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670) 임자말 자리 1


취미가 직업이 되고 취향이 삶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김종휘-너, 행복하니?》(샨티,2004) 72쪽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 우리는 이러한 때에 산다

→ 이러한 때에 산다

 …



  이 보기글을 보면 임자말 ‘우리는’이 글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서양말이나 서양 말법이라면 임자말을 홀가분하게 이곳저곳에 넣을 만할는지 모르나, 한국말에서는 임자말을 아무 자리에나 끼워넣지 않습니다. 한국말에서는 임자말을 글월 첫머리에 넣거나 아예 뺍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임자말 ‘우리는’을 맨 앞으로 옮기거나 아예 빼야 올바릅니다. 4339.12.27.물/4348.2.2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는 취미가 직업이 되고 취향이 삶이 되는 때에 산다

우리는 즐거움을 일로 삼고 기쁨을 삶으로 짓는 때에 산다

우리는 재미있게 일하고 좋아하는 대로 산다


‘시대(時代)’는 ‘때’로 손보고, “살고 있다”는 “산다”로 손봅니다. “취미(趣味)가 직업(職業)”이 되고는 그대로 둘 만하지만, “즐거움을 일로 삼고”나 “재미있게 일하고”로 손볼 수 있습니다. “취향(趣向)이 삶이 되는”도 그대로 둘 만하지만, “기쁨을 삶으로 짓고”나 “좋아하는 대로 살고”로 손볼 수 있어요.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92) 임자말 자리 2


비밀 정원으로 가는 길을 나는 알고 있다. 골목과 골목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지나 나는 그곳으로 간다. 그러다 활처럼 휘어지는 언덕길을 올라가면 초록 대문이 나오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밀 정원에 들어선다 … 교문을 들어서며 별이에게 내가 물었다

《김옥-청소녀 백과사전》(낮은산,2006) 158, 162쪽


 정원으로 가는 길을 나는 알고 있다

→ 나는 꽃밭으로 가는 길을 안다

→ 뜰로 가는 길을 안다

교문을 들어서며 별이에게 내가 물었다

→ 나는 교문을 들어서며 별이한테 물었다

→ 교문을 들어서며 별이한테 물었다

 …



  이 보기글을 가만히 보면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처럼 글머리를 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자리에서는 임자말 ‘나는’을 글월 사이에 함부로 넣습니다. 글흐름을 본다면, 이 보기글에서는 ‘나는’을 모두 덜 만합니다. 이 보기글은 ‘내’가 임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끄니까, 굳이 ‘나는’이라는 임자말을 안 넣어도 됩니다. 굳이 ‘나는’을 넣고 싶으면 글월 첫머리로 옮겨 줍니다. 4340.1.30.불/4348.2.2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는 숨은 뜰로 가는 길을 안다. 골목과 골목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지나 그곳으로 간다. 그러다 활처럼 휘어지는 언덕길을 올라가면 푸른 대문이 나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숨은 뜰에 들어선다 … 나는 교문을 들어서며 별이한테 물었다


“비밀(秘密) 정원(庭園)”은 “숨은 뜰”이나 “숨은 꽃밭”으로 다듬고, “알고 있다”는 “안다”로 다듬습니다. “초록(草綠) 대문”은 “푸른 대문”으로 손봅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93) 임자말 자리 3


저는 라디오 방송을 처음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야외의 낭독회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저는 느낍니다

《김수영-퓨리턴의 초상》(민음사,1976) 212쪽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저는 느낍니다

