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우유와 소보로빵 마음이 자라는 나무 8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허구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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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16



너도 내 동무이니?

― 커피우유와 소보로빵

 카롤린 필립스 글

 허구 그림

 전은경 옮김

 푸른숲주니어 펴냄, 2006.2.3.



  요즈음 시골에서는 까치 우짖는 소리를 듣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시골에서 까치를 무던히도 싫어합니다. 아니, 오늘날 시골에서는 까치를 끔찍하게 미워합니다.


  어느 은행은 무척 오랫동안 까치를 이녁 은행 상징그림으로 썼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슬그머니 까치 그림을 치웠습니다.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며, 이때에 학교에서 배우기를, 까치는 언제나 반가운 손님을 부른다 했어요. 요즈음은 어떠할까요? 요즈음도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칠까 궁금합니다.



.. 바로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샘은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몸이 굳어 버렸다. “저기, 깜둥이다!” … 샘은 갑자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된 듯했다. 이렇게 즐거움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이 도시의 한쪽 거리에서 불과 두 시간 전에 돌과 화염병이 날아다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  (19, 37쪽)



  까치나 멧새나 텃새가 곡식을 쪼아먹는다고 합니다. 시골에 있는 새들이 밭뙈기에 심은 콩알을 마구 파먹는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사람과 새와 벌레가 콩을 한 알씩 나누어 먹었다 해서 ‘콩 석 알’을 노래했다는데, 이런 노래는 새마을운동 언저리부터 아주 사그라들었습니다. 새마을운동은 시골마다 ‘석면(슬레트) 지붕’을 씌우도록 들볶았을 뿐 아니라, 온 들과 숲에 농약을 뿌리라고 다그쳤으며, 흙밭으로 된 고샅과 마당을 시멘트를 들이부어 메꾸라고 닦달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새마을운동 때부터 시골에서 아이들이 사라집니다. 새마을운동 때부터 시골은 텅 빈 외톨이가 됩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아이들이 사라지면서, 시골 어른들이 새를 미워하거나 싫어합니다. 시골에서 새와 놀거나 노래할 아이들이 사라지면서, 시골 어른들은 새하고 콩 한 알 나누던 마음을 몽땅 잃거나 잊고 맙니다.



.. 대체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고향으로? 집으로? 그것이 어디 있는데? 태어나서 자라던 마을과 부모님, 그리고 가족은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에리트레아는? 에리트레아는 이제 전쟁이 끝나고 한창 제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샘 엄마는 새롭게 세워지는 에리트레아에 이렇다 할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솔직히 에리트레아보다는 독일에서 사는 게 더 익숙했다 … 사진 속의 아이들은 샘처럼 갈색 피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둘 사이의 공통점은 그게 전부였다. 샘은 자신이 그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모습을 도무지 머릿속에 그려 볼 수가 없었다 ..  (64, 69쪽)



  옛날에는 새와 벌레하고 콩을 한 알씩 나누어 먹을 뿐 아니라, 겨울에는 빈 그릇에 곡식을 덜어서 바깥에 내놓기도 했습니다. 눈 덮인 들과 숲에서 텃새가 굶거나 추위에 떨까 근심하면서, 시골사람은 누구나 으레 이녁 밥그릇에서 곡식을 덜어 기꺼이 ‘이웃’하고 나누었어요. 이웃이란, 바로 토끼요 새이며 작은 숲짐승입니다.


  사람만 이웃이 아닙니다. 사람만 서로 동무가 되지 않습니다. 예부터 어느 나라 어느 겨레에서든, 사람들은 누구나 짐승하고도 이웃과 동무로 지냈어요. 새하고 서로 아기자기하게 노래하며 어울렸어요.


  시골에서 벌과 나비와 벌레가 꽃가루받이를 해 줍니다. 벌과 나비와 벌레는 새가 잡아먹습니다. 벌레가 너무 많으면 애써 꽃가루받이를 해 주었어도 모두 갉아먹겠지만, 새가 벌레를 알맞게 잡아먹습니다. 그리고, 새는 기쁘게 노래하지요. 마을마다 온갖 새가 찾아들면서, 들판마다 갖은 새가 날아다니면서, 사람들한테 맑고 그윽하며 구수하고 싱그러운 노래를 들려줍니다.


  고단하게 일하던 사람들은 새노래를 듣고 새로운 마음이 됩니다. 마당에서 고샅에서 들에서 숲에서 냇가에서 놀던 아이들은 새노래를 들으며 새로운 꿈을 키웁니다. 새가 들려주는 노래는 참말로 새노래입니다. 새가 불러서 새노래인 한편, 새로운 사랑과 삶을 속삭이기에 새노래입니다.



