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할머니 박정희 님이 이녁 아이들을 보살피던 때에 손수 이야기를 지어 그림을 붙인 《깨끗한 손》이 새롭게 나왔다. 새롭게 나온 책에는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 그림이 아닌 젊은 그림작가가 그림을 그려 넣는다. 아무래도 쉰 해 가까이 묵은 오래된 수채그림을 요즈음 그림책에는 쓰기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쉰 해 즈음 묵은 수채그림을 고스란히 살려서 선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그림을 못 살릴 까닭은 없지 않을까. 새로 선보이는 그림을 곰곰이 들여다본다. 스물아홉 살 젊은이가 그린 그림이 담긴 《깨끗한 손》을 살펴본다. 이 그림책에서는 무엇보다 손과 얼굴을 알맞게 그려야 한다. 하루 내내 바깥에서 개구지게 놀면서 까무잡잡한 살결에 땟국이 흐르는 얼굴과 손을 얼마나 알맞게 그렸는지 차근차근 들여다본다. 박정희 님은 “깨끗한 손”을 그렸고, 무돌 님은 “너무 깨끗한 손”을 그렸다. 박정희 님은 “개구쟁이 아이 얼굴과 손”을 그렸고, 무돌 님은 “이쁘장한 아이 얼굴과 손”을 그렸다.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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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손- 사랑, 성실
박정희 지음, 무돌 그림 / 노란돼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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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사진 찍기

 


  여권을 만들기로 한다. 여권사진을 찍는다. 읍내로 아이들을 데리고 마실을 간다. 딱히 읍내에 갈 일은 없으나 면소재지에서는 사진을 못 찍기도 하고, 면소재지에 사진관이 있더라도 군청까지 가야 하니 읍내마실을 한다.


  여권사진을 찍자니 넥타이를 매고 양복 웃도리를 걸쳐야 한단다. 법으로 이렇게 못박았는지 모르겠으나, 한국사람이면 치마저고리나 바지저고리 차림이어야 걸맞지 않을까? 집에 양복 한 벌 없는 사람을 헤아리는 사진관에는 양복 웃도리가 있다.


  여권사진을 찍는데 머리를 감고 갈까 말까 생각해 보다가, 머리 감을 겨를에 다른 일을 하자 생각하며 부스스한 채 나갔다. 내 사진이 아닌 아이들 사진을 찍으려 했다면 아이들을 씻기고 새옷 입히고 했을까. 머리도 안 감고 옷도 여느 때에 입던 차림 그대로 갔다. 여느 때처럼 맨발에 고무신을 꿰고 읍내마실을 나갔다. 시골사람이니까.


  아마 이달에 외국으로 취재여행을 가야 할 텐데, 그때에도 내 차림새는 맨발 고무신이 되리라 생각한다. 방송사에서 이 꼴을 보기 싫다면 양말과 가죽신을 협찬받아서 억지로 나한테 신길는지 모른다. 그러면 나는 고무신을 가방에 챙겨서, 방송사 촬영기가 사라진 자리에서는 슬그머니 양말과 가죽신을 벗고는 고무신을 꿰어야지. 취재여행이 끝나면? 글쎄, 나로서는 가죽신도 등산신도 운동신도 꿸 일이 없으니 어디 누구한테 주면 좋겠는데.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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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14. 2014.3.2. 네 손이 닿는 자리

 


  아이들은 자란다. 아이들은 마음과 몸이 나란히 자란다. 어른들도 자란다. 어른들도 마음과 몸이 함께 자란다. 어른은 키가 더 자라지는 않으나 몸 곳곳이 알맞고 고르게 자란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스스로 겪고 치르는 삶에 따라 힘살이 새롭게 붙으며 눈길이 새롭게 빛난다. 네 살 산들보라야, 네 손은 어디까지 닿니? 네 손은 어디에 있는 책까지 건드릴 수 있니? 앞으로 네가 만지면서 사랑할 책들은 어디만큼 있을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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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 내 책을 소개한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2006년 <헌책방에서 보낸 1년> 뒤로 처음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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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11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21 

 


눈에 보이는 사랑과
― 경계의 린네 11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11.25.

 


  밤이 깊을수록 별빛이 밝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조용합니다. 밤이 깊을수록 느긋하게 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골집 아닌 도시에서는 밤이 깊어도 별빛을 누리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깊은 밤에도 별빛을 그리지 않으며 달빛을 쬐지 않습니다. 아니, 도시라고 하는 곳에서는 달도 별도 해도 헤아리지 않는 얼거리이니, 모두들 쳇바퀴를 도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밤이 깊어도 시끄러운 곳에서는 별이 뜨지 않습니다. 밤이 깊어도 자동차가 끊이지 않는 데에서는 별빛이 드리우지 않습니다. 하늘이 뿌옇더라도 별은 늘 하늘에 있지만, 별바라기를 하지 않는 삶터는 별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마음에 별이 없으니 하늘에도 별이 없습니다.


- “영이 보이지 않게 해 주는 사탕?” “줄게.” “저한테요?” “저승의 증정용 샘플인데 놀랍게도 공짜라는군.” (9쪽)
- “괜찮아, 마미야?” “응? 혹시, 뭔가 있었던 거야?” ‘평범하다는 건 정말 좋아!’ (29쪽)

 


  눈에 보이는 사랑이기에 사랑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기에 사랑입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랑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봄날 피어나는 조그마한 봄꽃은 사랑입니다. 봄날 피어나려고 겨우내 흙 품에 안겨 포근한 볕을 기다린 풀씨는 사랑입니다. 잎사귀를 갉아먹으며 고치를 짓고 마지막 잠을 자는 애벌레도 사랑입니다. 나비로 깨어나 훨훨 날갯짓하는 숨결도 사랑입니다.


