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8.26.

숨은책 538


《From the streets to the Olympics》

 강형원 글·사진

 아트스페이스

 1989.



  ‘사진기자’는 사람이 아닌 이름에 따라 똑같은 숨결을 사뭇 다르게 담습니다. ㅈ에서 일하느냐 ㅎ에서 일하느냐로도 다르지만, 스스로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려느냐는 마음에 따라 확 다릅니다. ‘전투경찰·백골단’이라는 이름을 거느리는 눈길,  시위대·대학생’이라는 이름을 거머쥔 눈길, 푸른배움터(중·고등학교)만 마친 눈길, 아무 배움턱을 안 디딘 눈길이 다를 뿐 아니라, 서울눈하고 시골눈이 달라요. 《From the streets to the Olympics》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바탕으로 나라지기를 뽑는 자리하고 들불처럼 번진 목소리를 묶습니다만, 수수하게 살림자리를 이룬 여느 사람은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여러 나라에 “빛나는 자랑이 될 올림픽”에 사로잡혀요. ‘검은짓(대통령 선거 부정)’을 알았어도 안 파헤쳐요. 퓰리처상은 안 받아도 되니, 골목집·시골집에서 마을사람·숲사람으로 살면서 ‘찰칵’ 찍기를 바라요.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에는 우리 기자들이 그 선거의 공정성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재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기자들 대부분이 여기저기에서 부정이 저질러지기는 했지만 그것이 선거결과를 좌우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판단을 내리자, 야권 후보들은 심한 배신감을 나타냈다.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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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8.26.

숨은책 539


《television, the first fifty years》

 Jeff Greenfield 엮음

 Abrams

 1977.



  영어 ‘텔레비전’을 ‘바보틀(바보상자)’로 옮기기도 하지만 그냥 ‘티비(티브이)’나 일본말 ‘떼레비(테레비)’라 하는 분이 훨씬 많습니다. 이 살림을 곰곰이 보면, 우리가 딸깍 켜 놓고 가만히 바라봅니다. 딱히 생각하지 않아도 봅니다. 토를 달 일이 없고, 못마땅하다면 다른 길(채널)로 돌립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그리기보다 남이 보여주는 대로 휩쓸리기 쉽기에 ‘바보틀’이란 이름으로 옮길 만해요. 그래도 조금 추슬러서 바라보자면 ‘보임틀’쯤으로 옮겨도 어울려요. 보여주는 틀이니까요. 《television, the first fifty years》는 1977년이 “보임틀 쉰 돌”이라면서 이를 기려 두툼하게 엮습니다. 1928년부터 비롯한 볼거리란 무엇이고, 사람들은 무엇을 누리고, 이 보임틀로 무엇을 알리거나 팔려 하고, 나라흐름이나 삶흐름을 어떻게 얼마나 바꿨는가 하고 헤아려요. 우리한테 1977년은 아직 까마득히 억눌리던 총칼나라였으니 “보임틀 쉰 돌”을 생각할 틈이 없을 뿐 아니라, 어른아이 모두 보임틀 곁에 우르르 몰려앉아 마당놀이나 골목놀이가 감쪽같이 사라지도록 부추긴 한복판입니다. 참말로 1977년부터 열 해 뒤에는 마을놀이는 싹 자취를 감춰요. 이러면서 배움수렁(입시지옥)이 깊어가고 들빛도 숲빛도 스러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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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8.26.

숨은책 534


《철강지대》

 정화진 글

 풀빛

 1991.3.13.



  서로 다르기에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달리 일합니다. 저마다 마음에 드는 길이 다르고, 저마다 삶자리에 맞추어 일거리를 찾습니다. 우리나라를 본다면, 힘·돈·이름으로 억누르거나 들볶는 짓이 꽤 길었어요. 이웃나라가 쳐들어온 때라든지 막짓 우두머리가 선 때뿐 아니라, 위아래로 사람을 가르던 오백 해가 있어요. 고구려·백제·신라란 이름으로 다툴 적에 수수한 흙지기인 사람들은 늘 싸울아비로 끌려다니면서 고단했습니다. 《철강지대》는 아름물결(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피어나던 무렵 나온 ‘일글(노동소설)’입니다. 그런데 이 일글을 읽다 보면 힘꾼·돈꾼·이름꾼이 일삼던 비아냥이나 금긋기나 끼리질이나 줄세우기 버릇을 ‘일꾼도 똑같이’ 하던 티가 군데군데 드러납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르게 일하는 땀값을 제대로 받고 나누는 아름누리를 바라는 길에서, 우리는 어떤 눈빛일 적에 어깨동무를 하며 즐거울까요? 틀이나 울타리를 세우면 속에서 곪습니다.