.. 샘에게 피부 색깔만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전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문제였다. 독일사람들 중에는 피부색을 진한 갈색으로 바꾸기 위해, 한여름에 햇볕에 나가 그을리려고 안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알았어? 네 피부는 죽을 때까지 갈색이야. 그리고 난 내 아들의 피부가 희어지는 것 싫어! 지금 이대로가 좋아. 정말로 중요한 건 여기, 그리고 이쪽에 뭐가 들어 있는가 하는 것이야!”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샘의 머리와 가슴을 쿡쿡 찔렀다 ..  (83, 86쪽)



  카롤린 필립스 님이 빚은 푸른문학 《커피우유와 소보로빵》(푸른숲주니어,2006)을 읽습니다. ‘커피우유’는 독일에서 흰둥이가 검둥이를 놀리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소보로빵’은 독일 이주노동자가 낳은 검둥이 아이가 흰둥이 독일 아이를 바라보며 똑같이 놀리려고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흰둥이는 검둥이를 놀리고, 검둥이는 흰둥이를 놀립니다. 그러면, 이들 사이에서 누렁둥이는 어떤 말로 서로서로 마주하거나 바라볼까요. 우리는 우리 둘레에 누가 어떻게 있다고 여기는가요. 흰둥이, 검둥이, 누렁둥이, 이렇게 살빛으로 바라보는가요? 아니면,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면서 바라보는가요?



.. “그냥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한 사람들도 돌을 던지는 것에 반쯤은 찬성한 거야. 머릿속으로는 같이 돌을 던진 거나 마찬가지란다. 다만 나서서 던질 용기가 없었을 뿐이지.” … 엄마 아빠의 피부색이 하얗다면 난 어땠을까. 사람들이 거리에서 날 쳐다보는 일도 없을 거고, 또 내가 독일어를 잘 하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지도 않을 테지. 그런데 내가 독일어 말도 대체 어느 나라 말을 잘 해야 한다는 거지? ..  (93, 172∼173쪽)



  한국에도 이주노동자가 대단히 많습니다. 한국에 시집온 아가씨가 아주 많습니다. 오늘날 시골에서 한국 아가씨가 낳은 아이는 차츰 줄어듭니다. 도시에서도 외국 아가씨가 낳은 아이가 차츰 늘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도 외국 아가씨가 낳은 아이는 참 얄궂게 따돌림이나 푸대접을 받습니다.


  우리는 어떤 눈길로 서로서로 바라보는가요. 눈을 감고 헤아려 보셔요. 눈을 감으면 이녁 살빛이 보이는가요? 손으로 살결을 쓰다듬으면 살빛을 알 수 있는가요? 목소리로 들으면 살빛 다른 겨레인 줄 알아챌 수 있나요?


  몸뚱이라는 껍데기가 아닌, 몸뚱이에 깃든 넋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내 동무가 누구인지 똑똑히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요.


  까치도 까마귀도 참새도 제비도 모두 우리 이웃이면서 동무입니다. 멧토끼도 멧돼지도 노루도 고라니도 모두 우리 이웃이면서 동무입니다. 잠자리도 개똥벌레도 사슴벌레도 하루살이도 모두 우리 이웃이면서 동무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은 거추장스럽습니다. 노동자이면 그냥 노동자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라는 이름도 거추장스럽습니다. 그저, 우리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함께 일하는 ‘일동무’이고 ‘일이웃’입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놀이를 즐기는 ‘놀이동무’이며 ‘놀이이웃’입니다.


  어깨를 겯고 노래해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노래를 불러요. 밥 한 그릇씩 장만해서 도르리도 하고 조촐히 잔치도 열어요. 삶을 아끼고 사랑해요. 오늘 하루를 아끼면서 사랑해요. 다 같이 웃는 삶을 생각해요. 다 같이 노래하면서 꿈을 키우는 하루로 살아요. 4347.9.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푸른책과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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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는다 창비시선 26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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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67



시와 배꽃

― 나는, 웃는다

 유홍준 글

 창비 펴냄, 2006.10.20.



  마음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알아요. 시외버스나 전철이나 기차는 덜컹거리면서 바큇소리가 꽤 큽니다. 그러나,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동무랑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바큇소리를 하나도 못 느낄 뿐 아니라 아예 못 듣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책을 읽으면, 내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모두 잊습니다.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적에는 동무하고 이야기를 못 나눕니다. 자꾸만 ‘아이 시끄러워’ 하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니 책을 못 읽어요. 자꾸만 ‘시끄러워 죽겠네’ 하고 생각합니다.



.. 소음은 나의 노래 / 소음은 나의 자장가 / 소음 없이 난 이제 하루도 못 살아 ..  (소음은, 나의 노래)



  조용한 숲에 있어야 마음이 따사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따사롭게 가눌 적에 마음이 따사롭습니다. 텔레비전이 없고 시끄러운 소리를 모두 막은 넓은 아파트에 있기에 명상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따사롭게 가누기에, 감옥 좁은 방에 갇혔어도 명상을 합니다. 절집에 찾아가야 비손을 올릴 수 있지 않아요. 갓난쟁이한테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빨래하면서 얼마든지 비손을 올릴 수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나를 건드리는 것’이 없는 데에 있을 때에 시를 쓰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때에 시를 씁니다. 돈이 있어야 책을 사서 읽지 않습니다. 마음이 있어야 책을 사서 읽습니다. 일에 치이지 않거나 바쁘지 않거나 돈도 넉넉히 갖춘 뒤에라야 책을 읽을 만하지 않습니다. 할 일이 많거나 바쁘거나 돈이 얼마 없어도, 스스로 마음을 열면 얼마든지 책을 읽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도 되고, 헌책방에서 값이 눅은 책을 찾아서 장만한 뒤 읽어도 돼요.



