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단>에서 펴내는 격월간잡지 2014년 9-10월호에 싣는 글입니다.


..


말넋 35. ‘우수’상은 ‘덤’으로 준다

― 살아가는 대로 쓰는 말



  ‘우수’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이 낱말 한 마디만 들려주면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요? 곰곰이 생각에 젖어 봅니다. 나는 이 낱말과 얽혀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꽤 어릴 적 일을 떠올립니다. 열 살 언저리나 더 어릴 적에 어머니 손을 잡고 저잣거리에 나들이를 가던 일을 그립니다. 그때 어머니는 저잣거리에서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장만하면서 “‘우수’ 없어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할머니는 “우수? 우수 줘야지.” 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는 “‘우수’요? 우수가 뭐예요?“ 하고 되묻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러니까, ‘덤’. 덤 없어요?” 하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였는지 이웃 할아버지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어떤 할아버지한테 내 상장을 자랑하듯이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우수’ 상장을 받았어요!” 할아버지가 상장을 받아서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우수상이라고? 더 얹어서 주는 상이 뭐가 좋다고 그러냐?” 하고 한마디 퉁을 놓았습니다. 이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아리송했습니다. 못 알아들었습니다. 저잣거리에서 어머니한테서 들은 ‘우수’를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말하고 이어서 생각하지 못했어요.


  한국말 ‘우수’나 ‘우수리’는 요즈음 아주 잊히거나 사라지거나 죽은 말이 됩니다. 이 자리에 한자말 ‘성과(成果)’과 ‘성과급(成果給)’이 또아리를 틉니다. 그리고, 이 한자말조차 밀어내고 영어 ‘인센티브(incentive)’가 밀려듭니다.


  지난 1991년에 《草家》(열화당 펴냄)라는 사진책이 나온 적 있습니다. 책이름을 한자로만 적으니 아쉬운 노릇이지만, 그래도 이 사진책은 낱말을 잘못 적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흔히 ‘초가집’처럼 잘못 말하거든요.


  ‘초가’는 ‘풀(草) + 집(家)’입니다. ‘풀집’을 일컬어 ‘초가’라는 한자말을 예전 지식인이 지은 셈입니다. 그러니, ‘초가집’이라 말하면 ‘풀집집’ 꼴이 됩니다. 아주 우스운 말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 겨레는 예부터 ‘풀집’을 지었을까요? 풀(이엉)로 지붕을 얹었거든요. 풀로 담을 이었어요. 기둥은 나무로 세우지만, 기둥 사이를 막을 적에는 풀(짚)을 이겨 넣은 흙을 댔습니다. 집이 온통 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풀과 흙과 나무와 돌로 지은 집이 ‘한겨레 살림집’입니다. 풀을 여러모로 아주 많이 쓰기에 ‘나무집’이나 ‘돌집’이라고는 안 하고 ‘풀집’이라 했어요.


  지난날 우리 겨레는 옷을 지을 적에 풀에서 실을 얻었습니다. 모시풀이나 삼풀에서 실을 얻었어요. 모시옷은 모시풀에서 얻은 모시실로 지은 옷이요, 삼베옷은 삼풀에서 얻은 삼실로 지은 옷입니다.


  밥은 어떻게 먹었을까요? 밥도 풀밭에서 얻었지요. 온갖 나물이란 바로 풀입니다. 사람이 손수 심어 ‘남새’이고, 들과 숲에서 스스로 자란 풀을 뜯어서 먹으면 ‘나물’입니다. 이런 삶이었으니, 한겨레 살림집은 ‘풀집’일밖에 없습니다. 풀옷이고 풀밥이니까, 이 흐름에 맞게 ‘풀집’이에요.


  노르웨이에서 날아온 어린이책 《비발디》(어린이작가정신,2014)를 읽다가 38쪽에서 “아침 식사를 하려고 식탁 앞에 앉았어요. 향긋한 차.”라는 대목을 봅니다. “아침밥”이라 안 하고 “아침 食事”로 적을 뿐 아니라, ‘밥상’이 아닌 ‘食卓’이라 적으니 아쉬우나, ‘향긋한’이라 적으니 반갑습니다.


  김혜영 님이 시골살이를 하면서 쓴 《암탉, 엄마가 되다》(낮은산,2012)라는 책을 읽다가 116쪽에서 “병아리가 어미닭과 첫 눈맞춤을 해요.”라는 대목을 보고, 196쪽에서 “낙엽이 지고, 첫눈이 내렸습니다”라는 대목을 봅니다.


