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5.18.

숨은책 529


《황금의 꽃 1》

 이현세 글·그림

 팀매니아

 1995.10.7.



  어릴 적에는 그림꽃책(만화책)을 보면서 왜 붓결이 일본스러운가를 잘 몰랐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일본 그림꽃을 마치 우리 그림꽃인 듯 꾸미거나 바꾸어서 팔기 일쑤였어요. 어린이 주전부리도, 어른들이 먹거나 마시거나 즐기는 살림도 온통 일본 살림살이를 베끼거나 따오거나 훔쳤습니다. 앞서거나 좋아 보이니 배울 만한데, 베낌·따옴·훔침은 배움하고 가장 멀어요. 배울 적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터를 살펴 새로짓는 길로 나아갑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어쩐지 우리스럽지 않은 이야기요 그림이라 느꼈는데, 가만 보면 총칼로 짓눌리던 지난날 살림살이를 1980∼90년대에도 털지 못한 우리 민낯이에요. 2020년대라고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서 그림님이 스스로 달라지려고 몹시 애쓴다고 느꼈지만 웃사내(마초)다운 결을 놓지 않아요. 그림꽃님(만화가)을 법으로 다스리려던 《천국의 신화》를 볼 적에도, 돈에 얽매인 푸른별 속살을 다룬 《황금의 꽃》을 볼 적에도, 그림님은 웃사내스러운 붓끝을 폅니다. 이 붓끝이 나쁘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고스란히 우리 민낯입니다. 어깨동무가 아닌 돈질·이름질·힘질이 물결치는 판이고, 이를 그림꽃에 낱낱이 담았을 뿐이에요. 그저 그렇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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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5.16.

숨은책 527


《北傀의 南侵態勢》

박정희 국가비상사태선언

문화공보부

1971.12.6.



  서슬퍼런 나라에서 서슬퍼런 어른들 윽박질을 들으면서 자라며 늘 궁금했어요. 북녘은 사람들이 굶주려도 싸움연모(전쟁무기)에 쏟아붓고 싸움질만 시킨다지만, 남녘도 똑같아 보여요. 북녘이 싸움연모를 멈춰야 한다고 외치는 남녘이지만, 막상 남녘도 싸움연모에 더 돈을 퍼부을 뿐, 둘은 나란히 달렸어요. 남북녘 두 나라는 서로 미워하고 손가락질하고 총칼을 들이대도록 사람들을 내몰고 길들인 셈이지 싶더군요. 《北傀의 南侵態勢》처럼 얇은 사진책을 으레 보았습니다.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서는 이런 사진이나 글을 읽고서 반공독후감을 쓰고 반공포스터를 그리라 시켰어요. 임금자리를 지키려고 ‘국가비상사태’란 말을 지어내어 퍼뜨렸겠지요. 사람들 마음에 두려움·걱정을 심고 스스로 싸움박질이 일어나도록 미움·불길을 일으켰겠지요. 총칼은 사랑이 아닌 싸움이자 죽음으로 이어주는 길입니다.


이 책자를 보시는 분에게 : 3. 이 책자는, ‘국가비상사태선언’의 올바른 인식과그 실천을 위한 정부의 특별홍보계획의 하나로서, 북괴의 남친태세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그 소름끼치는 전쟁도발의 흉모를 사전에 분쇄하는, 강철같은 국민총화를 이룩하기 위한 전국민적 자각과 분발을 촉구하고자 하는데 근본목적이 있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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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5.16.

숨은책 526


《朝鮮野史全集 卷二》

 윤백남 엮음

 계유출판사

 1934.7.25.



  나라 목소리를 갈무리한 자취라 ‘정사(正史)’요, 나라 목소리가 아닌 자취를 갈무리해서 ‘야사(野史)’라고 합니다. 나라에서 하기에 옳다(正)고 내세우면서 ‘나라자취’란 이름으로 들사람(野) 목소리를 뒷전으로 두곤 합니다. 틀을 지키자니 사람들 눈길이나 마음을 가두려 하지요. 《朝鮮野史全集 卷二》는 나라밥을 먹는 쪽에서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갈무리합니다. 뒷이야기나 숨은얘기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들노래나 들이야기까지는 아니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정사·야사’ 모두 임금과 벼슬아치를 둘러싼 이야기에서 그치거든요. 나라자취조차 ‘이 나라가 다스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들여다보지 않고 갈무리하지 않습니다. 나라자취가 못미더워서 뒷이야기를 남기는 쪽에서도 ‘나라를 이룬 수수한 사람들이 수수하게 짓고 돌보며 누리는 하루’를 살펴보지 않고 갈무리하지 않아요. 1934년에 나온 ‘야사’뿐 아니라 그 앞뒤에 나오는 숱한 ‘야사’도 한문투성이였습니다. 이 땅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고 흙을 일구어 살림하고 옷·밥·집을 손수 건사하는 하루를 ‘우리말 아닌 한문’으로 얼마나 그려낼 만할까요? 들사람이 들살림을 지으며 들아이한테 들노래를 물려주고 들꽃을 돌보는 들빛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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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25


