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6.7.

숨은책 483


《wolf in the snow》

 Matthew Cordell

 Feiwel & Friends 2017.



  열다섯 살이 저물던 1989년에 영어 동화책을 처음으로 읽었습니다. 배움책만으로는 모자랐고, 인천에서 여러 책집을 돌며 시사영어사에서 낸 ‘빨강 겉그림인 작고 얇으며 값싼 영한대역본’을 장만했어요. 잘 뒤지면 1970년대에 나온 책을 1000원에 살 수 있었습니다. 1992년에 헌책집을 다니면서 이보다 눅은 200원이나 500원에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역본 아닌 원서’를 살 수 있어 고마웠어요. 대역본은 옆에 영어를 적으니 섣불리 못 옮기지요. 이와 달리 여느 옮김책(번역본)은 어떤 영어나 바깥말을 우리말로 옮기는가를 안 밝히기 마련이라 이웃나라 글님·그림님이 어떤 마음과 숨결을 글·그림에 심었는가를 읽기 어렵곤 합니다. 2017년에 《wolf in the snow》로 나온 그림책을 우리나라에서 2018년에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로 옮겼는데, 영어 그림책하고 딴판인 이름입니다. 책이름 탓에 줄거리를 아예 잘못 보기 좋겠더군요. 눈밭 늑대가 얼마나 의젓하고 상냥하고 씩씩하고 착하고 참하며 따스한가를 들려주는 그림책에 ‘용감한 소녀’란 이름을 왜 붙였을까요? 꼭 바깥말을 배워야 한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이웃말을 즐거이 배우며 어깨동무하면 좋겠어요. ‘딴나라’ 아닌 ‘이웃나라’로 여기며 손잡으면 좋겠어요.


ㅅㄴㄹ


비룡소에서 책이름을 엉망으로 붙인
그 그림책은 '숨은책'이라기보다
'죽은책'이라고 느낀다.

책을 왜 죽이는가?
출판사 대표와 편집부 사람들
모두 눈밭에 코를 박고
늑대한테 잘못했다고
두 손 싹싹 빌고
절을 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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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숲집놀이터 256. 석 마디



열한 살 작은아이하고 자전거를 타고 녹동나루로 찾아가서 다리를 쉴 곳을 찾아서 앉는데, 녹동나루는 놀러오는 서울내기가 많은 구경터인 터라 시끌시끌하다. 사람이 많으면 갖은 소리가 귀로 스치기 마련이지만, 시끌시끌한 구경터에서는 새된 소리가 거슬릴 만큼 성가시더라.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젊은 어버이 입에서 “하지 마! 뛰지 마! 가지 마!” 이 석 마디가 끊이잖고 튀어나온다. 이쪽 어버이도 저쪽 어버이도 매한가지이다. 아이들은 뭘 해야 할까? 어른이 시키는 대로만? 아이는 어디서 뛰어야 하나? 아이가 뛰놀 빈터는 어디에 있는가?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하나? 어버이가 그려 놓은 길로만 가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몸을 아끼고 마음을 돌보면서 무럭무럭 자라날 아이가 나무도 타고 물에도 들어가고 풀잎도 쓰다듬고 하늘바라기도 하다가 벌러덩 드러누워 바람을 마실 널널한 빈터가 온나라 어디에도 있어야지 싶다. 모든 어버이는 마당 있는 집을 누려야 하고, 모든 아이는 마당이며 골목이며 뒤꼍이며 숲이며 마음껏 누빌 수 있어야지 싶다. 내가 아이들한테 들려주고 싶은 석 마디는 “해봐. 뛰어. 다녀와.” 2021.6.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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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139


《마음속에 찰칵》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유키 마사코 글·엮음

 서인주 옮김

 학산문화사

 2002.12.15. 



