 냇물과 바다와 바람과 비와 풀과 꽃과 벌레를 비롯한 온갖 숨결을 돌아봐요. 싱그럽게 웃고 노래하면서 우리 이웃을 느껴요. 오늘 하루 새롭게 누릴 수 있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헤아려요. 스스로 웃을 때에 삶이 빛납니다.


- “아직 어린 저 아이들에게 어떻게 슬픔을 이겨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 나이의 아이들에게 엄마를 잃어버린다는 건,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것만큼이나 커다란 충격입니다. 이겨내지 못하는 게 당연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 아이들에게 억지로 슬픔을 지워버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선생님. 부디 하루카를 특별취급하지 말아 주십시오. 설령 그 아이를 위해서라고 해도 ‘가엾게도’나 ‘기운 내렴’, 그런 태도는 오히려 그 아이에게 부담이 될 겁니다. 그런 동정은 하루카의 마음을 닫히게 만들 뿐입니다.” (86∼87쪽)

 


  콘노 키타 님이 어린이 눈높이로 그린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대원씨아이,2014) 넷째 권을 읽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는 넷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너무 일찍 이야기를 마무리짓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꼭 이만큼이 알맞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넷째 권에서는 이 만화에 나오는 어린 두 아이를 둘러싼 ‘죽음’을 퍽 길게 보여줍니다. 앞선 세 권에서는 만화에 나오는 어린 두 아이 어머니가 그만 교통사고로 일찍 숨을 거두고 말았어도 두 아이가 맑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면, 넷째 권에서는 두 아이가 ‘어머니가 갑자기 차가운 몸이 되었을 적’에 이 슬픔과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는가를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은 아이 곁에서 곁님이 이승을 떠난 일을 어떻게 맞이해야 했는가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 “왜 금방 작아지는 걸까.” “그거야 사야가 쑥쑥 크고 있기 때문이지. 옷이나 구두가 작아지는 느낌. 그립다.” (120쪽)
- “우리 아빠가 만든 걸레는 깜찍한 자수가 수놓아져 있으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걸.” “사야가 좋아하겠다.” “내일 갖고 갈게. 그럼 안녕.” “저기, 고마워.” “별 말씀을. 내일 보자.” “응.” (131쪽)


  애틋하게 흐르는 이야기를 따사로이 돌아봅니다. 누구한테나 죽음이 찾아오겠거니 하고 생각해 보고, 죽음은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한테 찾아가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교통사고는 교통사고를 생각하는 사람한테 찾아가는가?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합니다. 사랑은 틀림없이 사랑을 바라는 사람한테 찾아가는데, 아픔과 슬픔이란 누구한테 왜 찾아갈까요? 사랑을 한결 넓거나 깊게 바라보거나 마주하거나 껴안으라는 뜻에서 아픔과 슬픔도 나란히 찾아올까요?


  내 몸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지난 열흘 동안 몸 한쪽이 꽤 아픕니다. 몸 한쪽이 꽤 아프다 보니 걸을 때뿐 아니라 자전거를 탈 때에도 아프고, 드러누워도 아프며 서도 아픕니다. 앉아도 아프고, 빨래를 하거나 밥을 지을 적에도 아픕니다. 몸이 아픈 나머지 아이가 내 무릎에 앉아서 놀 적에는 더 아픕니다. 갑자기 몸 한쪽이 왜 아픈지 모르겠지만, 이 아픔도 내가 불러서 나한테 찾아왔겠지요. 몸이 한참 아프도록 깨닫거나 느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나한테 찾아왔겠지요.


  아픔에는 크기가 따로 없습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든, 도마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든, 자동차가 들이받아 다리가 부러지든, 나무에서 떨어져 머리가 깨지든, 결핵균이 허파를 파먹든, 이가 썩든, 어느 한 곳이 아프면 온몸이 아픕니다. 손끝이 다치거나 발끝이 다쳐도 온몸이 흐트러져요.


