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배움빛 2021.9.26.

숲집놀이터 259. 알밤



네 손에는 네가 즐기는 모든 놀이가 반짝반짝 있다. 너는 무엇이든 노래로 바꾸고, 너는 언제나 춤으로 돌리고, 너는 한결같이 웃음꽃으로 피운다. 알밤은 해바람비를 먹고 자란다. 해바람비가 깃든 알밤을 손에 얹으면서 네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해바람비 기운이 퍼진다. 이 알밤을 아작 깨물면 네 이를 타고서 뼛속으로 고루고루 해바람비 숨결이 스민다. 밤나무는 아이들이 곁에서 뛰고 놀고 노래하고 춤추는 빛살을 머금으면서 한 뼘씩 큰다. 아이들은 밤나무한테 가을마다 찾아가서 둘레를 빙그르르 돌고 웃고 떠들고 반기면서 두 뼘씩 자란다. 어른들은 밤나무를 둘러싼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또 아이들을 포근히 안는 밤나무를 어루만지면서, 어느새 석 뼘씩 마음을 밝힌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2021.9.14.

숨은책 555


《通俗 漢醫學原論》

 조헌영

 을유문화사

 1949.11.25.첫/1953.5.30.둘



  서울서 살며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자료조사부장으로 일할 적에 윤구병 님은 저한테 찾아 달라는 책이 수두룩했습니다. “종규야, 그 책 좀 찾아 주라.” “네, 얼마든지 찾아 드리지요.” 짧으면 사흘이나 이레, 길면 보름이나 한 달 즈음 뒤에 척하니 건넵니다. “어떻게 찾았니? 난 수십 년 동안 찾아도 못 봤는데.” “먼저 그 책이 어느 책집지기님 눈에 들어오려나 어림하고, 둘째로는 돈이 있으면 돼요.” “신기하네.” “못 찾을 책이란 없어요. 안 찾는 책만 있어요. 날마다 다 다른 헌책집을 꾸준하게 찾아가서 ‘그 책’보다 ‘읽고 싶은 새 헌책’을 들여다보면 비로소 만나요.” “그러냐?” “찾으려는 책만 생각하면 아예 안 보여요. 찾으려는 책은 마음에 묻고서, 아직 내가 모르는 책을 하나씩 다 챙겨서 읽겠다고 생각하며 책시렁을 보면 문득 나타나요.” 조헌영(1900∼1988) 님은 아들 조지훈(1920∼1968) 님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책보다는 삶으로 빛나는 길을 걸었지 싶어요. 《通俗 漢醫學原論》은 윤구병 님한테 두 자락 찾아 주고, 저도 한 자락 갖췄습니다.


이 冊을 처음 出版한 것은 四二六七年(一九三四年)甲戌이요, 戰爭中애 絶版된 것도 발써 十年前 일이다. 自由로 出版할 수 있게 된지 이미 數年이며 변변ㅎ지 않은 이 冊을 찾는 이도 적지 않았으나, 이 方面에 分寸의 힘을 가를 수 없음이 遺憾일러니 今番에 乙酉文化社에서 誤字와 漏落된 것을 訂正하고 正確히 한글綴字法에 맞추어서 改版 重刊하게 된 것은 欣幸한 일이며 感謝하여 마지않는다. (序文 1∼2쪽)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어제책 2021.9.14.

숨은책 554


《自習用 全科辭典 the Children's Encyclopaedia and Dictionary》

 편집부 엮음

 大阪每日新聞社

 1925.10.30.



  1925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진달래꽃》이 나오고, 일본에서는 《自習用 全科辭典 the Children's Encyclopaedia and Dictionary》라는 두툼한 책이 나옵니다. 한자로는 “自習用 全科辭典”이요, 영어로는 “the Children's Encyclopaedia and Dictionary”입니다. ‘백과사전+영어사전’ 노릇을 한꺼번에 하는 이 꾸러미는 앞뒤에 알림그림(광고)을 많이 싣습니다. 엮고 펴내느라 큰돈이 들었겠지요. 오사카(大阪)에 있는 신문사는 누구보다 ‘오사카 어린이’를 헤아렸습니다. 오사카는 한겨레가 꽤 많이 사는 고장입니다. 사슬에 갇힌 나라를 업고 태어난 아이들은 제 말글보다 일본말을 으레 쓰고 펴야 했는데, 그때 이 꾸러미를 목돈을 치른 어버이한테서 받은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나라를 잃은 어른’ 가운데 방정환 님은 1923년에 《어린이》란 책을 펴냈고, 1922년부터 ‘어린이날’을 기리려는 자리를 열었습니다. 아직 모자라고 엉성하지만 조그마한 책으로 어린이를 살핀 손길이 있어요. 우리로서는 이무렵에 우리말꽃(국어사전)조차 변변하게 없었기에 ‘어린이한테 이바지할 백과사전’은 엄두도 못 낼 만했습니다. 어린이를 헤아리지 않는 나라이기에 무너지지 싶어요. 어린이를 잊은 나라는 머잖아 사라지지 싶어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2021.9.14.