.. 휴일 없이 / 3교대 종이공장 제지공들은 출근을 한다 ..  (문맹)



  마음이 없는 사람은 겉모습에 끄달립니다. 같은 책을 놓고 ‘헌책’과 ‘새책’을 따질 까닭이 있을까요? 하나도 없습니다.


  생각해 봐요. 새책방에서조차 참 많은 사람들은 ‘더 깨끗한 책’을 살핍니다. 참 엉터리 같은 노릇입니다. 새책방에서도 이것저것 골라서 책을 장만하는데, 새책으로 장만한 그 책에 긁힌 자국 하나 없이 알뜰히 건사하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요? ‘더 깨끗한 책’으로 골라서 장만하지만, 막상 ‘더 지저분하게 함부로 굴리지’ 싶어요.


  책은 알맹이를 읽습니다. 책은 껍데기를 읽지 않습니다. 공장에서 갓 찍어서 나온 책으로 읽어야 더 잘 읽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 손을 거친 도서관 책을 빌려서 읽어야 더 잘 읽지 않습니다. 여러 집을 돌고 돈 헌책을 헌책방에서 장만해서 읽으니 덜 읽거나 못 읽지 않습니다.


  책에 김칫국물이 튄들 대수롭지 않습니다. 김칫국물 때문에 ‘책에 깃든 줄거리’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책종이가 구겨져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구겨졌기 때문에 ‘책에 담긴 숨결’이 옅어지지 않아요.



..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낡아빠진 기와집이 / 한 마리 / 검은 물고기 같다 ..  (물고기 꿈)



  이름난 아무개가 쓴 글이기에 대단할 수 없습니다. 삶이 대단할 때에 글이 대단합니다. 사랑과 이야기와 숨결이 대단할 때에 글이 대단하지요.


  다시 말하자면, 문학상을 탔기에 글이 대단하지 않습니다. 인기 작가로 되어 책이 많이 팔렸다 하기에 글이 대단하지 않아요. 중앙일간지에 글이 실리면 대단할까요? 대기업 사외보에 글을 실으면 대단할까요?


  껍데기는 내려놓아야 해요.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보아야 해요. 사람을 사귈 적에도 이와 같아요. 우리는 마음으로 동무를 삼고 이웃을 사귑니다. 우리는 겉모습이나 은행계좌나 자가용 때문에 동무나 이웃을 만나지 않습니다. 돈을 좀 얻으려고 동무나 이웃을 사귀려 한다면 얼마나 서글픈가요. 어떤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노리며 다가서려 한다면 얼마나 슬픈가요.



.. 빨래를 널고 있는 아내의 등 뒤로 / 살금살금 다가가 / 안고 싶다, 안아보고 싶다 ..  (한 아름의 실감)



  유홍준 님 시집 《나는, 웃는다》(창비,2006)를 읽습니다. 시를 읽다가 자꾸 생각합니다. 이 시를 쓴 유홍준 님은 삶이 그리 안 즐거울는지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그닥 즐겁지 않아 그닥 웃음이 나오지 않는 터라, 자꾸 웃음을 떠올리거나 그리면서 시로 써야 한다고 느끼는구나 싶습니다.



.. 추리닝 입고 낡은 운동화 구겨 신고 마트에 갔다 온다 짧은 봄날이 이렇게 무단횡단으로 지나간다 까짓 무단이라는 거 뭐, 별것 아니지 싶다 봄이 지나가는 아파트단지 만개한 벚꽃나무를 보면 나는 발로 걷어차고 싶어진다 ..  (벚꽃나무)



  벚꽃나무를 걷어차고 싶은 마음은, 송전탑을 걷어차고 싶은 마음도 될 테지만, 가난한 이웃을 걷어차고 싶은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섣불리 어떤 것도 걷어차지 마셔요. 남을 걷어차면 나도 걷어차입니다. 사랑하셔요. 사랑은 돌고 돌아 사랑이 됩니다. 미움은 돌고 돌아 언제나 미움 그대로입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을 부를 뿐이에요. 전쟁은 평화를 부르지 않아요. 평화는 오직 평화가 부를 뿐입니다.


  그러니까, 벚꽃나무를 어루만지는 마음이 될 때에, 송전탑 때문에 아픈 이웃을 어루만지는 마음으로 이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어루만지고, 돈이나 권력이나 이름에 끄달리는 바보스러운 이웃도 어루만지는 마음으로 이을 수 있어요.


  생각해 봐요. 전두환이나 박정희 같은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가요.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사람도 얼마나 불쌍한가요. 나는 이런 이들이 그예 불쌍하게만 보입니다. 삶을 모르고 사랑을 모르며 꿈을 모르는 이런 이들은 이녁 스스로 이녁 삶을 아주 망가뜨렸습니다. 게다가 이녁 삶만 망가뜨리지 않고 이웃 삶까지 망가뜨리지요. 딱한 이들이요 가엾기까지 한 이들입니다. 이들을 걷어차 본들 더 불쌍하기만 합니다. 사랑 없이 자라서 사랑 없이 막짓을 해대는 이들은 그야말로 ‘사랑에 주린 가녀린 목숨’입니다.