  한국말사전에 ‘눈맞춤’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사람들이 곧잘 씁니다. 왜냐하면, 참말 서로 눈을 맞추면서 즐겁기 때문입니다. 눈을 찡긋 하면서 웃어요. 즐거운 눈맞춤입니다. 입을 맞추어 입맞춤이고, 마음을 맞추어 마음맞춤이며, 꿈을 맞추어 꿈맞춤입니다. 다만, “낙엽(落葉)이 지고”처럼 적으니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한자말 ‘낙엽’은 “진 잎”입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잎을 한자말로 ‘낙엽’이라고 해요. 다시 말하자면, “낙엽이 지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바닥에 구르는 잎이 ‘낙엽’인걸요.


  “잎이 진다”고 할 적에, 곧 가을에 잎이 진다고 할 적에는 “가랑잎이 집”니다. 한국말 ‘가랑잎’은 나뭇가지에서 마른 잎이에요. 나뭇가지에서 잎이 마른 뒤 지니까 “가랑잎이 진다”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또는 “잎이 진다”라 하거나 “가을잎이 진다”고 해야지요.


  한국사람은 “낙엽이 지다”와 같은 말을 언제부터 썼는 지 궁금합니다. 아마, ‘낙엽(落葉)’이라는 한자말이 들어온 뒤부터 썼겠지요. 그러나, ‘낙엽’이라는 한자말은 한자를 쓰던 옛날 지식인이 아니고는 안 썼어요. 여느 한국사람은 아무도 모르던 낱말이요, 쓸 일이 없던 낱말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여느 한국사람, 그러니까 여느 시골사람은 ‘나뭇잎’이나 ‘잎’이나 ‘가랑잎’이라고만 했어요.


  일본사람 니시마키 가야코 님이 빚은 어린이책 《킁킁, 맛있는 냄새가 나》(시공주니어,2007)를 읽으면서 24쪽에서 “계란 프라이를 손으로 집어 먹고 있고”라는 대목을 보았습니다. 이 대목을 보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요즈음 사람들 가운데 ‘계란(鷄卵) 프라이(fry)’ 같은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아주 널리 쓰는 말입니다. 내 어머니는 내 어릴 적에 ‘우수’ 같은 말을 쓰실 줄 알면서도, 달걀을 부치거나 지질 적에 언제나 ‘계란 프라이’라 하셨고, 요즈음에도 똑같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계란 프라이’라 하지는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일본사람이 쓴 말이 한국에 잘못 들어와서 굳었다고 느낍니다. 한국사람은 ‘달걀부침’이나 ‘달걀지짐’입니다. 우리 삶을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면서 우리가 쓰는 말과 글 또한 아름답게 나눌 수 있기를 빕니다. 4347.8.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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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삶창시선 41
이중기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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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8



시월을 앞두고

― 시월

 이중기 글

 삶창 펴냄, 2014.6.30.



  더위가 한창이던 여름날에 시집 《시월》(삶창,2014)을 읽었습니다. 다 읽은 시집을 한참 책상맡에 두었습니다. 이동안 여름이 저물고 구월로 접어들다가 어느덧 시월을 코앞에 둡니다.


  오늘은 구월 삼십일입니다. 하루가 지나면 시월입니다. 달력으로 치면 그렇지요. 그런데, 구월이든 시월이든 들이나 숲은 그대로입니다. 바다와 하늘도 그대로입니다. 달력으로 볼 적에 2014년에서 2015년으로 넘어가더라도 들이나 숲이나 바다나 하늘은 그대로입니다. 온누리는 숫자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지구별도 해도 달도 별도 숫자를 따지지 않습니다.



.. 날만 새면 공출 독촉이 채찍비로 퍼부었다 /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보릿단에서 / 꼬물꼬물 싹이 나와 질금 만드는 유월 장마에 / 숨긴 보리 꺼내 공출 안 하면 / 오막살이 몰수하겠다고 / 일가족 몰살하겠다며 콩 볶듯이 볶았다 ..  (하곡수집령)



  2014년 시월은 어떤 달일까요. 봄날 바닷속에 잠긴 애꿎은 아이들을 슬퍼하는 목소리가 아직 사그라들지 못하는 시월일까요. 지난날 슬프게 목아지가 잘리면서 죽은 이들 울음소리가 아직 잠들지 못하는 시월일까요.


