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공장 1
야마사키 주조 지음, 히로카네 겐시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91



술과 여자를 끼고 도는 영화판?

― 꿈의 공장 1

 히로카네 켄시 그림

 야마사키 주조 글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04.5.25.



  《시마 사원》부터 《시마 사장》까지 그렸다고 하는 ‘히로카네 켄시’라는 분이 그림을 맡은 《꿈의 공장》(서울문화사,2004)이라는 만화책을 읽는다. 일본에서는 1997년에 처음 나왔다고 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꿈과 사랑이 담긴 만화책이라고 하기에, 영화를 어떤 마음으로 만드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읽는다. 그런데, 첫째 권부터 영 아리송하다. 이 만화가 책이름처럼 “꿈의 공장”을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책이름에 나오듯이 “꿈”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공장과 같이” 메마르거나 딱딱하게 기계를 척척 뽑아내는 얼거리를 보여주려고 하는 이야기인가?



- “히타케 군, 몸은 건강한가?” “아, 네. 몸은 튼튼한 편입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조감독 일엔 머리가 필요없지. 첫째는 다리 힘, 둘째는 팔 힘!” (14쪽)

- “레이카! 어디서 찡알대고 있어! 네 양다리 스케줄 때문에 다들 밥도 굶고 일하는 거 몰라? 빨리 스텐바이 해!” “네.” “그리고 조감독을 또 돌머리라고 불렀다간 죽을 줄 알아!” (57쪽)




  만화책 《꿈의 공장》을 보니, 내 느낌으로는 ‘꿈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든지 ‘꿈을 찾는 길’은 영 보이지 않는다. 만화책 주인공인 ‘히타케’라고 하는 젊은 사내더러 이녁 어버이가 제발 영화판이나 방송밭 같은 데에 있지 말라고 편지를 띄우는 까닭을 알 만하다.


  만화책에 나오는 절반쯤 되는 이야기는 ‘술을 꼭지가 돌도록 퍼 마시면서 해롱거리는’ 모습이다. 나머지 가운데 절반쯤 되는 이야기는 여배우들이 얼마나 콧대가 높거나 힘과 돈 있는 사람한테 몸을 잘 바치는가 하는 모습이다. 또 나머지 가운데 절반쯤 되는 이야기는 맨 윗자리에 있는 방송밭이나 영화판 사람들이 얼마나 짜증스럽거나 얼간이 같은 짓을 하는가 하는 모습이다.





- “쯧쯧. 하여간 나카 씨는 선수라니까.” “신인 킬러로 유명하잖아.” “쟤도 먹히겠는걸.” (83쪽)

- “안 되겠어. 현장을 완전 물로 보고 있잖아! 그 망할 놈의 영감탱이!” “무라키 씨, 설마!” “걱정 마, 하타케!  자네 가죽 점퍼 값 정돈 받아내 줄 테니까!” (105쪽)



  어찌 보면, 영화를 만들거나 연속극을 찍는 이들은 이 만화책에 나오듯이 술과 돈과 살곶이와 이름값과 콧대 따위만 알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 만화는 이런 어이없는 모습을 살살 비꼬려고 그렸을는지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만화책을 빚으려고 글을 맡고 그림을 맡은 사람들이 영화나 방송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겉훑기로 ‘만화 독자 눈길을 끌려’고 얄팍한 장삿속을 부린다고 할는지 모른다. 꿈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라, 꿈을 좀먹으면서 부리는 바보짓을 보여준다고 할까.


  곰곰이 돌아보니, 《시마 사원》을 조금 읽다가 집어던졌고, 《시마 사장》도 한두 권 읽다가 나머지 책을 모두 집어치웠다. ‘시마’라는 사람이 평사원부터 사장으로 가는 길에 보여주는 모습은 ‘씩씩하고 바지런하게 일해서 한 단계씩 거듭나는 삶’이 아니라, 권력과 술수와 여자를 옆구리에 끼면서 꼭대기에 오르려는 바보짓일 뿐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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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세티아의 전설 - 멕시코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41
토미 드 파오라 지음,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41



꽃을 사랑하던 시골지기

― 포인세티아의 전설

 토미 드 파올라 글·그림

 김경미 옮김

 비룡소 펴냄, 2007.12.18.



