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여덟 1
타케모토 유지 지음, 고현진 옮김 / 시공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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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84



재미있는 만화와 씁쓸한 만화

― 여덟 1

 타케모토 유지 글·그림

 고현진 옮김

 시공사 펴냄, 2013.7.15.



  타케모토 유지 님이 빚은 만화책 《여덟》(시공사,2013)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은 ‘재미있는’ 만화라는 이름이 붙기도 합니다. 어떤 만화일 때에 ‘재미있는’ 만화가 될는지 궁금한테, 《여덟》을 찬찬히 읽으니, 이 만화책은 ‘재미있는’ 만화라기보다 ‘사회 풍자’ 만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이든 한국이든 사회가 엇나가거나 엉뚱하거나 어설프기 때문에, 이렇게 엇나가거나 엉뚱하거나 어설픈 사회를 살며시 비꼬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여덟》이라고 할 만해요. 스스로 재미있게 살면서 웃음이 쏟아지는 만화가 아니라, 뒤틀린 사회를 다시 뒤틀어 보여주면서 씁쓸하게 웃도록 이끄는 만화라 한다면 ‘사회 풍자’라고 느낍니다.



- “우와, 엄마. 이게 인간 전자레인지구나!” “응, 이게 음식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인간 전자레인지야.” (5쪽)

- “바로 그거야! 이유는 그거라고! 어째서 내 이름만 그렇게 이상한 거냐고!” “왜 이상하다고 생각해? 엄마는 좋기만 한걸.” “그럼 엄마가 나랑 이름 바꿀래?” (40∼41쪽)




  만화책 《여덟》 첫째 권 첫머리에는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가서 ‘마음이 따뜻해진 뒤 나오는’ 전자레인지가 나옵니다. 놀랍지요. 사람은 이런 기계를 따로 만들어서 써야 할 만큼 마음이 차갑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전자레인지가 어떤 기계인지 안다면 느낄 테지만, 전자레인지로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얼마 뒤에 다시 식습니다. 게다가, 같은 밥을 자꾸 전자레인지로 돌리면 맛이 없어지지요. 식었다고 해서 자꾸 전자레인지로 돌릴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는 전자레인지’는 1회용품입니다. 밑바탕을 고치거나 바꾸지 못합니다. 겉모습만 살짝 한동안 가려 줄 뿐입니다.


  우리 사회를 생각해 봐요. 우리 사회에서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마음을 숨겨야 합니다. 거짓스러운 마음을 앞에 내세워야 합니다. 참다운 마음이 자리잡을 곳이 없습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돈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마음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닦달합니다.



- ‘바보처럼 완고하고, 바보처럼 멋있다. 나는 그런 그들이 정말 좋다. 잠깐, 나는 지킬 수 있을까.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빠졌을 때, 모든 것을 던지며 프라이드를 지킬 용기가 나에게 과연 있을까?’ (47쪽)

- “그대들은 대체 어쩔 셈인가?” “나는 유카리를 행복하게 해 줄 거다.” “응?” “앞으로는 열심히 일해서 돈도 많이 모을 거야. 그래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할게.” (79쪽)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사람다울까요? 자존심을 지키면 사람다울까요? 자존심은 지키면서 사랑은 못 지킨다면 어떠한가요? 자존심은 지키지만, 평화와 꿈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떠한가요?


  지구별 모든 나라에 있는 전쟁무기는 무엇을 지킬까 궁금합니다. 지구별 모든 나라에서 갖춘 전쟁무기는 참말 그 나라에 평화를 지켜 줄까요?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자꾸 전쟁이 터지고 폭력이 불거지면서 평등과 평화가 짓밟히지 않나요?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쳐들어갑니다.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서로 괴롭히거나 죽입니다.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전쟁무기 만들고 건사하느라 엄청난 돈을 쏟아붓습니다. 전쟁무기 때문에 사람들이 배를 곯고, 전쟁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프며 슬픕니다.



- ‘나는 출연자가 아니더냐. 왜 시청률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거냐고. 그래,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그런데 TV 앞에서는 빵조각이나 씹어대면서 희희낙락 시청하는 녀석들이 있다. 시청률은 개뿔! 까불지 말라고.’ (100쪽)

- “그런데, 할아버지.” “뭐냐?” “그 말이에요, 하느님이.” “또 뭐야? 하느님이 어떻다고? 어서 말해 봐!” “부, 분명히, 모두의 마음속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왠지 눈물이 났다.’ (141∼142쪽)





  하느님이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생각은 참이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러한 참을 참으로 느끼지 못하기에 마음이 가난하거나 야위지 싶습니다. 내 마음에도 네 마음에도, 그러니까 우리 모두 마음속에 하느님이 있으면, 서로서로 아주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숨결이라는 뜻입니다. 서로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삶을 가꿀 때에 즐겁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를 밟고 올라설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너한테 이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할 때에 즐겁습니다. 우리는 두레와 품앗이로 서로 돕고 아낄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예배당이 늘어나고 커지지만, 지구별에 평화와 사랑과 꿈이 퍼지지는 못합니다. 커다란 예배당은 더욱더 커지지만, 정작 지구별에 아름다운 숨결과 사랑스러운 노래가 퍼지지는 못합니다. 예배당이 커지면 커질수록 ‘아직 예배당 신도가 아닌 사람’을 예배당에 데려가려는 움직임만 커집니다.


