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책읽기



  사람은 ‘직업’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어른이 되면서 ‘직업’을 찾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제 몫으로 삶을 누려야 합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어른이 되면서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와 교육과 문화를 보면, ‘직업’이 꼭 있어야 한다거나 찾아야 한다고 몰아세웁니다. 직업이 없는 사람은 바보나 멍청이로 여기기 일쑤요,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 사이에는 ‘어떤 틀에 박힌 일터(사무실)’에 앉아서 또닥거려야 ‘사람된 모습’인 줄 잘못 알거나 여기기까지 합니다.


  시골사람은 아침 아홉 시부터 일하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으레 새벽 네 시부터 일하고, 새벽 여섯 시 즈음 일을 마무리지은 뒤 아침 일곱 시 즈음 밥술을 뜹니다. 시골사람한테 아침 아홉 시는 ‘하루를 여는 일’을 마무르는 때입니다. 바쁜 일철이라면 햇볕이 뜨거워질 낮까지 일손을 놀리고, 일이 바쁘더라도 햇볕이 너무 뜨거우면 살짝 숨을 돌리면서 눈을 붙이다가, 햇볕이 수그러들 즈음부터 바람이 선선할 때까지 다시 일손을 잡습니다. 이러고 나서 해가 떨어지면, 즐겁게 하루를 마치면서 자리에 눕지요.


  사람은 ‘회사원’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공무원’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한테 알맞고 기쁜 ‘일’을 하면 됩니다. 모든 사람이 도시로 가서 살아야 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야 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도시로 몰아세우지 말아야 하고, 마을과 집에서는 마을살이와 보금자리 가꾸기를 기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일’을 내가 스스로 찾으면 됩니다. ‘내 삶’을 내가 손수 가꾸면 됩니다. ‘내 꿈’을 내가 몸소 이루면 됩니다. 일을 하는 삶이요, 꿈으로 가는 삶입니다. 일을 하면서 즐겁게 쉬는 삶이고, 꿈으로 가면서 기쁘게 노는 삶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직업’에 얽매이지 말 노릇입니다. 직업에 얽매이지 않으면 ‘돈이나 지위’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하지 않고, 지위가 더 높아져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을 넉넉하게 많이 벌 수 있고, 누군가 우리한테 지위를 주겠다면 얼마든지 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 기쁜 일을 하면서, 스스로 기쁜 마음이 될 책을 읽으면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손수 아름답게 일을 하면서, 손수 사랑스러운 마음이 될 책을 벗님으로 삼으면 됩니다. 4348.3.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국 현대사의 민낯 - 패망한 일본은 한반도의 권력 구도를 어떻게 바꿨나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7
김삼웅.장동석 지음 / 철수와영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5



정치·사회·경제가 걸어온 발자국

― 한국 현대사의 민낯

 김상웅·장동석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5.3.1.



  ‘역사’라는 이름을 써서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을 살핀 지 얼마 안 됩니다. 이 땅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사람은 ‘역사’라는 낱말을 쓴 적이 없고, 쓸 일이 없으며, 쓸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나 사회나 경제에서 권력을 거머쥐면서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들은 ‘역사’를 만들어서 퍼뜨려야 한다고 여깁니다.


  권력을 쥔 임금은 이녁 발자국을 돌에 새깁니다. 이 빗돌은 오늘날 문화재나 유적이나 유물이 됩니다. 권력을 쥔 임금 옆에서 고물을 받아서 챙기는 신하나 양반은 이녁 발자국을 족보에 남깁니다. 이러면서 이녁 무덤에 빗돌을 세웁니다. 이 빗돌은 문화재나 유적이나 유물이 되지 않으나, 두고두고 제삿상을 차려서 쳐다보도록 합니다.


  권력을 쥐지 않을 뿐 아니라, 권력을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여느 사람들은 날마다 삶을 새로 짓습니다. ‘어제(지나간 일)’를 구태여 붙잡을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흙을 갈고 보듬으면서 밥을 지으면 즐겁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밥을 먹을 텐데 어제 먹은 밥을 떠올려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저녁이 되어 새밥을 먹는데 아침에 먹는 밥을 되새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흙과 함께 사는 사람은 역사도 족보도 빗돌도 없습니다. 이것이 모두 부질없는 줄 잘 압니다.