  한가위가 이른 올해에는 양력으로 치는 달력 숫자가 시월로 넘어가도 가을걷이를 아직 안 합니다. 일찍 심은 논은 군데군데 벼를 베었으나, 퍽 넓은 들은 누런 빛깔로 천천히 물듭니다. 아직 들판은 싯누렇게 물결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밥을 먹고 시골에서도 밥을 먹습니다. 도시에서는 쌀을 사다가 밥을 먹고 시골에서는 볍씨를 심어서 가꾸어 거둔 뒤에 밥을 먹습니다. 어디에서나 밥을 먹습니다. 어디에서나 밥을 먹어 목숨을 잇습니다. 그러니까, 도시에서 사람들이 쌀을 사다 먹는다 하더라도, 어딘가에는 시골이 있어야 하고, 논밭이 있어야 합니다. 도시가 아무리 커진다 하더라도 시골은 제법 넓게 있어야 하며, 시골에서 논일과 밭일을 하는 일꾼이 있어야 합니다.



.. 인민위원회 절대다수가 농사꾼들이니 / 농사꾼들이야 작게는 농민조합으로 한솥밥이요 / 크게는 인민위원회와 가마솥으로 한 식군데 / 농민조합은 무시하고 복종만 하라면 / 보소, 그 말에 어디 영이 설 수 있겠소 ..  (영천아라리 2)



  시골지기가 없으면 도시내기는 모두 굶어서 죽습니다. 시골지기가 땀흘리지 않으면,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교육도 예술도 과학도 모두 무너집니다.


  발전소가 없다 하더라도 사회는 무너지지 않아요. 시골이 없을 때에 사회가 무너집니다. 학교가 없더라도 교육은 무너지지 않아요. 시골이 없을 때에 교육이 무너집니다.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흔들거릴까요? 아닙니다. 군대는 없어도 됩니다. 시골이 없을 때에 나라가 흔들거리다가 무너져요.


  전쟁무기가 아무리 많아도 나라를 못 지켜요. 군대가 아무리 커도 나라를 못 지켜요. 생각해 보셔요. 군인은 무엇을 먹을까요? 총알을 먹을까요? 폭탄을 먹을까요? 아닙니다. 모두 밥을 먹습니다. 이쪽 군인도 저쪽 군인도 모두 밥을 먹습니다. 제아무리 전쟁통이라 하더라도 밥을 먹을 때에는 전쟁을 그칩니다. 밥을 먹어야 싸울 힘이 나지요.


  그러니까, 밥을 얻는 시골을 지켜야 나라를 지킵니다. 밥을 얻는 시골을 잘 건사해야 나라를 지킬 뿐 아니라, 사람을 지키고, 목숨을 지키며, 모든 정치와 사회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과 과학과 예술 모두를 지킵니다.



.. 당신이 고등어 껍질로 밥 한 숟가락 싸 먹을 때마다 / 농사꾼 몇 사람이 죽어나간 줄은 아시오? /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겠소 / 다 내놓고 서울 아들네로 가시오 ..  (영천아라리 4)



  대통령은 없어도 됩니다. 의사와 판사는 없어도 됩니다. 교사와 교수는 없어도 됩니다. 시인과 소설가는 없어도 됩니다. 운전사와 기술자는 없어도 됩니다. 이런저런 일자리는 하나도 없어도 됩니다. 삽차와 비행기는 없어도 되고, 자동차와 기차는 없어도 됩니다. 시골이 없다면 모두 부질없습니다. 시골지기가 없으면 모두 덧없습니다.


  나라가 나아갈 길은 사람들 스스로 밥을 지을 들과 숲을 누리면서 보금자리를 아름답게 가꾸는 삶입니다. 밥을 짓지 못하면 어떻게 살까요? 옷을 짓지 못하거나 집을 짓지 못하면 어떻게 사나요? 그런데,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지요? 인문책음 무엇을 말하지요? 교과서는 어떤 지식을 다루면서 시험문제를 내지요? 대학생이 된 젊은이는 무엇을 생각하면서 살지요?



.. 농사꾼들은 논밭으로 가 읍내가 비워졌을 때, / 대구에서 자갈길 백 리 거침없이 / 미군전술부대가 개망나니 경찰을 데리고 와 / 마구 불 지르고 연행하면서 / 부족마을 테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사흘 만에 칠백오십 명을 끌고 가자 / 그보다 몇 배 많은 사람들이 도망을 쳤지만 / 날 밝으면 체포와 총살은 이어졌다 / 연행이 귀찮으면 아예 심장에다 총알을 박아버리고 / “공산당은 인류의 적이다” / 이 구호로 이념 주입은 장엄하게 시작되었다 / 그리고 짐승의 시간이 오고 있었다 ..  (인종 청소기)



  시집 《시월》을 조용히 읽습니다. 경상도 영천에서 있던 지난 이야기를 찬찬히 그립니다. 영천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깁니다. 시를 쓴 이중기 님은 영천땅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영천사람한테서 하나둘 들은 뒤 시로 다시 그립니다. 나는 《시월》을 읽으면서, 영천뿐 아니라 다른 고장에서도 엇비슷하게 일어났을 일을 가만히 그립니다. 이 땅 곳곳에서 아프고 슬프며 서러운 이야기가 생채기로 남은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하늘을 믿고 흙을 사랑하며 들과 숲과 흙을 보살핀 시골내기는 왜 목숨을 앗겨야 했을까요. 볏포기를 베고 짚신을 삼으며 지붕을 잇고 오순도순 살림을 꾸리던 시골지기는 왜 보릿고개를 넘기거나 배를 곯아야 했을까요.


