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2.4.

숨은책 620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

 오쓰뜨롭쓰끼 글

 편집부 옮김

 연변인민출판사

 1978.11.



  “그런 책을 어디서 찾았어?” “어디서 찾다니? 뻔히 눈앞에 있잖아?” “눈앞이라고?” “봐, 여기 있었지, 어디 있었니?” 둘레에서 저더러 ‘숨은책’을 잘 찾는다고 말할 적마다 책이 숨은 적이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익숙한 책’이 아닌 ‘스스로 새롭게 배우려고 하는 책’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어느 책이건 눈에 뜨일 일이 없이 ‘숨어버린다’고 얘기했어요.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는 헌책집에서 곧잘 보았으나 ‘소설’은 읽고 싶지 않아 지나치기 일쑤였습니다. 이러다가 《보리 국어사전》 짓는 일을 하면서 북녘말을 살펴야 했기에 비로소 장만해서 읽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윤구병 님이 어느 날 물어요. “야, 너 그 책 어디서 찾았어?” “헌책집에 흔하게 있는데요?” “흔하다고? 그럼 나도 좀 사 줘.” “책값만 주시면 사 드리지요.” 너덧 분한테 똑같은 책을 다 다른 헌책집에서 찾아내어 건네었습니다. “너 참 재주도 좋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찾아내니?” “재주 아닌데요? 읽으려고 하는 사람한테는 반드시 보여요. 읽을 마음이 없으면 코앞에 놓아도 못 알아보잖아요.” 묵은 책을 스무 해 만에 되읽습니다. 우리는 ‘무쇠’나 ‘톱니’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물결에 휩쓸리지 말고 ‘나’여야 합니다.


ㅅㄴㄹ


이제 스무 해도 훌쩍 넘은 이야기이니

좀 홀가분히 말하려 한다.

다만, 이따금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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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2.

숨은책 619


《文章作法, 受驗作文의 範例》

 김이석 글

 수험사

 1959.6.25.첫/1963.2.15.3벌



  저도 ‘글쓰기를 다룬 책’을 썼습니다. “글을 쓰려면 누구한테서도 배울 생각을 치우고, 스스로 제 마음을 사랑하고 이 삶을 고스란히 그리되, 맞춤길·띄어쓰기를 다 잊고, 어린날 듣고 익힌 가장 수수하고 쉬운 말씨로 옮기라”고 밝혔어요. ‘배운다 = 똑같이 받아들인다’가 아닌, ‘배운다 = 내 나름대로 받아들인다’입니다. 1959년에 처음 나온 《文章作法, 受驗作文의 範例》는 ‘공무원 되기·큰일터 일꾼 되기에 이바지할 글쓰기’를 다룹니다. 어쩜 저때에도 이런 책이 다 나왔고, 꽤 읽혔나 싶으나, 그만큼 우리나라는 뒤처졌다는 뜻입니다. ‘문장작법 수험서’는 온통 ‘나를 잊고 틀에 맞추라’는 줄거리입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사투리를 썼는데, 사투리를 버리고 서울말을 써야 한다고 다그칩니다. 묵은책을 덮으려다가 끝자락에 남은 “於 莞島書店 西紀一九六四年 十月 二十二日 鄭信吉 主”란 글씨를 봅니다. ‘於·主’는 우리말씨 아닌 한문입니다. 그런데 이 배움책(참고서)은 〈완도서점〉에서 팔렸군요. 완도에서 나고자라 벼슬꾼(공무원)을 꿈꾼 분이 읽었지 싶습니다.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나 이웃 아주머니는 한자·한문을 몰라 동사무소에서 늘 애먹었습니다. 이제는 한글을 쓴다지만 공문서는 아직 딱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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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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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2.