  시골 면사무소와 보건소에서 여러 날에 걸쳐 마을방송을 합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더러 ‘거저로 놓아 주니’까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합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는 거리끼지 않고 보건소에 가서 주사를 맞습니다. 거저로 놓는다니까 맞고, 주사를 맞으면 안 아프다니까 맞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마을마다 가을일이 마무리될 즈음, 시골에 있는 병원에서 마을마다 돌면서 ‘무료 건강검짐’을 해 주고 낮밥 한 끼니까지 대접할 뿐 아니라 병원차로 모셔 갔다가 다시 모셔다 드린다고 신나게 광고를 합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는 마을 어귀로 찾아오는 병원차를 타고 이 병원에서도 검진을 받고 저 병원에서도 검진을 받습니다. 밥 한 끼니를 얻어먹고는 기념품으로 수건 한 장을 받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플 일이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제 손으로 씨앗을 심어서 거둔 풀열매와 나무열매를 먹는 시골지기가 아플 일이 왜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예전에 돌림병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돌림병은 왜 생겼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쉬 듣는 이야기인데, 시골에 농약과 비료가 들어오기 앞서 아픈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예 없었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잘못 먹을 만한 것이 없던 시골이고, 비닐쓰레기조차 없던 시골입니다. 흙에서 나온 것을 먹는데 몸이 잘못될 수 없습니다. 농약도 비료도 안 쓰고, 비닐을 태우거나 파묻는 일도 없으니, 몸이 뒤틀릴 까닭이 없습니다. 자동차가 없어 배기가스가 없을 뿐 아니라, 아무리 멀다 하는 길도 두 다리로 걸어다니고 지게를 짊어집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어 밥을 짓고 구들을 달굽니다. 기름을 때지 않습니다. 화학성분으로 된 옷을 입지 않고, 풀줄기에서 얻은 실로 옷을 지어서 입습니다. 참말 아플 까닭이 없습니다.


  오늘날 시골은 어디에서나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듬뿍 씁니다. 항생제도 많이 씁니다. 군청이나 도청에서 싼값으로 파는 ‘유기질’은 항생제와 사료를 먹은 돼지와 소가 눈 똥으로 만드는 ‘화학 거름’입니다. 집집마다 경운기를 몰기에 기름찌꺼기가 논과 밭으로 흘러듭니다. 경운기가 달리면서 매연이 나옵니다. 농약병이 도랑에서 뒹굴고, 비닐을 태우는 냄새가 여기저기 퍼집니다.




.. 루시다는 멕시코의 높은 산간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에 살았어요. 엄마 아빠와 파코와 루페라는 두 동생과 함께요. 아빠는 당나귀 페피토를 데리고 들판에서 일을 했어요. 루시다는 저녁마다 페피토에게 먹이와 깨끗한 물을 주고 마굿간에 새 짚을 넣어 주었지요 ..  (5쪽)



  예부터 시골은 어디나 꽃골이었습니다. 꽃마을이요 꽃동네이며 꽃숲이었어요. 오늘날 시골은 어디나 꽃골이 아닙니다. 시골에서 시골꽃을 만나기 몹시 어렵습니다. 쑥꽃도 고들빼기꽃도 모조리 베어넘길 뿐입니다. 감꽃이 핀들 감꽃을 올려다보지 않습니다. 깨꽃이나 고추꽃이 한들거려도 눈여겨볼 겨를이 없습니다. 돌울타리를 타고 호박꽃이 피기도 하지만, 쑥부쟁이가 마음껏 자랄 틈바구니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억새와 갈대는 뽑거나 베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도시에서 자가용을 타고 시골을 지나는 사람은 억새와 갈대가 한들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곱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참말 이뿐입니다. 이제 한국에서 꽃골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꽃나무도 꽃숲도 거의 모두 사라집니다.



.. 집에 와서 엄마는 털실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였어요. 루시다가 옆에서 도왔지요. 아빠는 루시다와 엄마가 베틀에 털실을 한 가닥씩 끼우는 걸 바라보며 말했어요. “색이 참 곱군. 교회가 환해지겠는걸.” ..  (13쪽)




  토미 드 파올라 님이 빚은 그림책 《포인세티아의 전설》(비룡소,2007)을 읽습니다. 찬찬히 읽습니다. 멕시코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담은 이쁘장한 그림책을 곰곰이 읽습니다.


  멕시코라는 나라에는 예방주사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깊디깊은 두멧자락에 예방주사가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병원이나 약국도 없겠지요. 편의점이나 술집도 없겠지요. 그러나, 깊은 두멧자락에는 조그맣게 마을이 있고, 사랑스러운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두멧자락 마을에서는 걱정하는 일이 없습니다.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는 근심하는 일이 없습니다.