.. 이 책이 없었다면 저 벌레를 때려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더 뜨거운 냄비를 내려놓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저 삐걱거리는 개다리소반을 바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  (벌레 잡는 책)



  책은 나무로 만듭니다. 책을 만들려고 숲에 있던 나무를 벱니다. 유홍준 님 시집도 숲에서 왔습니다. ㅈㅈㄷ이라는 신문도 숲에 있던 나무를 베어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톨스토이 님 책도 유홍준 님 시집도 ㅈㅈㄷ신문도 모두 똑같습니다. 모두 똑같은 숲입니다.


  숲을 어떻게 가꿀 때에 즐거울까 생각해 봅니다. 숲에서 피어날 꽃들은 어떤 내음을 퍼뜨려서 어떤 씨앗을 맺을 때에 즐거울까 헤아려 봅니다.


  《나는, 웃는다》가 배꽃과 같은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요. 배꽃처럼 웃고, 배꽃처럼 노래하며, 배꽃처럼 우리들 고픈 배를 채우는 맛난 밥 한 그릇이나 열매 한 점과 같은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7.9.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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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왜? - 우리 동식물 이름에 담긴 뜻과 어휘 변천사
이주희 지음 / 자연과생태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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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84



풀이름을 읽는다

― 내 이름은 왜?

 이주희 글

 자연과생태 펴냄, 2011.7.20.



  시골에서 사는 분들은 시골일을 합니다. 시골일은 으레 흙을 만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시골사람이 하는 일이란 흙일이라 할 만합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을 지키니 시골지기라 할 수 있고, 시골지기는 흙을 만지는 일을 하면서 흙을 보살피거나 지키니까 흙지기라 할 수 있습니다.


  흙은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하고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울타리를 세우면 흙을 지킬까요? 울타리를 높게 쌓아서 빗물에 흘러넘치거나 쓸리지 않게 하면 흙을 지킬까요?


  오늘날 시골을 보면 어디에서나 농약을 엄청나게 씁니다. 오늘날 시골을 살피면 어디에서나 비료를 가볍게 많이 씁니다. ‘유기질’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름을 흙에 뿌리는 시골이 차츰 늘어나는데, 정부에서 돈을 들여 마련해서 시골 흙지기한테 나누어 주는, 아니 싼값에 파는 ‘유기질은 무엇일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돼지나 소를 키우는 곳에서 거둔 돼지똥이나 소똥일까요? 돼지똥이나 소똥이라면, 돼지나 소는 무엇을 먹고 어떤 똥을 눌까요? 아마 사료를 먹고 사료내음 가득한 똥을 누겠지요. 항생제를 먹고 나서 항생제 기운이 가득한 똥을 누겠지요.


  이제는 풀 먹는 소가 거의 없습니다. 이제 시골에서는 풀을 먹고 자라는 소가 매우 드뭅니다. 왜냐하면, 이제 시골에서는 풀이 몹시 드물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풀밭 찾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시골에 풀밭이 있으면, 누군가 풀밭에 농약을 뿌립니다. 농약으로 풀을 태워 죽입니다.



.. 함경도 지방에서는 황새를 한새라고 하며, 한새봉이나 한새골처럼 지명에 한새가 들어간 곳도 모두 황새와 관련 있다 … 누런색을 제외한 다른 색깔 한우가 사라지게 된 것은 1920년대 말부터 일제가 우리 소를 누런색으로 통일하려는 운동을 펼치면서다 … 박쥐가 복을 상징하기 때문에 우리 나라 전통 공예품이나 가구 및 건축 장식에 박쥐 문양이 많이 들어간다 ..  (15, 18, 184쪽)



  농약 머금은 풀이라면 돼지나 소한테 먹일 수 없습니다. 농약 머금은 풀을 먹다가는 돼지도 소도 아프거나 죽겠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농약 듬뿍 쳐서 키운 쌀과 남새를 먹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먹는 능금이나 배나 포도나 복숭아나 딸기 따위에 농약을 얼마나 많이 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도시에서는 학교급식을 합니다. 학교급식은 거의 한국쌀을 씁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급식으로 먹이는 쌀은, 한국쌀은 얼마나 깨끗할까요? 우리는 급식이라는 제도를 마련한 뒤, 아이들한테 ‘농약쌀’을 마구 먹이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게다가, 시골에서 흙에 뿌리는 유기질은 싱그러운 거름이 아니기 일쑤입니다. 화학약품 가윽한 사료를 먹고 자라는 돼지나 소가 눈 똥으로 만든 유기질을 흙에 뿌리니, 농약을 한 방울조차 안 썼다 하더라도, 무엇을 믿어야 할는지 아리송할 뿐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수천만에 이르는 사람을 먹여살릴 만한 ‘정갈하고 아름다우며 착한’ 곡식이나 남새나 열매는 거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이 나라 오천만 사람을 먹여살리는 곡식과 남새와 열매는 그예 농약덩어리요, 화학약품덩어리입니다.