  흙을 안 만진 땅임자는 왜 배가 불러야 했을까요. 흙을 밟지도 않는 임금이나 신하나 학자는 왜 밥 굶는 걱정조차 없이 살았을까요. 권력과 정치는 무엇이고, 학문과 이론은 무엇인가요. 역사는 무엇을 밝히고, 역사는 누가 누구한테 어떻게 가르치는가요. 땅이란 누구 것이며, 땅은 왜 있을까요.



.. 도망갔다 돌아온 지주들이 제일 먼저 한 짓은 / 경찰서 신축 성금 커다랗게 내놓고 / 못살아서 말 잘 들을 것 같은 몇몇을 불러 / 원하는 땅 힘에 맞게 소작을 준 뒤 / 소작 전부 돌려받는다고 통보해서 / 마을마다 집집마다 마른천둥을 퍼부었다 ..  (새벽 북소리)



  시월 문턱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썰렁하지만, 해가 높이 솟는 낮에는 덥습니다. 네 살 작은아이가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무화과 없어요?” “무화과 먹고 싶니?” “네.” 소쿠리를 하나 챙깁니다. 작은아이가 들도록 건넵니다. “자, 무화과 따러 가자.”


  우리 집 뒤꼍 무화과나무를 살핍니다. 오늘은 열 알을 땁니다. 모레에도 제법 딸 만합니다. 올가을에는 무화과를 실컷 누립니다. 우리 집 무화과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달콤하고 맛난 샛밥이 됩니다.


  무화과나무가 있으니 무화과를 얻습니다. 무화과 열매를 따다가 모과 열매를 한 알 줍습니다. 우리 집 뒤꼍 모과나무에서 스스로 툭 떨어진 모과는 되게 큽니다. 아이 머리통보다 살짝 작습니다. 큰아이가 두 손으로 들어도 묵직하고, 작은아이는 무겁다면서 못 듭니다.


  능금나무를 심어서 돌보면 능금을 얻고, 감나무를 건사하면서 아끼면 감을 얻습니다. 호박씨를 심어 호박을 얻고, 무씨를 심어 무를 얻어요. 우리는 흙에서 목숨을 얻고, 흙에서 밥을 누립니다. 우리는 흙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삶을 짓습니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흙은 괴롭힘이나 따돌림이 없습니다. 흙은 부자한테도 가난뱅이한테도 골고루 밥을 베풉니다. 그러면, 정치나 교육이나 사회나 경제나 문화는 어떠한가요? 모든 사람한테 골고루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가요?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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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데이 2014.10
월간 해피투데이 편집부 엮음 / 혜인식품(월간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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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73



깜짝 놀란 재미난 잡지

― 해피투데이 2014.10. (50호)

 혜인식품 펴냄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읽고서 서울에서 고흥으로 찾아온 손님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사진책도서관을 둘러보며 그 책을 쓴 바탕을 헤아리고 싶다고 합니다.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오는 손님은 반갑습니다. 왜냐하면, 멀다고 해 본들 그리 멀지 않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멀다고 느낀다면 마음이 멀기 때문에 멀 뿐입니다. 마음이 가까울 적에는 언제 어디에 있어도 언제나 한마음입니다. 몇 해 만에 얼굴을 보아도 언제나처럼 반가운 사람이 있고, 자주 부대끼거나 날마다 스치더라도 안 반가운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 마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행작가로 일하는 박상준 님이 기차와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서 고흥으로 찾아옵니다. 고흥에서 살며 돌아보면, 다른 고장에서 고흥으로 오기란 참 힘든 노릇입니다. 거꾸로 보면, 고흥에서 다른 고장으로 가는 길도 참 힘듭니다. 섬이 아닌 뭍 가운데 이렇게 오가기 힘든 곳은 고흥이 으뜸이리라 느낍니다. 기찻길도 고속도로도 없는 꼭 하나뿐인 고장이니까요.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으나, 어릴 적부터 시골살이를 마음에 담으며 자랐습니다. 언젠가 시골로 갈 줄 알았습니다. 언제 갈는지 몰라도 도시에서 내 삶을 더 이을 수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내 몸이 그리 단단하지 않아 도시에서 버틸 재주가 없었어요. 곁님도 곁님이지만 ‘군면제를 받을 만큼 안 좋은 코(그러나 줄을 잘못 서서 군면제는 못 받은)’로는 도시에서 숨을 쉬기도 아주 힘들었어요.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은 열 살 어린이가 스스로 읽어서 스스로 말을 깨닫도록 도우려고 썼습니다. 그래서 어느 어른(어버이나 교사)한테는 아주 쉬울 수 있고, 한국말을 깊이 살피지 않는 어른이라면 너무 어렵거나 뜬금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시골에서 아이들과 살면서 썼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동안 ‘모든 말과 삶은 시골에서 태어났다’는 대목을 깨달았기에, 이러한 이야기를 이웃과 나누고 아이들한테 들려주려고 이런 책을 썼어요.


