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9.12.

숨은책 551


《學生と生活》

 河合榮治郞 엮음

 日本評論社

 1937.7.17.첫/1940.12.5.33벌



  모든 책에는 이야기가 흐르기에 그저 지나치지 못합니다. 후줄그레한 책도, 반짝이는 책도, 저마다 다르게 걸어온 삶을 켜켜이 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없듯 똑같이 책이 없습니다. 갓 찍어 새책으로 파는 책조차 다 다른 손님이 사들이기 마련이라, 첫 손길을 받는 날부터 다 다른 삶길로 나아갑니다. 《學生と生活》은 일본사람이 읽을 일본책인데. 곧 가게를 접으려고 하는 헌책집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샀어요. 그동안 애쓰셨다고 몇 마디를 건네고, 헌책집지기하고 술 몇 모금을 나누었어요. 이 책 끝자락에는 쪽종이가 붙습니다. “古本專門 金港堂書店 京城 寬勳町”이란 글씨가 박혀요. 1937년에 처음 나왔고 1940년에 33벌을 찍은 일본책을 건사해서 팔던 서울 관훈동 헌책집 ‘금항당’은 이겸노 님이 스물다섯 살인 1934년에 〈金文堂〉을 넘겨받아 〈金港堂〉으로 이름을 바꾸고, 1945년 8월 뒤로〈通文館〉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금항당서점’ 쪽종이는 이겸노 님이 붙였겠지요. 그곳은 일본사람도 조선사람도 홀가분히 드나들며 책빛을 나누고 책수다를 펴는 자리였겠지요. 새로 알기에 기꺼이 배웁니다. 배우는 마음이기에 둘레를 더 넓게 보면서 고루 헤아립니다. 배움길이란 스스로 눈빛을 틔우는 살림길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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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9.9.

숨은책 549


《世界名士 處世哲言》

 조상원 엮음

 현암사

 1953.8.15./1955.4.30.4벌



  ‘처세와 경영을 다루는 자기계발서’는 눈에 뜨이면 확 팔리고, 눈에 안 뜨이면 종이를 날린다고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열매를 언제 볼는 지 까마득한 낱말책(사전) 붙잡기인 터라 둘레에서 으레 “이보쇼. 그대는 그대가 좋아서 사전을 쓴다지만, 식구는 어떻게 먹여살리오? 그대가 좀 싫어도 자기계발서 한두 권쯤 써서 목돈을 만져야 그 일도 잘 되지 않겠소?” 하고 핀잔 같은 말을 붙입니다. “말씀도 뜻도 고맙습니다만, 저는 ‘처세·경영·자기계발’이 아닌 ‘아이하고 살림하는 즐거운 숲살이’를 쓰고 싶어요.” “이 사람, 더 굶을 생각인가? 미쳤네.” 《世界名士 處世哲言》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책을 하나하나 내놓아 밑돈을 그러모았기에 현암사는 1959년에 우리나라 첫 《法典》을 선보일 힘을 쌓았겠지요. 보금자리를 돌보고, 아이를 사랑하고, 숲을 품고, 곁님하고 살림하고, 오늘 하루를 노래로 그리는 이야기를 담은 ‘살림책’을 읽는 이웃님이 곧 늘겠지요.


眞理와 藝術의 大衆化를 期하고자 獨逸의 “레크람” 文庫에서 그 뽄을 가져다 不朽의 生命을 가진 世界的典籍과 아울러 우리들의 現實이 切實히 要求하는 修養書를 諸賢에게 보내드린다! (책끝 알림글-玄岩文庫案內)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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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9.9.

숨은책 550


《藝能民俗圖誌》

 本山桂川 글

 崇文堂

 1950.3.20.



  책에서 책으로 발길을 이으면서 손길을 추슬렀습니다.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걸음이니 우리 이야기를 다룬 책을 샅샅이 읽으려 하면서도, 이웃 이야기가 흐르는 책도 찬찬히 읽으려 했습니다. 오늘을 이루는 숱한 살림은 우리 손으로 지었다기보다 일본이 총칼로 억누르던 때에 퍼져서 자리잡았습니다. 이 뿌리를 캐려고 일본책을 자꾸자꾸 들춥니다. 《藝能民俗圖誌》는 일본에서 수수하게 흐르던 시골살림을 들려줍니다. 우리 시골살림도 아닌 일본 시골살림이지만, 뭔가 귀띔할 이야기가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묵은 책에는 쪽종이가 앞뒤로 하나씩 붙어요. 뒤쪽에는 “學生書房, 學生參考書·山岳書 賣買. 新潟市 西堀通六”이 붙습니다. “니이가타시 주오구”에 있던(또는 아직 있는) 〈學生書房〉에서 팔았다는 뜻입니다. 앞쪽에는 “ISSEIDO, 東京 神田”라는 쪽종이가 붙어요. 한자 ‘一誠堂’으로 적는 ‘잇세이도’는 1903년부터 연 헌책집입니다. 이 ‘잇세이도’에서 일하고 나서 책집을 차린 이가 제법 있고, 글꾼으로 일하는 이도 퍽 있습니다. 책집 한 곳이 새롭게 책집으로 잇는 징검돌이 될 뿐 아니라, 새책을 짓는 일꾼으로 가는 다리 노릇을 합니다. 우리나라 마을책집도 100해 200해를 거뜬히 잇기를 바라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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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9.9.