→ 저는 어느 정도 해방되었다고 느낍니다

→ 저는 이럭저럭 해방되었다고 느낍니다

→ 저는 제법 홀가분하다고 느낍니다

→ 꽤 홀가분합니다

 …



  글월 첫머리에서 ‘저는’이라고 밝힌 만큼, 이 다음부터는 ‘저는’이라는 임자말을 굳이 안 넣어도 됩니다. 따로 힘주어 말하려는 뜻이라면 ‘저는’을 넣을 만합니다. 다만, 글월 사이에 임자말을 넣을 수 없는데, 이 보기글은 글이 아닌 말을 옮겨서 적었기에, 말을 하다가 ‘저는’이라고 하는 말마디를 깜빡 잊었구나 싶어서 뒤늦게 넣을 수 있어요. 그러면, 이 보기글은 “그래도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저는 느낍니다”처럼 사이에 쉼표를 넣어서 앞뒤를 끊어야 올바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했어도 글로 다시 옮길 적에는 임자말 ‘저는’을 앞으로 빼 주면 한결 매끄럽지요. 왜냐하면 말을 할 적에는 살짝 더듬거나 깜빡 차례를 잊거나 잘못 쓸 수 있으니, 글로 옮기면서 이런 대목을 손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래도 저는,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느낍니다”처럼 보기글을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임자말 자리를 제대로 추스른 뒤, “해방감을 느낍니다” 같은 겹말을 손질하고, “어느 정도의”에 붙은 ‘-의’를 손질합니다. 4340.1.30.불/4348.2.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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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라디오 방송을 처음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밖에서 하는 낭독회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럭저럭 홀가분하다고 느낍니다


“야외(野外)의 낭독회(朗讀會)”는 “밖에서 하는 낭독회”나 “밖에서 하는 글잔치”로 손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程度)의 해방감(解放感)을 느낍니다”는 “어느 만큼 해방되었다고 느낍니다”나 “이럭저럭 홀가분하다고 느낍니다”나 “제법 홀가분합니다”로 손질합니다. ‘해방감’에서 ‘感’은 ‘느낌’을 뜻하니, “해방감을 느낍니다”처럼 적으면 겹말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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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291) -ㅁ에 따라/-함에 따라 1


사랑에 빠진 자동차 구매자들이 자동차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계속 무시함에 따라, 1920년대는 미국에서 특히 거셌던 자동차 붐으로 인해 수백만 대의 새로운 내연기관이 포효하는 소리로 들끓었다

《케이티 앨버드/박웅희 옮김-당신의 차와 이혼하라》(돌베개,2004) 38쪽


 부정적인 이야기를 계속 무시함에 따라

→ 궂은 이야기에 아예 귀를 닫자

→ 궂은 이야기를 깡그리 모르쇠 하자

→ 나쁜 얘기를 하나도 안 듣자

→ 나쁜 얘기는 조금도 안 들으려 하자

 …



  외국말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생긴 수많은 번역 말투 가운데 하나인 ‘-ㅁ에 따라/-함에 따라’입니다. 앞말이 한국말이면 “먹음에 따라”나 “입음에 따라”나 “시킴에 따라”나 “배부름에 따라”처럼 나타나고, 앞말이 한자말이나 이름씨 꼴이면 “무시함에 따라”나 “경청함에 따라”나 “주시함에 따라”나 “생각함에 따라”나 “사랑함에 따라”처럼 나타납니다.


 먹음에 따라 → 먹으면서 / 먹자

 입음에 따라 → 입으면서 / 입자

 경청함에 따라 → 귀여겨들으면서 / 귀담아들으면서

 주시함에 따라 → 지켜보면서 / 살펴보면서

 생각함에 따라 → 생각하면서 / 생각하자

 사랑함에 따라 → 사랑하면서 / 사랑하자


  애벌 번역을 하더라도 제대로 옮겨야 합니다. 애벌 번역을 한 뒤에는 찬찬히 손질해서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읽을 만하’도록 살펴야 합니다. 서양말을 한국말로 옮길 적에는 한국말답게 옮길 노릇이고, 한국말을 서양말, 이를테면 영어로 옮길 적에는 영어답게 옮겨야 합니다. 나라마다 쓰는 말이 다르니, 나라마다 어떠한 삶을 누리면서 어떠한 말을 나누는지 찬찬히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7.7.19.달/4348.2.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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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자동차와 얽힌 궂은 이야기에 아예 귀를 닫자, 1920년대는 미국에서 더욱 거셌던 자동차 바람이 불어 수백만 대나 되는 새로운 내연기관이 내뿜는 소리로 들끓었다