.. 우리 나라는 스스로 생물을 조사하고 분류학적으로 정리한 역사가 짧다. 그래서 생물학의 후발주자인 우리 학자들이 우리 나라 생물 이름을 지을 때 어쩔 수 없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학명이나 이미 다른 나라 학자들이 붙인 이름을 많이 참조했다 … 멧토끼는 우리 나라 고유종으로 한반도 전역에 분포한다. 남한 지역에서는 멧토끼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토끼라고 하면 멧토끼를 일컫는 것이다. 멧토끼가 생물학적인 정식 우리 말 이름이기는 하지만, 민간에서는 산토끼라고 더 많이 부른다. 실제로 많은 종류의 국어사전에는 멧토끼라는 말은 없고 산토끼라는 말만 있다 ..  (25, 166쪽)



  이주희 님이 쓴 《내 이름은 왜?》(자연과생태,2011)라는 책을 읽습니다. 풀이름, 나무이름, 벌레이름, 새이름, 짐승이름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이주희 님은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이 나라 ‘이웃님’ 이름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그렇습니다. 이웃님입니다. 멧토끼도 이웃님이고, 고라니와 고니도 이웃님입니다. 해오라기도 이웃님이요, 박쥐도 이웃님이에요. 도룡뇽도 지렁이도 이웃님입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까치가 우는 소리를 듣고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는 뜻으로 여겼습니다. 까치가 우는 소리를 그냥 소리가 아닌 아름답고 즐거운 노래로 받아들였어요.


  예부터 한겨레는 제비가 봄에 찾아올 적에 몹시 반겼습니다. 제비집을 허무는 짓이란 아주 나쁜 짓이라고 여겼습니다. 제비집에서 제비똥이 쏟아질라치면 똥받이를 달았어요. 한집을 이루는 제비를 우리와 같은 님이요 이웃이요 동무로 삼으면서 언제나 즐겁게 마주했습니다.



.. 해는 태양에서 유래해 희다는 뜻을 갖게 되었으며, 그렇게 본다면 해오라기는 ‘흰 오리 같은 새’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 예전 사람은 고니보다 백조란 말을 더 많이 썼다. 지금도 생물에 관심 없는 많은 사람에게는 백조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 그런데, 이미 잘 알려졌듯 백조는 일본인이 만든 한자어다 … 오랜 언어 순화 노력에도 별자리 중에 백조자리를 ‘고니자리’라고,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고니의 호수’라고 고치자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  (45, 198∼199쪽)



  학자가 이런 이름이나 저런 이름을 붙이기 앞서, 모든 이웃님한테는 이름이 있습니다. 학자는 모르겠지요. 고장마다 우리 이웃님을 어떤 이름으로 불렀는지 잘 모르겠지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야 하는 아주 작은 것이라면 모르되, 우리 곁에 있는 나무나 풀이나 꽃이나 벌레나 짐승이나 새라면, 아주 마땅히 어느 고장에서든 이 이웃님을 가리키는 이름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학자로 일한 이들은 이웃님 이름을 살피거나 알아보려고 그리 나서지 않았습니다. 일본 학자가 붙인 이름을 슬그머니 따랐습니다. 얼토당토않다 싶은 이름을 학자 마음대로 붙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자가 이 나라 마을과 고을에 엉뚱한 한자 이름을 마구 붙였듯이, 이 나라 학자는 이 나라 이웃님한테 터무니없는 이름을 붙이기 일쑤였어요.



.. 고려 시대에 이르러 잦은 전란과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 새로 건물을 짓거나 축대를 쌓는 데 많은 목재가 필요했다. 급기야 고려 말에 이르러서는 목재로 쓸 만한 곧게 자란 느티나무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느티나무를 대체할 목재로 소나무를 선택한 것이다 … 고라니는 우리 나라와 중국 동북부 지역에만 사는데, 중국에서는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여 법으로 엄격히 보호하고 있다. 눈에 많이 띈다고 흔하다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며, 실제로 흔하더라도 지금처럼 인간의 간섭으로 심각하게 왜곡된 자연생태계에서 어떤 계기로 일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  (76, 178쪽)



  마늘은 왜 ‘마늘’일까요? 박은 왜 ‘박’일까요? 흙은 왜 ‘흙’일까요? 나무는 왜 ‘나무’일까요? 아마 어느 누구도 말밑을 못 알아내리라 생각합니다. 누가 맨 처음에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알 길이 없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고장마다 고을마다 마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엇비슷한 이름을 썼어요. 옛날에는 인터넷도 자동차도 학교도 없는데, 다 다른 고장에서 태어나서 그 고장을 떠날 일이 없는데, 풀이건 짐승이건 벌레이건 나무이건, 고장이나 마을마다 사뭇 비슷하거나 아예 똑같기까지 한 이름을 썼습니다.


  풀이름을 읽습니다. 미나리를 읽고 쑥을 읽고 냉이를 읽고 꽃다지를 읽습니다. 흙을 만지며 숲을 사랑한 우리 옛사람이 저마다 어떤 사랑을 품고 어떤 꿈을 키우면서 이런 이름을 즐겁게 지어서 썼을까 하고 가만히 되뇝니다.