  찰칵이(사진기)를 장만하자는 생각을 1998년에 처음으로 합니다. 이해에 열린배움터를 그만두기 앞서 신문방송학과 이야기(수업) 네 해치를 몰아서 다 들었는데, 보도사진을 배우자니 ‘찰칵이 없으면 배울 수 없다’고 해서 부랴부랴 뒷내기(후배)한테서 빌렸어요. 이무렵 제 일터인 새뜸나름터(신문사지국)에 누가 몰래 들어와서 훔쳐갔어요. 가까스로 뒷내기한테 물어주고 빚을 내어 제 찰칵이를 다시 곁에 둡니다. 이때까지는 ‘쓰기는 내 일·찍기는 남 일’로 여겼어요. 살림하고 이야기란 으레 마음에 아로새길 뿐이라고 보았어요. 그런데 글이나 그림하고 사뭇 다른 찰칵이로 이야기하고 살림을 적바림하는 길을 익히고 보니, 삶자리를 바라보는 눈하고 손발하고 몸이 함께 달라지더군요. 마음에는 온하루하고 온삶을 물 흐르듯이 담는다면, 찰칵이로는 딱 한 가지 모습으로 온하루랑 온삶을 갈무리합니다. 마음에는 소리랑 빛깔이랑 숨결이랑 무늬를 바람처럼 심는다면, 찰칵이는 오직 한 가지 손길로 이 모두를 아울러서 갈무리합니다. 마음에 찍기에 찰칵이를 건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단출히 감도는 《마음속에 찰칵》입니다. 멋지게 자랑할 뜻이 아닌, 마음을 나눌 사랑을 찍으면 따사롭지요. 어린이 눈으로 찍으면 모두 아름다워요.


ㅅㄴㄹ


이제 사라진 《마음속에 찰칵》을 놓고서

짤막하게 두 가지 글을

갈무리해 본다.

이 아름그림책이

다시 태어날 날을 손꼽으면서.


그때에는 옮김말씨를

정갈히 추슬러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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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2021.6.1.

숲집놀이터 255. 나



“사름벼리 씨, 네 모습을 그려 보겠니?” “내 모습?” “이를테면, 하나 보여줄게. 사름벼리 씨가 그림을 그리면서 곁들이는 모습 있잖아? 여기 입가 왼쪽에 점을 찍은 나뭇잎처럼.” “아하.” “어른들은 한자말로 ‘자화상’이라 하는데, 우리는 그냥 ‘내 모습’이나 ‘나’라고 하면 돼. 사름벼리 씨를 사람들한테 보여준,는 ‘나’를 그려 주렴.” 사름벼리 씨는 여러 모습을 그린다. 마무리는 미르(용).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름 + 벼리 = 미르’이기도 하겠구나 싶다. 너는 너를 너답게 너 스스로 바라볼 줄 아는구나.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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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5.31.

숨은책 469


《列國資源動員の現勢》

 日本國際問題調査會

 日光書院

 1942.10.20.



  우리가 살아가는 이 푸른별(지구)은 땅밑살림(지하자원)이 모자라지 않다지요. 먹을거리는 푸짐하고요. 잘사는 몇몇 나라가 땅밑살림이며 먹을거리를 도차지한다고 합니다만, 우리나라도 매한가지요, 무엇보다 잘살건 못살건 싸움연모에 끔찍하도록 땅밑살림에 먹을거리를 쏟아붓느라 온살림이 후들거립니다. 왜 싸움배(군함)를 만들고 싸움날개(전투기)를 만들어야 할까요? 왜 싸울아비(군인)를 길러서 싸워야 할까요? 싸우는 데에 들인 엄청난 살림을 어깨동무와 이웃사랑에 썼다면 이 별은 이름 그대로 ‘푸른별’로 뻗어요. 지난날에 바보짓을 했어도 이제부터 참사람으로 살면 되어요. 죽이고 죽는 싸움연모는 멈추고 이웃하고 동무를 보살피는 길로 가면 됩니다. 《列國資源動員の現勢》는 일본이 이웃나라를 마구 짓밟던 무렵 나옵니다. ‘여러 나라(열국)’가 땅밑살림을 얼마나 거두어서 쓰는가를 차곡차곡 담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싸움질을 안 한다면 땅밑살림을 조금만 캐도 되고, 고되게 일해야 하지 않고, 바람하고 물은 깨끗하며 넉넉할 테고, 누구나 홀가분히 어느 나라이든 마실을 다닐 테고, 아프거나 앓는 사람이 사라질 테고, 늘 함박웃음에 이야기꽃에 노래잔치에 글꾸러미가 넘실대리라 봅니다. 싸움질을 끝내면 숱한 발전소를 쉬고, 핵무기 근심도 없고, 서울쏠림도 그치면서 아름별이 될 테고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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