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834


《알바 고양이 유키뽕 5》

 아즈마 카즈히로 글·그림

 김완 옮김

 북박스

 2004.3.11.



  열네 살인 1988년부터 배움수렁(입시지옥)에 사로잡힌 터라 06∼23시를 오롯이 배움터에 묶였는데, 열네 살이 되기 앞서까지 날마다 치른 일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하루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오면 나들간에 벌렁 드러눕습니다. 저랑 언니는 구두랑 버선을 벗기고 한참 팔다리에 등허리를 주무릅니다. 이렇게 하고서야 비로소 우리 아버지는 발을 씻고 잠자리로 갔습니다. 힘들게 일하여 돈을 버는 어른을 깍듯이 모셔야겠습니다만, “나는 앞으로 저런 회사원이 될 마음은 터럭만큼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터에 오래 머물면 돈을 더 벌까요? 돈을 더 벌면 우리 삶은 얼마나 더 아름답거나 기쁠까요? 《알바 고양이 유키뽕 1∼15》에는 ‘곁일(알바)을 하며 돈을 벌어 살림을 건사하는 고양이’가 나옵니다. 고양씨는 얼결에 일자리를 찾고, 일터마다 “응? 고양이가 일을 한다고?” 하면서 놀라지만, 웬만한 사람보다 일을 잘하고, 사람은 도무지 일을 못하는 곳에서까지 일을 합니다. 다만 고양씨는 ‘자리잡기(정규직 노동자·회사원)’는 안 합니다. 일을 많이 해서 돈을 많이 벌더라도 일을 잔뜩 하느라 지친 터라, ‘힘들여 번 돈’은 ‘지친 몸을 달래는 데’에 쉽게 나가거든요. ‘곁일 고양이’는 ‘일자리·돈’을 찾더라도 ‘하루(시간)’를 넉넉히 누리고 싶습니다. ‘오늘’을 누려야 삶이 즐겁거든요.


#ユキポンのお仕事 #東和広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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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828


《천하무적 홍대리 2》

 홍윤표

 일하는 사람들의 작은책

 2000.1.15.



  일이란 누구나 어디에서나 합니다. 우리말 ‘일’은 ‘일다’라는 낱말을 이루는 바탕입니다. 가만히 있을 적에는 아직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으나, 문득 움직일 적에 비로소 무엇이 나타나고, 이렇게 나타나기에 ‘일’이라 하는데, ‘움직이다’라는 우리말에서 ‘움’은 ‘움트다’에서 가리키는 ‘움’이에요. 새롭게 나오려고 하는 작은 숨결인 ‘움’이기에, “새롭게 나오는·움이 트려고 하는” 결이나 모습이 ‘움직이다’이고, ‘일·일다’도 처음으로 이루면서 나타나는 모든 모습이며 몸짓을 그려요. 이런 말결을 하나하나 짚노라면 ‘일하다’라는 오랜 낱말은 ‘돈벌이(돈을 벌기)’로만 좁게 바라볼 수 없습니다. 남이 시킬 적에는 ‘심부름’일 뿐이요, 스스로 일으키거나 일어나도록 마음이며 뜻이며 힘을 들이기에 ‘일·일하다’라 할 만해요. 《천하무적 홍대리》는 1998년에 처음 나오고, 2000년에 뒷이야기가 나오며, 다섯째까지 나오다가 멈춥니다. 수수한 일꾼(회사원)이 수수한 일터(회사)에서 보내는 하루를 수수하게 그리는 수수한 이야기는 적잖이 눈길을 끌었고, 연속극에서 줄거리를 훔쳐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림님이 일터를 그만두고 “만화만 그리면서 프랑스로 그림을 배우러 다녀오”는 동안, 오히려 이야기는 빛을 바랬습니다. ‘수수한 이야기’는 멋진 붓끝이 아닌 ‘수수한 오늘’을 스스로 일꾼(회사원)으로 살아갈 적에 저절로 샘솟기 때문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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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7.29.

숨은책 853


《민요기행》

 신경림 글

 한길사

 1985.9.15.



  스무 살이던 1995년 여름에 ‘수람(장학퀴즈 출연자 모임)’이라는 곳에서 배움빛(학술부장)을 맡으며 이레마다 책을 하나씩 골라 함께 읽고서 생각을 살찌워 보자고 했습니다만, ‘책배움모임’에는 늘 서넛∼대여섯만 나왔고, 이 모임이 끝날 즈음부터 북적북적하더니, 술자리가 무르익는 저녁이면 쉰이 넘고, 백 사람도 가볍게 넘었습니다. 책 한 자락 함께 읽으면서 배우는 모임은 따분하되, 술그릇을 부딪히며 수다 떠는 자리는 신나는가 봅니다. 《민요기행》을 함께 읽자고 하던 날, 배움모임은 다른 때처럼 썰렁했고, 뒷풀이 술자리에 느즈막이 나온 윗내기(선배)가 “그런데 요즘 시대에 ‘민요’는 좀 그렇지 않냐? 누가 민요를 듣냐?” 하고 묻더군요. “‘민요’는 먼 옛날 노래가 아니라, 보금자리를 가꾸며 일하는 사람이 아이한테 물려주는 살림노래입니다. 옛날처럼 들노래를 더는 안 부르더라도, 우리 스스로 하루를 새기면서 스스로 노래를 지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고 대꾸했으나, 윗내기는 피식 웃기만 하더군요. 《민요기행》에는 ‘술수다’가 으레 곁따릅니다. 술이 나쁘지는 않되, 삶·살림·사랑을 잊으면 넋도 잃습니다.