  누가 아파서 몸져누울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누가 잘못될까 근심하지 않습니다. 모두 씩씩하게 튼튼하게 삽니다. 저마다 아끼고 돌보면서 살가이 지냅니다. 때때로 몸살이 나거나 고뿔이 들더라도 며칠 뒤면 말끔히 털고 일어납니다. 시골지기한테 찾아드는 몸살이나 고뿔이란, 몸을 너무 많이 부렸으니 며칠쯤 느긋하게 누워서 쉬라는 뜻입니다. 쉬면 낫는 몸살이요 고뿔입니다. 쉬면서 잘 먹고 싱그러운 바람 듬뿍 마시면 누구나 낫는 몸살이고 고뿔입니다.




.. “오, 루시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마음 때문에 아름다운 거란다. 네가 뭘 가져가든지 아기 예수님은 좋아할 거야. 마음으로 주는 선물이니까.” 루시다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어요. “하지만 전 지금 가져갈 게 아무것도 없어요.” ..  (25쪽)



  그림책 《포인세티아의 전설》은 멕시코 들꽃 가운데 하나인 ‘포인세티아’와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꽃 이야기 그림책’입니다. 꽃 한 송이로 마을을 곱게 가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꽃골이 어떻게 태어났고, 사람들 가슴에 꽃마음이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었는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짚습니다.


  어떻게 꽃마음이 자랄까요? 어떻게 꽃골이 될까요? 아주 쉽습니다. 꽃씨를 심으면 돼요. 꽃씨를 심으면서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즐겁게 지으면 돼요. 웃으면서 꿈을 짓고, 노래하면서 사랑을 짓습니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꿈을 짓고, 서로 손을 맞잡고 춤을 추면서 사랑을 지어요.


  멕시코 시골자락에서는 ‘포인세티아’라는 들꽃과 얽혀 아름다운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서 입을 거쳐 흐릅니다. 그러면, 한국 시골자락에서는 어떤 들꽃과 얽혀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서 어떤 ‘꽃 이야기’를 들을 수 있나요? 오늘날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들한테 어떤 ‘꽃골’ 이야기를 물려줄 만한가요?


  권정생 님은 민들레 한 송이로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씀바귀꽃이나 냉이꽃이나 봄까지꽃이나 꽃마리꽃과 얽힌 이야기를 누가 지을 만한지, 맨드라미나 갓꽃이나 모과꽃과 얽힌 이야기를 누가 길어올릴 만한지 궁금합니다.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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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안의 작은 행복 - 삶을 이끄는 누군가 있다는 것 박시백이 그리는 삶과 세상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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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90



오늘을 사는 기쁨

― 둥지 안의 작은 행복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펴냄, 2014.4.7.



  나는 아이를 낳아서 함께 살아갈 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안 낳으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 앞날을 헤아리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앞날이 어떠하든 오늘 하루를 제대로 맞이해서 누리자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가꾸거나 일꿀까요? 아마 아이들 스스로 알는지 모르고 모를는지 모릅니다. 다만, 앞으로 어떤 길을 걷든 오늘 이 아이들은 씩씩하고 즐겁게 놀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꿈을 키우든 오늘 이 아이들은 모두 새근새근 잠들었습니다. 나는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고 이불깃을 여밉니다. 쉬가 마렵다면 함께 일어나서 쉬를 누입니다. 큰아이가 이를 갈면 번쩍 눈을 뜨고는 얼른 손을 뻗어 토닥토닥 다독이면서 이를 그만 갈라고 이릅니다.


  아이들이 듣는 풀벌레 노랫소리는 나도 함께 듣습니다. 내가 듣는 풀벌레 노랫소리는 아이들도 함께 듣습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시골집에서 함께 삽니다. 참으로 조그마한 집입니다. 예전에는 이 작은 집에 여덟 사람이 복닥거리기도 했다는데, 어쩌면 더 많은 아이와 어른이 복닥복닥 와글와글 얼크러지기도 했으리라 느낍니다.





- ‘봄을 맞는다는 건 언제나 새로운 경험이다.’ (13쪽)

- ‘재산은 별로 없지만 큰 부채도 없고 오손도손 모두가 건강한 가족들이 있는 오늘이 좋다.’ (37쪽)



  땀으로 젖고 흙내음이 가득 묻은 옷을 벗깁니다. 따뜻한 물로 씻깁니다. 새 옷을 입힙니다. 아이들이 벗은 옷을 복복 비벼서 빨래합니다. 다 빨아서 헹구고 물을 짠 옷가지를 마당에 넙니다. 햇볕은 언제나 포근하게 내리쬐면서 옷가지를 바싹바싹 말려 줍니다. 바람은 우리 아이들 옷가지에 푸른 숲내음을 실어 날라 줍니다.


