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아이 74. 2015.2.22. 매화나무 곁에서



  아침에 우리 집 나무들한테 인사하자고 하니, 여덟 살 꽃순이는 할아버지한테서 선물로 받은 옷을 차려입고서 온갖 나무를 두루 돌다가 매화나무 곁에 서서 가만히 줄기를 쓰다듬고 꽃몽오리를 어루만지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매화꽃이 얼른 피기를 바라면서 매화나무 곁에 오래오래 서서 곰곰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 매화나무에 매화꽃이 곧 필 테니 날마다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렴. 다만, 이 아이들은 제때에 제대로 활짝 피어날 테니까, 너무 일찍 꽃이 터지라고 하지는 말자. 꽃이 활짝 피고 난 뒤에 꽃샘추위가 찾아들면 이 아이들은 찬바람에 벌벌 떨어야 하거든. 따사로운 볕과 바람으로 하루가 가득한 날에 이 아이들이 모두 방긋방긋 웃으면서 터질 테니, 이튿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자주 찾아와서 상냥하게 인사하면서 이야기하자.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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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이 쏙쏙 돋는다



  쑥이 돋는다. 쏙쏙 돋는다. 아직 ‘쑥쑥’ 돋지는 않고, 조물조물 쏙쏙 돋는다. 소리가 있는듯이 없는듯이 가만히 돋는다. 아기가 잠결에 조그마한 손을 옴찔움찔 움직이듯이 아주 천천히 쑥잎이 돋는다. 겨우내 시든 풀잎(짚)만 가득한 땅뙈기에 푸릇푸릇 새로운 옷을 입힌다. 겨울을 아쉬워 하는 포근한 비를 맞으면서 쑥이 쏙쏙 돋는다. 이제부터 쑥국을 끓이고 쑥지짐이를 하며 쑥과 얽힌 온갖 밥잔치를 하겠구나. 4348.2.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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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 매화나무 꽃몽오리



  뒤꼍 매화나무에 꽃몽오리가 맺힌다. 아니, 뒤꼍 매화나무 꽃몽오리가 날마다 부푼다. 아직 조그마한 꽃몽오리요, 더 부풀어야 터질 듯 말 듯 보들보들 귀여운 모습이 되리라. 큰아이가 요즈음 날마다 묻는다. “봄은 언제 와요?” 봄이 오기를 바라니? 그러면 우리 함께 봄을 부르면 돼. 그리고, 이제 떠나려는 겨울더러 잘 자렴 하고 인사를 하면 돼. 4348.2.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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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역 언저리에서



  설을 쇠고 고흥으로 돌아오려고 하는 길에 조치원역을 거쳤다. 조치원역 언저리에서 ‘광성음악사’라는 가게 옆을 지나갔다. 전화번호 국번이 세 자리이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간판일 텐데, 그래도 다른 간판하고 대면 퍽 나이가 든 간판이다. 나는 이러한 간판에 눈이 간다. 번쩍거리거나 커다란 간판은 내 눈에 안 들어온다.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헌 간판에 눈이 쏠린다. 예전에는 어느 도시에서나 간판에 따로 불빛이 깃들지 않았다. 조촐하고 수수하면서 이웃가게 간판하고 살가이 어우러졌다. 요즈음에는 이웃가게 간판보다 어떻게 하면 더 크게 할까 하는 대목만 사람들이 따지는구나 싶은데, 지난날에는 가게마다 간판을 알맞게 꾸려서 서로 사이좋게 어우러졌다. 혼자서만 살 수 없는 마을살이이다. 4348.2.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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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89) 석줄노래


 삼행시(三行詩) : 세 줄로 이루어진 시



  ‘아침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로 첫머리를 여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위바위보를 하기 앞서 이런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이 노래를 가만히 살피면 “두 장 말고 세 장이요, 세 장 말고 네 장이요”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오늘날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대목을 “세 장”과 “네 장”으로 쓰지만, 이 말마디는 “석 장”과 “넉 장”으로 바로잡아야 올바릅니다.


  “세 사람·네 사람”에서는 ‘세·네’이지만, “석 장·넉 장”과 “석 줄·넉 줄”처럼 ‘석·넉’으로 적어야 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이는 한자를 배우거나 가르칠 적에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한자 ‘三’과 ‘四’는 “석 삼”과 “넉 사”입니다. “세 삼”이나 “네 사”로 읽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놀이나 재미 삼아서 꽤 많은 사람들이 ‘삼행시’를 쓰거나 읊습니다.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면, “세 줄로 이루어진 시”로 풀이하는데, 이 풀이말은 틀립니다. “세 줄”이 아닌 “석 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삼행시’를 ‘세줄시’로 고쳐서 쓰는 사람이 대단히 많아요.


 세줄시 (x)

 석줄시 (o)


  어느 모로 본다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잘못 말하거나 엉터리로 말하더라도 ‘거의 모든 사람이 잘못 말하거나 엉터리로 말하는 투’가 오히려 ‘바른 말투’인 듯이 굳을 수 있습니다. 사회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뿌리나 바탕을 살핀다면 틀리거나 잘못이거나 그릇된 노릇이지만, 사회 물결에 휩쓸리는 사람들은 옳고 바름을 안 따지거나 안 살피기도 합니다. 그냥 휩쓸려 가고 맙니다.


  그나저나, 나는 ‘석줄시’를 조금 더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시(詩)’라는 낱말을 그냥 쓰기는 하는데, 석 줄로 쓰는 시란, 가만히 따지면 석 줄로 지어서 즐기는 노래와 같아요. 무엇보다 예부터 우리 겨레는 모든 ‘시’가 언제나 ‘노래’였습니다. 줄줄이 읊는 말은 ‘이야기’라 했고, 가락을 붙여서 읊는 말은 ‘노래’라 했어요.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산문·수필’은 지난날에 ‘이야기’였고, 오늘날 ‘시’는 지난날에 ‘노래’였어요.


  ‘석줄시’는 ‘석줄노래’라 할 만합니다. 석 줄로 지어서 즐기는 노래이기에 ‘석줄노래’입니다. 누구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쁘게 지어서 오순도순 나누는 노래이기에 ‘석줄노래’입니다. 4348.2.2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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