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4.7.

숨은책 647


《일반과학 동물계》

 조복성 글

 정음사

 1950.5.8.



  어릴 적에 나무이름이며 풀이름이며 벌레이름을 참 못 외웠습니다. 묻고 또 묻고 다시 물었습니다. 둘레에 나무이름에 풀이름에 벌레이름을 물을 만한 어른은 우리 어머니였어요. “그만 좀 물어. 벌써 몇 벌째니?” “잘못했어요. 생각이 안 나서요.” “아니야. 잊어버렸으면 다시 알려주면 되는데, 어머니가 미안해.” “그런데 어머니는 어떻게 이름을 그렇게 잘 알아요?” “어머니는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라서 늘 보고 자랐어.” “어, 그러면 저도 시골에서 태어났으면 이름을 잘 알 수 있었을까요?” 우리 어머니는 이다음은 입을 다무셨어요. 나중에 다시 여쭈니 오빠들은 배움터(국민학교·중고등학교)를 다 가는데 어머니는 딸이라 어린배움터도 다니는 둥 마는 둥 해야 했고, 그마저 푸른배움터는 엄두조차 못 내었다더군요. “넌 시골이 아니라 인천에서 태어나서 고마운 줄 알아야 해.” 하고 곧잘 말씀했습니다. 《일반과학 동물계》는 우리 손으로 일군 우리 풀벌레·숲짐승·헤엄이 살림살이를 다룬 배움책입니다. 드디어 1950년에 이만 한 책이 태어나는데 한 달 뒤에 한겨레싸움(동족상잔)이 불거지며 이 책은 가뭇없이 밟히고 잊힙니다. 우리 곁에 있는 작은이웃을 눈여겨보고 이름을 부른다면 어깨동무를 할 텐데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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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꽃/아버지 육아일기 2022.4.7.

숲집놀이터 266. 지레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 들어간 1982년 3월까지 제 마음이나 머리나 생각에는 ‘걱정’이란 낱말이 아예 없습니다. 한글조차 모르는 채 어린배움터에 들어간 여덟 살 아이는 저 앞에 선 어른이 손에 뭘 쥐고서 까만 데에다가 슥슥 뭘 그리는데 뭐 하는 셈인지 몰랐습니다. 저 사람(어른)은 저 사람이 하고픈 걸 하겠거니 여기며 옆에 앉은 동무랑 시시덕거립니다. 이러다가 머리가 핑 돌 만큼 누가 후려쳤고, 꽈당 하며 자빠졌습니다. 떠들지 말고, 장난하지 말고, 칠판을 쳐다보라고 하더군요. 놀라고 아팠지만 멍할 뿐이었고, 뭐가 뭔지 몰랐어요. 앞에서 뭘 끄적인 어른은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불러야 했고, ‘한글’을 적었다더군요. 처음 보는 무늬를 보며 “와! 저게 글이구나!”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선생님이란 어른한테 된통 얻어맞은 줄 잊고서 이레도 안 되어 한글을 깨쳤고, 처음으로 보고 듣는 모든 이야기를 신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아홉 살을 지나고 열 살에 이를 즈음 ‘시험’이란 이름으로 엄청 억누르는 줄 느껴 비로소 ‘걱정’이란 낱말을 알았어요. 이즈음 우리 언니가 “네가 뭘 안다고 걱정해?” 하고 한마디 쏘아붙여요. 새삼스레 놀랐고, ‘아하! 그렇구나. 난 내가 하고픈 길만 생각하면 되는걸.’ 하고 뉘우쳤고, 이때부터 지레 걱정하는 일을 마음에서 싹 지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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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꽃/아버지 육아일기 2022.4.7.

숲집놀이터 265. 마음껏



  2022년 4월 6일 밤, 아버지하고 이틀째 바깥마실을 하며 전주에서 하룻밤을 묵는 작은아이가 속삭입니다. “아버지, 새벽 다섯 시에 깨워 주셔요.” “새벽 다섯 시?” “네, 새벽 다섯 시에 바깥이 어떤 빛인지 보고 싶어요.” “그래, 그러렴.” 숲노래 씨는 일찍 자건 늦게 자건 으레 밤 열한 시나 한두 시에 일어납니다. 4월 7일에는 밤 두 시에 하루를 엽니다. 새벽 네 시부터 갑자기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함박비가 쏟아집니다. 마실길에 슈룹(우산)을 안 챙겼으나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길을 나설 아침 아홉 시에는 비가 그치고 하늘이 새파랗게 트이리라 생각합니다. 빗소리가 새벽을 어루만지니 반갑고, 빗소리에 부릉소리가 모두 잠기니 즐겁습니다. 비는 말끔이(청소부)입니다. 비 한 줄기가 들으면 온누리가 말끔해요. 비는 맑음이입니다. 비 두 줄기가 내리면 온누리가 싱그러이 살아납니다. 새벽 다섯 시를 지날 즈음 작은아이 이마를 가만히 쓸어넘깁니다. 굳이 ‘깨울’ 까닭이 없이 이불깃을 여미고 토닥이면 돼요. 고단하면 더 꿈나라를 누빌 테고, 새벽빛을 보고 싶다면 어버이 손길을 느끼며 눈을 뜰 테니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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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3.25.

