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2.24.

숨은책 636


《뿌리 상》

 알렉스 헤일리 글

 이두호 그림

 산하

 2002.1.10.



  낱말책(사전)은 ‘어제책’을 살피고 ‘오늘책’을 바탕으로 엮는 ‘모레책’입니다. 앞으로 두고두고 살려쓸 낱말을 꾸러미로 담기에 낱말책입니다. ‘오늘말’은 스스로 하지만 ‘어제말’을 듣거나 읽으려면 어르신을 만나거나 어제책을 챙겨서 읽어야 해요. 2001년 무렵 어느 헌책집에서 《학생중앙》을 만났고, 이 달책에 실린 《뿌리》를 새삼스레 들여다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무척 오래도록 지음삯(저작권)을 안 치르고서 나라밖 글·그림·빛꽃을 슬쩍 썼습니다. 때로는 고스란히 베끼거나 훔쳤습니다. 어릴 적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글·그림·빛꽃인 줄 알다가, 나중에 헌책집에서 이웃나라 글·그림·빛꽃을 보며 깜짝 놀라기 일쑤였어요. 이두호 님은 알렉스 헤일리 님 글을 그냥 가져다가 그림꽃으로 담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펴낸곳에서 지음삯을 치러야지요. 2002년에 새옷을 입은 《뿌리》가 나오는데 이 대목은 살피지 않은 듯합니다. 비록 아쉬운 대목이 있어도 모처럼 우리나라 그림꽃이 나왔기에 어린이도서연구회 일꾼한테 알려주면서 ‘추천도서’로 삼을 만하다고 여쭈는데, “만화책은 어린이한테 추천하지 않습니다” 하고 자르더군요. 그림책하고 그림꽃책은 무엇이 다를까요? 읽지도 않고 밀친다면 삶을 못 봅니다.


ㅅㄴㄹ

#AlexHaley #R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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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20.

숨은책 616


《부커 와싱톤 自敍傳》

 부커 와싱톤 글

 장원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60.9.25.



  종(노예)이란 몸으로 태어나 종굴레를 떨치는 길을 찾으려고 밑바닥부터 발버둥을 친 부커 워싱턴(1856∼1915) 님은 ‘톰아저씨 같다(Uncle Tomism)’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흰사람한테서 배움돈을 받아내어 검은사람이 새롭게 배우는 길을 널리 열었습니다. 총을 들고 흰사람을 무너뜨려 힘을 거머쥐는 길이 있을 테고, 조용히 살림살이를 갈고닦는 길이 있을 테며, 살빛이 아닌 사람으로서 어깨동무하는 길이 있습니다. 벼슬판으로 나아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고, 보금자리에서 수수하게 사랑을 짓는 사람이 있으며, 서울길을 가거나 숲길을 가는 사람이 있어요. 《부커 와싱톤 自敍傳》은 1960년에 우리말로 나왔고, 1981년에 《검은 노예에서 일어서다》(종로서적)로 다시 나왔고, 2012년에 《부커 워싱턴》(나무처럼)으로 새로 나왔습니다. 힘·돈·이름은 누구나 누릴 노릇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사랑스레 살림을 짓는 삶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 힘·돈·이름만 거머쥐도록 하면 막삽질이나 주먹질로 흐르더군요. 참하면서 슬기롭게 마음을 가다듬는 길이 있지 않다면, 우리는 늘 치고받기만 하겠지요. 검은사람도 흰사람도 흙사람도 고르게 배울 터전이어야 할 뿐 아니라, 참사랑을 나누는 착한빛을 품는 맑은 생각을 그려 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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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20.

숨은책 635


《새러데이 인천 1호》

 진나래 엮음

 Chur Chur press

 2018.12.20.



  고장마다 문화재단이 있어 그 고장 살림(문화)을 북돋우는 일을 한다는데 ‘문화’라는 일본스런 한자말이 언제부터 어떻게 쓰였는가는 안 헤아리는 듯합니다. ‘예술’이란 한자말도 어떤 밑뜻인가를 안 짚고, 영어 ‘아트’를 쓰는 사람도 많아요. 막상 우리말로 어떻게 가리킬 만한가는 안 찾기 일쑤예요. ‘살림꽃·살림빛’이나 ‘온살림·삶멋’이라 하면 ‘문화예술’이라는 일본스런 말씨를 씻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면서 문화예술이 머나먼 딴나라 놀이가 아닌, 우리가 늘 이곳에서 손수 가꾸거나 지으면서 나누는 즐거운 길인 줄 느낄 테고요. 《새러데이 인천》은 2018년에 첫자락을 내놓고는 뚝 끊은 듯합니다. 문화재단 밑돈으로 첫자락은 내놓되 두셋이나 너덧으로 고이 잇는 마음이 없지 싶어요. 인천서 서울로 일하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탔기에 ‘지옥철’이요, 서울쓰레기는 다 인천에 파묻으니 ‘선데이 서울’을 흉내낸 책을 낼 수 있을 텐데, ‘서울 흉내’는 있되, 인천이란 곳을 인천스럽게 바라보고 사랑하면서 새롭게 북돋울 살림꽃은 미처 못 헤아린 듯합니다. 할매 할배가 가꾼 골목집이 문화예요. 골목꽃과 골목밭이 예술입니다. 담벼락에 붓질을 해야 문화예술이 아닙니다. 삶터를 읽을 적에 살림을 노래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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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