  종교란 무엇일까요. 사회란 무엇일까요. 정치와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모두 제자리를 잃고 어지럽게 헤매지 않나요. 그러니, 이런 사회를 살며시 비꼬는 만화가 나올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이 사회에서 즐겁게 웃을 일이 없기 때문에, 이 사회를 비꼬는 웃음밖에 얻을 길이 없구나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여덟》이라는 작품은 ‘재미있는’ 만화책이 아니라 ‘씁쓸하고 슬픈’ 만화책이지 싶습니다. 4347.9.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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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릇 파릇 가로수를 심어 봐 초록콩알 과학 그림책 4
김순한 글, 정승희 그림, 이경재 감수 / 대교출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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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35



나무 한 그루는 언제나

― 푸릇파릇 가로수를 심어 봐

 김순한 글

 정승희 그림

 대교북스주니어 펴냄, 2010.3.5.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는 사람은 날마다 새롭습니다.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새로움이 없습니다. 새롭다고 생각하기에 새로운데, 새롭다고 생각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하루가 즐겁습니다.


  즐거움은 남이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즐거움은 늘 내가 스스로 만듭니다. 꽃을 바라보며 즐거운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스스로 꽃을 바라보지 않으면 꽃빛도 꽃내음도 알 길이 없어요. 밥을 먹으며 배부른 사람은 바로 나예요. 스스로 밥을 지어서 스스로 밥술을 뜰 때에 즐겁고 배부릅니다. 남이 내 밥을 먹어 준다 하더라도 내 배가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 하루는 내가 스스로 엽니다. 날마다 똑같이 지겨운 일을 한다고 여긴다면 언제나 지겨울 뿐이에요. 그런데, 참말 지겨울 수 있으니, 지겹다면 이 굴레를 씻고 떨쳐서 일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굴레는 남이 벗겨 주지 않아요. 내가 스스로 벗어야 합니다. 왜나하면, 남이 벗겨 주는 굴레는 언제라도 다시 뒤집어쓰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종살이에서 벗어나야 홀로서요. 남이 종 문서를 찢어 없애더라도 내가 씩씩하게 일어서지 않으면 내 삶은 늘 종살이 그대로입니다.



.. 유치원에 갔다 왔는데 갑자기 시끄러운 거야.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어. “자동차 소리에 굴착기 소리까지 동네를 아주 흔들어 놓는구나. 진짜 이사를 가든지 해야지, 원……. 아이고 시끄러워!” ..  (5쪽)




  도시에 나무가 없습니다. 아니, 나무가 있기는 있으나 나무다운 나무가 없습니다. 길거리에서 자라는 자동차 배기가스 때문에 끙끙 앓습니다. 도시에서는 자꾸자꾸 재개발을 해대니, 제법 자랐다 싶은 나무라 하더라도 그만 뭉텅뭉텅 잘리고 맙니다. 쉰 해쯤 우람하게 자란 나무를 고이 옮겨심고 나서 재개발을 하는 건축업자는 아직 한국에 없지 싶어요. 다들 돈으로 파헤치고, 돈으로 새 나무를 사다 심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도시는 돈으로 굴러간다고 할 만합니다. 숲과 들을 밀어 도시를 짓잖아요? 그러니 도시에는 숲도 들도 없어요. 풀과 나무가 없습니다. 이렇게 도시를 만들고 나면, 도시사람 스스로 숨이 막혀요. 괴롭지요. 아이를 낳아 보셔요. 아이들도 고달픕니다. 숲이 없는 도시에서 아이들은 숨이 막힙니다. 들이 없는 도시에서 아이들은 놀 데가 없습니다.


  이리하여, 도시에서는 다시 돈을 들여 공원을 짓습니다. 그런데, 공원은 자연스러운 숲이 아닙니다. 풀과 나무가 싱그러이 자라는 숲이 아니라, 그럴듯하게 보이는 조형물입니다. 풀과 나무를 이리저리 자르고 깎고 다듬어서 제 빛을 빼앗습니다.



