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기고 빨래하니 졸음



  오늘 낮에 보일러 기름을 넣는다. 꼭 200리터를 넣는다. 설날을 쇠고 고흥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을 못 씻기다가 오늘 드디어 씻긴다. 아이들이 벗은 옷도 함께 빨래를 한다. 아침에 손빨래를 한 차례 했고, 낮에는 기계한테 빨래를 맡긴다. 큰아이 신은 손으로 빨래해서 마당에 넌다. 이렇게 하고 보니 어깨가 뻑적지근하면서 졸음이 온다. 작은아이는 조금 칭얼거리다가 사르르 잠이 든다. 큰아이도 졸릴 법하지만 조용히 만화책을 파고든다. 빨래를 마당에 널면서 온갖 멧새 노랫소리를 들었다. 봄이 되어 새롭게 깨어나는 새가 많구나 하고 느낀다. 딱따구리 소리도 듣고, 무척 고운 노랫소리도 듣는다. 이 모든 봄맞이 소리를 들으면서 옷가지가 보송보송 마를 테지. 작은아이 곁에서 살짝 눈을 붙이고 일어나서 저녁을 지어야겠다. 4348.2.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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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376) -ㄴ 것이다 4


그들이 우리들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은 공론이 아니요, 바로 현실 그것인 것이다

《칼 야스퍼스/김종호 옮김-원자탄과 인류의 미래 : 상》(사상사,1963) 19쪽


 바로 현실 그것인 것이다

→ 바로 삶이다

→ 바로 이러한 삶이다

→ 바로 이 삶이다

→ 바로 오늘 여기 있는 삶이다



  이 보기글을 보면 ‘바로’라는 낱말을 넣으면서 힘주는 말투가 됩니다. 그러니, “-ㄴ 것이다” 꼴로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쓴 분은 ‘그것’을 사이에 넣으면서 더 힘주는 말투로 쓰려 합니다. 그렇지만, 이 보기글처럼 ‘그것’을 넣으면 번역 말투예요. “바로 삶이다”나 “바로 현실이다”라고만 쓰면 됩니다. 굳이 사이에 꾸밈말을 하나 더 넣고 싶다면 “바로 이 삶이다”나 “바로 이 현실이다”처럼 쓸 노릇입니다. 4337.11.26.쇠/4348.2.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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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우리한테 하는 말은 빈말이 아니요, 바로 삶이다

그들은 우리한테 빈말이 아닌 바로 삶을 들려준다


“우리들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은”은 “우리한테 하는 말은”으로 손질하고, ‘공론(空論)’은 ‘빈말’이나 ‘빈소리’로 손질합니다. ‘현실(現實)’은 그대로 두어도 되나 ‘삶’으로 손볼 수 있고, “바로 현실 그것”은 “바로 삶”으로 손봅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19) -ㄴ 것이다 5


숟가락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입술을 스쳐 지금 내 앞에 놓이게 된 것일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숟가락으로 따순 국물을 떠먹었을까

《김선우-김선우의 사물들》(눌와,2005) 13쪽


 내 앞에 놓이게 된 것일까

→ 내 앞에 놓였을까

→ 내 앞에 놓인 셈일까

→ 내 앞까지 왔을까

→ 나한테 왔을까

 …



  이 보기글을 가만히 보면 둘째 줄 끝은 “국물을 떠먹었을까”로 나옵니다. “국물을 떠먹은 것일까”로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첫째 줄은 “내 앞에 놓이게 된 것일까”로 적었지요. 첫째 줄도 “내 앞에 놓였을까”로 적으면 아무 말썽이 없어요.


  한 마디를 붙여서 느낌을 남달리 하고 싶으면 “내 앞에 놓인 셈일까”처럼 쓸 수 있고, “내 앞까지 왔을까”나 “나한테 왔을까”처럼 새롭게 써도 됩니다. “내 앞까지 왔을까 궁금하다”나 “나한테 왔을까 궁금하다”처럼 말끝을 이을 수도 있습니다. 4339.9.19.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숟가락으로 태어난 때부터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 입술을 스쳐 오늘 내 앞에 놓였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숟가락으로 따순 국물을 떠먹었을까


“태어난 순간(瞬間)부터”는 “태어난 때부터”로 다듬고, ‘지금(只今)까지’는 ‘이제까지’나 ‘여태까지’로 다듬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입술”은 “많은 사람들 입술”로 손질하고, “놓이게 된”은 “놓였을”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30) -ㄴ 것이다 6


고통과 비참보다 더 위대하고 신기한 것은 없는 것이란다

《오스카 와일드/이지민 옮김-행복한 왕자》(창작과비평사,1983) 20쪽


 더 신기한 것은 없는 것이란다

→ 더 놀라운 일은 없단다

→ 더 놀라운 삶은 없단다

 …



 ‘것’은 이 낱말을 써야 할 자리에 알맞게 쓰면 됩니다. 그러나 ‘것’이 너무 자주 나온다거나 앞뒤에 겹치면, 말이나 글 모두 껄끄럽거나 늘어집니다. 일부러 질질 끌듯이 말을 하려는 뜻이라면 “-ㄴ 것이다”뿐 아니라 “-는 것일 것이다”처럼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투를 이렇게 늘어뜨리거나 얄궂게 겹쳐서 쓰면, 더군다나 어린이책에서 이러한 말투를 자꾸 쓰면, 어릴 적부터 말을 말답게 배우지 못하고 말아요. 4339.10.16.달/4348.2.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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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과 끔찍함보다 더 거룩하고 놀라운 일은 없단다