  아픔뿐 아니라 기쁨에도 크기가 따로 없어요. 아주 조그마한 일로도 기쁘고 아주 커다랗다는 일로도 기쁩니다. 사탕 한 알로도 기쁘며, 선물꾸러미로도 기쁩니다. 봄이 와서 기쁘고, 봄나물을 캐기에 기쁩니다. 입맞춤이 기쁘고 등에 업은 아이가 기쁩니다.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는 주인공 아이가 이웃 아이와 ‘아주 수수한 일’로 ‘아주 수수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끝을 맺습니다. 두 아이는 이 만화책에서 마지막이 될 인사를 아주 가볍게 합니다. “내일 보자.” “응.” 하고. 아이들한테는 내일이 있습니다. 아이들 어버이한테도 내일이 있습니다. 일찍 죽은 어머니한테는? 일찍 죽은 어머니한테도 내일이 있어요. 만화책 사이사이에 살짝살짝 드러나는데, 두 아이와 아버지는 사진으로만 있는 어머니한테 날마다 새밥을 올립니다. 사진으로만 있는 어머니 앞에 놓인 밥그릇은 줄지 않지만, 늘 새밥을 올려서 함께 밥상맡에 둘러앉아요. 선물할 일이 있을 적에도 사진으로 있는 어머니도 선물을 받습니다. 다만, 사진으로 있는 어머니는 ‘물건으로 된’ 선물을 아이들한테 주지 못합니다. 언제나 마음으로만 선물을 줍니다.


  모두들 마음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헤어지며, 마음으로 삶을 가꿉니다. 마음을 밝히며 하루를 열고, 마음에 노래 한 가락 담아 하루를 닫습니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들이면서 웃는 삶입니다. 4347.2.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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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69) 존재 169 : 내일 위에 존재

 

오늘이라는 날은 언제나 차곡차곡 쌓아올린 ‘내일’ 위에 존재한다
《콘노 키타/김진수 옮김-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대원씨아이,2014) 37쪽

 

 ‘내일’ 위에 존재한다
→ ‘내일’ 위에 있다
→ ‘내일’과 함께 있다
→ ‘내일’ 위에서 숨쉰다
→ ‘내일’ 위에서 빛난다
 …

 


  하루가 모이면 이틀이 됩니다. 하루가 더 모이면 사흘이 됩니다. 하루를 숫자로 세듯이 하나 있다거나 둘 있다거나 셋 있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숫자로 세면서 부피가 있는 듯 여기면 “차곡차곡 쌓은 날” 위에 무엇인가를 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빗대어 하는 말일 테니까요.


  아무리 쌓고 쌓아도 “차곡차곡 쌓은 날”은 부피가 없습니다. “차곡차곡 쌓은 마음”에도 부피가 없어요. 그러니, “내일 위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여겨 “내일과 함께 있다”고 이야기할 만합니다. “차곡차곡 쌓은 마음과 함께 있다”처럼 이야기할 만합니다.


  더 돌아보면, 아무리 쌓는다 하더라도 부피가 없는 ‘날’인 만큼, 쌓는다고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하루하루 지낸 날”이라든지 “하루하루 지나온 날”이라든지 “하루하루 누린 날”처럼 이야기해야 올바르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생각에 따라 말씨가 달라질 텐데, 어떻게 느끼는가를 찬찬히 헤아리면서 ‘오늘이라는 하루’가 어떻게 ‘있는’가를 이야기하면 됩니다. 4347.2.2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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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라는 날은 언제나 차곡차곡 쌓아올린 ‘내일’과 함께 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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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노래 6. 할머니 뵈러

 


나는 사름벼리.
고흥에서 기차 타고
할아버지 할머니 뵈러
음성으로 찾아간다.
우리 시골 마을에는
동백나무 후박나무
과역 벌교 순천 구례
남원 전주 임실 익산
두루두루 지나면서
하얀 눈밭 눈길 눈빛.

 


2014.1.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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