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525) 안 1 : 기차 안에서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꼬박 새운 다음 맞이하는 아침은 그 시작의 빛을 아주 선명하게 드러낸다

《서갑숙-추파》(디어북,2003) 13쪽


 기차 안에서 꼬박 새운 다음

→ 기차에서 꼬박 새운 다음



  ‘기찻간’이라 말하는 분도 있어요. 이렇게 써도 됩니다. ‘기차 안’은 아니에요. ‘비행기 안에서’나 ‘배 안에서’나 ‘버스 안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비행기에서’와 ‘배에서’와 ‘버스에서’로 바로잡아야 알맞아요. 우리는 “기차를 탄다”고 하지 “기차 안에 탄다”고 하지 않아요. “버스에서 내린다”고 말하지 “버스 안에서 내린다”고 하지 않습니다. 4339.3.23.나무/4347.5.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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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기차에서 꼬박 새운 다음 맞이하는 아침은 그 첫 빛을 아주 또렷하게 드러낸다


“시작(始作)의 빛”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밤을 새우고 맞이하는 아침에 보는 빛이니 “첫 빛”이라고 하면 될까요. “하루를 여는 빛”이라고 하면 될까요.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09) 안 2 : 이른 시일 안에


이라크 사태가 이른 시일 안에 수습되기를 바랄 뿐이다

《중앙일보 어문연구소-한국어가 있다 1》(커뮤니케이션북스,2005) 21쪽


 이른 시일 안에

→ 하루 빨리

→ 머잖아

→ 어서

→ 곧

 …



  이 보기글을 쓴 분은, “빠른 시일”이 아니라 “이른 시일”로 써야 알맞다고 이야기합니다. 맞습니다. ‘빠르다’와 ‘이르다’는 올바르게 갈라 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두 낱말은 써야 할 자리에 올바르게 쓰고 알맞게 써야지, 굳이 안 써도 될 곳에까지 써야 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날이나 때를 놓고 “이른 때”나 “이른 날”로 적어야 올바르지만, “이른 시일 안”이나 “이른 때 안”이나 “이른 날 안”처럼 적으면 올바르지 않습니다.


  “오늘 안에 끝내라”나 “올해 안에 마칩니다” 같은 말투도 올바르지 않아요. “오늘까지 끝내라”나 “올해에 마칩니다”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어제 안에 끝냈어야 할 일”이 아니라 “어제까지 끝냈어야 할 일”입니다. “일 주일 안에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일 주일 동안 할 수 있다”나 “일 주일이면 할 수 있다”예요. 4339.8.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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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사태가 하루 빨리 제자리를 찾기를 바랄 뿐이다


‘시일(時日)’은 ‘날’이나 ‘때’를 뜻합니다. ‘수습(收拾)’은 “거두어 정돈함”이나 “어수선한 사태를 거두어 바로잡음”을 뜻합니다. “수습되기를 바랄”은 “제자리를 찾기를 바랄”이나 “바로잡히기를 바랄”로 손볼 수 있습니다. “옛모습을 되찾기를 바랄”로 손보아도 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36) 안 3 : 조선 안에서


일본군도 출병하여 7월 말 청·일 양군은 조선 안에서 교전상태에 들어갔고

《정일성-후쿠자와 유키치》(지식산업사,2001) 55쪽


 조선 안에서 교전상태에 들어갔고

→ 조선에서 싸움을 벌였고

→ 조선에서 싸웠고

→ 조선 땅에서 싸웠고

 …



  한국과 중국이 축구 경기를 합니다. 그런데 두 나라는 한국과 중국이 아닌 일본에서 경기를 치릅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이때 어느 곳에서 경기를 치른다고 말할까요? “일본에서 경기를 치른다”고 하지요? “일본 안에서 경기를 치른다”고 말하지 않아요. 지난날 청나라와 일본 두 나라가 싸움을 벌였을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 “조선 안에서”가 아니라 “조선에서”나 “조선 땅에서”라 해야 알맞아요. 서양말에서는 ‘in’을 꼭 붙이겠지만, 한국말에서는 ‘안’을 붙이지 않습니다. 4339.10.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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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군대를 보내 7월 끝무렵 청·일 두 나라는 조선에서 서로 싸웠고


‘출병(出兵)하여’는 ‘군대를 보내’로 다듬고, ‘양군(兩軍)’은 ‘두 나라’로 다듬습니다. “교전(交戰) 상태에 들어갔고”에서 ‘교전’은 “서로 싸우는 일”을 뜻해요. 그러니까 “청·일 두 나라는 서로 싸웠고”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971) 안 4 : 방 안