숨은책 548


《남영동》

 김근태 글

 중원문화

 1987.9.30.



  서울에서 몇 해를 살던 지난날(1995∼2004), 남영동만큼은 어쩐지 가기 싫었습니다. 그곳은 책집이 없다시피 하기도 했으나, 숙대 앞하고 고작 한길 하나로 엇갈리는데 늘 소름이 돋아요. 한창 《보리 국어사전》을 엮을 적에 김근태 님을 얼결에 밥집에서 뵈었습니다. “난 고문받은 다음에 이가 망가져 딱딱한 밥은 못 먹고, 걸음도 잘 못 걷습니다. 편식하는 것처럼 보일 텐데 이해해 주세요.” 하면서 절뚝이십니다. 《남영동》에 흐르는 짜르르한 글이 확 떠올랐습니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 작품’입니다. 사람을 괴롭혀 거의 죽음으로 내몰아 ‘머리에 든 이야기’를 몽땅 털어놓도록 짓밟는 터전을 ‘번뜩이는 눈빛과 손길’로 지어냈다지요. 그곳을 거치고서 살아남은 사람이 생채기를 온몸에 아로새긴 다음에 글로 남겼기에, 나라에서 이쁨받은 건축가 한 사람이 지은 집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제대로 알려졌습니다. 이제 ‘남영동 대공분실’은 없다지만, 우리 목소리는 얼마나 마음껏 날갯짓을 하면서 온누리를 꽃밭으로 물들일 수 있는지요?


85년 9월초 남영동에서 전기고문, 물고문에 못 견뎌 나는 발가벗기고 두 눈이 가려진 채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면서 항복한다고 용서해 달라고 두 손으로 빌었다. 그때 고문자인 김수현, 백남은, 그리고 고문 전문기술자 입에 번졌던 소리없는 웃음, 그 웃음을 나는 절대로 잊을 수 없다.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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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9.9.

숨은책 547


《오르막의 벼농사》

 가다꾸라片倉權次郞 글

 선형규 옮김

 호남문화사

 1969.5.20./1972.6.30.3벌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푸르게 자라자면 마당을 누리는 숲을 품고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전남 고흥으로 2011년에 깃들었습니다. 어디가 어울리려나 살피다가 이곳 시골에 나붙은 ‘친환경농업단지’란 이름을 보고서 짐을 풀었습니다. 풀죽임물(농약)을 멀리하겠거니 여겼습니다. 그런데 ‘친환경농약’을 쓴다는 허울이요, 새벽 너덧 시나 저녁 여덟아홉 시, 벼슬꾼(공무원)이 일터에 없을 적에 풀죽임물을 신나게 뿌려요. 그 뒤 ‘무인헬기·드론’으로 뿌리더니 이제는 큰짐차로 뻥뻥 시끄럽게 쏘아댑니다. 《오르막의 벼농사》는 “광주시 불로동 109번지”에 있는 펴냄터에서 냈고, “보성중·농업고 교사”가 우리말로 옮겼으며 “식량 증산과 소득 증대를 위한 새롭고 알기 쉬운 벼 다수확법”을 갈무리했다고 합니다. 일본 흙지기 ‘가다꾸라’ 님은 “정농가 무농약 직파법”을 새로 다스려서 알리고 책을 써냈어요. 보성농업학교 길잡이 스스로 여러 해를 배워서 해본 끝에 “모내기를 않고 풀죽임물 없이 논에 바로 뿌리는 길”이야말로 우리 시골과 서울 모두 살릴 만하다고 생각했답니다. 다만 1970년부터 이 나라는 새마을운동을 일으켰으니, ‘풀죽임물·죽음거름(화학비료)·비닐’을 엄청나게 쓰도록 북돋우는 장사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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