“사랑에 빠진 자동차 구매자(購買者)들이”는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자동차에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로 손볼 만합니다. “자동차에 부정적(否定的)인 이야기를 계속(繼續) 무시(無視)함에 따라”는 “자동차와 얽힌 궂은 이야기에 아예 귀를 닫자”나 “자동차와 얽힌 나쁜 얘기를 하나도 안 듣자”로 손질하고, ‘특(特)히’는 ‘더욱’이나 ‘더’로 손질하며, “자동차 붐(boom)으로 인(因)해”는 “자동차 바람이 불어”로 손질합니다. “수백만 대의”는 “수백만 대에 이르는”이나 “수백만 대나 되는”으로 다듬고, ‘포효(咆哮)하는’은 ‘내뿜는’이나 ‘내뱉는’으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498) -ㅁ에 따라/-함에 따라 2


곶에 가까워짐에 따라 완만하고 푸르러 양이 노니는 언덕이 새하얀 단면을 보이는 석회석의 조금 높은 언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요코가와 세쯔코/전홍규 옮김-토토로의 숲을 찾다》(이후,2000) 75쪽


 가까워짐에 따라

→ 가까워지면서

→ 가까워지자

→ 가까워지니

 …



  번역 말투는 한국말이나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이런 말투는 낯섭니다. 낯설면서 한국말과 안 어울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낯선 외국말’이나 ‘낯선 번역 말투’를 ‘새롭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이 번역 말투를 쓰면 ‘마치 새로운 한국말을 쓸 수 있는’듯이 여깁니다.


  새로운 말투는 ‘외국 말투’를 흉내내거나 ‘번역 말투’를 아무렇게나 쓴다고 해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말투는, 말 그대로 마음 깊이 새로운 숨결로 새로운 생각을 들려줄 때에 태어납니다.


  새롭게 거듭난 사람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늘 그대로이지만, 마음을 스스로 새롭게 바꾸어서 생각을 스스로 새롭게 짓기에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요. 살결이나 뼈를 뜯어고치기에 새로운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옷을 바꿔 입기에 새로운 사람이 되지 않아요. 번역 말투가 ‘새로운 말투’라도 되는듯이 잘못 생각하는 일이 없기를 빕니다. 번역 말투를 아무리 받아들여서 써도 한국말은 발돋움할 수 없다는 대목을 깨닫기를 빕니다. 한국말이 발돋움하거나 새롭게 거듭나려면, 한국말에 담는 넋을 슬기롭게 빚고 가꾸면서 보듬어야 합니다. 4339.2.7.불/4348.2.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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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에 가까워지면서 부드럽고 푸르러 양이 노니는 언덕이 새하얗게 잘린 모습이 보이는 석회석으로 된 조금 높은 언덕으로 바뀐다

부드럽고 푸르러 양이 노니는 언덕은, 곶에 가까워지니, 새하얗게 잘린 곳이 드러나는 석회석으로 된 조금 높은 언덕으로 바뀐다


‘완만(緩慢)하고’는 ‘부드럽고’나 ‘밋밋하고’나 ‘비스듬하고’나 ‘가파르지 않고’로 다듬고, “새햐안 단면(斷面)을 보이는 석회석의 조금 높은 언덕”은 “새하얗게 잘린 모습이 보이는 석회석으로 된 조금 높은 언덕”이나 “새하얗게 잘린 곳이 드러나는 석회석으로 된 조금 높은 언덕”으로 다듬습니다. “바뀌기 시작(始作)했다”는 “바뀐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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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413) -ㅁ과 동시에 1


성인이 된 어니스트 스윈턴은 장교가 됨과 동시에 전쟁 역사학자가 되었다

《제이슨 리치/전대호 옮김-파괴를 위한 과학 : 무기》(지호,2002) 114쪽


 장교가 됨과 동시에

→ 장교가 되면서

→ 장교가 되고

→ 장교가 되는 한편

 …

 


