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11.14.

숨은책 575


《우리는 자유를 선택한다》

 편집부 엮음

 미국공보원

 1962?



  1990년에 동독·서독은 하나로 모둡니다. 총칼로 푸른별을 어지럽힌 값을 치르느라 둘로 나뉜 독일이요, 우리나라는 총칼로 짓밟혔는데 뜬금없이 둘로 나뉘었어요. 열여섯 살에 독일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나라는 둘로 쪼개진 슬픔 못지않게 배움터나 마을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마구 패고 괴롭히는 막짓부터 어떻게 좀 해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참말로 1990년에도 곳곳에서 주먹질이 춤추었습니다. 후미진 골목에는 어린이·여린이 돈을 후리려는 야살이가 득시글하면서 담배를 꼬나물었어요. 미국공보원에서 ‘2-592(34)’을 붙여서 내놓은 《우리는 자유를 선택한다》는 “지난 16년 동안에 400만 명을 넘는 동독 사람들이 자유세계로 탈출했다는 사실은(3쪽)”으로 첫머리를 엽니다. 1962년에 펴내어 뿌렸지 싶은 얇고 작은 꾸러미입니다. ‘서베를린·동베를린’을 갈라서 보여주는 그림은 배움터를 다니는 동안 으레 보던 ‘남녘·북녘’ 그림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어른(교사)들은 “저쪽(공산주의 나라)은 굶주린다. 굶주리는 나라에서 살고 싶냐?” 하고 따지듯 윽박질렀습니다. 차마 입으로 벙긋하지는 못하고 마음속으로 “굶주리고 싶지도 않지만, 이렇게 날마다 어른들한테 얻어맞는 배움터도 괴롭습니다” 하고 외쳤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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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1.14.

숨은책 574


《中國小說史》

 魯迅 글

 정래동·정범진 옮김

 금문사

 1964.11.30.



  중국사람이 글꽃(소설)을 여민 자취에까지 마음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中國小說史》를 쓴 사람이 ‘魯迅’이라 해서 문득 눈이 갔고, 순 한자투성이에, 저로서는 알 길이 까마득한 중국 옛글 이야기를 더듬더듬 읽으며 헤아렸습니다. 노신(루쉰)이라는 분은 중국사람으로서 중국을 사랑하면서 안쓰러이 여겼고, 매서우면서 따갑게 나무랐고, 스스로 뼈를 깎듯 제 삶자리하고 나라를 바라보았지 싶습니다. 이 여러 가지를 글로 밝히려 했기에, 중국이 예부터 어떤 글을 어떻게 썼는가를 차근차근 살피면서 이 같은 책을 여미었구나 싶어요. 중국 아닌 우리를 돌아봅니다. 우리 옛사람은 어떤 글을 어느 자리에서 썼을까요? 임금붙이·벼슬자리맡에서 글을 쓴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시골·숲·바다를 품으면서 시골사람·숲사람·바닷사람하고 어깨동무하는 눈빛으로 글을 쓴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뭅니다. 곰곰이 보면, 호미하고 부엌칼을 쥐며 살림을 짓는 여느 사람들한테 ‘글’은 먼나라 얘기예요. 살림꾼은 글이 아닌 ‘말’로 살았는데, 이 살림말을 고스란히 받아안으며 글꽃으로 여민 자취는 참으로 없다시피 합니다. 우리네 글꽃은 언제쯤 무늬만 한글이 아닌 알맹이가 ‘우리말’로 빛나는 이야기밭이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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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1.14.

숨은책 573


《改訂 朝鮮戶籍例規》

 水野重功·朝鮮總督府 法務局 엮음

 朝鮮總督府 法務局 內 朝鮮司法協會

 1929.3.28.