  이웃님한테 이름을 붙여서 부른 옛사람이라면, 이웃님을 해코지하거나 괴롭히는 일이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은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아주 드물고, 흙을 만지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이웃님과 가까이에서 만나면서 살갑게 어울려 지내는 사람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님이 아니니, 이름을 제대로 모르고, 이름을 제대로 모르는 이웃님이니, 그저 경제개발과 막공사를 일삼습니다.


  풀이름을 읽어요. 우리 함께 풀이름을 읽어요. 목소리에 사랑을 실어 풀이름을 읽어요. 즐겁게 노래하고, 아름답게 춤추어요. 삶을 노래하고, 하루를 누려요. 4347.9.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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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커피 3
기선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83



즐겁게 커피 한 잔

― 오늘의 커피 3

 기선 글·그림

 애니북스 펴냄, 2013.12.6.



  즐겁게 먹는 밥이 맛있습니다. 밥상 가득 무엇을 차렸더라도 즐겁게 먹지 않을 적에는 맛이 나지 않습니다. 밥상에 간장이랑 국이랑 밥만 있어도, 서로 하하 웃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면, 밥이 맛있어요. 밥맛이란 즐거움이고, 이야기이며, 사랑스러운 기운입니다.


  커피 한 잔이 맛있다면, 커피를 잘 내리니 맛있기도 할 테지만, 즐겁게 타서 즐겁게 마실 수 있기에 맛있다고 느낍니다. 원두를 그 자리에서 바로 갈아서 마셔야 가장 맛있는 커피가 되지 않습니다. 자판기에서 뽑든, 설탕과 프림과 커피가루가 섞인 봉지를 뜯어서 뜨거운 물만 부어서 마시든, 마음을 즐겁게 가누면서 이웃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라면 언제나 맛있는 커피가 되지 싶어요.



- “손님들이 좋아하고, 나도 만족하면 된 거잖아요. 그 이상으로 잘할 필요 있나?” “굳이 따지자면, 그럴 필요는 없지. 지금의 너는 커피숍 직원으로서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 이상의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널 비난할 이유 같은 건 없다구.” (89쪽)

- ‘형이 커피 사업에 손을 댄다. 안 어울려. 카페는 그저 음료를 파는 데서 그쳐서는 안 돼. 커피만이 주는 온기, 편안한 느낌. 이것만큼은 빼앗기고 싶지 않아.’ (117∼118쪽)




  기선 님이 그린 만화책 《오늘의 커피》(애니북스)는 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누리도록 돕는 커피 한 잔을 이야기하는 만화책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아주 많은 만큼, 이 만화책으로 새롭거나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기선 님다운 맛깔스러움과 아기자기한 그림결은 재미를 한결 북돋웁니다.


  다만, 이야기 흐름이 너무 빠르고, 무엇보다 ‘즐거운 커피 한 잔이란 무엇일까’ 하는 대목을 더 짚지 못했구나 싶어 아쉽습니다. 《오늘의 커피》는 1권과 2권이 2009년에 나왔으나 3권은 2013년에 나왔습니다. 게다가 2013년에 나온 3권이 마지막입니다. 오랫동안 끊어진 이야기를 힘내어 마무리짓기는 했지만, 차근차근 흐를 이야기를 서둘러 끝냈구나 싶어요.


  작은 커피집을 꾸리는 젊은 사장을 둘러싸는 이야기를 보면, 젊은 사장네 형이 뒤에서 검은 속셈을 피우는 대목이 있고, 젊은 사장과 커피집 일꾼 사이에 샘솟는 사랑이 있으며, 커피 솜씨 겨루는 대회가 또 있는데, 여러 가지 이야기가 실타래로만 엮인 채 제대로 맺거나 풀리지 못합니다. 절집에 들어가 크게 깨달아 커피 끓이기를 새롭게 읽는다고 보여주는 대목조차 너무 짤막하게 너무 빠르게 깨달았다고 보여주고, 무엇보다도 너무 어린 나이에 갑자기 ‘커피 도인’이 된 젊은이 모습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이를테면, “어째서 사람들은 특별해지고 싶어하죠? 왜 저렇게 필사적으로 남들과 다른 것, 평소와 다른 걸 원하나요(162쪽)?” 하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렇게 물은 말에 이 만화책은 아무런 대꾸를 내놓지 못합니다.





- “뭐, 형에겐 돈 버는 게 삶의 의미라면 할 말 없지만, 적어도 지금 형이 구둣발로 들어와서 망쳐 놓으려는 게 어떤 건진 알고 있었으면 해서.” (155쪽)



  사람들은 왜 커피를 마실까요? 사람들은 왜 죽기살기로 남과 다른 것을 바랄까요? 잘 생각해야 합니다. 이 대목을 스쳐서 지나가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만화책 《오늘의 커피》는 이 대목 하나를 풀려고 여러 권에 걸쳐서 차근차근 실마리를 풀 수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실마리를 풀지 않고 서둘러 ‘연재 끝!’ 하고 펜을 내려놓는다면, 두루뭉술한 작품이 하나 더 나올 뿐입니다.


