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음읽기

글수다 2021.12.7.불.


무엇은 왜 날까? 무엇은 왜 돋아? 무엇은 왜 솟니? 네가 안 심어도 싹은 나. 네가 안 보아도 새로 돋지. 네가 못 느껴도 일은 솟아(생겨). 너희가 살아가는 곳에는 너희만 있지 않거든. ‘너’ 같은 숱한 다른 ‘나(이웃 숨결)’가 있어. ‘네’ 곁에 ‘또다른 너’가 있다고 하겠지. ‘또다른 너’는 ‘나’를 느끼거나 보기도 하지만, 생각조차 못 하기도 해. 너희는 ‘우리’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거든. 너희가 쓰는 ‘우리(울)’는 ‘안은·감싼·품은’을 가리키는 울(울타리)이라고 하겠지. ‘나’로 있을 적에는 그저 움직임이 없지만, ‘나’를 스스로 제대로 다시 보기에 ‘너’가 태어나고, 나하고 다르지만 (바탕은) 같은 너를 느끼면서, 서로 묶는, 그러니까 ‘아우르’는 ‘우리’이더구나. 서로 안거나 감싸거나 품으면서 ‘어울리’지. 너희가 말하는 ‘우리 = 아우르다 + 어우르다’인데, ‘아버지 + 어머니’야. ‘알 + 얼’이고, ‘알다 + 얼다’이기도 한데, 너희는 서로 ‘우리’라는 길을 가며 새롭게 ‘하나’로 빛나지. 이때 ‘하나 + 울’이 되어 ‘한·울 = 하늘’이더구나. ‘나’만 있거나 ‘너’만 가르면 ‘하늘인 우리’로 가지 못해. 나로서 나인 줄 알고, 너로서 너를 얼울 적에 ‘우리’라는 ‘새빛’이 되어 온누리를 밝히는 ‘해’란다. 너희가 ‘나 + 너 = 우리’로 가기에 스스로 새빛이 되었기에 ‘알 + 얼’인 ‘아기(아이)’를 낳잖아? 이런 ‘우리’란 아름답지. 얼씨구절씨구 기쁘고. ‘우리’란 무리지은 굴레가 아니야. 그러나 너희가 ‘알(아버지·알다)’과 ‘얼(어머니·얼다)’을 잊으면 ‘우리’가 아닌 ‘무리’가 되고 말아 허튼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고서 ‘알지 못하고, 얼우지(어르지) 않는’ 바보(얼간이·얼뜨기·얼치기)로 가. 사랑이 없으면 ‘가두는 우리(짐승우리)인 무리짓(떼짓)’이야. 사랑이기에 웃고 울며 우러르는(높이는) 해님이야. 무리짓을 하니 떼쓰면서 더 바보스레 나뒹군단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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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26.

숨은책 604


《春園硏究》

 김동인 글

 춘조사

 1956.5.25.첫/1959.11.30.2벌



  이광수나 김동인은 일본바라기(친일부역)였습니다. 김동인이 쓴 《春園硏究》는 ‘끼리끼리 논다’고 여기면서 집어던질 수 있습니다. 타고난 글바치가 어떤 까닭에 막춤질로 엇나가는 길로 들어섰나를 헤아리자면 이들이 쓴 책을, 더구나 ‘이 일본바라기가 저 일본바라기를 감싼 글’을 읽을 노릇일 테지요. 그런데 《춘원연구》를 읽자니, 첫머리 몇 대목에서만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를 곰곰이 짚었구나 싶더군요. 그래도 이 몇 대목으로 우리 슬픈 발자취를 톺아봅니다. 무엇보다 이 책에 남은 “各種書籍 東亞書店. 濟州市 一徒二洞”이란 책집 자국이 애틋하고 ‘1961.11.1. 김창선’이란 글씨가 깃들어, 제주 마을책집 발자취 한켠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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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기상이 자심했으며 그런 때마다 전 국가의 국민으로 하여금 조국을 회상하는 길을 막는 수단으로서 전대의 유산을 모두 없애 버렸으매, 예술 유산이라야 풍부하지는 못하다. (10쪽)


《용비어천가》는 이씨 조선을 찬송하기를 강제하는 한낱 정략적 시가에 지나지 못하다 하나, 정략적으로 미루어 그 뒤에 숨은 예술적 가치는 거부할 수 없는 바다. 그러나 암담ㅎ기 짝이 없는 이씨 조선이었다. 이조의 문헌이며 제작품 등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오백년간에 겨우 이것이었던가? (12쪽)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벌써 문학 예술의 도취경을 맛본 이 민족은 이러한 빈약한 문학만으로는 만족을 할 수가 없었다. 정본이며 그 저작까지도 알 수 없는, 많고 많은 평민문학이 애독되고 애청된 크나큰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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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26.