《大百科事典 總索引》

 편집부 엮음

 학원사

 1965.10.5.



  어릴 적에 살림숲(백과사전)을 즐겨읽었어요. 어린이가 읽는 살림숲으로 영 모자라다 싶으면 ‘어른 살림숲’을 폈는데, 어른이 읽는 책은 아주 깨알글에 한자가 까맣지만 막상 더 깊거나 넓게 다루지는 못했다고 느꼈어요. 책에 담은 갈래는 많고 두툼하지만 정작 하나하나를 놓고는 스치고 지나가듯 다루었지 싶어요. 온누리 모든 살림살이를 빼곡하게 담을 뿐 아니라 꼼꼼하게 들려주기는 어려울는지 모르지만, ‘모든 살림을 다 안 담’더라도 ‘애써 담은 살림은 다룰 수 있을 만큼 깊고 넓게’ 다루면 좋을 텐데 싶어 늘 아쉬웠어요. 《大百科事典 總索引》은 ‘학원사 대백과사전’이 나오고서 덧책으로 나온 판입니다. 이름 그대로 ‘찾아보기’입니다. 어릴 적에는 이런 살림숲이 있는 줄 몰랐고, 2001년부터 어린이 낱말책을 엮는 일을 할 적에 일터지기님이 “얘야, 헌책집에 가면 학원 백과사전을 꼭 사오너라.” 하고 얘기했기에 비로소 알았습니다. 학원사 김익달 님은 1952년에 《學園》이란 잡지를 냈고 이듬해부터 ‘학원 장학회’를 꾸렸는데, 일터지기님이 바로 이 ‘학원 장학금’을 받으셨어요. 학원사에서 1958년에 낸 ‘살림숲(백과사전)’은 우리 손으로 이룬 첫 살림숲이라 할 만합니다. 요새 들추어도 빛날 만큼 알차고요.


ㅅㄴㄹ


'학원사'와 '백과사전' 이야기를

월간조선에서 다룬 적 있네요.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200910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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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길 2021.4.26.

살림꽃 5 그림



늘 바라보는 대로 그린다. 늘 바라보지 않는데 그릴 수 없다. 늘 살아가는 대로 그린다. 늘 살아가지 않으니 그리지 못한다. 늘 생각하는 대로 그린다. 늘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릴 길이 없다. 늘 사랑하는 대로 그린다. 좋기에 그리거나 안 좋기에 그리지 않는다. 스스로 늘 사랑하는 숨결을 고스란히 그린다. 무엇이든 그린다. 곁에 두기에 그리고, 보금자리를 이루기에 그리고, 이루고 싶어서 나아가는 길이니 그리고, 마음에 담다가 어느덧 사랑하니까 그린다. 아이가 무엇을 그림으로 담을 적에 아름답고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울까? 어른으로서 무엇을 곁에 두는 살림을 짓고 어떻게 보금자리를 꾸리면서 아이한테 어떤 삶빛을 보여주면서 물려줄 마음인가? 아이가 ‘하늬녘(서양) 돌얼굴(석고상)’을 뻔히 바라보면서 베끼도록 그림을 가르칠 셈인가, 아이 스스로 오늘 이곳에서 하루를 사랑하는 마음을 눈빛을 반짝이면서 신나게 그리고 품도록 손을 잡을 생각인가? 무엇을 읽고, 무엇을 읽으라고 건네는가?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그리도록 속삭이는가? 다만 좋은 그림도 나쁜 그림도 없을 뿐이니, 오로지 사랑을 마음에 담아서 싱그럽고 슬기로우면서 즐겁게 생각을 품는 실마리요 징검돌이 될 빛을 그리도록 북돋우면 늘 넉넉하겠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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