《호야의 고발》

 이종진 글·그림

 (사)한국안보교육협회·형문출판사

 1980.6.20.



  부산 ‘동현국민학교’ 배움책숲(학교도서관)에 ‘1982년 9월 1일. 2767’라는 이름을 달고 들어간 책이 있습니다. “반공 윤리교육 만화”라고 하는 《호야의 고발》입니다. 1982년은 제가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들어간 해예요. 저는 이 책을 부산 〈연산헌책방〉에서 만났는데요, 책꽂이에서 책등을 보자마자 번쩍 옛일이 떠오르더군요. 서른 몇 해를 한달음에 가로지르고 부산에서 인천까지 건너뛰면서 지난 1982년 어느 날 배움터에서 반공만화를 돌려읽고서 반공웅변을 해야 하던 일이 화라락 춤을 춥니다. 그림꽃(만화)이니 신나게 읽기는 했으나 섬찟했습니다. 꿈에서까지 섬찟한 모습이 나왔습니다. 지난날 어린배움터는 이름이 아닌 ‘1번부터 60번’까지 줄줄이 앞으로 나오라고 시켜서 모두 반공웅변을 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한 사람이 적어도 5∼10분을 외쳐야 했는데요, 이런 짓을 하느라 하루를 온통 보낼 뿐 아니라, 이튿날에도 반공웅변을 마치지 못하면 또 하루를 썼습니다. 그무렵 길잡이(교사)는 웅변 솜씨를 출석부에 적으며 값(점수)를 매겼고, ‘반 대표’를 거쳐 ‘학년 대표’를 지나 ‘학교 대표’까지 뽑았어요. 지난날 반공만화를 그리고 펴내며 웅변·그림·쪽글·느낌글을 바치게 한 이들은 오늘 무엇을 할까요.


ㅅㄴㄹ


학급 대표로 뽑혀
아침모임(일일조회)을 하는 
운동장 구령대에 올라
반공웅변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 대표로는 안 뽑혔으니
그나마 겨우 살았다고 숨돌리던
지난날이 아스라이 떠오릅니다.

얼마나 싫고 힘들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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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


《햇빛과 바람과 땀》

 이오덕 엮음

 임동동부 국민학교 대곡분교장

 1970.8.4.



  2003년 여름에 〈보리 국어사전〉 엮음빛(편집장) 자리를 그만두고서 충주 무너미마을 시골집에 깃들어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했습니다. 먼지가 곱게 내려앉은 책시렁을 하나하나 들추다가 《햇빛과 바람과 땀》을 보았습니다. 쇠붓으로 꾹꾹 눌러서 묶은, 손바닥 크기만 한 글묶음(학급문집)입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천천히 읽었습니다. 해가 지고 밥때가 지난 줄 잊었습니다. 이오덕 어른은 1945년 8월에 일본이 물러간 뒤에 크게 뉘우쳤다고 밝혔습니다. 아이들한테 일본말을 가르친 부끄러운 모습을 어떻게 씻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죽는 날까지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만 바라보면서 살기로 다짐하고서, 늘 멧골자락 조그마한 배움터에서 종이·붓을 멧골아이들한테 사주면서 흙살림이야말로 눈부신 살림길이라고 들려주고 텃밭을 일구었다지요. 배움새뜸(학교신문)을 엮고 글묶음을 아이마다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멧골아이가 멧골·시골이 푸르게 아름다운 줄 느끼도록 이끌려 하고요. 겉에 ‘대곡 어린이 시집’이라고 적은 뜻이 사랑스럽습니다. 즈믄(1000) 자락도 온(100) 자락도 찍지 않은 조촐한 노래책(시집)은 가슴을 활짝 펴자고 북돋우는 씨앗입니다.


“시란 이렇게 하여 순진하고 솔직한 사람, 가장 인간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쓰는 귀중한 공부입니다. 그리고 시를 쓴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머리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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