.. “나무를 심어서 가로수 길을 만들면 어때요? 공기도 맑아지고, 소음도 줄여 준다고 하던데.” ..  (6쪽)




  김순한 님이 글을 쓰고 정승희 님이 그림을 그린 《푸릇파릇 가로수를 심어 봐》(대교복스주니어,2010)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서 흐르는 이야기가 참말 있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참말 이러한 일이 있었기를 바라요. 아이들 몸을 생각하고 어른들 삶자리를 헤아려, 어른과 아이가 슬기롭게 생각을 지으면서 도시 한복판에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숲길을 가꿀 수 있기를 바라요.


  도시에서 이루는 숲은 누군가 지어 주지 않습니다. 시장님이 지어 줄까요? 아파트 건축업자가 지어 줄까요? 아니에요. 아무도 지어 주지 않습니다. 환경부장관이나 교욱부장관도 숲을 지어 주지 않아요. 모두 돈만 생각할 뿐이에요.


  숲은 바로 우리가 스스로 가꿉니다. 우리가 스스로 나무를 한 그루씩 심으면서 차근차근 숲을 이룹니다. 처음에는 아주 조그마한 어린나무 한 그루일 테지만,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흐르면서, 천천히 숲바람이 붑니다. 어느새 나무그늘이 우거집니다.



.. 엄마랑 장을 보러 나왔다가 가로수 그늘 아래서 잠깐 쉬어 가기로 했어. “자동차 소리가 덜 시끄러워요.” “그래, 가로수 잎사귀들이 소움을 빨아들이는 모양이야.” 바람 한 점 불어와 얼굴을 시원하게 해 주고 가네 ..  (25쪽)




  나무가 있어야 집을 짓습니다. 나무가 있어야 불을 땝니다. 나무가 있어야 살림살이를 짓고, 나무가 있어야 푸른 바람을 마십니다. 생각해 보셔요.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나무가 없이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나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시멘트땅에서 무엇을 얻어 밥을 먹을 수 있나요?


  도시이든 시골이든 숲이 우거질 때에 비로소 삶이 환하게 거듭납니다. 도시와 시골 모두 나무가 곳곳에서 씩씩하게 자랄 때에, 우리 삶터가 아름답습니다. 나무가 없는 곳은 메마릅니다. 나무가 없으니 사람들 마음이 딱딱해지거나 갑갑해집니다.


  나무를 잊을 때에 사랑을 잊고, 나무를 생각할 때에 사랑을 새로 그립니다. 나무를 잃을 때에 삶을 잃고, 나무를 헤아릴 때에 삶을 새로 그립니다.



..우리 동네에 가로수와 작은 숲이 늘어났어. 가로수는 새와 곤충 친구들을 불러들였지. 누구나 가로수 길을 사랑하게 되었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바뀌는 아름다운 모습을 도시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단다 ..  (31쪽)



  나무 한 그루는 언제나 숲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있으면, 이 한 그루에서 씨앗을 떨구어 새로운 나무가 자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무 한 그루이지만, 백 해가 지나고 즈믄 해가 지나면 어느새 넓고 깊게 짙푸른 숲으로 거듭납니다.


  한 사람이 언제나 온누리입니다. 한 사람이 아름다운 생각을 마음속에 품어서 지을 적에 이 땅에 아름다운 사랑이 피어납니다. 더 큰 사랑이나 더 작은 사랑은 따로 없습니다. 모든 사랑은 오롯이 사랑입니다. 따스하고 포근하면서 보드랍습니다. 즐거우며 기쁘고 착합니다.


  나무가 자라기에 아이들은 나무를 탑니다. 나무가 춤을 추기에 아이들은 나무 곁에 서서 바람 따라 나무와 함께 춤을 춥니다. 나무가 높이높이 솟기에 아이들은 나무를 우러르면서 나무와 같이 넓고 아늑한 품을 가슴에 담을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와 함께 나무 곁에 서서 하루를 노래하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4347.9.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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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유일해 베틀북 철학 동화 2
루드비히 아스케나지 지음, 헬메 하이네 그림, 이지연 옮김 / 베틀북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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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68


 

우리 서로 사랑하자

― 너는 유일해

 루드비히 아스케나지 글

 헬메 하이네 그림

 이지연 옮김

 베틀북 펴냄, 2002.1.20.



  아이들은 오롯한 숨결입니다. 몸은 어른과 견주어 조그맣지만, 아이들은 누구나 오롯하게 살아가는 숨결입니다. 비노바 바베라는 분이 쓴 글을 읽으니, 아이와 어른을 견주면서, 둘 모두 눈 둘이요 팔다리도 둘씩이라고, 크기만 다를 뿐 똑같은 사람이라고 얘기합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될 적에 눈 하나에서 둘이 되지 않고, 눈 둘인 오롯한 몸으로 새롭게 깨어날 뿐이라고 얘기해요.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나 기차를 탈 때면, 표를 끊는 곳에서 으레 아이들을 ‘반표’로 여깁니다. 표값을 반토막 치르면 된다는 뜻이기는 하지만, 영 못마땅합니다. 어린이는 어린이표이지, 반표가 될 수 없어요. 어린이도 똑같은 한 사람이라, 어린이도 자리 하나를 어엿하게 차지하고 앉아야 합니다. 그러나, 적잖은 어른들은 어른이 앉을 자리가 없으면, 아이더러 일어서라 하면서 어버이 무릎에 앉으라고 재촉합니다. 어린이도 똑같이 표를 끊었는데 말이지요.



