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풀도 곱다

 


  가을까지 푸르게 빛나던 풀은 겨울을 앞두고 누렇게 바뀝니다. 겨우내 시든 잎으로 추위를 맞아들입니다. 새롭게 찾아드는 따순 봄날에는 싯누렇게 빛납니다. 새봄부터 시든 잎 둘레로 새로운 싹이 조물조물 돋습니다. 퍽 크게 자란 채 누렇게 시든 풀잎은 새봄에 새롭게 돋는 풀이 천천히 자라는 동안 찬찬히 땅과 가까워집니다. 어느새 흙 품에 안깁니다. 흙 품에 안긴 누런 풀잎은 여름이 되면서 자취를 감춥니다. 가을 언저리에는 오롯이 새 흙이 되어요. 그러고는 가을이 깊어질 무렵 이때까지 새로 자라며 짙푸르던 풀잎에 차츰 누런 물이 오르면서 시듭니다. 한 해가 흐르고, 새 한 해가 흐릅니다. 새 한 해가 다시 흐르고, 또 한 해가 새삼스레 찾아옵니다. 4347.2.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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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는 어떻게 키울까? 어떻게 키우기는, 천사는 천사답게 키우지. 아이는 어떻게 키우나? 어떻게 키우기는, 아이는 아이답게 키우지. 사람은 어떻게 키우니? 어떻게 키우기는, 사람은 사람답게 키우지. 축구선수나 연예인이 되도록 키울 사람이 아닌, 맑은 넋과 밝은 사랑이 어여쁜 사람으로 자라도록 키운다. 나무는 나무답게 곧게 뻗으면서 푸른 그늘과 꽃과 열매를 알뜰히 맺도록 살가이 아끼면서 함께 살아간다. 우리 이웃들은 저마다 살림살이를 알차고 넉넉하게 누릴 수 있도록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지낸다. 그나저나 천사는 무엇을 먹을까? 《천사는 어떻게 키워요?》를 읽으면, 천사는 ‘이야기’를 먹고 산단다. 남을 해코지하는 이야기라든지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본 이야기는 안 먹고, 스스로 사랑스레 살아가며 누리는 수수한 이야기를 먹고 산단다. 싸우거나 다투는 이야기는 안 먹고, 즐겁게 노래하며 일하거나 노는 이야기를 먹고 산단다. 고운 이야기를 먹으며 살아가는 천사가 눈 똥은 하늘로 올라가서 별똥이 된단다. 날마다 이야기를 푸짐하게 먹으며 살아가는 천사이고, 언제나 이야기를 길어올리면서 즐거운 우리 삶이란다. 4347.2.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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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어떻게 키워요?
나카가와 치히로 지음, 홍성민 옮김 / 동쪽나라(=한민사) / 2005년 7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2014년 02월 2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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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또 어디서 왔니

 


  마을을 떠돌던 개가 우리 집에 눌러앉은 지 스무 날이 된다. 아침에 밥을 끓이며 부엌문을 여니, 낯선 개 한 마리가 우리 집 마당에서 킁킁거리며 돌아다닌다. “너는 또 어디서 왔니?”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방문이 벌컥 열린다. 큰아이가 부엌으로 쪼르르 달려온다. 부엌문으로 빼꼼히 내다본다. “아이, 멍멍이 예뻐.” 얘, 얘, 예뻐 하는 일은 좋은데 말이야, 엊저녁에 멍멍이 밥을 주니 마을 고양이들이 ‘왜 우리한테는 밥을 안 주고 쟤한테는 밥을 줘?’ 하면서 한참을 울더라. 이 녀석은 아예 목줄이 있는 채 우리 집으로 깃드는데, 참말 이 개들은 다 어디에서 살다가 우리 집으로 올까? 이러다가 온 마을 온 고장 떠돌이들이 죄 우리 집으로 찾아오려나? 들개라면 스스로 먹이를 찾을 테지만 집개는 스스로 먹이를 찾지 못하니 한동안 밥을 챙겨야 할 텐데, 앞으로 살림돈 넉넉하게 잘 벌어야겠구나. 4347.2.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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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679) 힐링(healing)