이곳도 농업의 기계화 바람은 예외가 아니어서 70퍼센트 이상이 기계농업이다. 농약의 피해도 엄청나서, 작년까지만 해도 그가 택시로 실어나른 농약 중독자가 4∼5명이 되는데, 농약 살포 기계와 기술이 나아져서 올해에는 훨씬 줄었다 한다. 박태산 기사는 이 고장도 관광지로 개발되기를 희망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또 서울사람들이 몰려들어 짓밟을 일을 걱정하기도 했다. (284쪽/198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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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7.29.

숨은책 851


《충청남도 민담》

 최운식 엮음

 집문당

 1980.10.30.



  ‘민담’이란 낱말을 처음 듣던 날, “무슨 담을 민다는 소리인가?” 하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어린이한테는 낯설며 어려운 한자말입니다. 그러나 숱한 이들은 어린이가 알아듣기 수월할 뿐 아니라, 먼 옛날부터 흐르거나 이은 우리말을 오히려 멀리합니다. 글이나 책을 쓰는 이들은 ‘민담·속담·설화·신화·민화’ 같은 일본스런 한자말을 줄줄이 읊습니다. 우리말 ‘이야기·얘기·옛말·수다’는 ‘학문적·학술적’이지 않다고 여깁니다. 《충청남도 민담》은 뜻있게 나온 꾸러미입니다. 엮은이는 충청남도 곳곳을 다니면서 ‘글 아닌 말로 살림을 짓는 어르신’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다만, 1980년 언저리에도 이미 시골 할매할배는 보임틀(텔레비전) 말씨에 물들었고, 흙두레(농협)에서 쓰는 말씨에 젖었습니다. 말끝 빼놓고는 충청말이라 여길 대목을 찾기가 어려워요. 아마 앞으로는 더더욱 시골말이 사라질 테고, 머잖아 마을말·고을말뿐 아니라 ‘마을얘기·고을수다’도 자취를 감출 만합니다. 손수짓기를 잊으면 낱말도 이야기도 손수 안 짓거든요.


“밥이라니? 에따, 그게 지지리다.” “지지리가 아니구유 사람유. 그게 어디 지지리여. 내가 봤다구. 사람이라구,” “그러믄 니가 협조를 좀 해다우. 나도 그놈을 밤새 태워 가지구 왔음께 원수를 갚으야겠쓴게.” (21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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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7.29.

숨은책 850


《17세의 모순》

 백시영

 범우사

 1982.6.30.첫/1992.4.30.9벌



  예전에는 흔히 했으나 이제는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여기는 몸짓이 있는데, 요즈음이라 함부로 하면 안 되는 몸짓이 아닌, 예전부터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할 몸짓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짓은, 사람이 스스로 살림을 짓는 하루하고 등지면서 불거졌습니다. 위아래(신분·계급)가 나타나면서 주먹다짐이 생깁니다. 위아래가 없는 곳에는 어깨동무가 있고, 어깨동무하는 사이에서는 깎음말도 낮춤말도 없어요. 스스로 높이고 서로 돌보는 말씨가 있습니다. “국회의원 장영달 증정” 같은 글씨가 곳곳에 찍힌 《17세의 모순》을 보면서, ‘국회의원이 책을 읽기도 하는구나’ 하고 여기다가, ‘여학생 찬미’가 자꾸 흐르는 줄거리에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재미’도 아닌 ‘잔재미’라 하는 대목부터 얄궂고, ‘여학생’을 노리개처럼 바라보면서, ‘남학생’도 나란히 까는, 이러면서 글쓴이 스스로 갉아먹는 글을 1982년에 책으로 선보였는데, 글쓴이는 ‘숙명여고 국어 교사’였다더군요. 순이도 돌이도 꽃이고, 아이도 어른도 꽃입니다. 누구나 꽃입니다만, 노리개도 장난감도 아닙니다. 이런 책을 ‘드림’으로 사다 나른 벼슬꾼은 우리 민낯입니다.


여학생은 잔재미가 있어 좋다. 같은 말이라도 방긋 웃으며 말을 붙이니 어찌 정들지 않겠는가? 복도에서 스칠 때마다 인사다. 귀엽게 생긋 웃으며 눈만 깜짝, 고개는 숙일 듯 말 듯, 아무리 화나는 일이 있어도 귀여운 막내딸처럼 재롱부리듯 대하는 이 여학생들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145쪽)


+


어딘가 연고지를 찾아서 나섰을 것이다

→ 어딘가 아는곳을 찾아서 나섰으리라

32쪽


나의 생활이 있고, 나의 생활은 나의 힘으로 열어젖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 내 삶이 있고, 내 삶은 내 힘으로 열어젖혀야 하는 줄 깨닫는다

42쪽


이처럼 공포의 대상이 되었을까

→ 이처럼 무서울까

→ 이처럼 두려울까

56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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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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