  〈해피투데이〉라는 잡지에 ‘시골에서 사는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를 쓴다는 박상준 님이 이 책을 알아보았다고 하니 여러모로 반갑습니다. 아무래도 ‘시골 이야기’를 찾는 마음이기에 내 책을 만날 수 있었구나 싶고, 무엇보다 잡지에 ‘시골사람 이야기’를 쓰려는 마음이 예쁩니다.


  그런데, 〈해피투데이〉라는 잡지를 펴낸 곳 이름은 ‘혜인식품’입니다. 무슨 식품회사에서 잡지를 내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살피니, 곳곳에 ‘네네치킨’ 광고가 나옵니다. 튀김닭집에서 잡지를 크게 밀어주려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간기를 보고는 깜짝 놀랍니다. 이 잡지는 튀김닭집을 하는 식품회사에서 돈을 대어 내는 얼거리입니다.


  튀김닭을 팔아서 버는 돈으로 잡지를 만드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재미있습니다. 어여쁜 모습입니다. 즐겁게 벌어서 즐겁게 쓸 줄 아는 마음이 있구나 싶습니다.


  다달이 내놓는 잡지 하나 만드는 돈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손꼽히는 연예인을 불러서 광고 한 번 찍은 뒤 방송에 내보내는 돈보다 훨씬 적게 듭니다. 아니, 방송광고를 한 번만 안 해도 한 해 동안 이러한 잡지를 펴낼 수 있습니다.


  〈해피투데이〉 2014년 10월치에 실린 황안나 님 이야기를 읽습니다. 황안나 님이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다닌 이야기를 ‘샨티’라는 출판사에서 2005년에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이름을 붙여 선보인 적 있습니다. 어느덧 열 해가 흐릅니다. 잡지에 실린 황안나 님 얼굴에 주름이 더 많이 보이는데, 낯빛이나 몸빛은 외려 열 해 앞서보다 단출하고 정갈해 보입니다. 그동안 참 많이 걷고 조용히 생각하며 삶을 돌아보셨겠구나 싶습니다.


  110쪽 안팎 되는 조그마한 잡지에 실은 글과 사진은 튀거나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수수합니다. 서울 누하동에 있던 헌책방 〈대오서점〉 사진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이제 〈대오서점〉은 헌책방이 아닌 ‘헌책방 자국을 살린 북카페’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잘되었습니다. 〈대오서점〉은 그야말로 소리도 소문도 없이 사라지겠다 싶은 헌책방이었습니다. 참말 아무도 이 작은 헌책방을 들여다보지 않던 때, 아마 2002년인가 2001년이지 싶은데, 그무렵에 서울 시내 골목에 조용히 깃든 헌책방을 찾으려고 날마다 서너 시간, 때로는 예닐곱 시간을 걸어다니며 지냈습니다. 이러면서 〈대오서점〉을 보았고, 이 이야기를 어느 누리신문에 썼는데, 이때부터 다른 매체에서 이곳을 꾸준하게 취재했어요. 조용히 지내던 헌책방 할머님을 아주 귀찮게 하고 만 셈인데, 할머니는 늘 서글서글 여러 취재 손님을 맞아 주신 듯합니다. 예전에는 이곳을 아끼거나 돌아보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이제는 이곳을 찾아가는 사람이 많으니, 앞으로도 긋곳에 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재료에 따라 변화무쌍해지는 맛! 김밥은 완벽한 동그라미다.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는다면 뭘 먹을 거야’라는 어려운 질문에 망설임없이 감밥을 떠올린 것은 아마 가장 가까이서 큰 위로를 주는 음식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83쪽/최진영)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 언제나 가장 맛있으리라 느낍니다. 나한테도 저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니까 ‘한 가지만 먹어야 한다면 무엇을 먹겠어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빙그레 웃으며 한 마디 할 생각입니다.


