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85] 놀 때에 웃는 삶

― 어른이 건사할 마음씨



  누구나, 놀 때에 웃습니다. 누구나, 놀지 못할 때에 웃지 못합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노는 아이가 웃고, 노는 어른이 웃으며, 놀지 못하는 아이가 못 웃고, 놀지 못하는 어른이 못 웃지요.


  일거리가 없어서 탱자탱자 지내야 ‘노는 삶’이 아닙니다. 돈이 많기에 아무 일을 안 해도 되니 ‘노는 삶’이 아닙니다. ‘노는 삶’은 스스로 이루려는 꿈으로 나아가는 몸짓입니다. ‘노는 삶’은 스스로 지은 사랑을 나누려는 몸짓입니다. ‘노는 삶’은 스스로 가꾸는 삶을 즐기는 몸짓입니다.


  아이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마음껏 뛰거나 달리고 싶습니다. 아이는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을 애써 따지지 않습니다. 아이는 극장이나 관공서나 학교를 굳이 가리지 않습니다. 아이는 언제 어디에서나 신나게 뛰거나 달릴 뿐입니다. 박물관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실컷 뛰거나 달리려는 아이입니다.


  박물관이나 도서관이나 미술관이나 전시관 같은 데라면, 어른이 아이를 타일러 얌전하거나 다소곳하게 있으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할 노릇이에요. 왜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는 얌전히 있어야 할까요. 미술관이나 전시관에서는 왜 다소곳하게 있어야 할까요. 우리는 춤추면서 그림을 볼 수 없는가요? 우리는 노래하면서 책을 읽을 수 없는가요? 물구나무서기를 하다가 사진을 볼 수 있고, 바닥에 드러누워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꼭 어떤 옷을 갖춰 입고서 어떤 시설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꼭 어떤 맵시가 되어 어떤 기관에 가야 하지 않아요.


  옷차림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마음씨가 대수롭습니다. 겉모습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마음결이 대단합니다. 아이는 놀 적에 ‘어떤 옷을 입었는가’를 따지지 않습니다. 아이는 ‘비싼 옷’이나 ‘값진 옷’을 입고도 모래밭에서 뒹굽니다. 아이는 ‘고운 옷’이나 ‘예쁜 옷’을 입고도 개구지게 뛰거나 달리면서 온통 땀투성이가 됩니다. 즐겁게 웃는 마음이 되기에 놀 수 있고, 즐겁게 웃는 마음을 어른이 되어도 그대로 살려서 일합니다. 기쁘게 웃으며 노래하는 마음으로 놀며, 기쁘게 웃으며 노래하는 마음을 어른이 되어도 고스란히 살려서 일합니다. 땅바닥을 콩콩 울리면서 달리는 아이는 아름답게 자라리라 생각합니다. 4348.2.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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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와 크레파스



  종이와 크레파스면 넉넉하다. 종이와 연필이어도 된다. 종이가 없으면 흙바닥에 나뭇가지여도 즐겁다. 우리 마음속에 고운 생각을 그리듯이, 종이에 너른 꿈을 그린다. 짓고 싶은 집을 그리고, 살고 싶은 마을을 그린다. 함께 웃고 노래하는 삶을 그린다. 같이 뛰놀고 어우러지는 하루를 그린다. 기쁜 놀이를 그리고, 파란 하늘을 그린다. 우리가 그림으로 그리고, 이 그림을 가슴에 담으니 삶이 된다. 4348.2.3.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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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빨간머리 아저씨는 (2015.1.31.)



  ‘빨간머리 아저씨’는 200억 원짜리 구름을 타고 파란 빗줄기를 받으면서 하늘을 난다. 나뭇잎이 뒤를 따르고, 햇살이 곱게 비추면서 눈이 소복소복 내린다.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바라는 꿈으로 그림을 그린다. 재미나게 노는 하루가 되기를 빌면서 그림을 그린다. 한국사람이 어떻게 빨간머리인가 하고 물으면, 머리카락을 빨갛게 물들여도 되지만, 한국사람이라고 빨간 머리카락이 돋지 말란 법이 없다고 말할 생각이다. 한국사람이 까만머리만 있는 까닭은, 까만머리 말고는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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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6. 함께 배우고 가르치기



  아이를 학교에 넣는 일이 ‘잘못’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고 싶으면 그럴 뿐이다. 그런데, 지구별 어느 곳에서도 아이를 어버이가 맡아서 가르치지 않고 학교라는 데에 따로 보낸 일이 없다. 아이를 따로 학교라는 데에 넣을 무렵부터 지구별에 문화나 문명이 생겼을는지 모르나, 바로 이때부터 전쟁과 신분과 계급이 함께 생겼다. 아이와 함께 삶을 짓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과 평화였고, 아이를 어버이가 손수 가르칠 적에는 어버이도 아이한테서 삶과 사랑을 배웠다. 이러한 얼거리를 느낄 수 있다면, 아이를 낳으려는 어버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을 만하다. 아이를 낳기 앞서 어버이는 ‘보금자리’부터 마련해야 한다. 부동산이 아닌 ‘보금자리’이다. 아이와 함께 삶을 누릴 터를 마련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 삶터에서 생각을 지어야 한다. 아이가 물려받기 바라는 사랑을 생각해야 하고, 이 생각을 밭에 씨앗을 심듯이 어버이와 아이 마음에 ‘생각씨앗’으로 심어야 한다. 우리는 늘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따사롭고 넉넉한 숨결이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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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84] 밥빛

― 더 맛있는 밥이 아닌



  아이들과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과 아침저녁을 함께 먹습니다. 우리는 맛난 밥을 먹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밥을 함께 먹습니다. 이 밥은 그저 내 손으로 차리는 밥이요, 아이들이 저희 손으로 받아들이는 밥입니다. 밥을 다 차린 뒤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 아이들보다 늦게 밥상맡에 앉습니다. 아이들이 으레 먼저 먹습니다. 밥술을 뜨던 아이들이 “아, 맛있다!” 하고 외치기도 하고, 느즈막하게 밥상맡에 앉아 밥술을 뜨다가 나도 모르게 “오, 맛있네!” 하고 외치기도 합니다.


  내가 차린 밥이라서 맛있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지어 먹는 밥이기에 맛나지 않습니다. 몸으로 스며드는 따스한 기운이 반가우니 맛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손수 차린 밥이라서 맛나다기보다, 아이들과 즐겁게 둘러앉아 사랑스레 밥술을 뜰 수 있어서 맛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국 한 그릇이 맛있고, 밥 한 그릇이 맛납니다. 어버이 스스로 사랑을 심어서 지은 밥일 때에 맛있고, 어버이가 아이와 하루를 누리는 기운을 얻으려고 차린 밥일 적에 맛납니다.


  오징어볶음을 먹을 적에 “오징어 한 점 무 한 점 당근 한 점 파 한 점, 이렇게 넉 점으로 네 가지 빛이 되었네.”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아버지는 스스로 즐거워서 이렇게 먹습니다. 이 모습을 본 큰아이도 제 숟가락에 넉 점을 하나씩 올리고는 “나도 네 가지 빛깔이야. 아, 맛있겠다.” 하고 말합니다. 작은아이는 누나 숟가락을 보고는 저도 네 가지 빛깔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는 다 함께 밥상맡에서 ‘맛있는 밥맛’을 스스로 짓습니다. 재미나게 놀이를 하면서 맛나게 밥 한 그릇 비웁니다. 4348.1.29.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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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5-01-31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바로 배움이네요.

숲노래 2015-01-31 11:39   좋아요 0 | URL
날마다 새로 배우는 하루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