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16] 동글말이빵



  이제는 잘 먹지만, 나는 어릴 적에 ‘케익’을 못 먹었습니다. 크림이 들어간 것을 먹으면 흔히 게웠어요. 너무 단 것은 입에도 속에도 안 받았습니다. 그래도 ‘롤(roll)빵’은 입이나 속에 받아서, 생일케익으로 으레 롤빵을 먹었습니다. 어린 날부터 ‘롤빵’이라는 말을 그냥 쓰면서 살았어요. 둘레에서 다들 이렇게 말하니 이렇구나 하고 여겼습니다. 이제 나는 두 아이하고 삽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처음 보는 것이 있으면 언제나 이름을 물어요. “이게 뭐야?” “이건 뭐야?” “얘는 이름이 뭐야?”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그동안 나한테 익숙하거나 사람들이 흔히 가리키는 이름을 알려주려고 하는 마음이 들다가 살짝 멈춥니다. 내가 아이한테 문득 뱉는 말마디는 아이 마음속에 ‘생각하는 힘’을 누르지 않나 하고 돌아봅니다. “얘는 이름이 뭘까?” “이것은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하고 다시 아이한테 물은 뒤, 아이가 먼저 어떤 이름 한 가지를 내놓으면, “그래 그 이름이 괜찮구나. 그러면 우리 그 이름으로 말하자.” 하고 대꾸하거나 “응, 이 아이는 이런 이름이라고 해.” 하고 붙입니다. 아이들 이모한테서 선물받은 ‘롤빵’을 아이들한테 한 조각 잘라서 주다가 이 빵에 사람들이 붙인 이름을 우리 아이들한테 그대로 물려주어도 될까 하고 생각하니, 문득 ‘동글말이빵(둥글말이빵)’이나 ‘동글빵(둥글빵)’이라는 이름이 떠오릅니다. ‘동글려서 빚는 빵’이거나 ‘둥글려서 빚는 빵’이기에 ‘동글말이’나 ‘둥글말이’라고 하면 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4348.2.15.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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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어른



  나이를 더 먹기에 어른이지 않다. 이는 아주 마땅하다. 나이가 많으면 그저 나이가 많을 뿐이다. 내가 너보다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내가 너한테 높임말을 받아야 하지 않다. 이와 마찬가지이다. 네가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내가 너한테 높임말을 써야 하지 않다. 고작 나이값 하나를 놓고 누가 누구를 높이거나 섬기거나 모셔야 하지 않다. 사람다운 사람일 때에 서로 사랑스러운 자리에 함께 있다. 아름다운 사람일 때에 서로 어깨동무를 한다. 착하고 참다우면서 기쁜 사람일 때에 서로 믿고 헤아리면서 손을 맞잡는다.


  높임말은 누가 누구한테 쓰는가? 서로 아끼면서 기댈 삶벗한테 쓰는 말이 높임말이다.


  나이를 어느 만큼 먹어서 몸이 자라면 사내와 가시내는 살곶이를 할 만하고, 살곶이를 하고 나면 씨앗과 씨앗이 만나서 아기를 낳을 수 있다. 아기를 낳기에 ‘어른’이지 않다. 아기를 낳는 몸뚱이인 나이만 먹었대서 어른이라고 하지 않는다. ‘철’이 든 사람만 어른이다.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은 ‘빈 허물로 어른 모습’을 할 뿐이다.


  나이를 먹은 몸일 뿐, 누구나 아이와 어른이라는 두 모습이 함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이도 어른을 생채기 입힐 수 있고, 어른도 아이를 생채기 입힐 수 있다. 이를 제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제대로 바라본 다음에는 깨끗이 잊고, 새로운 사랑으로 가면 된다. 섣불리 나를 ‘높이려’ 하지 말자. ‘어른’이라는 말은 내가 나한테 쓰는 말이 아니다. 나는 내가 ‘철’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를 살펴서 말할 뿐이다. 철이 아직 안 들었으면,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철부지이거나 응석받이이다. 철이 들었으면, 나이가 아무리 적어도 ‘사람’이다. 4348.2.15.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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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 창비시선 118
김경희 지음 / 창비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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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8



시와 바람결

― 작은 새

 김경희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4.3.30.



  따스한 바람으로 바뀌는 겨울 끝자락에는 모두 따스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아직 바람이 쌀쌀하다고 하더라도 참으로 포근하네 하고 생각이 바뀝니다. 이제는 차갑거나 시린 바람은 더 없으리라 느끼거든요.


  차가운 바람으로 바뀌는 가을 끝자락에는 모두 차갑구나 하고 느낍니다. 아직 바람이 따뜻하다고 하더라도 참으로 차갑네 하고 생각이 바뀝니다. 이제 한동안 차갑거나 시린 바람이 오겠구나 하고 느끼거든요.