우리 집 고양이는 / 따듯한 방 안에서 / 알약처럼 동그란 / 사료를 먹지

《김환영-깜장꽃》(창비,2010) 68쪽


 따듯한 방 안에서

→ 따듯한 방에서



  아이들이 뛰놉니다. 마당에서 뛰놀지 않고 방에서 뛰놉니다.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우리 예쁜 아이들아, 방에서 뛰놀지 말고 마당에서 뛰놀렴.” 따스한 봄날 마당에 밥상을 내놓고 밥을 먹곤 합니다. 부엌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마루에서 밥을 먹기도 합니다. 부엌과 마루는 집 안쪽에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부엌 안에서 밥을 먹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루 안에서 밥을 먹는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뒷간에 가서 오줌이나 똥을 눕니다. “뒷간에서 똥을 누”지 “뒷간 안에서 똥을 누”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따듯한 방에서 사료를 먹”습니다. 4347.5.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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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어떤 소리를 듣는가



  사월에 개구리 소리를 듣습니다. 사월이니 마땅히 개구리 소리를 듣습니다. 개구리는 삼월부터 깨어나는데, 삼월에는 드문드문 개구리 소리를 듣고, 사월이 되면서 비로소 소리가 늘며, 사월 끝무렵에는 소리잔치가 이루어집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개구리 소리입니다. 햇살이 환하게 비추는 아침부터 한낮 사이에는 개구리 소리가 살짝 잦아듭니다. 해가 기우는 저녁부터 개구리 소리는 커다란 소리물결이 됩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에서 살기에 개구리 소리를 듣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분들은 사월에 개구리 소리를 못 들을 수 있습니다. 오월이 되거나 유월이 되어도 도시에서는 개구리 소리는커녕 개구리 뒷다리조차 구경을 못할 수 있어요.


  톰 새디악 님이 쓴 《두려움과의 대화》(샨티,2014)라는 책을 읽습니다. 톰 새디악 님은 미국에서 돈과 이름을 무척 크게 거머쥔 영화감독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돈도 이름도 내려놓으면서 새로운 두 가지를 어루만지려고 한다고 해요.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전용헬기까지 타고 다니던 영화감독이 돈과 이름을 살포시 내려놓고는 다른 길을 걷도록 할까요?


  톰 새디악 님은 이녁이 쓴 책에서 “역사상 인간이 오늘날처럼 많은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살던 시대는 없었다. 단추 하나만 누르면 그 즉시 우리 컴퓨터의 스크린이나 텔레비전 수상기, 심지어 휴대폰에까지 전 세계로부터 이미지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에 딸려온 메시지들은 우리가 주목해 주기를 간청하고 … 가짜로 살 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인생의 저자가 될 수 없다(55∼56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분이 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아주 마땅한 모습입니다. 무슨 일이 터졌다 하면 신문이고 방송이고 인터넷이고 온통 그 이야기만 가득합니다. 우리들은 날마다 일어나고 먹고 자고 아이들과 복닥이면서 지내는데, 어느 일 하나가 터지면 이 모두를 까맣게 잊고 ‘커다란 일’ 하나에만 매달려야 하는 듯이 내모는 사회 얼거리입니다.


  사월에 개구리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합니다. 사월은 씨앗을 심는 달입니다. 아무리 슬프거나 아픈 일이 있어도 사월은 씨앗을 심는 달입니다. 전쟁이 터지건 불이 나건 사월은 씨앗을 심는 달입니다.


  삼월부터 풀이 돋고 꽃이 피듯이, 사월에는 사람들이 한 해 동안 먹을 곡식과 열매를 얻고자 씨앗을 심습니다. 슬플 때에는 슬피 울면서 씨앗을 심어요. 기쁠 때에는 기쁘게 웃으면서 씨앗을 심어요. 사월에 손을 놓지 못합니다. 오월에도 손을 놓지 못합니다. 오월에는 오월대로 우리를 기다리는 들빛이 있습니다. 유월에는 유월대로 우리 손길을 바라는 들바람이 있습니다. 칠월에는 칠월대로 우리 손품을 누리고 싶은 들내음이 있어요.


  그런데, 사월 어느 날,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가라앉았어요. 배가 가라앉으면서 선장과 승무원 여럿이 몰래 빠져나왔어요. 배에 탄 수백 아이와 어른을 그대로 둔 채 선장과 승무원 여럿은 제 몸만 건사했어요. 바닷속에 잠긴 수많은 사람들 주검은 아직 건지지 못해요. 바닷속에서 슬픈 소리가 울려요. 배가 가라앉으면서 배에 탄 사람들 슬픈 소리가 퍼져요. 그렇지만, 이 슬픈 소리에 귀를 닫은 어른들이 많아요.