  올가을에는 무화과를 이럭저럭 즐깁니다. 지난해 가을에는 까마중을 실컷 즐겼습니다. 지지난해 가을에는 따순 바람을 듬뿍 즐겼고, 겨울부터 피어나는 동백꽃을 반갑게 즐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뿌리를 내리는 곳에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하는 일을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말을 익히고 사랑을 속삭이며 꿈을 키웁니다. 어버이가 보는 것을 아이들이 봅니다. 어버이가 만지는 것을 아이들이 만집니다. 어버이가 아끼며 보살피는 것을 아이들이 아끼면서 보살핍니다.


  해가 기울어 어둑살이 내린 시골마을에서 개똥벌레를 곧잘 만납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을 개똥벌레이지만, 요새는 시골에서도 웬만해서는 볼 수 없습니다. 냇바닥을 시멘트로 덮으면 개똥벌레가 살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농약을 뿌려 다슬기가 모조리 죽으면 개똥벌레는 먹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개똥벌레를 만나기를 바라면, 개똥벌레가 나오는 그림책이나 사진책이나 영화를 보여줄 노릇이 아니라, 개똥벌레가 살 만한 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노릇입니다. 아무렴, 그렇겠지요. 아이들이 착한 꿈을 참답게 키우기를 바란다면, 착한 꿈과 참다운 삶이 흐르는 동화책이나 시집이나 영화를 보여줄 노릇이 아니라, 어버이부터 스스로 착한 꿈을 가꾸고 참다운 삶을 일구면 됩니다. 아무렴, 그렇겠지요.





- “방송이 온통 미국 쪽 정보뿐이니 제대로 판단하기가 힘들잖아.” “이 책을 읽어 봐. 라덴이나 탈레반 쪽에 대한 정보들이 꽤 많아.” “이 책도 미국 측 시각에서 쓰인 책이네 뭐.” “그렇긴 하지만 정보는 풍부하니까 80년대 신문 보던 방법으로 읽으면 쓸 만해.” (75쪽)

- ‘자나 깨나 남편 생각 애들 생각으로 가득한 머리. 이렇게 늙다간 혼자 외톨이가 될 수도 있어. 나 자신에 대한 생각도 설계도 많이 해야 해. 나 자신에 대한 생각? 근데 뭘 생각하지? 아내, 엄마 말고 난 누구지?’ (101쪽)



  우리는 누구나 오늘을 삽니다. 우리는 누구나 오늘 하루를 스스로 지어서 삽니다. 기쁨도 스스로 짓고, 슬픔도 스스로 짓습니다. 아름다움도 스스로 짓고, 미움도 스스로 짓습니다.


  무엇을 짓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뿐 아니라, 이 땅 모든 이웃과 함께 어떤 삶과 사랑과 꿈을 짓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박시백 님이 한참 예전에 그린 만화를 그러모은 《둥지 안의 작은 행복》(휴머니스트,2014)을 읽습니다. 박시백 님은 〈한겨레〉에 만화를 그린 일보다 《조선왕조실록》 스무 권을 만화로 그린 일로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만화로 그린 《조선왕조실록》은 초등학생뿐 아니라 여느 어른한테도 널리 사랑받습니다. 마치 《삼국지》가 많이 팔리고 읽히듯이 만화책 《조선왕조실록》도 불티나게 팔리면서 읽힙니다.





- “할 게 뭐 있어야지.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눈싸움·숨바꼭질·고무줄놀이·땅따먹기, 이런 걸 하며 온종일 보내고, 저녁엔 방구석에 이불 덮고 앉아 수다 떠는 게 고작이었지. 그에 비하면 요즘 니들은 …….” “너무너무 불쌍해. 피아노 학원·수학 학원·영어 학원·한자 공부·학습지·숙제…… 이런 걸로 하루가 다 가잖아.” (187쪽)

- ‘사랑하는 사람끼린 닮아 갑니다.’ (210쪽)



  ‘조선왕조실록’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요? 오백 해를 이었다고 하는 조선 나라 임금님 이야기가 흐르겠지요. 《둥지 안의 작은 행복》이라는 만화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요? 도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수수한 여느 이웃들 이야기가 흐르겠지요.