숨은책 553


《알기 쉬운 한글 강좌》

 한글학회·유열 글

 일성당서점

 1948.8.20.첫/1950.4.30.넉



  네덜란드말을 배워 우리나라하고 말·삶을 잇는 징검다리가 되자고 생각하며 1994년에 한국외대에 들어가지만, 낱말책(사전)이 아직 없어 아찔했고, 몇몇 길잡이(교수)는 엉성했습니다. 그해는 하루도 안 빠지고 이야기(강의)를 듣다가 1995년 3월에 이르고 보니 도무지 앞길이 없네 싶어 그만두기로 다짐하고, 배움터 앞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새벽은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아침부터 낮까지 구내서점에서, 저녁에는 학교도서관에서 일했습니다. 낮밥 즈음하고 밤에는 짐자전거로 서울 곳곳 헌책집을 돌며 혼자 책을 읽었습니다. 외대 앞에는 〈최교수네 헌책방〉이 작게 있었습니다. 서라벌예대 길잡이로 일했다는 할배는 이녁이 읽은 책을 놓으셨지요. 이곳에서 《알기 쉬운 한글 강좌》를 고르니 “자네는 공부하려는 사람인가 보네? 반갑네.” 하시더니 “공부하는 학생한테는 선물을 주고 싶은데.” 하면서 책집지기 할배가 곁에 두고 읽었다는 《톨스토이 인생독본》을 덤으로 주셔요. 《알기 쉬운 한글 강좌》 첫판은 무척 비싸서 엄두를 못 낼 테지만 넉벌판이라 조금은 눅게 샀는데, 뒤쪽에 ‘1950.6.16.’ 하고 적은 글씨가 있어, 밑에 ‘4328.4.18.’ 하고 보탰습니다. 마흔다섯 해 뒤에 누가 또 배우려는 마음으로 읽어 주겠지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2021.9.12.

숨은책 552


《志操論》

 조지훈 글

 삼중당

 1962.10.15.



  경북 영양군을 사랑하는 이웃님을 만나러 영양에 마실을 하고서야 글님 조지훈·이문열 두 사람이 그 고장에서 나고자란 줄 처음 알았습니다. 두 사람이 걸은 길은 다르되, 글자락이 사람들 마음자락에서 빛나기를 바라는 뜻은 매한가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1920년에 나서 1968년에 숨을 거둔 조지훈 님은 1962년에 남긴 《志操論》이란 책에서 엿보듯이 나무줄기처럼 곧고 바른 길을 이야기하면서 몸소 살아갔다고 할 만합니다. 가만 보면 ‘芝薰’이란 이름은 ‘풀내음’을 뜻해요. ‘지훈·지조’란 ‘풀내음·나무줄기’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풀꽃다우면서 나무다운 숨결을 건사하며 돌보는 마음일 적에 저마다 푸르게 빛난다고 하겠어요.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무렵에는 ‘청록파 시인’이라는 이름을 외워야 했다면, 스무 살로 접어들 즈음부터는 《지조론》이란 책을 만나고 싶어 여러 헌책집을 한참 돌았습니다. 일찍 저승길로 간 분이기에 이분이 책을 선보인 그무렵에 나온 판으로 읽으며 ‘이승만·박정희’로 잇닿는 나라를 어떻게 느끼면서 젊은이한테 길잡이가 되려는 눈빛이었나를 돌아보려 했어요. 풀꽃나무는 해바람비를 머금으면서 온누리에 새숨을 베풉니다. 풀꽃나무가 자라기에 우리 터전은 푸른별이란 이름으로 빛납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