  톰 새디악 님은 “성장의 신은 행복, 삶의 질, 만족, 성취감, 삶의 의미 혹은 목적 지수 같은 것은 측정하지 않고 단지 하나 ‘수익’만 측정하고 따진다. 수익이 높으면 경제는 잘 굴러가는 것이고, 수익이 낮으면 배가 침몰중이니 바로잡아야 한다. 수익이란 물론 돈을 뜻한다 … 삶이라는 더 큰 장부에서 보면 화학물질에 노출돼 더 이상 곡식을 수확할 수 없는 땅과 진폐증으로 가장을 잃은 가족이 곧 고통스러운 진짜 손실로 기록된다(132, 13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바닷속에 가라앉아 목숨을 잃는 사람이 이백을 넘고 삼백에 이르려 합니다. 너무 끔찍합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 목숨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이 끔찍합니다. 왜 이 목숨은 바닷속에 잠겨야 할까요. 왜 이 목숨은 안타깝고 애틋하게 떠나야 할까요.


  이백 사람이 죽기에 스무 사람이 죽을 때보다 더 슬프지 않습니다. 스무 사람이 죽기에 두 사람이 죽을 때보다 더 슬프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죽기에 두 사람이 다칠 때보다 더 슬프지 않습니다. 죽어도 슬프고 다쳐도 슬픕니다. 삶과 죽음은 숫자로 따질 수 없습니다. 수백 사람이 죽기 앞서 여러 사람이 죽거나 다쳤을 적부터 제대로 살폈어야 할 일입니다. 여러 사람이 죽거나 다치기 앞서 처음부터 올바로 살폈어야 할 일입니다.


  배가 왜 가라앉았을까요? 돈 때문입니다. 배가 가라앉은 뒤에도 터무니없는 일이 왜 곳곳에서 불거질까요? 돈 때문입니다. 밑뿌리를 살피면 모두 돈 때문입니다. 어른들 스스로 이 사회를 돈으로 굴러가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돈에 미친 사회’에 내몰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바닷속에 잠겨 죽고 맙니다. 그리고, 바닷속에 아니더라도 입시지옥에서 죽습니다. 해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아주 많습니다. 입시지옥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백 수천 아이들 이야기는 신문에도 방송에도 인터넷에도 뜨지 않습니다. 자동차에 치여 죽는 아이들도 아주 많은데, 이 아이들 이야기 또한 언론에 나오지 않습니다.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가라앉은 배에서 죽은 아이보다 입시지옥 때문에 괴로운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가 훨씬 많습니다.


  ‘더 많은 아이가 죽었’으니 그 일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렇게도 많은 아이가 사고로 죽고 입시지옥 때문에 죽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돈바라기’입니다. 돈이 아니면 안 되는 사회 얼거리입니다. 대통령이 ‘재난관리국’을 만들라느니 더 힘을 실으라느니 한다고 해서 아이가 안 죽을 일이 없습니다. 괜스런 공무원이 더 늘어나고 공문서만 더 생길 테지요. 사회를 고치고 교육을 뜯어고치며 문화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입시지옥으로 치닫는 학교교육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가꾸는 배움터가 되어야 합니다. 돈으로 계급과 신분을 가르는 사회와 정치와 경제가 아니라,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품앗이와 두레로 즐거운 마을살이로 거듭나야 합니다. 《두려움과의 대화》라는 책을 쓴 갑부 영화감독이던 톰 새디악 님은 돈과 이름을 내려놓고 ‘사랑’과 ‘꿈’ 두 가지를 찾으려 한다고 밝힙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사랑과 꿈으로 살아갈 때에 아름답습니다. 돈과 이름이 춤추는 사회는 그악스럽습니다. 마음을 살찌우고 빛낼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때에 삶이 즐겁습니다. 4347.5.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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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1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01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복놀이 2 - 한복 갖춰 입고 마당에서



  날이 따스한데 긴소매에 긴치마인 한복을 입겠단다. 옷장에서 꺼내어 건네니 혼자서 척척 갈아입고는 마당으로 나간다. 쑥이 곱게 돋은 옆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한다. 마당에서 돌아다니는 품을 보니 맨발이다. 꽃처럼 환하면서 빛나는 옷을 입고 봄풀과 봄꽃 사이에 있고 싶었니? 그러면 그렇게 더 놀아라. 괜찮아. 4347.5.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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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5-01 15:05   좋아요 0 | URL
한복입은 샤름벼리 너무 예쁩니다!!!^^

숲노래 2014-05-01 17:20   좋아요 0 | URL
후애 님도 치마저고리 갖춰 입고 마실 다니시면
무척 곱겠지요.
모두들 예쁜 옷을 입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은데
요즈음은 이런 예쁜 옷을 입고 다니는 분을 찾아보기
참 힘들어요..
 