  두 가지 만화책이 우리 앞에 있다면, 오늘날 한국사람은 어느 만화책을 고를까요? 《조선왕조실록》을 고를까요, 《둥지 안의 작은 행복》을 고를까요? 대학입시에서는 어떤 책을 다룰까요?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이나 국공립 여러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갖춘다면 어느 책을 장만해서 갖출까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에는 정치와 역사와 사회와 경제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학문과 사상과 철학과 문학과 문화 같은 이야기도 흐릅니다. 《둥지 안의 작은 행복》이라는 만화책에는 수수한 여느 이웃이 호호 하하 히히 웃는 조그마한 즐거움이 흐릅니다.


  다만, 학교 교과서에서는 ‘조선왕조실록’ 이야기를 다룰 테지만, 수많은 사람들 조촐한 삶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습니다. 집살림 맡은 어버이가 빨래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아기 돌보는 삶을 다루는 교과서는 없습니다. 아기를 낳아 아끼고 사랑하면서 보살피는 삶자락을 묻는 시험문제는 없습니다. 내 보금자리를 아름답게 일구면서 시골에서 흙을 만져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얻으려고 힘쓰는 수수한 시골지기 이야기를 가르치는 학교나 행정이나 문화단체나 인문책은 없습니다.





- “내게 엄마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어 주고 싶어.” (214쪽)

- ‘자율학습 시간은 말 그대로 자율학습 시간이다. 필요한 정보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267쪽)



  박시백 님이 《둥지 안의 작은 행복》이라는 만화책에서 ‘도시 소시민’을 다루었다면, 이 다음으로는 ‘작은 시골지기’를 다룰 수 있었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오순도순 아기자기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를 작은 만화책으로 선보인 뒤에는, 시골에서 씩씩하고 아름답게 사랑을 일구며 숲을 지키는 사람들 이야기를 ‘더 작은’ 만화책으로 선보일 수 있었으면 얼마나 놀라웠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릴 수 있겠지요. 이제 ‘조선왕조실록’ 만화책을 스무 권으로 끝내셨으니, 참말로 작고 수수한 자리로 돌아와서 작고 수수한 이웃과 동무를 살피는 따사롭고 예쁜 만화를 그릴 수 있겠지요. 큰 이야기 아닌 작은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기를 바랍니다. 정치 이야기 아닌 삶 이야기를 그리고, 경제나 역사 이야기 아닌 사랑과 꿈 이야기를 그리며, 지식인과 학자 이야기가 아닌 아이들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가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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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0-07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4-10-08 07:21   좋아요 0 | URL
저는 신문과 잡지에서 거의 다 오려서 모았기에 새삼스럽지 않았는데,
이와 같은 수수한 만화가 책으로 나오면서
만화를 바라보는 문화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를 빌어요
 
삼천갑자 복사빛 민음의 시 126
정끝별 지음 / 민음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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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69



시와 교수님

― 삼천갑자 복사빛

 정끝별 글

 민음사 펴냄, 2005.4.15.



  내가 곁에 두고 사귀는 ‘교수님’이 있는지 곰곰이 돌아봅니다. 아직 나한테는 ‘대학 교수’ 벗이 없습니다. 앞으로 있을는지 모르지만, 나는 대학 교수라는 사람을 벗으로 사귀지는 않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소설가였다가 교수가 된 사람이라든지, 어린이문학 비평을 조금 쓰다가 교수가 된 사람이라든지, 동화를 쓰다가 교수가 된 사람이라든지, 이것저것 하다가 교수가 된 사람을 둘레에서 곧잘 보는데, 나는 둘레에서 교수가 된 사람은 웬만해서는 다시 안 만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웃마을에 교수님 한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고흥에서 순천까지 강의를 하러 오갑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교수님이라고 할까요. 강수돌 교수도 시골에서 살며 흙을 만지는 ‘몇 안 되는’ 교수님일 텐데, 이 같은 분이라면 반가우면서 즐거운 벗님이 되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손에서 흙내음이 나거든요.



.. 앉았다 일어섰을 뿐인데 // 두근거리며 몸을 섞던 꽃들 / 맘껏 벌어져 사태 지고 ..  (늦도록 꽃)



  흙내음이나 땀내음이 몸에 밴 사람일 때에 비로소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흙내음이나 땀내음이 몸에 배지 않고서는 대학교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하고 만날 만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섣부른 소리일는지 모르지요. 어설픈 생각일는지 모르지요. 다만, 내 생각은 뚜렷합니다. 어느 과목을 맡든 어떤 학문을 하든, 어른으로서 아이와 만나는 이라면, 풀과 나무와 꽃과 숲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 파나마 A형 독감에 걸려 먹는 밥이 쓰다 / 변해 가는 애인을 생각하며 먹는 밥이 쓰고 / 늘어나는 빚 걱정을 하며 먹는 밥이 쓰다 / 밥이 쓰다 / 달아도 시원찮을 이 나이에 벌써 / 밥이 쓰다 ..  (밥이 쓰다)