.. 매양 탐나는 것은 / 만 톤의 물과 비누라서 // 빨래 솜씨 유명한 / 저 처녀 ..  (백합표)



  겨울에는 빨래를 하면 손이 얼어붙습니다. 여름에는 빨래를 하면 손이 시원합니다. 겨울에는 자전거를 타면 낯이 얼어붙습니다. 여름에는 자전거를 타면 땀이 주르르 흐르는 볼이 시원합니다. 추운 날이기에 겨울이고 더운 날이기에 여름입니다. 겨울에 불기에 겨울바람이고, 여름에 불기에 여름바람입니다. 겨울에는 여름이 그리울 만하고, 여름에는 겨울이 그리울 만합니다. 이리하여,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알맞게 흐릅니다. 따스한 바람 다음으로 더운 바람이 오지요. 더운 바람 다음으로 스산한 바람이 오지요. 스산한 바람 다음으로 차가운 바람이 오지요. 차가운 바람 다음으로 다시 따스한 바람이 오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삶이 흐릅니다.


  바람을 느낄 줄 안다면, 철을 압니다. 철을 안다면 삶을 압니다. 삶을 안다면 사랑을 압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알고 싶은 사람은 바람을 먼저 알아볼 노릇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삶을 짓고 싶은 사람은 바람을 먼저 헤아릴 노릇입니다. 싱그럽게 마실 바람을 살피고, 서로 기쁘게 마실 바람을 돌아볼 노릇이에요.



.. 손에 들고 / 등에 지고 / 머리에 이었다 / 목에마저 걸 수만 있다면 걸고, // 밀어주는 손도 없는 맞바람 / 맞으며 안으며 품으며 / 길을 가는 사람 ..  (짐)



  오늘 나는 자전거를 몰면서 두 아이와 나들이를 갑니다. 이월 끝자락은 아직 썰렁하지만, 이월 끝자락이니 맨손으로 자전거를 탈 만합니다. 삼월이 코앞인 들녘을 바라보면 ‘겨우내 누렇게 시든 풀잎’ 빛깔이 새롭습니다. 아주 샛노랗습니다. 풀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릴 무렵에도 샛노란 풀빛인데, 봄이 코앞인 이월 끝자락에도 풀빛은 샛노랗습니다.


  가을에는 열매와 함께 샛노란 풀빛이라면, 겨울 끝자락과 봄 첫머리에는 ‘흙으로 돌아가려’고 샛노란 풀빛입니다.


  나는 이월 끝자락에 아이들과 자전거로 들녘을 가로지르면서 이 샛노란 풀빛을 듬뿍 마십니다. 바람을 타고 온몸으로 스며드는 샛노란 기운을 맞아들입니다. 내 몸과 마음도 샛노란 풀빛처럼 흙으로 돌아가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 넋과 숨결도 샛노란 풀빛처럼 환하게 타오르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 벼랑 끝에서만 나는 꽃이었다가 / 그 벼랑 끝에서 언제나 한 걸음 더 내딛는 ..  (詩法)



  김경희 님 시집 《작은 새》(창작과비평사,1994)를 읽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작은 새’를 노래하고 싶은 시집 《작은 새》입니다. 큰 새도 어중간한 새도 아닌 작은 새입니다.


  작은 새는 누구일까요. 작은 새는 작은 새일 테지요. 매와 수리가 보기에 참새는 작은 새일 테지만, 나비와 잠자리가 보기에 참새는 큰 새입니다. 사람이 보기에 딱새는 작은 새일 테지만, 애벌레와 풀벌레가 보기에 딱새는 무척 큰 새입니다.



.. 어머니는 소금이 ‘달다’고 한다 / 물이 ‘달다’고 한다 / 올해도 아들딸들에게 나누어 줄 / 고추장 된장 간장이 소금에 물이 / 잘 맞아 달다고 웃으신다 ..  (어머니의 철학)



  겨울이 끝날 무렵에는 바람결이 바뀝니다. 뭍바람에서 바닷바람으로 바뀝니다. 겨우내 뭍바람을 맞으면서 땀을 뻘뻘 흘렸으니, 이제부터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땀을 덜 흘릴 만합니다. 그러나, 등바람을 좀 업고서 자전거를 달린다 하더라도, 가는 길과 오는 길은 같기에, 한 번 등바람이면 한 번 맞바람이에요. 한 번 등바람을 타고 가볍게 자전거를 달리면, 다른 한 번은 맞바람을 이기면서 힘차게 자전거를 밟아야 합니다.


  샛자전거와 수레에 탄 두 아이가 노래합니다. 앞머리에서 자전거를 이끄는 나도 노래합니다. 두 아이는 기쁘게 노래하고,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래합니다. 세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맞이하는 바람을 마시면서 노래합니다. 다 다른 넋으로 다 다른 기쁨을 노래하는 가락은 바람에 실려 마을 곳곳으로 퍼집니다. 아이들 목소리가 없는 이 시골마을에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노랫가락을 퍼뜨립니다.



.. 꽃이 되지 않는 풀 / 개가 되지 않는 강아지 // 한 뼘 하늘가에 / 풀 강아지 ..  (강아지풀-박용래 님께)



  아이들은 맨몸으로 나들이를 누립니다. 나는 이것저것 챙기고 꾸려서 나들이를 누립니다. 아이들은 근심도 걱정도 없이 웃고 노래하면서 나들이를 누립니다. 나는 온갖 짐을 잔뜩 짊어지면서 빙그레 웃고 노래하면서 나들이를 누립니다.