 

평일이라 기사 포함해서 승객이 예닐곱 명 정도로 한적했어. 그때 남편에게서 문자가 온 거야. “힐링 잘하고 와.”
《하이힐과 고무장갑-행복의 민낯》(샨티,2013) 68쪽

 

 힐링 잘하고 와
→ 잘 쉬고 와
→ 잘 있다 와
→ 잘 지내다 와
→ 마음 잘 다스리고 와
 …

 


  한자말 ‘치유(治癒)’는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함”을 뜻합니다. ‘치료(治療)’라는 한자말은 “병이나 상처 따위를 잘 다스려 낫게 함”을 뜻합니다. 예전에 한동안 ‘치유’라는 한자말이 널리 쓰였는데, 어느 때부터 ‘힐링(healing)’이라는 영어가 나타나서 쓰입니다. 영어 ‘힐링’은 “(몸이나 마음의) 치유”를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한자말 ‘치유·치료’를 쓰든 영어 ‘힐링’을 쓰든, 한국말로는 ‘낫게 하다’나 ‘다스리다’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힐링을 한다’나 ‘치유한다’는 모두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나타냅니다. ‘마음닦기’요 ‘마음씻기’이고 ‘마음 다스리기’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한국말로 쉽게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한자말이 사회에 떠돌 적에는 한자말을 쓰고 영어가 사회에 떠돌 때에는 영어를 써요.


  쉽고 또렷한 한국말로는 생각을 나타내거나 마음을 이야기하기 어려울까 궁금합니다. 외국사람이 한국사람을 보면서 ‘힐링’을 한국말로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고 묻는다면 무어라 대꾸할 만할까 궁금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이런 한자말이나 저런 영어가 떠돌기 앞서, 누구나 “바다에 가서 좀 쉬려고 해.”라든지 “산을 오르면서 마음을 쉰다.”고 흔히 말했습니다. 눈을 쉬고 몸을 쉬며 마음을 쉬면서 살던 우리 겨레입니다. 느긋하게 쉬면서 기운을 차립니다. 조용히 쉬면서 힘을 되찾습니다. 마음을 달래고 다독이며 다스립니다. 4347.2.27.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여느 날이라 기사까지 해서 손님이 예닐곱 사람쯤으로 조용했어. 그때 남편한테서 쪽글이 왔어. “잘 쉬고 와.” 

 

‘평일(平日)’은 ‘여느 날’을 한자말로 옮긴 낱말입니다. “기사 포함(包含)해서”는 “기사까지 해서”로 손보고, ‘승객(乘客)’은 ‘손님’으로 손봅니다. “예닐곱 명(名) 정도(程度)로 한적(閑寂)했어”는 “예닐곱 사람쯤 한갓졌어”나 “예닐곱 사람밖에 안 될 만큼 조용했어”로 손질합니다. ‘문자(文字)’는 그대로 써도 될 테지만 ‘쪽글’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온 거야”는 “왔어”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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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36. 겨울 지나 봄 언저리 2014.2.26.

 


  들이 짙푸를 적에는 온갖 소리로 복닥복닥하다. 들에서 푸른 빛이 사라지고 싯누럴 적에는 바람소리를 빼고는 고요하다. 겨울이 길었을까. 겨울은 짧게 스치듯이 지나갈까. 빈들에 푸릇푸릇 새싹이 돋고, 싯누렇게 시든 풀잎 사이로 파릇파릇 새잎이 자란다. 싯누런 풀잎에 불을 놓아 태울 수 있지만, 따로 태우지 않아도 싯누런 풀잎은 스스로 사라진다. 따스한 볕살이 차츰 길어진다. 봄을 재촉하는 겨울비로 마을이 옴팡 젖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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