  기저귀를 갈 줄 모르는 사내라면 아버지가 될 수 없다고 느낍니다. 미역국이나 된장국이나 김치찌개뿐 아니라, 한집 살붙이한테 밥을 차려 주며 함께 누리지 못하는 사내라면 아버지뿐 아니라 어버이가 될 수 없다고 느낍니다. 다만, 가시내도 이와 같아요. 가시내이든 사내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함께 삶을 짓고 함께 삶을 노래하며 함께 삶을 가꿀 때에 비로소 어버이요 아버지나 어머니라고 느껴요.


  그러니까, 누군가한테 무엇을 가르치려는 사람이라면, 먼저 스스로 삶을 짓고 노래하며 가꾸어야 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스스로 새롭게 하루를 맞이할 줄 아는 사람일 때에, 비로소 다른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라는 아이들은 삶을 배울 노릇이고 삶을 사랑하면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보여주거나 들려주거나 알려준다면, 교사도 교수도 아니라고 느껴요. 이런 이들은, 지식만 다루는 이들은, 그저 지식배달부이지 싶어요. 지식배달부는 지식노동자이고, 지식노동자는 지식 한 줌에서 맴도는 사람들이지 싶어요.



.. 세상 흰빛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 사라지는 누구의 어깨일까 ..  (먼 눈)



  정끝별 님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민음사,2005)을 읽습니다. 언뜻선뜻 비치는 고운 빛줄기를 느끼다가도, 자꾸자꾸 드러나는 지식 어린 푸념을 느낍니다. 수수하면서 보드랍게 흐르는 노래를 듣다가도 왱왱거리는 지식 어린 평론을 느낍니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어느새 마지막 시를 읽고 책을 덮습니다. 시란 무엇일까요. 시는 언제 쓸까요. 시는 누가 읽을까요. 시는 누가 누구하고 나누는 노래일까요.



.. 물만 보면 / 담가보다 어루만져 보다 / 기어이 두 손을 모아 뜨고 싶어지는 손 ..  (물을 뜨는 손)



  시 한 꼭지를 놓고 온갖 비평이나 평론을 붙이는 일이란 덧없다고 느낍니다. 문학비평이나 문학평론은 문학을 죽이는 짓이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비평이나 평론은 문학을 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평이나 평론은 언제나 문학을 꽁꽁 가두기 때문입니다.


  갖가지 일본 제국주의(강점기 무렵) 한자말이나 미국 제국주의(오늘날 경제 식민지) 영어를 들먹이면서 이론과 논리를 갖춘 문학비평이나 문학평론은 문학을 짓밟기만 한다고 느낍니다.


  왜 문학을 가슴으로 안 읽고 제국주의 이론으로 읽어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왜 문학을 마음으로 노래하지 않고 제국주의 논리에 맞추어 재거나 따져야 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비평가나 평론가가 읊는 글은 노래가 아닙니다. 그래서 비평이나 평론은 전문가 아니면 읽어내지도 못합니다. 아니, 전문가조차 따분하게 여깁니다. 시를 비평하거나 평론한 글을 읽는 시골 흙일꾼은 없습니다. 시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글을 읽는 도시 노동자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시가 문학이라면, 문학이 삶이라면, 삶이 노래라면, 어떤 비평이나 평론도 부질없는 노릇이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가리 쪼개는 짓이지 싶습니다.



.. 도둑처럼 밤에 들어 세수를 하려는데 / 여섯 살짜리 딸애 칫솔과 내 칫솔이 / 뭉개진 털을 싸 쥐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다 / 빈 낮 내내 딸애가 부둥켜안고 싶었던 거 ..  (밤의 소독)



  대학 교수도 시를 쓰려면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학 교수도 시를 읽으려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를 쓸 적에는 아무런 이름이 없어야 합니다. 시를 읽을 적에도 아무런 허울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어 쓰는 시입니다. 마음을 열어 맞아들이는 시입니다. 마음이 움직여 노래가 흐르기에 시가 태어나고, 이러한 시가 마음으로 촉촉히 젖어들면서 가락을 입힌 노래로 거듭납니다.


