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1.6.

숨은책 608


《로조사전》

 데 엠 우싸또브·유 엔 마수르·브 엠 모스드꼬브 지음

 박종식·김 엔에쓰 엮음

 국립외국어급민족어사전출판사

 1952.



  한창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해서 책으로 새로 여미던 2005년 7월, 이오덕 어른 큰아드님이 “자네 백두산 가 봤나? 안 가 봤나? 백두산도 안 가 보고 어떻게 한겨레라고 하나? 같이 가지?” 하고 말씀했습니다. “백두산도 한라산도 안 가도 한겨레인걸요. 굳이 간다면 개마고원은 궁금합니다.” 하고 여쭈었어요. 강릉에서 배로 러시아로 가고, 이곳에서 숱하게 몸뒤짐(검문검색)을 거치는 버스로 중국으로 넘어가서 연길에 닿았습니다. 백두산에 가기 앞서 연길에서 며칠 묵었고, 날마다 ‘새벽 서시장’에 갔는데, 여기에는 길바닥 책장수가 있습니다. 너덧 시에 자리를 깔고 여덟 시면 걷어서 떠납니다. 7월 29일 새벽에 “부록 조선어문법개요(유 엔 마수르)”가 딸렸다는 《로조사전》을 《조로사전》(1958)이랑 만납니다. ‘로조’는 3만, ‘조로’는 6만 낱말을 실었다더군요. 러시아는 북녘하고 어깨동무하려고 ‘로조’를 먼저 묶고, 여섯 해 뒤에 ‘조로’를 내놓았지 싶습니다만, 남·북녘이 피흘리던 무렵부터 엮은 낱말책 같습니다. ‘러시아·북녘’이 우리말로 만나려는 책에 깃든 낱말이나 보기글은 북녘스럽습니다. ‘미국·남녘’이 우리말로 만나려는 책이라면 남녘스럽겠지요. ‘로조·조로’는 손때를 엄청 타고 낡아 애틋합니다.


* ‘로조·조로사전’이 바탕으로 삼았다는 다섯 가지 책 *

《The unabridged korean-english dictionary》(I.S.Gale, 1931)

《New life korean-english dictionary》(류형기, 1947)

《문세영 조선어사전》(1938)

《조선어 소사전》(1955)

《조선어 철자법 사전》(195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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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4.

숨은책 605


《홍이 이야기》

 이승민 글

 박건웅 그림

 새만화책

 2008.4.3.



  요새는 어린이한테 우리 삶과 발자취를 제대로 들려주자고 하는 어른이 꽤 나오고, 이런 줄거리를 다룬 책이 무척 많습니다. 얼핏 반갑다 할 테지만 곰곰이 보면 지나치게 장삿속으로 기운 책이 수두룩하다고 느낍니다. 깊거나 넓게 헤아리지 않은 채 몇 가지 줄거리를 엉성히 짜거나 꾸며서 ‘좋은 인문책’으로 씌우는 책이 물결쳐요. 이제 사라지고 없는 ‘새만화책’이라는 곳은 오직 그림꽃책(만화책)으로 삶·살림·사람을 다루는 길을 걸었고, 박건웅 님한테 《꽃》을 맡겨서 그리도록 했으며, 《홍이 이야기》까지 선보였어요. 총을 든 이는 북녘도 남녘도 똑같다고 하는 속내를 밝혔고, 앙금도 멍울도 미움도 생채기도 싸움질 아닌 꽃 한 송이로 녹여내야 한다는 사랑을 어린이도 알아볼 수 있도록 부드러이 여미었습니다. 글책·그림책·그림꽃책 모두 목소리만 높여서는 줄거리가 외려 바랩니다. 우리 스스로 들끓어 저놈을 똑같이 사납게 두들겨패야겠다는 미움이 불거지도록 그린다면,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끝없이 싸움수렁에 갇히는 갈라치기로 끝납니다. 너무 일찍 펴낸 그림꽃책이라 2008년조차도 못 알아봤다고들 하지만, 눈감은 어른이 가득할 때야말로 ‘제주 4·3’을 그림꽃책을 엮어서 베푼 야무진 ‘새만화책’을 그립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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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4.

숨은책 606


《그 빛속의 작은 生命》

 김활란 글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65.2.25.첫/1983.9.15.5벌



  이름이 나며 힘을 거머쥔 자리에 서면 대뜸 훌륭하다고 치켜세우는 모습을 어릴 적부터 죽 보았습니다. 그이가 걸어온 길을 짚으면 추레한 짓으로 얼룩이 졌는데 아랑곳하지 않는 분이 많았습니다. 인천에서 태어난 ‘김활란’도 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1970년에 죽기까지 이이 스스로 뉘우친 적도 없고, 이이를 떠받드는 이나 이화여대 모두 제대로 고개숙인 일도 못 봤어요. 늘 핑계로 덮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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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총작 직을 갖기 직전, 내가 그 자리에 남아 이화를 위해 일을 하려면 일본어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내가 일어를 알고 사용도 할 줄 알아야만 그들이 모든 것을 용인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그때서야 뒤늦게 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었다.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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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때로 나는 교장으로서의 중요한 연설을 강요당했다. 나는 많은 일본인 간부교직원의 보고 대상이 되어가면서 일본말로 준비된 연설문을 낭독하고는 했다. 나의 일거일동은 샅샅이 상부에 보고되었고 나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사람은 정부에서 파견된 사람이었다. 연설문의 내용은 주로 학생들에게 태평양전쟁을 일본 측에 유리하도록 그 목적을 이해시키려는 것과 일본 정부에 협조하라는 요지였다.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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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저희들은 선생님의 깊은 마음을 잘 알아요. 오늘 하신 연설도 결코 본의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요. 그런 것을 겪으면서 이 학교를 지켜 나가야만 하시는 선생님의 처지를 저희는 마음속으로 도웁고 있는 거예요. 용기를 잃지 마세요. 진심은 무엇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거니까요.” 나는 그 따뜻한 마음에 접하고 마음이 맑아졌다.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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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일본어에 능통한 친구에게 나의 이름에 관한 것을 상의했다. 그는 심사숙고한 끝에 아주 무난한 이름을 발견해 냈다고 반가워하면서 내게 전했다. 그것은 ‘아마기(天城)’라는 이름으로 훌륭한 일본작가의 이름인데 그 ‘아마기’라는 것은 ‘하늘나라’를 뜻하는 깊은 뜻을 지닌 말이라 했다. (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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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4.