‘고통(苦痛)’은 ‘괴로움’으로, ‘비참(悲慘)’은 ‘끔찍함’으로 다듬습니다. ‘위대(偉大)하고’는 ‘훌륭하고’나 ‘높고’나 ‘거룩하고’로 손보고, ‘신기(新奇)한’은 ‘놀라운’이나 ‘놀랍고 재미난’으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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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90) 동그라미를 그리다


 동그라미 → 그리다

 빗금 → 치다

 줄(밑줄)·금 → 긋다

 점 → 찍다



  한국말사전에서 ‘치다’를 찾아보면 “붓이나 연필 따위로 점을 찍거나 선이나 그림을 그리다”로 풀이를 합니다. 한국말사전 보기글을 살피면 “밑줄을 치다”와 “동그라미를 치다”와 “사군자를 치다”와 “가위표를 치다”가 함께 나옵니다. ‘긋다’라는 낱말은 “금이나 줄을 그리다”로 풀이하고, ‘그리다’라는 낱말은 “연필, 붓 따위로 어떤 사물의 모양을 그와 닮게 선이나 색으로 나타내다”로 풀이합니다. 세 낱말이 어떤 뜻인지 찾아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할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치다 = 그리다’이고, ‘긋다 = 그리다’인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뜻과 쓰임새가 같다면, 세 낱말을 굳이 다른 모습으로 드러내어 쓸 까닭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가 한국사람이라면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점을 찍다”라 하고, “줄(밑줄)을 긋다”와 “금을 긋다”라 하며, “빗금을 치다”라 하고, “동그라미를 그리다”라 해야 올바릅니다. 점을 종이에 나타내려면 연필이나 붓을 쥐고 가만히 눌러 줍니다. 그래서 이 몸짓을 ‘찍다’라고 합니다. 줄이나 금은 어느 한 곳(점)에서 다른 한 곳(점)으로 이어지도록 하면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러한 몸짓은 ‘긋다’라는 낱말로 나타냅니다. 붓에 먹을 묻혀서 난잎을 담으려 할 적에도 어느 한 곳에서 다른 한 곳으로 이어지도록 죽 ‘긋는다’고 할 테지만, “난을 친다”처럼 ‘치다’라는 낱말을 씁니다. 왜냐하면, 이때에는 붓을 가볍게 튕기듯이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빗금도 ‘치다’라는 낱말로만 나타내요. 시험종이에서 맞고 틀린 문제를 가르면서 재빠르게 튕기듯이 동그라미를 나타내려 한다면, 이때에는 “동그라미를 치다”라 할 수 있을 테지요. 다만, 이때가 아닌 다른 자리에서는 동그라미는 모두 ‘그리다’라는 낱말로 나타내야 올바릅니다. ‘그리다’는 어떤 모습이 나타나도록 하는 몸짓을 가리키니까요.


 표시(표) → 하다

 가위표 → 하다


  때로는 한자말 ‘표시·표’를 쓸 수 있는데, 이때에는 “표시(표)를 하다”처럼 씁니다. 한국말사전에서는 “가위표를 치다” 같은 보기글을 싣지만, ‘가위표’는 금을 둘 엇갈라 놓은 모습입니다. 금을 둘 엇가를 적에는 ‘표시(표)’와 같으니, 이때에는 “가위표를 하다”라 말해야 올바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쓰는 낱말은 때와 곳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이를 제대로 살펴서 제대로 쓸 줄 알아야겠습니다. 한국말사전 말풀이도 하루 빨리 바로잡아야겠습니다. 4348.2.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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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서 태어나는



  손끝에서 글이 태어난다. 손끝이 아니라면 글이 태어나지 않는다. 손끝에서 밥이 솔솔 익는다. 손끝으로 지은 밥이 따끈따끈하게 익어 맛나게 먹을 수 있다. 손끝에서 싹이 돋는다. 손끝으로 심은 씨앗이 싱그럽게 줄기와 잎을 올리면서 햇볕을 받으니 어느새 씩씩하게 자라서 아름다운 풀이 되고 나무가 되어 고운 꽃을 피워 알찬 열매로 무르익는다.


  모든 삶은 손끝에서 비롯한다. 손끝을 거치지 않고 태어나는 것은 없다. 사랑도 이야기도 노래도 춤도 모두 손끝에서 비롯한다. 하물며 글이 손끝을 거치지 않고 태어날 수 있으랴.


  손끝에 닿는 물방울을 느끼면서 빨래를 한다. 손끝에 닿는 아이들 살결을 어루만지면서 이마를 쓰다듬고 자장노래를 부른다. 손끝에 닿는 바람결을 마시면서 기쁘게 노래를 하고 들길을 걷는다. 손끝에 닿는 연필을 가만히 헤아리면서 내가 짓는 꿈이 어떤 생각으로 나타나서 마음자리에 깃드는가를 돌아보니, 어느새 글 한 줄 두 줄 석 줄 흐른다. 4348.2.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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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쓰고 나들이



  고흥집에 보일러 기름을 넣도록 도와주려는 이웃님이 여럿 계시다. 이분들이 장만해 주시는 내 책을 도서관에 가서 봉투로 꾸리려 한다. 도서관으로 가기 앞서 먼저 그림엽서에 편지를 쓴다. 연필을 손에 쥐고 천천히 글을 쓴다. 이제 그림엽서 편지를 마무리짓는다. 아이들한테 아침을 먹이고 자전거를 몰아서 면소재지 우체국까지 다녀와야지. 이러고 나서 면소재지 기름집으로 가서 기름 이백 리터를 사들여야지. 오늘은 두 아이를 씻길 수 있겠네. 4348.2.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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