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남자가 무슨 김장이야?”
[남자도 여자도 아닌 1] ‘사람으로 사는 사랑’ 꿈꾸기


... (이 글을 쓰는 뜻) 곁님·10살 아이·7살 아이하고 함께 살림을 짓고 시골에서 살며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일을 하는 사내(아저씨)입니다. 시골 폐교를 빌려서 도서관학교로 가꾸면서, 우리 집 두 아이는 제도권학교 아닌 ‘우리 집 학교’에서 즐겁게 가르치고 함께 배웁니다. 어버이로서 두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살림입니다. 밥·옷·집을 손수 지으며 누리고 나누자는 마음으로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익히려는 사랑을 길어올리려 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아이키우기(육아)·살림(평등)·사랑(평화)’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으로 사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여성혐오’도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길도 아닌, 새로운 사람길을 밝혀 보고 싶어요 ...


  아직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쓰던 무렵입니다. 열 살이던 때라고 떠올라요. 그러니 국민학교 3학년이었겠지요. 저는 인천이라는 고장에서 나고 자랐어요. 시골 아닌 도시이지만, 도시에서도 해마다 가을이면 집집마다 부산했어요. 마을마다 시끌벅적했지요. 김장을 하고 김치독을 묻느라 부산하고 시끌벅적했답니다.

  저는 아홉 살 무렵까지는 마냥 뛰어논다는 생각이었지만, 열 살부터는 철이 좀 트였어요. 아홉 살까지는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며 부산하실 적에 곁에서 이모저모 거들자는 생각을 거의 못 했다면, 열 살부터는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며 여러 날 부산하실 적에 ‘어머니가 이렇게 일하시는데 어떻게 나가서 놀지?’ 하고 생각했어요. 동무들이 불러도 못 나갔지요.

  두 마음이 흘렀어요. 하나는 집에서 어머니를 돕자. 둘은 밖에서 동무들하고 놀자. 이때 저는 늘 어머니를 돕자는 마음이 이겼어요. 어머니는 저더러 “안 도와도 돼. 나가서 놀아.” 하셨지만, 제가 나가지 않고 어머니 곁을 맴돌며 “이거 나를까요?”라든지 “이 그릇 설거지해요?” 하고 여쭈면 “응, 그래.” 하면서 자잘한 심부름을 맡기셨어요. “저기 소금 좀 여기다 부어.”라든지 “물 좀 가져와.”라든지,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여러모로 손을 쓰느라 바쁜데다가 손이 고춧가루 양념으로 물들어 다른 것을 만질 수 없는 터라 ‘아주 작은 손’조차 도움이 되었으리라 느껴요. 이때에 ‘부지깽이’조차 어떻게 바쁜 일철에 돕는다고 하는가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이런 국민학생이던 1980년대 첫무렵을 보내는데, 가을 김장철이면 학급마다 가시내가 꽤 많이 학교를 빠졌어요. 제가 6학년이던 해(1987년)까지도 적잖은 가시내는 김장철에 어머니 일손을 거들어야 하기에 며칠 동안 학교에 못 나왔어요. 그저 가시내이기 때문에 집안일을 거든 셈이지요. 사내 가운데 ‘어머니 김장 일손을 거들려고 학교를 빠지는 일’이란 없었습니다.

  저는 밤 늦게까지, 또 새벽에도, 어머니 곁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김장을 돕는데, 어머니가 하루 내내 혼자서 엄청난 김장을 하셔야 할 모습을 볼 적에 차마 발길이 학교로 안 떨어졌어요. 저더러 얼른 학교로 가라고 내쫓으셨지만, 첫 수업을 하기 앞서까지 버티며 일손을 도우려 했습니다. 무거운 걸음으로 학교에 가는데 가슴이 얼마나 무겁던지요. 겨우 학교에 가서 걸상에 앉으니, 마침 옆이나 둘레에 빈 자리를 봅니다. 첫 수업을 하며 담임교사가 출석부를 부르는데 열 몇 가시내가 안 왔어요. 학교에 안 온 아이하고 같은 마을에 사는 아이가 말합니다. “선생님, 걔는 오늘 김장 거들어요.” “김장 결석인가? 그래.” ‘김장 결석’은 짧으면 사흘, 길면 닷새입니다.