숨은책 607


《선택》

 새로운인간 기획실 엮음

 한마당

 1987.11.15.



  다스리는 이가 훌륭해야 나라·마을·집이 아늑하다지만, 다스리는 이는 하나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다스릴 노릇입니다. 집은 누가 다스려야 할까요? 사람들이 누구나 흙살림을 가꾸면서 옷·밥·집을 손수 짓던 무렵에는 순이돌이를 안 가리며 함께 집안일을 하고 집살림을 꾸렸어요. 이러다가 ‘나라’란 틀을 세워 돌이가 임금·벼슬아치·싸울아비로 나서면서 집을 다스리는 몫을 오롯이 순이한테 떠넘깁니다. 우리나라 닷즈믄해(오천년)를 돌아보면 나랏일(정치)이 아름답던 때는 하루조차 없다고 느껴요. 이 굴레가 이어서 1987년에 이르고, 총칼을 내세운 우두머리를 들풀물결이 끌어내리고서 새 나라지기를 가리려 했습니다. 《선택》은 ‘김대중·김영삼’ 둘 가운데 한쪽을 골라야 한다고 여기면서 나랏길(국가 정책)을 어떻게 다스리려는가를 묻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나라지기가 엉터리라면 나라가 엉터리가 되기 쉽습니다만, 우리가 스스로 엉터리이기에 나라지기를 아무나 뽑기 쉬울 뿐 아니라, 참다운 목소리를 내거나 참다이 집·마을에서 살림을 함께 짓지 않는다고 느껴요. 이쪽이든 저쪽이든 안 대수롭습니다. 어떤 살림을 어떻게 지으려느냐는 생각이 제대로 서야 할 노릇이고, 누구라도 일꾼으로 나서면 됩니다.


ㅅㄴㄹ


누가 나라지기(대통령)여야 할까 

하고 따지기 앞서

어떤 길을 세우는

'나'인가부터 보아야 하고

아무 길도 없이 

벼슬을 거머쥐려는 이는

다 물리치면

엉터리가 나라지기로 설 일이 없다.


헌법도 인권도 짓밟는 백신패스를

누가 내세워서 밀어붙이는가?

백신패스와 백신을 외친 이들조차

그들 스스로

백신을 안 맞았는데,

이런 엉터리 속임짓을

고분고분 따르는 눈이라면


이 나라는 앞으로도

엉터리가 판치는 길일 테지.


까면 깔수록 허물이 나오는

사람은 이쪽도 저쪽도

걷어치워야 

우리부터 스스로 바뀌면서

나라지기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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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음읽기

글수다 2021.12.8.물.


넌 어디로 가? 넌 그곳에 왜 가? 네가 가는 곳에는 네 걸음에 따라 네 자취가 남지. 넌 스스로 어떤 걸음이 되어 어떤 자취를 남길 생각이니? 너는 그곳에 네 기운을 어떻게 남기고 싶어? 살짝 머물기도 싫은 데를 지나가니? 지나치기 아쉬운 곳을 지나가니? 네 마음·눈길·생각은 네 걸음이 묻은 자리에 스며서 퍼져. 싫다고 느끼는 곳에는 싫다는 마음을, 좋다고 느끼는 곳에는 좋다는 마음을 심는단다. 네가 바다에 돌을 던지면 바닷속에 돌이 생기지. 네가 들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비닐을 날리면 들에는 쓰레기나 깡통이 굴러. 네가 숲을 사랑하는 마음이면 숲에 사랑빛 한 줄기가 퍼져. 네가 숲이 무섭다고 여기면 무서운 기운이 으스스 한 톨 생겨나고. 그런데 있잖아, 바다도 들도 숲도 하늘도 너희가 남기는 찌끄레기를 아랑곳하지 않는단다. 며칠·몇 달·몇 해가 걸리든 다 씻고 털어내. 바다·들·숲·하늘은 너희가 버린 쓰레기를 그린 적이 없거든. 바다·들·숲·하늘은 너희처럼 짜증·미움·싫음을 그린 적도 없어. 다만, 너희가 잔뜩잔뜩 모여서 궂은 기운을 끝없이 퍼부으면 바다·들·숲·하늘이 미쳐버리지. 무엇보다 너희는 ‘바깥(다른 곳·남)’에만 쓰레기를 버리며 더럽히지 않아.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너한테 그 쓰레기가 고스란히 돌아가. 네가 읊는 미움·짜증·싫음은 몽땅 너희가 스스로 마음·몸에 심는 씨앗이지. 자, 너는 어디에 가니? 왜 가니? 무엇을 보거나 하려고 가니? 너희 뜻은 뭐야? 너희는 어디로 가든 이곳(집)으로 돌아온단다. “간 만큼” 돌아와. “오는 만큼” 내려가. 쌓은 만큼 무너지고, 무너진 만큼 쌓아. 그러니 생각하렴. ‘무엇’을 어떻게 왜 어디로 가서 하려는가 하고 그리렴. 너한테 고스란히 돌아갈 네 하루·길을 네 눈으로 보렴.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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