  한자말 ‘동시(同時)’는 “같은 때”를 뜻합니다. 그러니, ‘-ㅁ과 동시에’처럼 쓰는 말투는 ‘-ㅁ과 같은 때에’를 가리킵니다. 한국말사전을 보면 ‘동시에’ 꼴로 쓸 적에는 “어떤 사실을 겸함”을 뜻한다고 나오는데, ‘겸(兼)하다’라는 외마디 한자말은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을 함께 지니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함께 있다”를 가리키는 ‘겸하다’이고, ‘동시’라고 한자말도 처음부터 한국말 ‘함께’로 풀어내어 적어야 올바르다는 소리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가 되면서’나 ‘-가 되고’처럼 손보면 됩니다. 앞쪽은 이렇게 적고 뒤쪽에서는 “역자학자‘도’ 되었다”처럼 손보면, 함께 어떤 일을 하는 모습이나 함께 어떤 모습으로 된 흐름을 잘 나타낼 수 있습니다. 4338.6.17.쇠/4348.2.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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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어니스트 스윈턴은 장교가 되면서 전쟁 역사학자도 되었다


‘성인(成人)’은 ‘어른’으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51) -ㅁ과 동시에 2


수행 중의 불타의 소식을 전해 주는 많지 않은 설화 중의 하나임과 동시에 불타의 출신인 사캬족에 관한

《불교연구회-불교경전입문》(지양사,1986) 21쪽


 설화 중의 하나임과 동시에

→ 설화 가운데 하나이면서

→ 설화 가운데 하나이고

→ 설화 가운데 하나가 되면서

→ 설화 가운데 하나인 한편

→ 설화 가운데 하나로

 …



  ‘-ㅁ과 동시에’ 꼴을 보면, 앞말과 뒷말을 부드럽게 잇지 않고, 앞말을 억지로 이름씨 꼴로 끝맺습니다. 이는 번역 말투라 할 텐데, 번역 말투와 일본 말투가 섞인 말투라고도 할 만합니다.

  한국사람은 이런 말투로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 말투도 일제강점기 언저리부터 한국말에 스며들었습니다. 예부터 쓰던 한국말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다고 한다면, 새로운 말투를 서양에서든 중국에서든 일본에서든 받아들일 만합니다. 그러나, 예부터 흔히 쓰거나 수수하게 쓰는 말투로 어떤 이야기를 넉넉히 들려줄 수 있다면, 굳이 번역 말투나 일본 말투를 받아들여서 쓰거나 퍼뜨려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런 말투는 말끔히 털거나 가다듬으면 됩니다. 4347.2.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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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닦던 불타 이야기를 들려주는 많지 않은 설화 가운데 하나로, 불타를 낳은 사캬족에 얽힌


“수행(修行) 중(中)의 불타의 소식(消息)”은 “수행하던 불타 이야기”이나 “마음을 닦던 불타 이야기”로 손질하고, “전(傳)해 주는”은 “들려주는”으로 손질합니다. ‘중(中)의’는 ‘가운데’로 손보고, “불타의 출신(出身)인 사캬족에 관(關)한”은 “불타를 낳은 사캬족에 얽힌”으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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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畵ドラえもん「新·のび太の宇宙開拓史」アニメ版 (てんとう蟲コミックスアニメ版) (コミック)
후지코 F. 후지오 / 小學館 / 200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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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라에몽 : 새 노비타 우주개척사

ドラえもん―新のび太の宇宙開拓史, 2009



  아이들은 만화를 보면서 자란다. 오늘날 아이들은 만화를 보면서 자란다. 옛날에는 만화가 따로 없었으니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를 볼 일이 없었으나, 문화나 문명이나 예술이나 책이라고 하는 것이 발돋움하면서 만화가 함께 태어났고, 이무렵부터 아이들한테는 둘도 없이 반가운 동무로 만화가 곁에 있다. 만화는 언제부터 아이들한테 살가운 동무가 되었을까? 아무래도 도시가 생기면서 ‘아이가 뛰놀 자리’를 어른한테 자꾸 빼앗길 뿐 아니라, 마음껏 하늘을 가르지 못하고 냇물을 마시지 못하는 몸으로도 꿈을 키우려는 뜻이 만화에 고이 깃들리라 느낀다. 왜 그런가 하면, 만화가 이 땅이나 이웃나라에 아직 없던 때에는, 모든 아이들이 숲에서 뛰노는 숲아이였고, 모든 아이들이 어버이와 함께 시골살이를 누리는 시골아이였다. 숲을 이루는 시골에서 하늘과 냇물과 흙과 나무와 풀과 꽃과 벌레와 짐승과 새를 마주하면서 푸르고 파란 마음으로 살았으니, 이러한 하루는 언제나 ‘만화와 같’고 ‘영화와 같’다고 할 만하다.