 김장을 거드느라 여러 가시내가 빠진 모습을 보며 생각합니다. ‘저 가시나는 어머니를 도우려고 안 나왔구나(또는 못 나왔구나). 나도 좀 씩씩하게 그냥 남아서 도울걸.’ 하고요. 첫 교시를 마친 뒤 담임교사한테 갑니다. 말씀을 여쭙니다.

  “선생님.” “왜?” “어머니가 김장으로 너무 힘드신데, 집에 가서 김장을 도우면 안 될까요?” “뭐? 남자가 무슨 김장이야? 너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 말 하는 거지!”

  담임교사는 출석부로 머리통을 내리칩니다. 출석부로 얻어맞았어도 그리 아프지 않습니다. 되게 세게 맞았지만 아프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제 마음은 이때 여러 가지로 불타올랐어요. 차마 담임교사 앞에서 이 말을 터뜨리지는 못했으나, 속으로 이렇게 외쳤어요. ‘선생님은 김치 안 먹어요? 김치를 먹으면서 김장이 여자만 하는 일이에요?’ 하고요.

  이 땅 모든 사내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여보세요, 우리 사내들, 이녁은 김치를 먹나요 안 먹나요? 김치를 먹는다면, 그대는 김치를 담그냐요 안 담그나요? 김치를 먹는 그대들은 김치를 담글 줄 아나요 모르나요? 김치를 좋아하는 그대는 소매 걷어붙이고 즐겁게 김치를 담그는가요 안 담그는가요? 2017.5.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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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노래 삶노래 . 마을숲



도롱뇽 개구리 구렁이

모두 우리 이웃입니다


소쩍새 꾀꼬리 뻐꾸기

모두 우리 동무예요


나리 달래 머루

모두 우리 아이입니다


잣 솔 오리 밤 느티

모두 우리 어버이예요


돌멩이랑 바위도

시냇물이랑 샘도

송사리랑 가재랑 다슬기도

서로 사랑 어린 숲입니다



2017.4.30.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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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노래 삶노래 . 사진을 찍네

 

아이 참 즐거워서,

이야 아주 멋져서,

까르르 웃음이 터져서,

뚝뚝 눈물을 떨구면서,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하늘숨을 마시면서,

바람노래를 부르면서,

나한테 선물하면서,

너한테 말을 걸면서,

우리 함께 손을 잡으면서,

한 눈을 고이 감으면서,

한 손을 새로 놀리면서,

사진을 찍네.

 

마음에 그림을 그리네.

 

2017.4.30.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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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169. 뜨개이불


  곁님이 한 땀씩 뜨개질을 해서 지은 이불을 빨아서 말립니다. 두 아이는 이 뜨개이불 밑으로 들어가서 해를 가리며 놉니다. 아이들 놀이는 어른이 시키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절로 마음에서 우러나오기에 하지요. 어버이로서 오래도록 품을 들여 살가이 빚은 살림이 있고, 아이들은 어버이가 짓는 살림을 오래도록 지켜보면서 누리는 놀이가 있어요. 두 가지가 어우러지면서 한 가지가 피어납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진을 언제 왜 찍느냐 하고 묻는다면, 바로 이러한 결을 느끼는 자리에서 저절로 우러나서 찍는다고 이야기합니다. 2017.4.28.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넋/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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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379] 곁에 둘



  씨앗 한 톨

  호미 한 자루

  연필 쥔 손



  무엇을 곁에 두어야 할까 하고 헤아려 보면, 언제나 첫째로는 씨앗이 떠오릅니다. 다음으로 호미 한 자루하고 연필을 쥔 손이 떠올라요. 씨앗을 심으며 열매를 맺는 살림을 짓기에 하루가 흘러요. 호미로 땅을 북돋우고 연필로 생각을 가꾸면서 사랑이 피어나고요. 2017.4.27.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넋/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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