.. 모든 사람이 진실이 아니라고 인정한 식민지사관까지도 그런 식으로 정당화하는 게 이 땅의 보수 세력입니다. 엄격히 따지면 보수도 아니죠. 극우 세력입니다 … 역사에서 배워야 하는데, 자세한 상황과 내용을 알려고 하지 않아요. 역사적 진실이 오롯이 전해지지도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를테면 미국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다는 인식 같은 것 말입니다 … 우리 헌정사가 불안한 이유는 시작부터 첫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한 데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야욕에 의해서 국가의 기본인 헌법이 애초부터 망가졌으니까요 ..  (11, 27, 51쪽)



  ‘학문’을 하는 이들은 옛날에 남겨진 빗돌이나 책을 살피려고 눈에 불을 켭니다. 그런데, 옛날 빗돌이나 책은 오로지 ‘정치·사회·경제 권력자 발자국’입니다. 권력자 눈에는 권력자만 보이기 때문에 다른 발자국은 못 남깁니다. 이를테면, 임금 자리에 앉아서 흙 한 줌 만진 적이 없는 사람은 ‘씨앗’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낫도 모를 테고, 괭이도 모를 테며, 솥도 모를 테지요. 신하나 양반이 아궁이를 알까요? 부지깽이를 알까요? 솔가지를 알까요? 짚신을 알까요? 메주를 알까요? 콩꽃을 알까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서, 삼국사기이든 조선왕조실록이든, 이런 책에는 ‘삶을 지은 사람들이 날마다 기쁨으로 누린 이야기’가 한 줄도 없습니다.


  ‘정치·사회·경제 권력자 발자국’인 옛 역사책에는 그저 권력자 발자국만 적혔으니, 이를 학문으로 삼아서 살피는 사람은 언제나 권력자 이야기만 늘어놓습니다. 한겨레에서 99.99%를 이루었다고 할 만한 시골사람 이야기를 밝히거나 다룰 수 있는 역사학자나 인문학자나 문화인류학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느 시골사람 이야기는 글 한 줄로도 안 남았기 때문입니다. 여느 시골사람을 옆에서 구경한 뒤 적은 글은 몇 줄 있어요. 그나마 귀양살이를 하던 몇몇 지식인이나 학자가 이런 글을 남깁니다. 서울 한복판 궁궐 언저리에서 임금바라기를 하던 지식인이나 학자는 여느 사람들 이야기를 글로 안 씁니다.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으니 글로 쓸 수 없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엇비슷해요. 벼꽃이 언제 피는지 아는 지식인이나 학자는 없습니다. 벼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지식인이나 학자는 없습니다. 날마다 밥을 먹으면서, 밥이 되는 쌀은 어떻게 나오고, 쌀이 되는 벼는 어떻게 얻으며, 벼가 되는 나락은 언제 누가 어떻게 심어서 어느 만큼 돌보아서 자라는가를 제대로 아는 지식인이나 학자는 없습니다.



.. 해방공간에서 역량이 있던 〈동아일보〉에서 이렇게 보도가 되다 보니 김구·이승만·박헌영 등 좌우익 인사들이 모두 반탁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신문 기사 하나가 한민족 역사의 물꼬를 돌려놓고 민족의 운명을 바꾼 것입니다. 〈동아일보〉에서 왜 이런 보도를 했는지, 혹시 미국의 힘이 작용한 건지, 아니면 열악한 통신 사정에 의한 오보인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 해방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통일정부 수립과 친일파 청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찬탁이냐 반탁이냐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 경찰, 정치깡패, 반공청년단, 군대, 그리고 주한미군까지 있었는데, 거기에 민주적으로 맞서 싸워 승리한 것이 바로 4·19혁명입니다..  (41, 78쪽)



  김상웅·장동석 두 분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묶은 《한국 현대사의 민낯》(철수와영희,2015)을 읽습니다. 김삼웅 님은 수많은 자료와 책을 살피면서 ‘한국 현대사’ 발자국을 좇습니다. 정치와 사회와 경제를 거머쥔 권력자가 거짓스레 뒤바꾸거나 감추려는 역사가 아닌,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아온 발자국을 드러내려는 역사를 밝히려고 합니다.