  “나는 바람을 먹겠어요.” 또는 “나는 햇볕을 먹겠어요.” 지구별에서 산다면 바람을 먹고, 우주에서 산다면 햇볕을 먹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작은 잡지를 살그마니 덮습니다. 재미있습니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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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층짜리 집 100층짜리 집 1
이와이 도시오 지음, 김숙 옮김 / 북뱅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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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37



한집에서 이웃이 되기

― 100층짜리 집

 이와이 도시오 글·그림

 김숙 옮김

 북뱅크 펴냄, 2009.6.25.



  일곱 살 큰아이와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입니다. 이모네 집은 왜 이렇게 작느냐고 묻기에, 그러면 이모네 집을 네가 크고 넉넉하게 그려 주렴, 하고 이야기해 줍니다. 이때 일곱 살 큰아이는 석 층짜리 집을 그리고 넉 층짜리 집을 그립니다.


  오늘 우리 집은 시골에 있으나, 큰아이는 인천에서 태어났고, 그무렵 우리 집은 옥탑이었어요. 나중에 석 층짜리 벽돌집 가운데 둘째 층으로 옮겨서 살았고, 이모는 경기도 일산에 있는 오피스텔 건물 여덟째 층에서 삽니다. 그러니, 큰아이는 집을 그릴 적에 여러 층으로 그릴 줄 알 테지요.


  큰아이가 그린 서너 층짜리 ‘이모네 집’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모와 이모부가 한집에 있고, 한 층에는 책이 있으며, 한 층에는 나무가 자랄 수 있습니다. 넉넉하고 큼직한 집을 누리면, 그 집에 놀러가서 마음껏 뛰놀 수 있으리라 꿈을 꿉니다.



.. 별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는 도치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도치에게 이런 편지가 왔어요 ..  (2쪽)





  이와이 도시오 님 그림책 《100층짜리 집》(북뱅크,2009)을 가만히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100층짜리 집을 보면, 열 층마다 새로운 이웃이 나옵니다. 온갖 벌레와 짐승이 100층짜리 집에서 서로 이웃으로 지냅니다. 열 층을 이루어 지내는 한 갈래 벌레와 짐승은 저마다 오순도순 아기자기하게 살림을 꾸립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루는 도시를 보면, 한 층짜리 집은 매우 드뭅니다. 도시에서 한 층짜리 집에서 지내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어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여러 층짜리 집에서 층을 나누어서 함께 지냅니다. 그러니까, 알고 보면 서로 이웃입니다. 알고 보면 모두 이웃입니다.


  도시에서는 좁은 땅떵이에서 저마다 이웃이 되지 않고서는 사이좋게 살 수 없습니다. 층층이 다른 살림집이니 서로서로 아끼고 헤아리지 않는다면 몹시 거북하거나 못마땅하거나 싫을 만합니다. 우리 집에 아이들이 있다 해서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도록 할 수 없습니다. 깊은 밤에 노래를 크게 틀고 방방 뛰면서 춤을 출 수 없습니다. 목청껏 노래를 부를 수 없고, 나무를 심어서 기른다든지, 짐승을 두어 돌보기에도 눈치를 볼 만합니다.


  그러면, 도시에서 아파트 같은 ‘층집’을 지은 이들은 왜 이렇게 지었을까요? 층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살림을 꾸릴 텐데, 층집을 설계해서 짓는 이들은 왜 집집마다 ‘이웃집 시끄러운 소리’에서 홀가분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꼼꼼히 살펴서 층집을 짓지 않았을까요? 아이들이 아래층 걱정을 안 하고 마음껏 뛸 수 있는 자리를 왜 마련하지 않았을까요? 높다란 층에서도 나무를 심어서 돌볼 만한 자리를 마련하기는 어렵기만 할까요? 짐승을 귀엽게 여기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헤아리면서, 이들이 느긋하면서 즐겁게 지낼 만한 얼거리로 지을 수는 없을까요?



.. “편지를 보낸 게 너였어?” “응, 망원경을 보다가 널 발견하곤 편지를 보낸 거야. 어서 와!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어. 도치야, 우리 같이 별 보러 갈까?” ..  (27쪽)





  그림책 《100층짜리 집》은 지구별에 참말 있는 집일 수 있고, 또는 먼 우주에서 날아온 집일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한 가지는 또렷하게 말할 수 있으니,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이 ‘도치’와 ‘100층에 사는 거미나라 왕자’는 서로 동무입니다. 둘은 저마다 ‘내 보금자리’에서 별바라기를 즐겨요. 도치는 도치네 집에서 먼 우주를 바라보면서 꿈에 젖습니다. 거미나라 왕자는 거미나라 왕자대로 100층짜리 집에서 지구별을 비롯해서 수많은 별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꿈을 키웁니다.



