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손택을 안 읽는 뜻


​나는 수잔 손택이라는 분이 쓴 글을 안 읽는다. 이녁이 쓴 책 가운데 영어로 된 책은 헌책집에서 눈에 뜨이면 장만해 놓으나, 굳이 읽지는 않는다. 이녁이 사진을 놓고서 쓴 책을 읽으며 ‘사진을 보는 눈’이 아니라 ‘사진을 시샘하는 눈’을 느꼈다. 뭣하러 시샘을 하는 눈으로 글을 쓰고 사진을 말하려 했을까. 나로서는 모를 노릇이다. 이러다가 오늘 문득 느낀다. 시샘하는 눈으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한테서는 배울 건덕지가 없다. 아마 한 가지는, ‘시샘이란 마음에서는 어떤 삶도 사랑도 살림도 못 배운다’는 대목을 배우겠지. 사진길을 걸으면서 삶길을 걸은 사람들을 굳이 시샘하지 말고 수잔 손택 스스로 사진기를 쥐고서 즐겁게 이웃을 사진으로 담아 보는 길을 좀 걸었다면, 시샘글 아닌 사랑글을 썼을 테고, 그 사랑글은 사진을 사랑하는 뭇사람한테 새롭게 이슬떨이가 될 만하리라 본다. 오직 사랑하는 눈길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오로지 사랑하는 손길로 글을 쓸 수 있다. 오롯이 사랑하는 마음길로 살림을 지을 수 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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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었으면



겪었으면 달라지기 마련인데, 겪었어도 안 달리지곤 한다. 겪었는데 왜 안 달라지는가 하고 가만히 돌아보면 제대로 안 겪었더라. 그래서 신나게 겪거나 뼛속 깊이 사무치도록 겪는 일이 반드시 찾아온다. 와, 그러네. 그야말로 온몸으로 느끼지 않고서는 ‘겪었다’고 말할 수 없구나. 생각해 보라. 좀 덜 맛없는 국이라면 그냥 먹어치울는지 모른다. 살짝 맛없을 적하고 살짝 맛있을 적은 참말로 으레 그냥 먹겠지. 이 살짝 맛없거나 맛있는 밥이나 국을 통째로 버리고서 ‘제대로 맛있는 밥이나 국’을 새로 지어서 먹는가? 조금이라도 맛이 제대로 안 나면 몽땅 버릴 수 있는가? 글을 쓰고 싶다면, 오롯이 내 살점이 되고 뼈가 될 만큼 제대로 쓸 노릇이다. 아이들을 가르칠 적에도, 이웃을 마주할 적에도, 아주 자그마한 틈일을 할 적에도, 우리는 제대로 겪고 제대로 펴고 제대로 하면 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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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 글쓰기



오늘은 충남 아산으로 이야기꽃을 펴러 가는 날. 밤 한 시에 일어나서 여러 가지 마감글을 쓰다가 짐을 꾸렸고, 아침 여덟 시 사십오 분에 집을 나설 즈음 두 아이가 일어나서 아버지를 배웅한다. 이쁜 아이들아 손수 즐겁게 밥을 지어서 누리고, 하루도 새롭게 그리면서 가꾸렴. 마을 앞에서 시골버스를 탄다. 고흥읍에 닿아 순천 버스나루로 간다. 순천에서 내려 순천 기차나루로 가야 하나 싶어 버스일꾼한테 말씀을 여쭌다. “버스에 그대로 있으면 기차나루로 갈까요?” “손님 몇 분 기차를 타시는데요?” “52분이요.” “그라모 잘 가겠네.” 순천 버스나루에 10시 24분에 버스가 섰고, 나는 버스나루에 있는 우체국 기계로 가서 통장을 갈무리한다. 버스에 돌아오니 10시 31분. 35분에 가기로 한 버스인데 버스일꾼은 4분 일찍 움직인다. 곧이어 다른 버스가 들어오기도 하고, 손님이 거의 없다 보니 일찍 움직이시는 듯하다. 무엇보다 몇 없는 버스손 가운데 내가 기차를 더 일찍 느긋이 타도록 마음을 써 주셨네! 고맙습니다. 그 4분이 얼마나 값졌는지! 참말로 아주 느긋하면서 가뿐히 기차로 갈아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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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쓰기



오래도록 맺힌 수수께끼를 풀면서 낱말풀이를 새로 해내면 어쩐지 기뻐서 잠이 잘 안 온다. 이러면서 몇 낱말을 더 풀이를 하자고 생각하다 보면 잠을 미루고, 잠을 미루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굳어서 낱말풀이를 못 하고, 이러다가 뒤늦게 아차차 하고 깨닫는다. 일이 잘 풀린다 싶을 적에 더 느긋하게 눈을 감고 일찌감치 잠드는 길이 훨씬 좋다고. 한 마디라도 더 갈무리하고서 하루를 마감하려고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오늘 더 쓰지 않아도 이튿날에 새롭게 쓰면 그만일 뿐.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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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깨비 글쓰기



하루를 마감하고 꿈나라로 가려는데 큰아이가 문득 일어나서 “옆에 같이 누워 주세요.” 하고 말한다. “얘야, 너, 귀신 나온다고 생각하지? 귀신이 있니? 귀신을 봤니? 귀신이 너를 괴롭히니?”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작은아이 이불깃을 여미고 두 아이 사이에 눕는다. 조용히 파랗게 고요히 가만히 꿈그림을 그린다. 굳이 다른 말을 더 들려주기보다는 얌전히 상냥히 포근히 눕기만 해도 아이들은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이리라. 이튿날 아침에 아이들한테 ‘잠깨비’를 얘기해 줄까 하고 생각한다. “잠깨비라니?” 하고 물으면 ‘먹깨비’를 얘기하고, “먹깨비라니?” 하고 물으면 ‘책깨비’를 얘기하고, “책깨비라니?” 하고 물으면 ‘꽃깨비’를 얘기하고, “꽃깨비라니?” 하고 물으면, ‘바람깨비’를 얘기하면서, 우리 곁에는 언제나 숱한 ‘깨비’가 있는데, 우리를 마냥 지켜보기만 할 뿐이라고, 다만 우리가 성을 내거나 시샘을 하거나 싫다 하거나 꺼리면, 이런 깨비는 무럭무럭 자라서 ‘장난깨비’가 된다고 얘기할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가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어깨동무하고 신나게 하루를 지으면서 지내면, 온갖 깨비는 우리한테서 철철 흘러넘치는 사랑을 받아서 시나브로 무지개랑 별로 거듭나 사르르 녹는다고 얘기를 덧붙일 생각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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