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래 108. 소꿉놀이는 언제나



  소꿉놀이는 언제 어디에서나 합니다. 장난감이 있어야 하는 소꿉놀이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하는 소꿉놀이입니다. 동무가 있어야 하는 소꿉놀이가 아니라, 꿈을 꾸면서 하는 소꿉놀이입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아직 볕이 따뜻한 늦가을에 평상으로 온갖 소꿉을 옮겨서 노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 멋진 놀이는 참말 어느 먼 옛날부터 흘러왔을까 하고 되새깁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즐겁게 웃도록 북돋우는 소꿉놀이는 어쩌면 어른들이 짓는 살림살이가 ‘살림놀이’라는 대목을 알려주면서, 즐겁게 놀이하듯이 홀가분한 마음이 되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구나 하고 느껴요. 너희도 놀고 어버이도 같이 놀지.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넋/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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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설거지하는 수세미가

다 닳아서

뜨개질을 한다.


빛깔 고운 실을 고르고

내 손에 맞는 바늘 찾아

어머니한테서 배운 대로

한 코씩 잡는다.


예전 수세미는

꽃이었으니

새 수세미는

별로 할까?


한 벌 다 뜨고 나서

동생하고

한 벌씩 더 뜬다.


설에

이모하고

할머니하고

큰아버지한테

하나씩 드려야지.



2016.2.2.불.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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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72] 내 이름



  흙 만지며 살던 사람은

  먼먼 옛날부터

  이름만 있네



  이 나라 발자취를 곰곰이 돌아보면, ‘한문 쓰던 이’만 중국을 흉내내어 ‘성’이나 ‘자’나 ‘호’를 썼어요. 흙을 만지는 사람은 언제나 ‘이름’만 썼어요. 이름만 쓰던 흙지기는 ‘한문을 빌어 중국 성을 따서 쓰던 권력자’한테 짓눌리던 설움을 풀려고 ‘한문을 비는 중국 성을 돈으로 사서 붙이는 일’을 개화기 언저리부터 했고, 이제는 누구나 ‘한자로 짓는 성’이 있어요. 아기가 태어나면 ‘한자로 짓는 성’을 안 붙여서는 주민등록을 할 수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인터넷을 하건 그저 이웃이나 동무로 사귀건, 허물없이 수수하게 ‘이름’을 저마다 새롭게 지어서 나누어요. 이른바 ‘닉네임’이든 ‘아이디’이든 무엇이든, 이러한 이름을   나한테 스스로 붙이는 가장 사랑스러운 숨결로 여겨요. 내 이름은 언제나 내 삶을 밝히는 노래이고, 서로 부르는 이름은 언제나 서로 아끼는 살림살이가 깃든 웃음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4349.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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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서 시집 읽기



시집 한 권 꺼낸다.

큰아이는 그림책을 펼친다.

작은아이는 창밖을 본다.


대화역서 고속터미널역 가는

기나긴 전철길


어느새 두 권째 시집 꺼내고

작은아이는 누나 그림책 가로챈다.


둘이 아옹다옹 툭탁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랫동안 앉으니 힘들단다.


이제 세 권째 시집

두 아이 노는 모습 보다가

시 한 줄 읽다가

아이들이 묻는 말에 대꾸하다가

시 두 줄 읽다가


문득 고개 들어 둘레를 살피니

곧 내릴 곳이네.

찬찬히 짐을 꾸린다.

고흥으로 돌아갈 버스 타자.



2015.11.30.달.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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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6-01-31 23:46   좋아요 0 | URL
2월에는 한 번 다시 바깥마실을 아이들을 데리고 해야 할 텐데
찻삯부터 아직 마련을 못 하네요.
아이들은 기나긴 버스를 타고, 전철도 타 보고
큰아버지나 할머니나 이모나
반가운 어른들을 만나면서 아주 신나게 놀아요.

고흥은 읍내조차 한국에서 대단히 외져서 고즈넉한
재미난 곳이에요.

그나저나 서울에 가면...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다니거나 달리거나
노래하거나 쿵쿵거릴 수 없으니
`얼른 집(고흥)으로 돌아가자`고 노래합니다.. ㅋㅋㅋ

비로그인 2016-02-01 06:4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그림인 듯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흐뭇한 표정입니다....

2016-02-01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진노래 107. 논둑에 피어나는 꽃



  가을걷이를 마친 논은 빈논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 빈논에 늦가을꽃이 가만히 고개를 내밀어 꽃봉오리를 터뜨립니다. 들에서 피는 들국이기도 하고, 산에서 퍼진 산국이기도 한, 작고 노란 꽃송이는 퍽 먼 데에까지 꽃내음을 물씬 퍼뜨립니다. 이 아이들을 잘 훑어서 말린 뒤에 차로 끓여서 마시기도 하고, 차로 끓여서 마시지 않더라도 논길을 걷다가 짙은 꽃내음을 들이키면서 온몸으로 노오란 숨결을 받아들이기도 해요. 들에 피기에 들꽃이라면, 논에 피기에 논꽃이 될까요? 늦가을 논꽃은 ‘아직 꽃내음이 여기에 있어요’ 하고 넌지시 속삭입니다. 겨울 첫머리까지 눈부신 꽃송이를 퍼뜨리는 논꽃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4349.1.2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말/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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