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3.15.

숨은책 643


《두만강 물고기》

 김리태 글

 농업출판사

 1990.11.30.



  책집으로 찾아가서 책을 사는 분이 있고, 집에서 셈틀이나 손전화로 책을 시키는 분이 있습니다. 마을책집이 꾸준히 늘고, 누리책집이 확 늘었는데, 우리나라 누리책집은 헌책집이 일찌감치 첫발을 떼었습니다. 서울 〈신고서점〉이 1997년에 ‘누리헌책집’을 열 즈음 “누가 책을 인터넷으로 사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사지?” 하는 핀잔이 꽤 많았는데, 이제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책을 사니 새롭다!” 하고 놀라는 분이 많습니다. 한창 누리헌책집이 늘던 2000년대 첫머리에 중국 연변에서 〈아라리안〉이 열었어요. 이곳은 연변책하고 북녘책을 팔았지요. 그야말로 남북녘이 어깨동무하는 길로 달라지려나 하고 반가웠습니다. 다만 이곳은 책집살림을 오래 잇지 못하고 닫았습니다. 책값이 엄두가 안 나서 사지 못하더라도 북녘책 겉그림을 구경할 수 있기에 날마다 드나들던 일이 새삼스럽습니다. 《두만강 물고기》는 북녘에서 헤엄이를 살피는 분이 엮어내고서 중국에 있는 벗한테 건네었습니다. “中國科學院 動物硏究所 張玉珍 同志 1991.9.9.”이란 손자국이 깃들어요. 남녘도 연변도 책숲(도서관)에서 버리는 책은 늘 나옵니다. 헌책집이 있어 버림치를 건사해서 새길을 이으니 책빛은 고이 흐를 수 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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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3.15.

숨은책 642


《나는 곰이란 말이에요》

 프랭크 타슐린 글·그림

 김대웅 옮김

 한벗

 1982.12.5.



  요즈음은 어린이책이나 그림책만 펴내는 곳이 늘었습니다만, 2000년으로 접어들 무렵까지 어린이책이나 그림책만 펴내는 곳은 드물었어요. 푸른책만 내는 곳은 더욱 드물고요. 이제 어린이·푸름이한테 아름다이 읽힐 책을 펴낸다고도 할 테고, 어른책은 장사가 안 되어 어린이책·푸른책으로 넘어왔다고도 할 만합니다. 1980년에 피비린내가 훑으며 온나라가 얼어붙은 무렵, 나라지기는 프로야구·프로축구·프로씨름을 내세우며 책마을을 조금 풀어주었습니다. 이때 이웃나라 삶책(인문책)을 옮긴 곳이 아주 많아요. 이즈음 어린이책에 눈길을 둔 곳은 매우 적은데, 이 가운데 ‘한벗’이 있고, ‘쉘 실버스타인’ 책을 우리말로 쉽게 옮겼으며 《나는 곰이란 말이에요》를 내놓았습니다. 1946년에 처음 나온 이 그림책은, 그즈음 확확 무너지는 숲과 무시무시하게 늘어나는 서울(도시)을 맞대었어요. 우리 이웃이 누구요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넌지시 물으며, 우리는 오늘 어디에서 어떤 숨빛인가를 조용히 들려줍니다. 1982년에는 알아보는 사람이 적었고 2007년에 새로 알아본 사람이 있어 《곰이라고요, 곰!》(계수나무 펴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ㅅㄴㄹ

#TheBearThatWasnt #FrankTash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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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3.11.

숨은책 641


《학교 교련 교본 (전편)》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엮음

 문헌사

 1949.5.10.첫/1949.9.1.두벌)



  푸른배움터를 1993년까지 다녔기에 ‘교련’ 갈래를 마지막으로 배운 셈입니다. 1994년부터 총칼다루기(총검술)하고 모둠틀(제식훈련)을 없애고 혼배움(자율학습)이었거든요. 한두 해 어린 뒷내기부터 안 배울 뿐 아니라, 배움터에서 대놓고 얻어맞는 일이 확 줄어든 1994년에 또래 사내는 두 마음이었습니다. “걔네들도 맞아 봐야 하는데, 우리까지만 맞고 사라지다니!”가 하나라면 “이제라도 그런 쓰레기가 사라지니 시원하다!”가 둘입니다. 푸른배움터 ‘교련’은 사라졌어도 총알받이 싸움터(군대)에 끌려가니 허구헌날 두들겨맞더군요. 《학교 교련 교본 (전편)》은 일본한테서 풀려난 지 몇 해 뒤에 나온 책으로, ‘바른걸음·옆걸음·빠른걸음·제자리걸음’ 같은 우리말이 제법 나오되, ‘좌·우·주간진로·야간진로·횡단·일거동작’ 같은 일본말씨가 고스란합니다. 바짓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작고 도톰한 이 책은 ‘京畿公立工業中學校’를 다닌 분 이름이 뒤켠에 남습니다. 1949년 ‘교련’은 어떤 구실이었을까요? 총칼수렁(식민지)에서 벗어난 나라를 돌보려는 길에 편 ‘담금질(敎鍊)’이기보다는, 제주섬을 비롯해 온나라를 한겨레 스스로 억누르거나 짓밟으려던 ‘길들이기’로 오래오래 슬프고 아프게 이어왔지 싶습니다.