  시를 하든 동화를 하든 소설을 하든, 즐겁게 문학을 하려는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요. 문학은 ‘집’에서 일구는 ‘삶’에서 태어난다고 느껴요. 문학을 하고 싶다면 ‘집’에서 ‘삶’을 노래할 노릇이요, 문학을 더 하고 싶지 않다면, ‘교수’나 ‘교사’가 되어야겠지요. 4347.10.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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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청소년 인권 학교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6
홍세화 외 지음, 인권연대 기획 / 철수와영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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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27



학교에 갇힌 푸름이한테 인권이란

― 10대와 통하는 청소년 인권 학교

 홍세화·오인연·안수찬·조광제·한재훈·오창익

 인권연대 기획

 철수와영희 펴냄, 2014.10.9.



  오늘날 아이들은 학교에 갇힙니다. 학교에서 벗어날라 치면 학원에 갇힙니다. 학원에서 벗어날라 치면 컴퓨터에 갇힙니다. 컴퓨터에서 벗어날라 치면 아파트 그득그득한 도시에 갇힙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갈 만한 곳이 없습니다. 학교와 학원과 피시방이 아니면 도무지 깃들 만한 곳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쉴 데가 없어요. 아이들이 갈 만한 공원은 어디에 있나요? 공원이라 할 만한 데가 도시에서 몇 군데나 있나요?


  어른들이 가는 술집은 도시이든 시골이든 아주 많습니다. 어른들이 가는 찻집이나 옷집이나 밥집도 도시나 시골에 아주 많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갈 곳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돈을 마음껏 쓸 수 없으니 가게에 쉬 들어가기도 어렵습니다. 기껏 아이들이 가는 곳은 편의점입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아이들은 편의점이나 롯데리아 같은 데 빼고는 다리를 쉴 수 없습니다. 도시라는 데에는 다리를 쉴 걸상도 없고, 길바닥은 어른들이 술에 절어 왝왝 뱉은 것들이 곳곳에 널렸을 뿐 아니라 자동차가 쉴새없이 다니니 아무 데나 앉기도 어렵습니다.



.. 조금 전만 해도 같은 택시 기사 출신이라며 반기던 그분은 왜 읽어 보지도 않은 신문을 그렇게 매도했던 걸까요? 제가 올바른 정보를 알린다면 그분의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었을까요 … 한국 사회에서 학문은 입시와 취업의 도구가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배우는 목적이 개인의 인격과 지성을 높이는 데 있지 않아요 … 우리 사회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는 기존의 질서와 체제를 빠르게 인정하고 숙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환경 탓만 할 수는 없잖아요. 학교 분위기가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분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면 희망은 있습니다 ..  (16, 22, 23, 31쪽/홍세화)



  오늘날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험공부만 합니다. 아이들은 제대로 무엇을 배우는 적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 하나 제대로 가르치는 적이 없습니다. 그저 대학입시로 내몰 뿐입니다. 대학입시가 끝난 뒤에는? 네, 어른들은 대학입시 끝난 뒤에 아이들을 풀어놓습니다. 아니, 어른들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그저 풀어놓았을 뿐이고, 대학교에 들어갈 적에도 풀어놓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삶을 배우는 적이 없고, 아이들한테 사랑을 가르치는 적이 없습니다.


  처음 태어나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스무 해 내내 사랑을 배운 적이 없이 대학생이 되거나 스무 살을 넘깁니다. 그러고는 저마다 짝꿍을 찾아 헤매는데, 아이들은 ‘사랑’이 아닌 ‘짝꿍’을 찾을 뿐입니다. 마음을 아름답게 살찌울 사랑이 아니라, 살을 섞거나 부빌 짝꿍을 찾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무엇인지 배운 적 없이 학교에 갇혀서 지냈거든요. 이제 비로소 학교에서 풀려났으니, 아이들은 갑갑한 몸을 풀어내려고 서로서로 살을 섞거나 부빌 짝꿍을 찾을밖에 없습니다.


  할 줄 아는 것이 없거든요. 스무 살이 되도록 밥짓기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거든요. 옷짓기는 할 수 있을까요? 바느질을 할 줄 아는 스무 살 젊은이는 몇이나 될까요? 토익이나 토플 점수는 잘 받더라도 바느질 하나 못 하는 젊은이는 수두룩하리라 느낍니다. 집짓기는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숲에 들어가 나무를 베어 손질한 뒤 기둥을 세울 줄 아는 젊은이는 아예 없다시피 해요.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월세에 전세에 ‘내 아파트’로 나아갈 생각만 겨우 합니다.