숨은책 645


《鄕土仁川의 案內》

 유희강 엮음

 광명사

 1959.12.20.



  1995∼2004년을 서울에서 살았는데, 다른 고장 이웃님이 찾아와서 “서울 구경 좀 시켜 줘” 하면 으레 서울 골목길을 걸어서 헌책집으로 이끌었습니다. “뭐야? 이곳이 서울에서 가장 멋진 곳이야?” “네, 서울에서 숨은 빛(보석)이 이 작은 헌책집입니다. 서울 속내를 환히 읽어낼 수 있어요.” 인천으로 삶터를 옮긴 2007∼2010년에도 똑같이 인천 골목길을 한나절 걷고서 헌책집으로 이끌었지요. “송도나 인천대교 같은 데는 안 가?” “그럼요. 껍데기 아닌 알맹이를 보고 느껴야 이 고장을 일구는 사람들 숨결을 만나거든요.” 고흥으로 옮긴 2011년부터는 우리 마을 어귀 ‘빨래터’부터 보여주었으나 마을빨래터는 2022년에 망가졌습니다. 《鄕土仁川의 案內》를 서울 어느 헌책집에서 목돈을 들여 장만했습니다. ‘인천 인현동 9번지’에서 펴내었고 “古跡·名勝·天然紀念物 附 傳說”을 붙인 얇은 책에는 ‘인천공설운동장’ 모습을 석 칸으로 찍어서 붙여요. 숭의1동·도원동 옛 골목집을 한눈으로 바라보며, 이 낮고 작은 살림집이야말로 아름빛이라고 느낍니다.


더욱이 이것이 博物館事業에 從事하는 동안에 거두어진 微細한 一部의 收錄이라 하겠으니 仁川博物館 創設로 부터 十年間 慘擔經營해온 前館長 李慶成氏의 調査 舊稿大部分을 이小冊字에 담기게됨을 다시금 滿足하며 謝意를 表한다. (엮은이/79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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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3.25.

숨은책 646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사기사와 메구무 글

 최원호 옮김

 자유포럼

 1998.1.20.



  요즘이라면 겉에 “일본 인기 여류작가의 서울살이 180일” 같은 이름을 섣불리 안 붙일 테지만, 1998년에는 이런 이름을 박는 곳이 흔했고, 저는 그무렵 이런 한 줄이 못마땅해서 밀쳤습니다. 이러던 2004년 4월 11일,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일본사람·조선사람으로 가르고, 순이돌이로 가르는 굴레가 사라지기를 바란다”는 글을 짤막하게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갑자기 멍해서 예전에 밀쳐둔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을 장만하려고 했더니 진작 판이 끊어졌습니다. 2004년 12월에 헌책집에서 겨우 한 벌 찾아내어 읽었습니다. ‘¼ 한겨레 핏줄’이 흐르는 줄 문득 알아차리고서 한말글을 익히려고 서울 연세어학당을 여섯 달 동안 다니는 동안 두 나라가 얼마나 차갑고 메마른가를 새록새록 느꼈다는 줄거리가 흐릅니다. 일본에서 나온 “ケナリも花 サクラも花”는 옅파란 바탕에 두 가지 꽃이 나란하고 군말을 안 넣습니다. 글님은 그저 ‘글님’일 뿐이고, 사는곳은 사는곳일 뿐이거든요. 모든 꽃은 참말로 꽃이요, 모든 풀은 그저 풀이며, 모든 나무는 늘 나무입니다. 그러나 차갑거나 메마른 두 나라는 ‘안 배우려는’ 사람들입니다. ‘배우려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든 따뜻하고 곱고 포근해요. 부디 하늘빛으로 쉬시기를.


ㅅㄴㄹ


#ケナリも花サクラも花 #鷺沢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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