.. 100층짜리 집 꼭대기에서 보는 별은 훨씬 더 아름다웠습니다. “저, 도치야. 우리 친구 할까?” “그래, 좋아! 우리 서로 친구 하자! 다시 별을 보러 와도 되지?” “그럼. 언제든지 놀러 와.” ..  (28쪽)



  지구별이라는 테두리에서 보자면 우리는 모두 이웃입니다. 국경은 덧없습니다. 국적은 부질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웃이니 전쟁무기나 군대가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지구별 테두리에서 우리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놀 만합니다. 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웃음꽃을 피울 때에 즐겁습니다.


  바로 옆에 이웃이 있는데, 비닐쓰레기를 태우지 않겠지요. 바로 옆에 고단해서 단잠을 이루는 이웃이 있는데,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지 않겠지요. 바로 옆에 사랑스러운 이웃이 있으니, 우리 이웃이랑 오순도순 이룰 아름다운 삶을 생각하겠지요.


  100층짜리 집에서는 모두가 서로 반가우면서 살가운 이웃입니다. 우리 지구별에서도 우리는 서로 반가우면서 사랑스러운 이웃입니다. 시골과 도시도 서로 이웃입니다. 도시와 도시도, 시골과 시골도 모두 이웃입니다. 서로 손을 잡을 수 있기를 바라요. 서로 아끼고 돌보는 따사로운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바라요. 경쟁이나 다툼 따위는 모두 조용히 내려놓고, 함께 웃고 노래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요. 4347.9.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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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좀 안 될까요 3
아소우 미코토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86



법이 너무 많은 이 나라에서

― 어떻게 좀 안 될까요 3

 아소우 미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1.3.25.



  법은 나날이 늘어납니다. 온갖 법이 나날이 새로 생깁니다. 이 나라를 가만히 살펴봅니다. 법이 늘어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나 사랑스러운 이야기보다, 끔찍하거나 슬픈 이야기가 자꾸 불거집니다. 법이 늘면 늘수록 온갖 말썽이 새로 터진다는 뜻이요, 법을 자꾸 만든다고 할 적에는 사람 사이에 아름다움이나 사랑이 덜 흐르거나 사라진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은 하루 빨리 국회를 거쳐야겠지요. 그런데, 세월호 사고를 놓고 특별법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온 까닭을 살펴보면, 법이 있건 없건 정치와 사회가 모두 엉터리이기 때문입니다. 법 테두리를 벗어나서 불법으로 돈을 거머쥐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세월호 사고가 터졌으며, 사고가 터진 뒤에도 법 테두리를 벗어나면서 요리조리 얼토당토않다 싶은 짓이 터집니다. 게다가 특별법을 만들려는 움직임마저 가로막거나 헤살을 놓기 일쑤입니다.



- ‘어둡다고 불평하기보다는 스스로 나아가 불을 밝히자.’ (13쪽)

- “아카보시는 입은 거칠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으니까.” (18쪽)




  한국에는 참다운 자유나 민주나 평등이나 평화가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국가보안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코에 걸고 목에 걸며 입과 눈과 손에 거는 무시무시한 법이 어엿하게 있기 때문에, 이 법은 자유와 민주와 평등과 평화를 모두 짓밟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끔찍한 법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을 손에 쥔 이들한테는 국가보안법이 아주 ‘부리기 좋은 전쟁무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 법을 앞세워서 정치권력을 더 튼튼히 지킬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학교에는 교칙이 있습니다. 교칙은 학생과 교사가 서로 슬기로우면서 아름답게 배우고 가르치려는 삶을 북돋우지 않습니다. 교칙은 학생을 다그치고 어른을 감옥 간수 노릇을 하도록 내몹니다. 교칙은 참다운 배움과 동떨어질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삶하고 등집니다.


  머리카락이 1센티미터 더 길면 시험공부를 못 하거나 바보스러운 짓을 할까요? 머리카락이 1센티미터 더 짧으면 시험공부를 잘 하거나 바보스러운 짓을 안 할까요? 학교에서 어른이 아이한테 할 일이란, 교칙이나 규칙으로 삶을 얽매거나 가두는 짓이 아닌, 아이 스스로 삶을 가꾸도록 돕거나 북돋우는 일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 “(애완견) 콜리가 일어섰다는 이유만으로 노파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진다. 요컨대 그만큼 주인에게는 동물을 관리할 책임이 요구되는 겁니다.” (56쪽)

-“자네가 소리내 웃는 게 신선해서 그래.” “그런가요?” “이 사무소에서 자네의 ‘씨익’ 외의 미소를 보게 될 때가 오다니! ‘아하하’까지 이제 멀지 않았어!” “웃을 일이 없잖아요. 원래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 랏코가 온 뒤로야. 자네 표정이 풍부해진 건.” (62∼63쪽)





  아소우 미코토 님이 그린 만화책 《어떻게 좀 안 될까요》(시리얼,2011) 셋째 권을 읽습니다. 셋째 권에서도 법에 매달리려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법이 아니고는 도무지 매달릴 끈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까이에서 살지만 이웃이 아닌 사람 때문에 괴롭기 때문에 법에 매달립니다. 가까이에서 살지만 서로 이웃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법을 붙잡으려고 합니다.