..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유명해진다고 저절로 친구를 얻을 수는 없답니다 … 흔들의자가 낡게 되자 다락방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어요. 흔들목마는 슬펐습니다. 햇살과 아이들 대신 온갖 잡동사니와 거미줄로 가득한 다락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하루는 검은 고양이 메피스토가 오더니 예전처럼 목마를 태워 달라고 졸랐어요. 흔들목마는 매우 기뻤지요. “네가 녹색으로 변할 때까지 목마를 탈 수 있단다.” ..  (8, 12쪽)



  밥상에 수저를 놓습니다. 어른 수저와 어린이 수저를 놓습니다. 어른 수저는 어린이 수저보다 큽니다. 어른 밥그릇은 어린이 밥그릇보다 커요. 그러나, 어린이도 어른도 똑같이 밥을 먹습니다. 똑같이 배고픕니다. 똑같이 배부르고 싶습니다. 먹는 부피가 다르지만, 둘은 모두 똑같은 숨결이요 목숨입니다.


  사회를 돌아봅니다.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여러 갈래로 가릅니다. 졸업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가릅니다. 졸업장이 더 많은 사람과 몇 안 되는 사람을 가릅니다. 자격증이 있거나 경력이 길거나 짧은 틀로 가릅니다. 여기에다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고, 한국사람인지 이주노동자인지 가릅니다. 그러면, 이들은 서로 다른 일을 할까요? 이들이 맡은 몫은 얼마나 벌어질까요?


  힘이 센 사람은 짐을 더 많이 나를 테지요. 힘이 여린 사람은 짐을 덜 나를 뿐 아니라, 짐 하나를 못 나를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면 그예 드러누워서 보살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힘이 세어 짐을 많이 나르는 사람은 밥을 한 그릇 더 먹고, 짐을 하나도 못 나르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한 그릇을 몸속에서 뱉어야 할는지 헤아려 봅니다. 아니겠지요. 외려 몸져누운 아픈 사람한테 더 나은 밥을 주어야 합니다. 아무런 짐을 나르지 않고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한테 가장 먼저 밥을 챙겨 주어야 합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한테 누구보다 먼저 밥을 챙겨 주어야 해요.



.. 고슴도치는 톱새에게 가서 가시를 뽑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사랑에 푹 빠졌기 때문에 뽑혀 나간 가시더미에선 노란 버섯과 산딸기가 열렸고, 조그만 고슴도치꽃이 피어났으며, 초록색 이끼가 자라났어요 … 다른 고양이들이 떠들어대는 것을 들은 시세로가 말했어요. “나와 질비가 왜 이야깃거리가 되는지 모르겠어. 포도주통에서 술에 취한 쥐가 나오더니 내 발에 머리를 얹지 않겠어. 내가 어떻게 그 쥐를 잡아먹을 수 있겠어? 뭐가 이해할 수 없다는 거지?” ..  (20, 26쪽)



  우리는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서로 아끼면서 살아갑니다. 이 땅에 오직 하나인 내 목숨입니다. 이 지구별에 오직 하나인 내 숨결입니다. 이런 내 목숨처럼 내 이웃도 이 땅에 오직 하나인 목숨이에요. 오직 하나인 내 숨결마냥 내 동무도 이 지구별에서 오직 하나인 숨결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서 이웃과 동무를 사랑합니다. 이웃과 동무를 사랑하면서 나를 사랑합니다. 오직 하나인 목숨과 숨결인 줄 깨달으면서 즐겁게 어우러집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할 때에 즐겁게 웃는 삶인 줄 느끼면서 기쁘게 어깨동무를 합니다.


  루드비히 아스케나지 님이 글을 쓰고, 헬메 하이네 님이 그림을 담은 《너는 유일해》(베틀북,2002)를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따사롭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짤막짤막 담긴 이야기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생각을 기울입니다.


  우리는 서로 얼마든지 기쁘게 동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 얼마든지 남남이 되어 고개를 돌리거나 등을 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스레 손을 맞잡으며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미워 하거나 괴롭히면서 제 밥그릇만 챙기려 할 수 있습니다.