  온누리에는 똑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참말 똑같은 사람이 없는데, 똑같을 수 있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모두 다릅니다. 게다가, 꽃이나 나무도 모두 달라요. 숲이나 들에서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서 자라는 꽃과 나무는 모두 다릅니다. 민들레꽃이든 장미꽃이든 모두 모양새와 빛깔과 무늬와 크기가 다릅니다.


  다 다른 사람이지만, 오늘날 사회에서는 모두 똑같은 틀에 갇힙니다. 학교와 회사와 사회와 군대 어디에서나 ‘다 다른 사람’을 ‘다 같은 틀’에 끼워맞추려고 내몰아요. 다 다른 사람들은 늘 고단합니다. 다 같은 틀로 내몰리니 얼마나 고단할까요. 다 다른 사람이고 다 다른 삶인데, 다 같은 틀로 얽매이거나 옥죄이다 보니, 무엇 한 가지라도 ‘좀 다른 모습’을 찾아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옷차림이든 자가용이든 커피 한 잔이든, 어딘가 좀 달라야겠다고 용을 쓰지요.





- “사실 저는 눈앞에 나온 커피를 보기만 해도 이미 기분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기대감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169쪽)

- “뭐야, 생각보다 썰렁하잔아.” “무슨 소리야?” “난 네가 하도 칭찬하기에 뭔가 좀 굉장한 분위기일 줄 알았구만. 그냥 평범한 카페잖아.” (182쪽)



  차림새나 모양새를 다르게 꾸며서 보이려 한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수 없습니다. 다 다른 삶이란 겉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느긋하면서 너그럽게 다스리는 커피 한 잔이란 무엇이 될까요? 겉모습으로 커피를 끓일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끓일 노릇입니다. ‘텅 비우는 마음’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채우는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맛있는 커피가 됩니다. ‘오늘 즐겁게 마실 커피’가 될 때에, 비로소 우리 사회에서 매몰차게 내몰리면서 고단한 사람들이 ‘내 삶’과 ‘내 길’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즐겁고 씩씩하게 다시 기운을 내자고 여길 수 있습니다.


  만화책 《오늘의 커피》는 1권 처음을 열면서 ‘자판기 커피’ 이야기를 재미있게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1권 첫머리로 끝입니다. 2권이 지나고 3권이 되어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 끌어내지 못합니다. 대결 얼거리와 교훈 줄거리로 서둘로 끝막음을 하고 말았습니다.


  커피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다면 그릴 이야기가 아주 많을 텐데, 왜 더 건드리지 못하고 끝냈는지 자못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어쩐지 싱거운 커피맛이 나는 커피 만화인 《오늘의 커피》로구나 싶습니다. 4347.9.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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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좀 안 될까요 2
아소우 미코토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75



안 되기는 뭐가 안 되니

― 어떻게 좀 안 될까요 2

 아소우 미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0.12.25.



  아소우 미코토 님 만화책 《어떻게 좀 안 될까요》(시리얼,2010) 둘째 권을 읽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내가 왜 이 만화책을 읽는가 했더니, 나는 이 만화책에 붙은 이름 ‘어떻게 좀 안 될까요’와 같은 말을 몹시 싫어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살았습니다.



- “우린 늘 랏코의 도움을 받고 있다 보니, 랏코가 이상한 남자에게 걸리는 건 싫거든요.” (13쪽)

- “생각 없이 덜컥 수임하고는 후회 중인가?” “아니요, 전혀! 그런 비겁자는 내가 꽁꽁 묶어서라도 끌고 와, 책임지게 해 주겠어요!” “책임이 있는 건 남자만이 아니잖아. ‘낳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인데.” “그 남자 입에 발린 소리만 하고 도망쳤잖아요? 그녀는 그 사람 입장까지 그렇게 신경써 주는데.” “그야, 남자에게 양육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지면 손해잖아?” (24쪽)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는 내 이웃이나 동무한테 ‘어떻게 좀 안 될까?’ 하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한 차례도 이런 말을 안 썼습니다. 같이 하기를 바라면 ‘같이 하자!’ 하고 말하지, ‘어떻게 좀 안 될까?’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안 될 줄 뻔히 아는 일이면 처음부터 안 바랍니다. 나 스스로 그런 일이 안 내키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좀 안 될까요?’ 하고 말하면서 묻는 사람은 거의 똑같은 모습입니다. 잘못을 했거나 올바르지 않은 길을 그대로 이으려고 할 적에 으레 이런 말을 씁니다.


  잘못을 했으면 뉘우치면 됩니다. 잘못을 했으니 뉘우칠 노릇입니다. 올바르지 않은 길을 여태 걸었으면, 이제부터 올바른 길을 찾아서 씩씩하게 걸어가면 됩니다.


  사람들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자그마치 예순 해에 걸쳐 엉터리로 살았다 하더라도 예순한 해째부터 지난 잘못을 말끔히 씻어서 아름답게 살아간다면, 이녁 삶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합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예순 해나 엉터리로 살았지만, 예순한 해째에 크게 깨우쳐서 지난 모든 잘못을 씻으면서 아름답게 거듭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얼마나 대단하면서 멋질까요?