  오늘날은 지난날과 달리, 시골사람도 글을 읽을 수 있고, 시골사람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도 하며, 지식인이나 학자가 된 사람 가운데에는 시골살이를 오래 누리고 나서 도시로 온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는 지난날과 조금 다릅니다. 다만, 이렇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에도 지식이나 학문을 다루려면 죄다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만 사는데, ‘한국 현대사’를 읽으려는 이들은 틈틈이 시골을 찾아다니면서 ‘시골사람 목소리’를 곧바로 귀여겨들으려 합니다. 이를테면 ‘증언’을 듣지요.



.. 백범 선생 암살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까 안두희는 테러 집단인 서북청년단 핵심 요원이었어요 … 그때 88구락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친일파 출신으로 이승만의 핵심 측근들이었죠. 이 사람들이 비밀회의를 거듭해서 암살 적임자를 선발했는데, 그게 바로 안두희입니다. 안두희는 우리 육군에 입대하기 전에 미국방첩대(CIC)의 정보원이자 요원으로 활동했어요. 이런 복잡한 인맥을 가진 안두희를 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안두희의 아버지가 북한 출신인데, 아주 악질적인 친일파로 못된 짓을 많이 해서 재산을 크게 불렸어요 ..  (46∼47쪽)



  김구와 여운형이라는 분이 죽은 앞뒤를 살던 할매와 할배는 아직 이 땅에 있습니다.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독재정권을 움켜쥐다가 사월혁명을 맞아서 부랴부랴 대통령 자리를 내려놓은 언저리에 살던 할매와 할배는 꽤 많이 이 땅에 있습니다. 군사쿠테타로 정치권력을 가로채서 그악스러운 독재를 일삼던 박정희라는 사람이 춤추던 무렵을 살던 아재와 아지매는 이 땅에 대단히 많습니다. 시골에는 새마을운동 부스러기가 짙게 남았으며, 오늘날 도시에도 새마을운동 찌끄러기가 곳곳에 그대로 있습니다.


  정치와 사회와 경제에서 권력을 주름잡는 이들이 거짓말로 역사책을 꾸미려 하면, 이제 이런 거짓말은 아주 쉽게 들통납니다. 이제는 ‘책’과 ‘자료’로도 참과 거짓이 환하게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사람(시골지기)’과 ‘학자(지식인·신하·관료)’와 ‘임금(권력자)’이 따로 놀았다면, 오늘날에는 사람 사이에 학자가 있고 학자 사이에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 있는 학자나, 학자 사이에 있는 사람은, 임금(권력자)이 저지르는 짓을 꼼꼼히 알아채서 낱낱이 밝힐 수 있습니다.



.. 이승만으로서는 기반이 없으니 그들을 등에 업을 수밖에 없었죠. 친일파들은 일제가 항복하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불안과 공포를 느꼈을 겁니다. 젊은 층은 대부분이 군대나 경찰에 입대해서 자기 전과를 숨겼어요. 이승만에게 줄을 선 사람들을 한번 보세요. 정권을 잡기 전부터 돈과 정보를 갖다주고, 라이벌을 죽여 주기까지 했죠. 이승만 주변에는 일제 치하에서 관리나 법관, 경찰을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이승만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고, 친일파들은 자기 구명을 할 수 있으니 절묘하게 궁합이 맞은 거죠 … 국회 프락치 사건이 터진 것이 1949년 5월 초였고, 6월에는 반민특위가 해체됩니다. 6월 26일에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죠. 이승만 정권 핵심부는 절묘한 공안 시스템을 가동해서 국회를 무력화한 것입니다 ..  (55, 59쪽)



  《한국 현대사의 민낯》이라는 조그마한 책에서 모든 이야기를 샅샅이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큰 실마리를 짚어 줍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는 우리를 둘러싼 숨겨진 그림자를 우리가 스스로 캐내어 밝힐 수 있는 실마리를 건드립니다. 우리가 스스로 눈을 뜨지 않기에 그동안 못 보거나 안 보던 그늘이 무엇인가 하는 실마리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참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참을 봅니다. 거짓을 보면서 거짓인 줄 알아채려 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이 마치 참인 줄 잘못 받아들입니다. 이를테면, 교과서에 나온 지식이라고 해서 이 ‘교과서 지식’이 다 옳을까요? 교과서 지식은 그저 ‘교과서에 적힌 지식’일 뿐입니다. 교과서를 엮는 사람이 어떤 정치권력 입맛에 맞게 춤추느냐에 따라서 교과서 지식이 달라집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엉터리 역사 교과서’가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한국에서도 얼마 앞서까지 ‘엉터리 역사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이런 지식으로 대입시험을 치르게 했고, 대입시험을 누구나 치러야 하는 지옥으로 굴레를 만들어서. ‘교과서 지식이 옳든 그르든 맞든 틀리든 따지지 말고 외우도’록 길들였어요.