“니미럴, 요즘 애들은 당최 사내새끼들 같지 않아가지구, 차려입은 것 좀 봐라, 저게 기집애지 사내냐, 허허 참.” (24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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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8.26.

숨은책 537


《音樂과 現實》

 박용구 글

 민교사

 1949.4.15.



  일곱 살까지는 거리끼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면, 여덟 살로 넘어선 뒤부터 입을 다물었습니다. 여덟 살에 들어간 배움터에서는 아이들을 줄세우고 셈겨룸(시험)을 시키며 나무라거나 웃음거리로 삼았어요. 이제 와 돌아본다면, 어른(교사)들이 무슨 멱 따는 소리라고 놀리거나 나무라건 말건 스스로 노래하고 싶을 적에 신나게 노래하면 될 뿐입니다. 노래도 놀이도 눈치로는 못 누리거든요. 노래바보(음치)이더라도 즐거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새뜸나름이로 지내고 싸움판(군대)을 다녀오던 1995∼1999년에 새벽이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목청껏 노래를 하면서 소릿결을 가다듬었어요. 누구한테 불러 주기보다 스스로 몸을 달래는 가락하고 말을 펴고 싶었어요. 《音樂과 現實》은 이 땅에서 노래라는 빛을 새롭게 지으며 펼치려고 애쓴 박용구 님(1914∼2016)이 홀로선(해방) 나라에서 기쁘게 여민 책입니다. 갈라진 나라에서 헤매느라 일본으로 조용히 건너가서 일하다가 이승만이 무너진 뒤에 돌아왔더니 샛놈(간첩) 소리를 들으며 고단하기도 했다지만, 온해(100년)를 넘나든 삶길은 노래와 함께하기에 견디었겠지요. 저는 2008년부터 맞이한 우리 집 아이들한테 날마다 노래를 불러 주며 하루하루 새롭게 살림을 짓는 기운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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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8.22.

숨은책 535


《手工敎育學原論》

 鈴木定次 글

 同文館

 1928.9.25.



  1923년, 서울에 ‘조선총독부 도서관’이 섭니다. 우리나라 첫 책숲(도서관)은 아니나, 우리 삶터를 다룬 책을 알맞게 갈래를 지어서 두루 건사하기로는 처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총칼을 앞세우던 일본이 물러간 1945년 9월에 이곳은 ‘국립도서관’으로 바뀌고, 이윽고 ‘국립중앙도서관’이 됩니다. 일본사람이 건사했던 숱한 책을 얼결에 우리가 챙기면서 ‘나라책숲’을 가꾼 셈입니다. 그때 우리 책숲지기(도서관 사서)는 일본책을 어떻게 했을까요? 보기 싫어서 버렸을까요, 우리 삶터를 일굴 밑자락으로 삼으려 했을까요? 《手工敎育學原論》은 “朝鮮總督府圖書 記號 I.丙 六, 番號 251”이란 이름글을 새겼는데, 손살림을 아이한테 가르치는 길을 찬찬히 밝힌 책입니다. 나라책숲 이름글은 없으나 ‘朝鮮總督府圖書館’이라 찍힌 붉은 이름글에 ‘消’라는 글씨를 덧씌웠고, 곳곳에 ‘政府 圖書課 1947.10.14.’라는 이름글을 따로 찍습니다. 1945년 8월 뒤로 버림받을 뻔하다가 살아남았으나, 이제는 내버린 책이 되어 헌책집에 깃들었고, 2021년 8월에 서울 〈숨어있는 책〉에서 만났습니다. 마지막까지 머물 자리가 있기에 아스라한 자취를 돌아봅니다. 그들은, 또 우리는 어린이한테 무엇을 가르치거나 보여주면서 책을 여미는 마음일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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