.. 어부는 사람일까요, 물고기일까요? 아니면 사람도 물고기도 아닌 다른 무엇일까요? 어부는 삶에서 무엇인가가 부족하다고 느꼈고, 물고기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어요. 그래서 작은 그물로 물고기를 잡았어요. 어부는 물고기를 집어들고는 다정하게 말을 걸었어요. “사랑스러운 친구야, 물로 돌아가고 싶다면 눈을 깜빡거리거나 팔딱거리는 걸로 충분해.” … 잉어는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어요. 스케이트를 잃어버린 소녀가 강가에 가서 잉어를 보았어요. “잉어에게 내 스케이트를 줘야겠어. 잉어가 자기 발에 딱 맞는 스케이트를 다시는 얻지 못할 테니까.” 소녀는 잉어에게서 스케이트를 빼앗을 수는 없었어요. 잉어가 정말로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으니까요 ..  (40, 50쪽)



  새들이 노래합니다. 숲에서 깃들며 노래하는 새는 누구한테나 맑은 노래를 베풉니다. 가을볕이 따사롭습니다.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지는 해는 온누리를 골골샅샅 내리쬡니다. 바람이 숲을 가르고 바다를 가로지르며 온 마을을 감쌉니다. 언제나 흐르는 바람은 모든 사람과 목숨이 씩씩하게 살아가도록 푸른 내음을 실어 나릅니다.


  나 혼자 들어야 하는 멧새 노랫소리가 아닙니다. 나 혼자 쬐면 될 햇볕이 아닙니다. 나 혼자 마시면 될 바람이 아닙니다. 함께 누리고, 함께 즐기며, 함께 맞아들입니다. 내가 너를 돌보고, 네가 나를 보살펴요. 내가 너를 어루만지고, 네가 나를 쓰다듬어요.


  어른은 아이를 사랑으로 감쌉니다. 아이는 어른을 사랑으로 바라봅니다. 어른은 아이를 따뜻하게 안습니다. 아이는 어른한테 따뜻하게 안깁니다.



.. 사슴은 별이 반짝거리는 집 밖으로 나갔어요. 아이들이 사슴을 따라갔어요. 아이들은 이 크리스마스 트리가 너무 좋았지요. 크리스마스 트리가 말했어요. “축제를 벌이고 있는 숲으로 가자. 숲 속 친구들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필요하니까.” 아이들은 사슴 두 마리를 따라갔어요. 거기에는 많은 동물들이 모여 있었지요. 모두들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고 기뻐했어요.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 사슴이 노래를 부르자, 다른 동물들도 다 같이 불렀어요. 그러고 나서는 금빛 호두와 별 모양 비스킷을 선물로 나누어 주었어요. 푸르스름한 불빛이 숲 속으로 멀리 퍼져 나갔답니다 ..  (62쪽)



  사람이 낳은 아이와 짐승이 낳은 새끼가 저마다 사랑을 받으면서 자랍니다. 사람도 짐승도 어린 숨결이 즐겁고 기쁘게 뛰놀도록 애씁니다. 어릴 적에 마냥 신나게 뛰놀 수 있을 때에 몸이 튼튼하게 자랍니다. 햇볕을 쬐면서 까무잡잡하게 타고, 숲바람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르며, 두 다리로 이 땅을 박차고 달릴 적에 아름답게 자랍니다.


  풀 한 포기가 밥이 됩니다. 꽃 한 송이가 상그레 웃음짓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어서 올라타라며 부릅니다.


  풀을 먹고 자라기에 풀내음 가득한 몸이 되고, 푸른 생각을 짓습니다. 꽃을 바라보며 자라기에 꽃웃음 그득한 마음을 가꾸어, 따스한 사랑을 짓습니다. 나무와 어울려 놀며 자라기에 나무처럼 듬직하고 믿음직한 마을지기로 우뚝 서서, 씩씩하게 꿈을 이룹니다.


  너는 오직 하나입니다. 나는 오직 하나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인 아름다운 숨결이 오직 하나 있는 지구별에서 사랑스레 바라보면서 춤을 춥니다. 4347.9.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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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 고송, 초송, 신송을 찾아서
장국현 지음 / 시사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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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91



어떤 사진을 믿겠는가

― 神氣

 장국현 사진·글

 호영 펴냄, 2008.4.30.



  ‘금강송’을 사진으로 찍으려 하면서, 가장 큰 금강송 둘레에서 자라던 220년 묵은 작은 금강송을 벤 장국현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동안 이런 짓을 몇 차례 했는지 제대로 밝혀지거나 알려지지 않았으나, 법원에서는 세 차례 했다고 말하면서 장국현이라는 사람한테 벌금을 500만 원 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장국현이라는 사람이 벤 금강송 네 그루는 모두 6000만 원 값을 한다지요. 게다가 장국현이라는 사람이 금강송을 사진으로 찍은 뒤 수백만 원이나 수천만 원, 때로는 일억 원이 넘는 돈을 받고 팔았다지요.