  요즈음은 한국에서 엉터리 교과서가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엉터리 교과서는 아니어도 ‘참으로 담을 이야기’는 담지 못합니다. 아니, 안 담는다고 해야 맞겠지요. 엉터리는 아니어도 참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앞으로는 교과서도 참다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거듭나야 해요.



.. 미국 국무성 등이 파악한 박정희는 대단히 권력지향적인 인물입니다. 교사 생활을 하다가 일본 군인들이 칼 차고 다니는 게 매력적으로 보여서 일본군에 지원했을 정도니까요. 그때 나이가 스물네 살이었고 기혼인 상태였습니다. 두 가지 모두 만주군관학교 결격사유인데 혈서까지 써 가며 일본에 충성하기로 맹세합니다. 하지만 일본 패망 후 재빨리 변신해서 광복군에 이어 국군에 입대하고, 군부 내 남로당 세력의 핵심 책임자가 됩니다. 북에서 온 형의 친구 황태성을 처형하는 매정함도 보입니다 … 박정희는 미국에 자신의 반공정신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를 처형해 버리지요 … 세계적인 개발 붐과 저유가 정책이 이어지면서 경제가 발전한 건데, 이것을 모두 박정희 정권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는 거죠. 박정희가 한일 굴욕 회담 결과 일본으로부터 받은 건 고작 5억 달러입니다 … 독도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탈해 간 문화재 환수 문제, 사할린 동포 문제, 재일교포 법적 지위 문제 등은 거론조차 안 했어요. 오히려 굴욕 회담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정항을 계엄령을 내려 진압했습니다 ..  (80∼81, 83∼84쪽)



  권력바라기 정치꾼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권력을 바라면 그저 권력을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권력바라기 정치꾼은 권력을 손에 쥐면 으레 바보짓을 일삼습니다. 아니, 바보짓이라기보다 멍청한 짓을 일삼아요. 한 줌조차 안 될 그런 권력으로 마치 ‘모든 것을 다 거머쥐었다’는듯이 여기면서 독재를 일삼으려 합니다.


  가만히 보면, 권력바라기는 어쩔 수 없는지 모릅니다. 내가 거머쥔 권력을 다른 사람도 바라기 마련일 테니, 권력을 쥔 정치꾼은 다른 사람을 모두 맞수(적)로 삼아서 무찔러야 한다고 느낄 만해요. 독재가 될밖에 없습니다.


  정치권력이나 사회권력이나 경제권력이나 문화권력이나 교육권력이나 종교권력 모두, 혼자 무시무시한 힘을 휘둘러서 모든 사람이 이녁 앞에서 무릎을 꿇도록 짓누르려 합니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씨앗 한 톨을 손수 흙에 심는 사람은 권력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권력자가 총칼을 들이밀면서 시골지기더러 ‘너 말야, 내가 시키는 일만 해. 왜 씨앗을 심으려고 해? 씨앗 심지 말고 군복 입고 총 들어!’ 하고 윽박지른들, 시골지기는 이런 권력자 말을 안 듣습니다. 그저 한 마디 해 줄 테지요. ‘얌마, 네가 대통령놈이고 임금년이고 뭐고 말이야, 내가 이 씨앗을 심어서 열매를 거두지 않으면 굶어죽을 텐데, 나더러 총을 들라고? 총 들고 싶으면 너 혼자 들어!’ 하고요.


  권력이나 독재나 군대나 전쟁무기가 생기는 까닭은 ‘손수 씨앗을 심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나 독재자나 군인은 씨앗을 안 심습니다. 씨앗을 안 심기도 하고, 씨앗을 돌보지 않기도 합니다. 이들은 아이를 낳지도 않고, 아이를 돌보지도 않으며, 아이를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권력자가 아이를 낳은들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칠까요? 권력자는 독재 짓거리를 아이한테 보여주거나 가르칠 뿐일 테지요.