  내 어버이도 오늘 나처럼 온갖 짐을 잔뜩 짊어지면서 나(어린 나)를 데리고 나들이를 다니셨겠지요. 내 어버이도 오늘 나처럼 먼먼 지난날 기쁨으로 가득 차오르는 노래와 웃음을 퍼뜨리면서 골골샅샅 함께 누비면서 삶을 지으셨겠지요.


  다가오는 먼 앞날에는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아이를 낳아서 새롭게 나들이를 누리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과 모레를 잇는 새 노래가 포근히 흐르면서, 이 노래는 언제나 새삼스러운 글이 되고 책이 되고 시가 되고 문학이 되고 이야기가 되면서 이 땅에 곱게 깃들리라 생각합니다. 4348.2.1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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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26. 이리 와서 함께 보자



  사진을 배우려 한다면 ‘이론’이 아닌 ‘사진’을 배워야 합니다. 글을 배우려 한다면 ‘이론’이 아닌 ‘글’을 배워야 합니다. 그림을 배울 적이든, 노래나 춤을 배울 적이든, 시골 흙일이나 바닷가 고기잡이를 배울 적이든 늘 같아요. 우리는 ‘이론’을 배울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이론’은 내가 스스로 삶을 세워서 지을 적에 나 스스로 갈고닦아서 내놓기 때문입니다.


  ‘이론’은 사람 숫자만큼 다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이론은 삶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 삶은 다 다릅니다. 그러니, 모든 이론은 다 다를 수밖에 없어요. 몇몇 이름난 사람들 이론을 배운들 사진도 글도 그림도 흙일(농사)도 못 배웁니다. 밥을 짓고 싶으면 밥짓기를 배워야 합니다. ‘요리’나 ‘요리 이론’을 아무리 배운들 밥을 못 짓습니다.


  사진 이론을 배우는 사람은 사진을 모르는 채 ‘이론’만 압니다. 이리하여, 사진을 배우려 하면서 ‘사진비평’만 잔뜩 읽는 사람은, 사진은 하나도 모르는 채 ‘사진 이론’만 머릿속에 잔뜩 집어넣은 꼴입니다. 시를 배우려 하는 사람도 이와 같아요. 시를 배우면서 누리려 하지 않고 ‘문학비평’이나 ‘시론’만 잔뜩 읽으면, 머릿속에 헛바람만 집어넣은 꼴입니다.


  그렇다고 이론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론은 저절로 생겨요. 내가 스스로 내 삶을 세우거나 지으면 ‘내 이론’이 저절로 섭니다. 그러니, 이론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말고, 내 삶을 바라보면 됩니다. 이리 와서 함께 보면 됩니다.


  사진을 배우려 할 적에는 ‘이름난 몇몇 작가’가 남긴 작품을 볼 수도 있고, ‘이름이 안 난 수많은 이웃’이 남긴 작품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저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바라보면서 사진을 배울 수도 있어요. 어떻게 배우든 모두 사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진’을 사진답게 배우려 하기에, 삶을 삶답게 마주합니다. 남들 앞에서 거들먹거리거나 자랑하려는 뜻이라면 ‘사진 이론’을 배워도 될 테지만, 나 스스로 삶을 사랑하면서 가꾸려 한다면, 그저 즐겁게 내 이웃과 동무를 이리로 불러서 함께 놀고 노래하듯이 사진을 즐기면 됩니다. 4348.2.1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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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싹 비워서 고마운 밥그릇



  아이들이 살짝 배고픈 아침을 맞이해서 밥상을 차린다. 이때에 가장 맛나게 먹는구나 하고 느낀다. 밥이랑 국이랑 풀을 모두 말끔히 비워서 밥상을 치우거나 설거지를 하기에 수월하도록 해 주는 날이 있다. 곰곰이 헤아리면, 아이들이 밥이나 국이나 풀을 얼마쯤 남긴다면 다 까닭이 있을 테지. 나는 왜 아이들이 이렇게 조금씩 남기는지 헤아리면서 다음 끼니를 차리면 한결 맛나면서 재미난 밥잔치가 될 수 있다. 그릇을 삭삭 비우면서 혓바닥으로 날름날름 빈 접시를 핥으면, 어쩜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이 다 있나 하고 느낀다. 여느 때에도 늘 귀엽고, 언제나 사랑스러운데, 밥상맡에서 “다 먹었다!” 하고 외치는 아이들이란 더할 나위 없이 귀여우면서 사랑스럽다. 4348.2.1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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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2-14 13:44   좋아요 0 | URL
파프리카 사이에 있는 저 하얀것은 무엇인가요?

파란놀 2015-02-14 16:35   좋아요 1 | URL
배춧잎입니다.
배추 한 통을 겉잎부터 천천히 뜯어서 먹다 보면
속배추알은 뿌리 쪽 잎이 새하얗고 도톰해요.
이렇게 썰면 간장이나 된장에 톡톡 찍어서 먹기에 좋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