사름벼리는 널판놀이 하지



  어릴 적부터 아버지 곁에서 이것저것 짐을 들거나 나르며 놀았기 때문일까. 그러나 일곱 살쯤 되면 다른 아이들도 꽤 무겁다 싶은 짐을 잘 들거나 나를 만하리라 느낀다. 사름벼리는 마당에서 혼자 놀더라도 이것저것 놀이를 만든다. 집 오른켠에 둔 널판을 평상에 척 걸쳐서 낭창낭창 거니는 놀이를 즐긴다. 워낙 튼튼한 널이다 보니 아이가 널판에서 통통 뛰어도 휘거나 부러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언제나 문득문득 깨닫거나 깨치면서 날마다 새롭게 자라지 싶다. 4347.5.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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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피는 꽃 (사진책도서관 2014.4.3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책을 알뜰히 간수하면, 책을 읽는 사람들 마음에 이야기꽃이 핀다. 책을 사랑스레 돌보면, 책을 손에 쥐는 사람들 넋에 사랑꽃이 핀다. 책을 곱게 보듬으면, 책을 나누는 사람들 가슴에 웃음꽃이 핀다.


  책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 책에 곰팡이꽃이 핀다. 책을 사랑스레 읽지 못하거나 곱게 다루지 못하면, 책을 수천 수만 수십만 권 거느린다 하더라도 마음자락에 노래꽃이 피지 못한다.


  꽃을 피우려고 읽는 책이라고 느낀다. 이야기꽃도 사랑꽃도 웃음꽃도 피우고 싶기에 읽는 책이라고 느낀다. 꽃을 피우려는 뜻으로 꾸리는 도서관이라고 느낀다. 곰팡이꽃이 아니라 노래꽃을 피우고 삶꽃과 꿈꽃을 일구려는 넋으로 도서관을 연다고 느낀다.


  빗물이 우리 도서관 바닥으로 스며서 책꽂이 한쪽이 물에 잠긴 모습을 보았으면서, 나무 책꽂이 바닥을 타고 빗물이 올라가리라 생각하지 못한 채 한참 지냈다. 이제서야 알아챘다. 어쩔끄나. 한 번 곰팡이꽃 핀 책은 돌이키지 못한다. 어쩔끄나. 한 번 들러붙은 책은 되돌리지 못한다.


  작은아이가 아버지더러 밀걸레를 달라고 자꾸 부른다. 저도 밀걸레질 하고 싶단다. 한숨을 폭폭 쉬다가 웃는 얼굴을 쳐다보고는 밀걸레자루를 건넨다. 네 살 작은아이는 밀걸레가 무거워 낑낑거린다. 밀지는 못하고 끈다. 머리 좋네. 작은아이는 콩콩 걸어가면서 밀걸레를 끌고, 밀걸레를 끌면서 골마루에 물자국이 남는다.


  빗물을 다 치운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작은아이가 자물쇠를 걸겠다고 한다. 손이 야무지다. 개구진 몸짓으로 잘 논다. 멋진 아이이다. 이 아이는 어떤 넋을 타고 이곳에 태어나 우리 집 아이로 살아갈까. 아이한테는 아직 책이 대수롭지 않다. 앞으로도 아이한테는 책이 대단할 일이 없을 수 있다. 비에 젖은 채 오래도록 그대로 있느라 곰팡이꽃이 핀 책도 대수롭거나 대단할 일이 없다 할 만하다. 다음부터 더 잘 살피고 다스려야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딸기밭을 살핀다. 꽃은 거의 다 졌다. 새로 꽃이 피기도 한다. 얼마쯤 있으면 하얗게 굵다가 빨갛게 익는 딸기알을 볼 수 있을까.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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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minee 2014-05-02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가끔 와서 글을 보는 애독자입니다.
아끼시는 책들에 곰팡이가 펴서 속상하시겠군요.
나무 책꽂이라서 곰팡이가 계속 필것 같네요.
저희집도 습해서 한동안 장롱에 곰팡이가 피길래
안쪽에만 비닐시트지를 붙였더니
더이상 곰팡이가 피지 않았답니다.


숲노래 2014-05-02 06:03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그러나 비닐시트는 땜질이 될밖에 없고, 도서관 그 자리는 빗물이 벽을 타고 들어오는 데라서, 어찌할 수 없기도 해요. 햇볕에 오래오래 잘 말려야지요.

집안이 축축하면 옷에도 곰팡이 기운이 퍼질 텐데, 13minee 님 옷들을 볕 좋은 날 보송보송 햇볕에 말리면서 건사하실 수 있기를 빌어요. 그나저나 옷장에 피는 곰팡이는 참 걱정스럽네요. 옷장을 들어서 바깥에 말리기도 쉽지 않고요 @.@

아무튼~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