  장국현이라는 사람이 선보인 《神氣》(호영,2008)라는 사진책을 장만해서 찬찬히 살핍니다. 이녁은 이 나라 여러 멧자락을 사진으로 담거나 아름다운 나무를 사진으로 찍으면서 심부름꾼을 늘 데리고 다닙니다. 그리고, 멧골에서 퍽 오래 머문다고 합니다. 사진 한 장 찍기까지 심부름꾼과 함께 두멧자락에서 무엇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밥은 어떻게 먹고, 똥은 어떻게 누었을는지 궁금합니다. 깊은 두멧자락에 숨은 모습을 사진으로 담자면 ‘길이 없는’ 곳으로 다녀야 했을 텐데, 길이 없는 곳을 다니면서 ‘길을 어떻게 냈을’는지 궁금합니다. 두멧자락에서 여러 날, 또는 달포 즈음 지낸다고 한다면 천막을 치든 임시로 집을 짓든 해야 할 텐데, 이동안 나무를 얼마나 베었을까요. 겨울에 여러 날 두멧자락에서 묵자면 불을 때야 할 텐데, 불을 피우려고 나무를 얼마나 베었을까요.


  장국현이라는 사람은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순간포착. 그렇다! 사진은 타이밍의 예술이기도 하다. 변화무쌍한 산의 기후, 그 변화무쌍한 산의 모습 가운데 두 번 다시 없는 결정적인 순간을 만나야 좋은 산 사진이 된다 … 산만 생각하다 보면 그밖의 다른 것은 잊힌다. 모든 생각이 비워지면 대상과 일체가 된다. 그때 한 느낌이 온다. 그 느낌대로 하면 된다(43쪽).” 하고 말합니다. ‘순간포착’이라고 말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진은 어느 한때를 찰칵 하고 찍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렸어도 언제나 찰칵 하고 한 장 찍습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궁금합니다. 이녁은 ‘큰 금강송’을 가린다고 하면서 ‘작은 금강송’을 베어냈어요. 그러면, 백두산에서든 한라산에서든 사진을 찍을 적에 ‘앞을 가리는 여느 나무’는 어떻게 했을까요?





  장국현이라는 사람은 “전문가에 의하면 우리 나라 소나무가 50∼100년 후에는 해충과 지구온난화로 사라질 것이라 한다. 인간이 저지른 환경오염으로 소나무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 우리 후손들도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된다(137쪽).” 하고 말합니다. 문득 살이 살짝 떨립니다. 사람이 저지른 환경오염 때문에 소나무가 사라진다고 하는 말이 어쩐지 하나도 안 와닿습니다. 사람이 저지른 환경오염에 앞서 ‘비싸게 사고팔 사진 한 장 찍는다면서 나무를 함부로 베어낸 탓’에 먼저 그 소나무들이 사라지지 않으랴 싶습니다. 더욱이, 소나무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서 다른 나무를 함부로 다룰 모습이 너무 선합니다.


  사진책 《신기》에서 장국현이라는 사람이 “어떤 분야든 성공의 동력은 열정과 영감이다. 마음을 한 곳에 모으면 마음의 힘이 길러져 원하는 것이 현실로 나타난다(63쪽).” 하고 읊는 말은 어쩐지 텅 빈 소리 같습니다. 참말 참답게 애쓰는 사람은 땀방울과 뜨거운 가슴과 사랑으로 뜻을 이룹니다. 마음을 가만히 다스리면서 한 곳으로 모으면 못 이룰 만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여쭙겠습니까. 장국현 이녁은 왜 그렇게 나무를 함부로 베면서 나무를 사진으로 찍는지요? 나무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나무를 함부로 다루어도 되는지요? 국유림이건 국유림이 아닌 곳이건 나무를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하는 매무새로 어떻게 나무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지요? 이녁은 참말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아리송합니다.





 “사진인으로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예술가로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나는 소나무를 찾아 이 땅을 헤매고 다닌다. 이는 나의 의무이자 나만이 누리는 권리이자 기쁨. 그러나 사진 소재가 될 만한 나무는 정말 보기 힘들다(117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다가 고개를 살래살래 젓습니다. 아니지요. 아닙니다. 사진으로 찍을 만한 나무가 없을 수 없습니다. 사진으로 찍도록 마음을 쏟지 못했을 뿐입니다. 도시에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며 콜록콜록 앓는 나무를 사진으로 담아도, ‘사진 찍는 사람 가슴’에 깊고 너른 사랑이 있으면 아름답게 찍습니다. 굴참나무를 찍든 떡갈나무를 찍든 콩배나무를 찍든 아왜나무를 찍든, 사진을 찍는 사람들 가슴에 어떤 숨결이 흐르느냐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더 뛰어난 나무’를 찍기에 사진이 뛰어나지 않습니다. 더 크거나 더 멋져 보이는 나무를 찍기에 사진이 더 크거나 멋져 보일 수 없습니다. 이름난 연예인이나 배우를 찍으면 사진도 이름날까요? 웃기지도 않는 소리입니다.