숨은책 618


《現代韓國新作全集 5 長詩·詩劇·敍事詩》

 김종문·홍윤숙·신동엽 글

 을유문화사

 1967.12.25.첫/1971 .5.25.재판



  신동엽 노래책을 자꾸 사서 둘레에 건네고 되읽는 모습을 지켜본 헌책집지기가 어느 날 “자네 신동엽을 좋아하나? 허허, 그러면 삼만 원만 있으면 더 귀한 책을 살 수 있는데?” 하고 물으십니다. 귀가 솔깃하지만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한 달 31만 원을 벌어 15만 원을 목돈으로 붓는 살림인 터라 빠듯합니다. “3000원 아닌 300원이 모자라 라면 하나를 외상으로 달아서 사는걸요.” “허허, 다른 책 안 사면 《아사녀》를 살 수 있는데? 나중엔 돈이 있어도 못 살걸?” 어느 분이 《님의 침묵》을 보여준 적 있어 만져 보기까지 했습니다만 끌리지는 않았습니다. 첫판을 쥐면 뿌듯할 터이나, 가난살림에 책값은 늘 힘에 부쳤고, 헌책집에서 가장 낡은 판으로 골라 가장 싸게 장만하며 알맹이만 읽던 나날입니다. 《現代韓國新作全集 5 長詩·詩劇·敍事詩》는 서울 ‘경성 중·고등학교 도서관’에 있다가 버림받습니다. 빌린이가 없었겠지요. 배움책숲에서 빌린이가 없어, 버린 책은, 가난한 책벌레한테 아주 반가운 빛줄기입니다. 알아보지 못한 채 쉰 해를 잠들었기에 헌책집에서 건사하거든요. 〈금강〉을 처음 실은 책을 쓰다듬습니다. 먼지를 고이 닦습니다. 한 줄 두 줄 새삼스레 되읽습니다. 모든 책은 새로 빛나려고 잠들어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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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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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2.

숨은책 613


《兒童說敎 五十二集》

 홍병선 글

 형제출판사

 1939.6.26.첫/1954.7.고침



  어버이가 슬기롭다면 아이를 섣불리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아이는 놀이를 거쳐 소꿉으로 가고, 이윽고 심부름을 맡으면서 살림을 하나씩 깨닫고, 어느새 스스로 듬직히 일꾼으로 일어나서 새길을 닦는 철든 숨결로 살아갑니다. 아스라히 먼 옛날부터 배움터(학교)가 따로 없어도 어른은 아이한테 숲살림을 사랑으로 물려주었고, 아이는 어른한테서 고이 물려받았습니다. 나라(정치권력)를 세운다면서 힘을 거머쥔 임금붙이는 손수짓기(자급자족)란 삶길을 흔들어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만 배워야 한다’고 억눌렀어요. 《兒童說敎 五十二集》은 1939년에 처음 나왔고, 일본이 물러간 1954년에 고침판이 나옵니다. 글을 쓴 홍병선(1888∼1967) 님은 YMCA에서 1920년 소년부 간사, 1925년 농촌부 간사, 1938년 영창학교 교장을 맡는데, 덴마크를 다녀오고서 크게 깨우쳐 농촌협동조합 물결을 일으켰고, 이녁 아들은 홍이섭 씨라지요. 글님은 믿음길을 걸었기에 어린이가 예수를 따르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여겨요. ‘밖에 있는 빛’에 앞서 모든 아이마다 ‘마음에 있는 빛’부터 느끼도록 다독이면서 ‘바깥빛 섬기기’가 아닌 ‘스스로 빛나는 별로 삶·사랑·살림을 짓는 사람’으로 나아가도록 북돋았다면 더없이 아름다웠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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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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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2.

숨은책 614


《새로운 讀書指導》

 이경식 글

 대한교육연합회

 1976.8.1.



  오늘날 ‘교총’이란 이름으로 바꾼 ‘대한교육연합회’는 1949년부터 《새교실》이란 달책(잡지)을 냅니다. 교총은 《새교실》이 우리나라 첫 배움달책(교육잡지)이라고 내세우지만, 1947년 5월부터 ‘조선교육회’가 《조선교육》을 진작 선보였습니다. ‘교련·교총’에서 낸 《새교실》은 늘 나라(정부)에서 시키는 틀을 따라서 어린이를 ‘가르친다기보다 길들이기’로 나아갔습니다. ‘새교실 1976년 8월 종합판’으로 나온 《새로운 讀書指導》는 얼핏 ‘책읽기 길잡이’로 보이지만, 속을 보면 일본책을 옮긴 듯한 얼거리·줄거리가 ⅓을 차지하고, ⅔는 “국민교육헌장 이념구현과 독서지도”하고 “새마을운동과 정신개발”이 차지합니다. 겉으로는 ‘좋은책 많이 읽기’를 들려주는 듯하되, 가만 보면 ‘총칼사슬(군사독재)’ 입맛에 맞추어 어린이를 다그치고 길들이려는 배움책입니다. 일본 총칼한테서 풀려났대서 ‘새교실’이었으나, 박정희 총칼한테 굽신거리며 ‘새마을·새마음 물결’하고 짝을 이룬 ‘새교실’로 나아간 셈입니다. 다 다른 어린이가 다 다른 눈빛으로 다 다른 삶터에서 다 다르게 피어나는 사랑으로 꿈을 짓도록 북돋우는 몫을 잊는다는 참다운 나라(정부)가 아닐 테지요. 오늘날은 얼마나 눈을 떴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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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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