  지난날에는 어느 나라에도 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마을을 조그맣게 이루어 오순도순 살던 지난날에는 법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따로 규칙을 세우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믿고 사랑하며 아끼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규칙이 없습니다. 서로 믿기 때문에 가만히 지켜봅니다. 서로 아끼기 때문에 조용히 기다립니다.


  서로 못 믿을 때에 법이나 규칙이 생깁니다. 서로 안 믿거나 등돌리거나 따돌리거나 괴롭히기 때문에 법이나 규칙이 생깁니다. 서로 다투기 때문에 자꾸 법이나 규칙을 세웁니다.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은 규칙을 세우지 않습니다. 놀다가 자꾸 싸우거나 부딪히기 때문에 그만 놀이에 규칙을 세웁니다. 즐겁게 놀기보다는 어느 아이가 혼자서 엇나가려 하니, 규칙을 세우지요. 그런데, 엇나가려는 아이가 있어도 더 따스하게 보듬으면서 ‘깍뚜기’를 시키면 규칙이 없어도 돼요. 그냥 즐겁게 놀 수 있습니다.



- “나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린단 말이야. 개를 보거나 소리만 들어도.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공포를 잊을 수가 없어. 게다가 내가 겁먹은 걸 아는지 유난히 개들이 모여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럼 저희 집 주소를 아셨던 건?” “부근에 개를 키우는 집은 전부 파악해 두고 있거든. 무서우니까.” “저야말로 부끄럽습니다. 개가 너무 좋은 나머지 ‘싫다’는 마음에 ‘무섭다’가 포함되어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하고.” (83쪽)




  규칙은 늘 새로운 규칙을 낳습니다. 전쟁무기는 늘 새로운 전쟁무기를 낳습니다. 주먹다짐은 늘 새로운 주먹다짐을 낳습니다. 거친 말은 늘 새로운 거친 말을 낳아요.


  아름다운 삶터를 이루려면 아름다운 생각을 지어야 합니다. 사랑스러운 마을로 가꾸려면 사랑스러운 마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꿈은 꿈을 낳습니다. 웃음은 웃음을 낳으며,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아요.


  미움은 미움을 낳아요. 손찌검은 손찌검을 낳습니다. 그래서,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민다고 했어요. 폭력은 다른 폭력으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폭력을 끊는 길은 오직 하나,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이루려면 서로 전쟁무기를 내려놓아야 해요. ‘너부터 내려놓아!’ 하고 바라면 서로 못 내려놓습니다. 남한테 바라지 말고 나부터 내려놓을 노릇입니다. 나부터 전쟁무기를 내려놓고 즐겁게 삶을 가꾸면서 지어야 합니다.



- “게다가, 이건 사카가미 씨에겐 별 거 아닐지 모르겠지만, 만일 재판 결과 인지된다면, ‘인지 재판 확정일’이 기재됩니다. 아이의 호적에. 언젠가 아이가 자신의 호적을 보고, 친부가 자신의 인지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자신이 친부가 원치 않은 아이였다는 걸 알게 되겠죠.” (109∼110쪽)

- “초등학생 요리 콩쿠르에 나가는 게 목표라고.” “세상에! 실익을 겸한 취미! 효자네요!” “하지만, 그걸 취미로 만든 건, 지금의 양육 환경인 셈이죠.” (148쪽)



  법이 너무 많은 이 나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맞이할까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법을 얼마나 알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법을 잘 지키기를 바라나요? 아니면, 아이들이 법을 하나도 모르면서도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나요?


  법이 있어야 아름다운 나라가 되지 않습니다. 법이 없어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삶을 지으면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법이 있어도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을 나누지 않으며 꿈을 짓지 않으면, 조금도 안 아름답고 말아요.


  하루 빨리 모든 법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하루 빨리 모든 전쟁무기가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하루 빨리 모든 불평등과 전쟁과 다툼이 사라지도록, 우리 마음속에 사랑이 싹트고 꿈이 자라기를 바랍니다. 4347.9.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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