숨은책 603


《死線을 넘어서》

 賀川豊彦 글

 김소영 옮김

 신교출판사

 1956.3.20.첫/1956.7.20.두벌



  꿈꾸며 기다리던 책을 드디어 만나면 손끝부터 머리끝을 거쳐 발끝까지 짜르르합니다. 벼락을 맞은 듯해요. 널리 사랑받는 책이라면 새책집이건 헌책집이건 손쉽게 만납니다. 사랑을 덜 받거나 못 받고서 사라진 책이라면, 사라진 지 한참 된 책이라면, 돈이 있더라도 장만하기 어려워요. 몇 안 남은 어느 책을 선뜻 내놓는 ‘낯도 이름도 모르는 이웃님(독서가)’이 있기에 비로소 책 한 자락을 반가이 마주합니다. 《死線을 넘어서》는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분이 쓴 책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이이는 1909년부터 열네 해를 가난마을(빈민굴)에서 가난님(빈민)하고 벗하면서 살았다지요. 이렇게 살아온 이야기를 1920년에 글로 담은 《사선을 넘어서》입니다. 이녁은 가난님도 가멸님(부자)도 나란히 손을 잡고 함께 살림을 짓는 길을 헤아린 끝에 ‘살림두레(생활협동조합)’를 처음으로 열어요. 나라(정부)에 기대지 않고 총칼(군대)을 없애는 길이 ‘살림두레’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1956년에 나온 책을 제주 헌책집 〈책밭서점〉에서 만났어요. 속에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요. 소매·도매 濟州書林. 濟州市 二徒一洞”이란 글씨가 꾹 박혔습니다. 1956년에 어느 제주사람이 〈제주서림〉에서 만난 책이 오늘까지 이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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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22.

숨은책 601


《씨앗의 희망》

 헨리 데이빗 소로우 글

 애비게일 로러 그림

 이한중 옮김

 갈라파고스

 2004.5.18.



  전라남도 두멧시골에서 살며 부릉이(자가용)를 안 거느리기에, 늘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시골버스를 탑니다. 걸으며 면소재지·읍내를 지나가든, 시골버스를 타든, 이때에 스치는 숱한 시골 어린이·푸름이 입에서 끔찍하다 싶은 막말·거친말이 끝없이 쏟아집니다. 시골버스 일꾼(버스기사)은 이따금 “이 xx들아, 좀 조용히 못 해!” 하고 윽박지르더군요. 시골아이나 시골어른이나 똑같아요. 상냥말이 없습니다. 《씨앗의 희망》은 소로우 님이 쓴 “씨앗이 퍼지다(the Dispersion of Seeds)”를 옮긴 책입니다. 씨앗은 참말로 퍼집니다. 바람을 타고, 풀벌레나 숲짐승이나 새가 옮겨서, 또 사람이 손바닥에 얹어 새터에 심으면서 퍼져요. ‘말씨·글씨’라는 우리말처럼, 우리나라 옛사람은 말이든 글이든 늘 ‘씨(씨앗)’로 여겼습니다. “(씨를) 뿌린 대로 거둔다” 같은 옛말처럼, 아무 말이나 안 하도록, 언제나 사랑으로 말하도록, 어른부터 스스로 가다듬고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려고 했어요. 이런 삶길을 우리는 언제부터 잊다가 잃었을까요? 흔히 소로우 님 《월든》을 많이 읽지만, 저는 《씨앗의 희망》이야말로 곁책으로 삼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씨앗이 풀꽃나무요, 풀꽃나무가 숲이요, 숲이 사람이며, 사람이 사랑이에요.


#theDispersionofSeeds #HenryDavidThor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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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22.

숨은책 600


《우편번호부 1971》

 체성회 엮음

 체신부

 1971.3.1.



  요새는 우체국에서 우편번호부를 안 나눠 줍니다. 길이름(도로명 주소)을 요즈음처럼 가르기 앞서는 우편번호부가 단출했으나, 이제는 깨알글로 두툼한 책 석 자락입니다. 예전에는 글월을 자주 많이 쓰는 사람한테 작고 단출한 우편번호부를 나누어 주었어요. 해가 넘어갈 무렵이면 우체국 일꾼한테 “새해 ‘우표발행계획표’ 나왔나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봄에는 “우편번호부가 새로 나왔나요?” 하고 여쭈었어요. 《우편번호부 1971》는 제가 태어나기 앞서 나옵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 심부름으로 우체국에 다녀오며 얻은 우편번호부도 1971년치처럼 얇고 작았습니다. 2000년 무렵까지도 이렇게 작다가, 2000년을 넘어서며 크고 두툼했는데, 하도 사라지는 골목이 많고 새로 올리는 잿빛집(아파트)에 큰집이 늘다 보니 우편번호를 촘촘히 가르는 판입니다. 어릴 적에는 이따금 우편번호부를 들추면서 낯선 고장을 하나하나 떠올렸어요. “아, 이곳에 가 볼 수 있을까?” 혼잣말을 하면서 마음으로 나들이를 다녔습니다. 우편번호를 따라 인천에서 강원도로, 경상도로, 전라도로, 제주도로, 충청도로 넘실거렸습니다. 나들이는 들숲바다를 품고 해바람비를 마주하는 느릿느릿 느슨한 길입니다. 요새는 길이 너무 크고 많고 빠르기까지 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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