  역사를 읽은 사람이라면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역사를 더 깊이 파헤쳐서 더 많은 역사 지식을 알아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역사를 읽어서 스스로 깨달았다면, 이제 책은 그만 내려놓고, 씨앗을 심으러 가야 합니다. 어디로 가느냐 하면, 흙이 있고 풀과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내 보금자리가 달라지고, 내 마을과 고장이 달라지며, 내 나라가 달라집니다. 참민주를 이루려면, 뛰어나거나 훌륭한 ‘정치 지도자’가 나오기보다는, 우리가 다 함께 흙을 가꾸면서 씨앗을 심을 노릇입니다. 4348.3.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묶음표 한자말 205 : 부요富饒



아무것도 아니어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부요富饒한 사람이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부유(富裕)하다와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여기에서 ‘부유’ 대신 ‘부요’를 사용한 것은 재물이 많아 넉넉한 상태라기보다 내적 충만감으로 마음이 넉넉한 상태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강현정·전성은-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메디치,2015) 85쪽


 부요富饒한 사람이다

→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다

→ 넉넉한 사람이다

→ 너그러운 사람이다

→ 넓은 사람이다

 …



  이 보기글을 보면 ‘부요’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부유’와는 다른 뜻이기에 이 한자말을 쓴다고 밝히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말하는데, 국립국어원 사전을 살피면, “부요(富饒)하다 = 부유(富有)하다”로 적습니다. ‘富裕’가 아닌 ‘富有’와 같은 한자말이라고 나와요.


  그런데,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이 보기글이든 국립국어원이든, 한자를 놓고 말놀이를 합니다. 그리고, 세 가지 한자말을 살피면, 셋 모두 “넉넉하다”를 뜻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한자말을 쓰던 저 한자말을 쓰든 그 한자말을 쓰든, 모두 한국말로는 ‘넉넉하다’입니다.


  한국말 ‘넉넉하다’는 “마음이 가없다”와 “돈이 아주 많다”와 “보기에 많이 있다”를 뜻합니다. 세 가지를 한 낱말로 나타내요. 그러니, 이 보기글에서는 한국말 ‘넉넉하다’를 쓰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이 보기글을 쓴 분은 아무래도 어느 한 가지를 더 콕 집어서 말하려 했지 싶어요. 그러니, 굳이 한자말을 갖고 이래저래 골머리를 앓았으리라 봅니다. 그러면, 이때에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다”처럼 적거나 “너그러운 사람이다”처럼 적으면 됩니다. ‘너그럽다’는 “마음이 가없다”를 더 짙게 가리키는 낱말이니까요.


 부요한 생활을 누리다

→ 넉넉한 삶을 누리다

→ 삶을 넉넉히 누리다

 집안이 부요해서 돈 걱정은 안 하고 살았다

→ 집안이 넉넉해서 돈 걱정은 안 하고 살았다

→ 집안이 좋아서 돈 걱정은 안 하고 살았다


  더 헤아린다면, “마음이 넓다”나 “너그럽다”를 쓰면 될 뿐 아니라, “마음이 넓다”나 “마음이 따스하다”나 “마음이 믿음직하다”나 “마음이 포근하다”나 “마음이 좋다”처럼 쓸 만합니다. 4348.3.2.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무것도 아니어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마음이 넉넉하다


부요(富饒)하다 : = 부유하다

   - 부요한 생활을 누리다 / 집안이 부요해서 돈 걱정은 안 하고 살았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 글 읽기

2015.2.14. 작은아이―춤추는 한글



  작은아이는 틈틈이, 그러니까 며칠에 한 차례쯤 글놀이를 한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글놀이를 할 적에 함께 할 듯 말 듯하면서 안 한다. 그래도 가끔 글놀이를 하는데, 그동안 어깨너머로 본 것이 있는지, 제법 시늉을 낸다. 다만, 시늉내기일 뿐, ‘춤추는 한글’이다. 그래, 춤을 추려는 한글이로구나.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글돌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꽃밥 먹자 154. 2015.2.25. 살갈퀴 한 점



  아이들과 살짝 들마실을 하며 뜯은 살갈퀴를 짜장밥에 얹는다. 여러 날 짜장면을 노래한 작은아이 바람대로 짜장면을 볶은 뒤, 밥과 함께 꽃접시에 놓고는, 함께 뜯은 살갈퀴 한 점을 살포시 얹는다. 너희가 알는지 모르겠으나, 짜장면 볶을 적에 살갈퀴를 썰어서 잔뜩 넣었지. 날풀로도 한 점 얹어서 먹으라고 몇 포기 남겨 두었단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