  처음부터 아름답게 살아도 아름답지요. 그러나, 잘못을 스스로 씻으면서 아름답게 살려고 해도 아름답습니다. 예순 해씩이나 잘못된 길을 걸었으니 앞으로도 그냥 잘못된 길을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참으로 안쓰럽고 바보스럽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해 봐요. 예순 해를 아름답게 살았다가 예순한 해째부터 바보스럽게 산다면? 이때에는 이런 사람을 바라보며 모두들 안타깝게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변절’이라는 낱말을 쓰기도 합니다. 민주와 자유를 지키는 일에 오래도록 몸바치다가 마지막에 가서 수구 기득권 세력에 빌붙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 “엄청 노력했을 거야, 그녀. 그런 식으로 비자를 따서 전문직에서 일하고 있다니, 아주 진지하게, 열심히 살아왔을 거라고.” (30쪽)

- “인지를 청구해 주세요. 그 사람에게 버림받은 이상 내게 소중한 건 이 아이뿐. 내가 부인에게 고소를 당하는 한이 있어도 상관없고,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돈을 내겠어요. 이 아이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하겠어요.” (36쪽)



  아소우 미코토 님 만화책 《어떻게 좀 안 될까요》는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헤아려 봅니다. 법을 다루는 만화책입니다만, 이야기를 법으로 풀지는 않습니다. 법 이야기를 살살 곁들입니다만, 법으로 삶을 풀지는 않아요. 삶은 삶으로 풀 수밖에 없기에, 법정에서만 법을 따질 뿐, 법정을 벗어난 삶자리에서는 언제나 삶으로 삶을 바라봅니다.



- “사람이 자꾸 닳거든요. 일을 하다 보면. 매일 거친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부끄러운 건 오히려 저예요. ‘선량’이란 미덕을 성가시게 여기다니.” (81쪽)

- “‘지금’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냔 말이야.” (130쪽)

- “상처가 아물어도 돈으로 보상한다 해도,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소중한 것.” (145쪽)




  법은 사람을 지키지 않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법은 사람을 지키지 않습니다. 사람을 지키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무엇인가 하면, 사랑입니다. 오직 사랑이 사람을 지킵니다.


  법은 그저 법입니다. 사회나 정치나 제도라는 얼거리를 지키려고 만드는 법입니다. 사람을 지키려고 법을 만들지 않습니다.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어요. 아름다운 마을에는 법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보금자리에는 법이 없습니다. 오직 사랑이 있고, 언제나 삶이 흐릅니다.


  아버지가 먼저 밥술을 들어야 다른 사람이 밥술을 들어야 하지 않아요. 갓난쟁이 아기가 먼저 밥술을 들 만합니다. 게다가, 배고픈 아이한테 먼저 밥을 주어야지요. 우는 아기한테 먼저 젖을 물리고 나서 어른들은 나중에 밥을 먹어야지요.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집에 불이 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 보셔요. 우리가 숲에 깃들어 바람을 마신다고 할 적에, 어버이가 먼저 마신 뒤 아이가 나중에 마시지 않습니다. 함께 바람을 마십니다. 햇볕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먼저 내리쬐지 않습니다. 햇볕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똑같이 내리쬘 뿐 아니라, 풀과 나무한테도 똑같이 내리쬡니다.





- “할머님께 들었는데, 그들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사귄 친구들이라고요.” “네.” “당신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고, 당신이 운전하는 차로 자주 드라이브도 하고, 함께 놀면서 비용도 거의 당신이 댔고요.” “그게 뭐 어떻다고.” “실례지만, 그게 친구인가요?” (183쪽)

- “말끝마다 돈, 돈. 뭐, 좋아요, 그것도. 그런데, 변호사 비용에 재판 비용에 합의금, 거기에 BMW 몇 백만 엔? 겨우 라면 한 그릇 먹는데, 왕복 택시비 3000엔이면 끝날 것을. 왜 그런 간단한 계산은 못 하나 몰라.” (200∼201쪽)



  어지러운 사회이기 때문에 법이 섭니다. 아름다운 마을에는 법이 없습니다. 지저분하고 퀴퀴하며 슬픈 사회이기 때문에 법을 놓고 다툽니다. 사랑스러운 마을에는 법이 없습니다. 서로를 아끼지 않고, 서로 믿음직하지 않으니, 자꾸 법을 내세워 툭탁거리고야 맙니다. 어깨동무를 하고, 두레와 품앗이를 하며, 오순도순 마을잔치를 여는 곳에서는 법이라는 낱말을 아무도 모르겠지요.


  안 되기는 뭐가 안 될까요. 법으로 사회를 옥죄려 한다면 법으로 구멍을 만듭니다. 사랑으로 삶을 가꾸는 곳이라면 언제나 사랑으로 웃고 노래하면서 즐겁습니다. 잘못된 길을 바로잡을 마음이 없으면 법에서 구멍을 자꾸 파내어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스스로 삶을 등지고 맙니다.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법 따위는 말끔히 잊거나 모르면서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고 꿈을 짓습니다. 4347.9.2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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