.. 자기표현이야말로 민주 시민의 소양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유와 권리는 표현하고 실천하고 다듬어 볼수록 더 커지거든요 … 한국의 자살률은 OECD 1위예요. 인구 10만 명당 31명, 한 해에 1만 5000여 명이 자살합니다. 브라질 사람이 총기 사고로 죽을 확률보다 한국 사람이 자살로 죽을 확률이 높습니다 ..  (74, 80쪽/안수찬)



  학교는 왜 아이들을 꽁꽁 가둘까요? 우리 어버이는 왜 하나같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어 꽁꽁 갇히게 할까요? 왜 학교는 아이들을 꽁꽁 가두어 아이들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지어서 삶을 가꾸도록 이끌거나 가르치지 않을까요? 왜 우리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가꾸는 삶을 물려주지 못하면서 사랑도 꿈도 아이와 나누지 못할까요?


  홍세화·오인연·안수찬·조광제·한재훈·오창익, 이렇게 여섯 사람이 저마다 이야기를 살풋살풋 들려주는 《10대와 통하는 청소년 인권 학교》(철수와영희,2014)를 읽습니다. 인권을 빼앗기거나 짓밟히거나 잃거나 잊은 푸름이한테 인권이란 무엇인가 알려주면서, 푸름이가 스스로 인권을 찾도록 하려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를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 생산력이 엄청나게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여전히 일에 매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자본은 계속 증식해 나가려고 노동력을 착취합니다. 일을 더 시켜야 생산성을 올릴 수 있잖아요. 개인들은 자발적으로 노동 시간을 연장합니다. 야근, 휴일 근로, 안 하면 돈을 적게 받으니까요 ..  (132쪽/조광제)



  《10대와 통하는 청소년 인권 학교》를 읽으면, 인권이 걸어온 발자취라든지, 인권이 ‘발명’된 까닭이라든지, 한국 사회에서 인권이 얼마나 짓눌리는가 같은 이야기를 찬찬히 살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푸름이 누구나 학교를 다니면서 인권이 억눌리는 얼거리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 인권’에서 우리가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바로 ‘학교’이지 싶습니다. 학교를 다니기만 하면 인권을 빼앗기거나 짓밟히는 얼거리를 바로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아무리 뜻있거나 똑똑한 어른이라 하더라도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동안 아이들한테 인권을 찾아 주거나 지켜 주기 어려운 얼거리를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참말 학교를 바르게 살펴야 합니다. 오늘날 도시 문명 사회에서 학교는 ‘배우는 곳’ 구실을 하나도 안 합니다. 오늘날 도시 문명 사회에서 학교는 ‘입시지옥’ 노릇만 합니다. 대학입시와 얽힌 과목만 달달 볶듯이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합니다. 언제나 시험공부를 할 뿐입니다. 시험점수와 등수를 따지고, 등급과 성적표를 매깁니다. 아이들한테 사랑을 들려주는 교과목이 없습니다. 아이들한테 사랑을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 교사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즐겁게 삶을 노래하는 시나 소설을 이야기하는 국어 교과목이 있는가요? 없습니다. 셈과 넋과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밝히는 수학 교과목이 있는가요? 없습니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말을 익히면서 이웃나라 문화와 삶을 살피고 서로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운 지구별을 가꾸는 이야기를 북돋우는 외국어 교과목이 있는가요? 없습니다. 가장 굵직하다는 국·영·수조차 올바른 길이 아닙니다.


  역사 교과목은 어떠한가요? 왕조 발자국이나 살필 뿐, 지난날 이 나라에서 99퍼센트 남짓 차지하던 여느 시골마을 수수한 시골사람 이야기는 한 줄로도 안 다룹니다.



.. 김상용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평범한 일상에서도 행복을 느끼며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행복은 사람이 살아가야 할 까닭입니다. 김상용 시인의 시처럼 소박한 것에서 찾아도 좋고, 인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겠다는 커다란 포부여도 좋아요 … 인권은 사람을 존중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인권은 당연히 자기 존중의 토양에서만 싹틀 수 있습니다 ..  (171, 172, 202쪽/오창익)



  ‘청소년 인권’은 학교 안팎에서 찾아야 합니다. 한창 삶을 배우고 사랑을 맞아들일 푸름이인 터라, ‘학교 울타리’가 아닌 ‘배우는 터전’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아름다운 꿈을 키우고, 아이들한테 동무와 이웃이 되는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속삭이도록, 다 같이 힘을 기울여야지 싶습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 ‘인권’입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란, 서로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나날입니다. 서로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나날은 함께 꿈을 꾸고 함께 일과 놀이를 나누며 함께 노래잔치 춤잔치 밥잔치를 빚는 하루입니다. 4347.10.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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