  다스리는 길을 한자 ‘법(法)’으로 적는데, 다스리기에 ‘다스림길’이나 ‘다스리다·다스림’이라 하면 되고, 단출히 ‘길’로 나타낼 만합니다. 단출히 쓸 만하지만, 나라지기·벼슬아치는 이처럼 쉽게 말하면서 사람들 곁에 있지 않았습니다. 집집마다 살림을 가꾸는 사람이 어떻게 있느냐를 헤아릴 적에 ‘집·집안’을 살피기보다는 ‘가(家)·호주(戶主)’를 따지는 ‘호적법’이란 틀을 세웠습니다. 이 틀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차지하려 들면서 더 단단히 뻗고, 《改訂 朝鮮戶籍例規》에 나오는 말씨는 오늘날에도 거의 그대로 씁니다. 조선총독부에서 1923년(대정12년) 7월 1일에 처음 내놓고 1929년(소화4년) 3월에 손질했다고 밝히는 두툼한 책은 나라 곳곳에 뿌렸겠지요. 이 책에 적은 틀에 따라 한겨레 집안을 들여다보았구나 싶어요. 일본은 이웃나라를 거머쥐려 하면서 그들이 쓰던 이름인 ‘대정·소화’ 같은 말로 해를 세도록 시켰습니다. 우리 삶터에 일본 한자말이며 말씨를 잔뜩 심었습니다. 길(법)하고 얽힌 숱한 한자말이며 말씨를 여태 거의 안 걷어내거나 못 털었는데, 앞으로도 이대로 쓰려나요, 아니면 좀 늦었으나 정갈히 손질하려나요. 살림을 돌보는 이웃이라는 눈길이라면 말부터 쉽고 부드러우며 상냥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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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1.12.

숨은책 572


《만화 근로기준법》

 신철영 글

 도기성 그림

 이웃

 1990.10.30.



  ‘만화’라 하면 낮게 여기는 분이 많습니다. 지난날에는 ‘만화’라 하면 낮을 뿐 아니라 나쁘다고까지 여기는 분이 수두룩했습니다. 예나 이제나 “만화책을 읽는다”고 하면 “공부는 안 하고!” 하는 벼락이 칩니다. 어느덧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확 줄거나 사라집니다. 그토록 찬밥에 손가락질을 받는 자리였으니까요. 《만화 근로기준법》은 ‘근로기준법’이란 이름만으로도 어려워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여느 일돌이·일순이한테 ‘일하고 얽힌 길(법)’을 쉽고 부드러이 풀어내는 책입니다. 글만 가득한 책으로는 그냥 길(법)도 어렵지만 ‘일길(근로기준법)’은 더 어렵습니다. 막상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일길을 찾거나 살피기 어렵기에 ‘글 + 그림’인 얼거리로 이야기를 엮어요. 아주 마땅하지만, 《만화 근로기준법》을 그림으로 풀자면 일길을 찬찬히 읽고 알아야겠지요. “만화라서 잘 모른다거나 떨어지거나 낮을” 수 없어요. “만화이기에 더 잘 알고 살필 뿐 아니라, 어린이도 알기 쉽도록 풀어내니 한결 돋보인다”고 해야지 싶어요. 그렇다면 들불(민주화운동)이 피어나서 지나간 오늘날 “어려운 ‘일길’을 쉽고 상냥하게 우리말로 손질하거나 고친 글일꾼”이 있을까요? 일꾼한테는 길(법)이 아직 까마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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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1.12.

숨은책 571


《불량제품들이 부르는 희망노래》

 더불어출판기획실 엮음

 동녘

 1989.3.30.



  곰곰이 보면 어린이가 ‘새로 나온 어린이책’이나 ‘오래오래 사랑할 어린이책’ 이야기를 찾아보기가 만만하지 않아요. 푸름이가 ‘갓 나온 푸른책’이나 ‘두고두고 사랑할 푸른책’ 이야기를 알아보기도 쉽지 않고요. 어린이책·푸른책 이야기는 ‘어른만 읽는 책·새뜸(신문)·달책’에 싣기 일쑤입니다. 어린배움터·푸른배움터 길잡이(교사)는 어린이·푸름이한데 어린이책·푸른책 이야기를 얼마나 새로 들려줄까요? 《불량제품들이 부르는 희망노래》는 1989년에 나왔으나 중2란 이름이던 그무렵에는 몰랐고 고1∼고3을 보내는 동안에도 몰랐어요. 알 길이 없고, 알려주는 어른도 없고, 배움책숲(학교도서관)에 있지도 않았어요. ‘불량제품’이란, 지난날 배움터 길잡이가 배움이(학생)한테 퍼붓던 막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셈값(시험성적)이 낮으면 “너흰 불량제품이야!” 하고 나무라며 두들겨팼어요. 어른들은 막놈(독재자)을 끌어내리는 데에 온힘을 기울이되, 막상 배움판을 갈아엎거나 배움수렁을 치우는 데에는 마음을 잘 안 썼어요. 배움이한테 ‘불량제품’이란 이름을 붙인 어른은 바른길을 가려는 사람한테 ‘불온’이란 이름을 붙였지요. 그래도 이런 책이 나왔으니, 이런 책을 나누려 한 길잡이나 어른도 있었으니 …….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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