  누군가는 애벌레와 고치와 나비를 모두 바라봅니다. 누군가는 애벌레도 고치도 나비도 바라보지 못합니다. 시멘트와 쇠붙이로 높다라니 세운 층집에서 승강기로 오르내리고는 지하주차장에 세운 자가용을 끌고 또다른 높다란 층집 지하주차장에 자가용을 세운 다음 한낮에도 전깃불을 켜는 데에서 밤늦게까지 책상맡에 앉는다면, 애벌레도 고치도 나비도 볼 수 없어요. 지하상가가 일터라면, 공장이 일터라면, 회사가 일터라면, 어느 누구라도 애벌레와 고치와 나비를 볼 수 없습니다.


  들에서 일하고 들에서 살며 들에서 살림을 가꾸는 사람들이 애벌레와 고치와 나비를 봐요. 들바람을 마시고 들볕을 쬐며 들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애벌레와 고치와 나비를 봅니다.


- ‘어?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로쿠도가 안 보이네. 많이 바끈가.’ (황천의 하오리를 입고 영체화한 린네는 지금 사쿠라에게 보이지 않는다) ‘후. 안됐구나, 로쿠도. 몸이 부서져라 마미야를 악령으로부터 지켜 봤자, 마미야는 아무것도 모를 텐데. 그야말로 보답 없는 노력이군.’ (33∼34쪽)
-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무슨 일인가 일어나는 것 같아.’ (40쪽)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3) 열한째 권을 읽습니다. 주인공 둘 가운데 하나인 ‘마미야 사쿠라’라는 아이한테 ‘저승나라에 있는 어느 할머니’가 사탕을 선물로 줍니다. 저승나라에서 저승사람과 저승으로 오는 넋을 다스리는 할머니가 이승에 있는 아이한테 준 사탕은 ‘죽은 넋’이 안 보이도록 하는 사탕입니다. 이승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어릴 적 어떤 일을 겪은 뒤부터 ‘죽은 넋’을 봐요. 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늘 보아야 하니 고단하며 힘들었는데, 저승나라 할머니가 준 사탕을 먹고는 ‘죽은 넋’이 하나도 안 보이니 ‘수수한 동무와 이웃’처럼 까르르 웃고 노는 조용한 나날을 누립니다.


- “사쿠라 아씨를 악령으로부터 지키려고 이렇게 애썼는데.” “아, 그렇지. 사쿠라는 전혀 못 보는구나. 하긴 허무하겠다.” “그러게요.” “후. 나는 사신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뿐이야. 누가 보든 안 보든 상관없어.” (49∼50쪽)
- “아, 그렇지, 이거. 영이 안 보이게 해 주는 사탕. 타마코 씨가 많이 주셨는데, 돌려 드릴래? 필요없으니까.” (61쪽)


  만화책에 나오는 주인공 아이는 ‘죽은 넋’을 보지 않을 수 있으면서 마음 한켠이 홀가분합니다. 그리고, 마음 한켠이 살짝 쓸쓸합니다. 늘 단짝 동무가 되는 아이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짝 동무가 되는 ‘린네’라고 하는 아이는 ‘죽은 뒤 저승으로 떠나지 않는 넋을 붙잡아 저승으로 보내는 일’을 해요. 그러니, 죽은 넋을 볼 수 없다면, 죽은 넋을 붙잡아 저승으로 보내는 일을 하는 단짝 동무도 볼 수 없어요.


  한동안 조용하고 느긋하게 지내던 주인공 아이는 저승나라 할머니가 준 사탕꾸러미를 돌려주기로 합니다. 죽은 넋을 보아야 하는 삶은 여느 수수한 동무나 이웃하고는 멀어지는 나날이지만, 굳이 다른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아이한테 어떤 삶이 즐겁고, 이 아이한테 어떤 삶이 사랑스러우며, 이 아이한테 어떤 삶이 보람이 있는가를 곱씹습니다.

 


- “한여름 내내 먹을 수박을 얻었어.” “사흘 안에 다 먹어치워야 할 텐데요. 우린 냉장고도 없으니.” (190쪽)


  깊은 밤에 별빛을 누립니다. 깊은 밤에 자꾸자꾸 잠에서 깨면서 두 아이 이불깃을 여미다가 아이들 밤오줌을 누이고 난 뒤 마당으로 내려와 밤별을 올려다봅니다. 아이들이 갓 잠든 저녁에도 별빛은 눈부시고, 아이들이 깊이 잠든 한밤에도 별빛은 초롱초롱합니다.


  이 많은 별을 함께 누리는 이웃이 있습니다. 이 많은 별이 있는 줄 모르는 이웃이 있습니다. 밤별을 알고 누려도 이웃이요, 밤별을 모르고 못 누려도 이웃입니다. 별은 눈으로도 보지만 마음으로도 봅니다. 사랑은 눈으로도 바라보며 느끼지만, 눈을 감고도 따사롭게 느낍니다. 봄으로 접어든 요즈막이지만 방바닥이 차갑다 싶어 불을 넣습니다. 새근새근 꿈나라 누비는 아이들 숨소리를 듣습니다.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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