  장국현이라는 사람은 “좋은 소나무를 사진에 담기 위해서 전국을 특히 강원도 지방에 험준한 산에 금강송을 찾으러 다니기 때문에 대단한 소나무들이 있는 곳을 보았다. 그러나 말할 수는 없다. 두 아름∼네 아름이나 되는 이런 노거송은 살아 있는 국보급이기 때문에 베어내면 안 된다(165쪽).” 하고 말합니다. 문득 무릎을 칩니다. 이녁이 ‘국보급 나무가 있는 곳을 말할 수 없는 까닭’을 어렴풋하게 짚어 봅니다. 나무를 지키려는 뜻에서 말하지 않겠다는 마음인지, 이녁이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서 망가뜨렸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마음인지, 어느 쪽이 참인지 참으로 알쏭달쏭하다고 느낍니다. 이제껏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또 앞으로 어떤 사진을 찍으려 하는지, 참으로 믿을 길이 없습니다. 4347.9.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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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4-09-27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말도 안되!!! 나무 사진을 찍기 위해 나무를 베었다니요. 소름끼치도록 섬뜩합니다.
책 제목이 가관이군요. 神氣.... 그것 참. 진저리 칠 따름입니다. 흐아아 ㅠㅠ

숲노래 2014-09-27 17:08   좋아요 0 | URL
그냥 나무도 아닌 `국유림`에서 `국보급 나무`를 함부로 베었는데,
지난해인가 올해에 비로소 바깥에 알려져서
처음으로 벌금 500만 원을 울진 법원에서 물렸다 하는데,
벌금이 고작 500만 원이랍니다...

청와대이며 국회의사당이며 인천공항이며...
곳곳에 이 사람 사진이 걸렸다더군요...
 
벤지의 선물 다산어린이 그림책
이치카와 사토미 글.그림, 정숙경 옮김 / 다산어린이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36



우리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지

― 벤지의 선물

 이치카와 사토미 글·그림

 남주현 옮김

 두산동아 펴냄, 1996.10.29.



  가을이 무르익어 구월이 천천히 기웁니다. 시골집 처마에 깃들면서 새끼를 낳은 제비는 어느덧 거의 다 태평양을 가로질러 따뜻한 새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아직 돌아가지 않은 제비도 있어요. 아마 새끼를 두 차례 낳았나 봐요. 새끼를 한 차례만 낳은 어미 제비와 다 자란 새끼 제비는 일찌감치 돌아갔지만, 다시 새끼를 낳은 어미 제비는 늦둥이를 돌보면서 날갯짓을 가르치느라 바쁘리라 생각해요.


  시골마을마다 들판이 누렇게 달라집니다. 누런 빛깔이 짙을수록 나락이 익는다는 뜻입니다. 참새는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아 부산을 떱니다. 추운 겨울이 닥치면 아무래도 넉넉히 먹어야 할 테니까요.


  느즈막하게 깨어난 나비는 가을춤을 춥니다. 겨울나기를 하는 나비라면 큰나무 밑에서 가랑잎 품으로 깃들어 천천히 쉬리라 생각해요. 풀벌레도 이렇게 겨울을 맞이하려 하겠지요. 여름 내내 푸른 빛깔이던 풀벌레는 가을이 무르익으면서 몸빛이 흙빛으로 바뀝니다. 여름 동안 나무에 푸른 빛깔로 달렸던 잎사귀는 어느새 누렇게 말라서 톡 떨어집니다. 나무가 선 자리마다 누런 가랑잎이 수북하게 쌓입니다.



.. 어느 여름날, 노라는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초대합니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노라는 강아지 키키, 인형 마기와 곰인형 푸에게 큰 소리로 편지를 읽어 주었습니다. “놀러 오세요. 맛있는 음식도 많이 준비했습니다. 정원도 넓고, 수영장도 있습니다. 틀림없이 즐거운 시간이 될 거예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 속의 거위로부터.” ..  (2쪽)




  우리 집 뒤꼍에서 무화과알을 땁니다. 올해에는 무화과 몇 그루를 잘 건사했기에 무화과알을 제법 얻습니다. 달디단 무화과알은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지 몰라요. 무화과나무가 우리한테 베푸는 고운 가을 선물입니다.


  감나무도 우리한테 선물을 베풉니다. 모과나무도 선물을 베풀고, 나무란 나무마다 서로 다른 선물을 우리한테 나누어 줍니다. 가만히 보면, 나무는 열매만 선물하지 않아요. 한 해 내내 푸른 바람을 선물합니다. 싱그럽게 숨을 쉬고 맑게 꿈을 꾸도록 푸른 바람을 선물하는 나무입니다.