  해마다 새로운 이야기로 하나씩 태어나는 만화영화로 ‘극장판 도라에몽’이 있다. 이 가운데 2009년에 나온 〈도라에몽, 새 노비타 우주개척사(ドラえもん―新のび太の宇宙開拓史)〉를 보면, ‘때와 곳(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우주 문’ 이야기가 흐른다. 때와 곳을 가로지르는 우주 문이란 무엇인가. 때와 곳은 왜 가로지르는가. 온누리에는 지구별 말고 어떤 별이 더 있고, 다른 별에는 어떤 삶을 짓는 어떤 사람이 이웃으로 있을까. 아름답게 발돋움한 문명은 어떤 모습이요, 온누리를 휩쓸면서 바보스러운 길을 걸어 이웃을 이웃 아닌 종으로 부리려는 사람은 또 어떤 짓을 할까. 지구사람 아닌 별사람도 지구에서 하듯이 바보스러운 짓을 하고, 지구사람 아닌 별사람도 지구에서와 같이 사랑스러운 삶을 지을까.


  때와 곳을 가로지르는 ‘우주 문’은 문짝 모습을 할 수 있지만, 아무런 모습을 안 할 수 있다. 어떤 모습이든 대수롭지 않다. 어린이가 보는 만화영화이기에 한결 쉽게 느끼면서 생각하도록 ‘어디로든 문’ 모습으로 그림을 그렸구나 싶은데, 맑은 넋으로 착하게 삶을 지으려 하는 다른 별 사람들 꿈이 잘 녹아드는 〈도라에몽, 새 노비타 우주개척사〉라고 느낀다. 〈도라에몽, 새 노비타 우주개척사〉를 보면, 진구(노비타)는 이슬이(시즈카)한테 거의 기대지 않고 따로 매달리지 않는다. 이 만화영화에서 진구는 지구별 아닌 다른 새로운 별에서 ‘나다움’과 ‘기쁨’을 누린다. 누군가 저(진구)를 바라거나 기다리는 다른 새로운 별이 그립고 반가우면서 이끌린다. 지구별에서는 늘 퉁퉁이(자이언)한테 얻어맞지만, 다른 새로운 별에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 놀라운 힘을 길어올려 이웃과 동무를 돕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 누구한테나 놀라운 힘이 있다. 이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제대로 느낄 수 있으면, 우리는 언제나 놀랍고 새롭게 멋진 힘을 쓴다. 이를 가만히 바라보지 않으면 제대로 바라볼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도 못 쓴다. 장난감 총을 아주 잘 쏘는 진구이지만, 두려움에 떨면 아무것도 못하는데, 마음을 오롯이 모으면 진구도 ‘못 하는 일이 없는’ 아이로 거듭난다. 이슬이는 이런 진구를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랑스러운 아이일 테지. 그래서 이슬이는 언제나 진구와 퉁퉁이·비실이 사이를 따사롭게 이어 준다.


  〈도라에몽, 새 노비타 우주개척사〉에서 진구가 지구별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새로운 별에 남는다면, 이리하여 다른 새로운 별에 남아서 그곳 우주선을 새롭게 고쳐서 ‘차원 넘나드는 여행’을 해서 지구별로 돌아온다면, 이렇게 이야기를 엮었다면 어떠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본다. 4348.2.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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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발걷기 놀이 1 - 두 손에 신을 꿰고



  손에 신을 꿰고 걷는 놀이를 어떻게 알았을까. 손에 신을 꿰고 척척 한 발씩 내딛는 놀이를 어떻게 배웠을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뒤로 돌아서 다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온몸을 움직인다. 네발로 걸으니 땅바닥을 보면서 걷는다. 발바닥과 손바닥으로 땅내음을 맡으며 걷는다. 4348.2.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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