ㅅㄴㄹ

#교련 #학교교련교본 #학교교련 #교련수업

#京畿公立工業中學校 #경기공립공업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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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3.6.

숨은책 627


《북두의 권 11》

 미진 기획

 박진 옮김

 미진문화사

 1990.9.30.



  1988∼90년 세 해를 제 삶에서 지웠습니다. ‘중학교’라는 곳을 다니는 내내 “여기는 학교가 아닌 감옥이자 지옥일 뿐이니, 오로지 내 삶만 바라보자” 하고 다짐했어요. 기껏 열네 살인 또래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막말이 쏟아지고, 길잡이도 똑같고, 어른아이 모두 온하루가 주먹질이었습니다. 둘레에 눈감고 “죽은 듯이 시험공부만 하자”고 생각했어요. 이즈음 또래 사내들은 손바닥보다 작은 《북두의 권》하고 《드래곤볼》을 글붓집(문방구)에서 사다가 돌려읽더군요. 주먹질이 춤추는 그림에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죽이는 모습이 뭐가 재미있는지 낄낄거리는데, 여리거나 작은 또래를 ‘만화책에서 본 모습 그대로 괴롭히는 짓’을 날마다 해대더군요. 《北斗の拳》은 ‘부론손 글·하라 테츠오 그림’으로 1983∼88년에 일본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몰래책(해적판)으로 마구 찍어 아이들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북두의 권》은 나쁜책이 아닙니다만, 어떤 줄거리로 어떤 삶을 그리는가를 풀어내는 어른이란 그때나 요즘이나 없고, 그저 싸움박질을 고스란히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판입니다. 〈오징어게임〉도 그렇지요. 이 나라 어른이란 사람은 돈에 눈멀어 주먹질을 자꾸 그리기만 할 뿐입니다. 어깨동무하고 사랑을 그릴 줄 몰라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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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3.6.

숨은책 637


《正音 第二十四號》

 권영희 엮음

 朝鮮語學硏究會

 1938.5.31.



  조선 오백 해는 숱한 사람들로서는 아랫내기로 억눌리는 나날이었으나, 몇몇 사람들한테는 윗내기로 힘·이름·돈을 누리는 나날이었습니다. 이웃나라가 총칼로 우리나라를 집어삼킨 마흔 해 가까이, 숱한 사람들은 괴롭고 배고파야 했으나, 적잖은 사람들은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면서 떵떵거렸습니다. 빼앗긴 말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우리 말글을 가꾸려는 사람들이 땀흘리는 한켠이 있었고, 일본글·중국글을 우러르면서 허수아비짓을 일삼는 무리가 있었어요. 《正音》이란 이름으로 달책(잡지)을 엮은 조선어학연구회(박승빈·안확)는 총칼수렁(식민지)에 이바지하는 길을 가면서 우리 말글을 흔드는 몫을 했습니다. 이들은 달책에 “日鮮漢音便覽(일선한음편람)”을 싣고, “皇國臣民ノ誓詞(황국신민의 서사)”를 싣지요. 누구나 제 뜻을 펴면서 제 생각을 일구는 밑틀로 우리 말글을 누리기보다는, 몇몇 글바치끼리 주물럭거리는 윗내기 노릇을 잇기를 바랐습니다. ‘正音·정음’은 우리말일까요? 그들(친일부역자)은 일본글을 ‘正音’으로 우러렀을 텐데요. 오늘날 국립국어원은 독립운동이나 한글학회하고는 동떨어진 뿌리입니다. 나라말을 돌보려는 마음이라면 ‘국어’ 같은 일본말을 진작 걷어냈으리라 봅니다. 말을 말다이 쓰는 바탕이 서야 생각을 생각다이 지으며 날개를 펼치는 참다운 길을 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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