  여름에는 짙푸른 그늘을 선물하지요. 겨울에는 매서운 바람을 막아 주지요. 참말 나무 몇 그루 집 둘레에 우람하게 서면, 이 집에는 따뜻하고 너그러운 숨결이 가득가득 맴돕니다.


  예부터 집집마다 나무를 심는 까닭을 알 만합니다. 아이를 낳는 집이면 으레 ‘우리 집 나무’를 심어요. 아이 이름을 따서 나무를 심습니다. 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어 사랑스러운 짝을 만나 새롭게 아이를 낳으면, 또 새롭게 이름을 붙여 나무를 심어요.



.. “이런! 누가 선물로 가지고 온 들꽃에 얼굴을 파묻고 있지?” “이웃에 사는 벤지예요. 아, 그렇지. 벤지도 와서 우리와 놀자.” 거위는 벤지도 초대했습니다 ..  (6쪽)




  아이와 살아가는 어른은 나무를 심습니다. 어른은 아이한테 나무를 선물합니다. 아이는 어른한테 무엇을 선물할까요? 글쎄, 아이들은 어른들한테 무엇을 선물하지요?


  아마, 가장 큰 선물이라면 웃음입니다. 웃음과 함께 노래를 선물합니다. 웃음과 노래가 어우러진 이야기를 선물합니다. 웃음과 노래가 어우러진 이야기에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늘 언제 어디에서나 어른들한테 사랑을 선물하는 셈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나무와 밥과 옷과 집이라 하는 선물에 사랑을 담고, 아이들은 웃음과 노래와 이야기라는 선물에 사랑을 싣습니다.



.. 차를 마신 뒤에는 마당에서 신나는 나무타기놀이 ..  (16쪽)




  이치카와 사토미 님 그림책 《벤지의 선물》(두산동아,1996)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치카와 사토미 님은 이 그림책을 1990년에 처음 선보였다고 하니, 제법 나이를 먹은 그림책입니다. 부드러우면서 포근한 붓질이 따사로운 그림책인데, 이 책에 서린 이야기도 부드러우면서 포근해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 ‘노라’는 숲 속 거위한테서 편지를 한 통 받는다고 해요. 네, 거위한테서 편지를 받습니다. 노라는 제 동무인 인형들한테 편지를 읽어 준다고 하는군요. 네, 인형들한테 편지를 읽어 줍니다.


  다시 말하자면, ‘노라’라고 하는 아이는 거위랑 인형하고 말을 섞을 줄 압니다. 거위랑 인형은 노라라는 아이하고 말을 섞고 싶습니다. 함께 놀면 즐겁고, 서로 아끼면서 사랑스럽습니다.



.. 낮잠을 잘 때에 벤지는 푹신푹신한 베개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친구에게 도움이 되어서 기쁜가 봐요 ..  (25쪽)




  참말 아이들은 거위나 양이나 인형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비디오나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잠자리나 제비나 매미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지식이나 저런 정보를 머릿속에 채우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구름이나 해나 별하고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열면 우리는 누구하고나 동무가 됩니다. 마음을 열 때에 우리는 서로서로 믿고 아끼는 동무가 됩니다. 마음을 여는 동안 어느새 내 사랑이 너한테 가고 네 사랑이 나한테 옵니다.



.. “어, 이게 그 뚱뚱했던 벤지야?” “전혀 뚱뚱하지 않잖아!” 이번에는 노라와 그 친구들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무슨 일이든 벤지 탓으로만 돌려 왔으니까요 ..  (29쪽)



  온몸을 가득 덮은 털로 뚱뚱해 보이던 양은 노라한테 선물을 하나 줍니다. 양은 이름이 ‘벤지’입니다. 양 벤지는 거위랑 인형이랑 노라한테 선물을 가득 받았어요. 맛난 밥이나 꽃만 선물이 아니에요. 서로 아끼고 보듬는 따사로운 사랑을 선물로 받았어요. 그래서, 벤지는 제 털로 지은 폭신하고 따스한 털옷 한 벌을 선물로 보내지요. 아주 마땅합니다만, 삐뚤빼뚤이어도 손수 편지를 곁들여서 소포꾸러미를 선물로 보내요.


  마음을 열어 사귀는 사이라면 늘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늘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동무와 동무도 서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하늘과 땅도 서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별들도 서로서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우리는 지구별하고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고, 해님이나 달님하고도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어요. 들꽃 한 송이하고도 선물을 주고받으며, 우람한 나무 한 그루하고도 애틋하게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서로, 무엇을 선물로 주고받으면 즐거울까요? 우리, 다 함께, 무엇을 선물로 나눌 적에 아름답게 웃으면서 노래를 부를 만할까요? 4347.9.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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