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유교수의 생활 25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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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94



삶을 배우는 사람

― 천재 유교수의 생활 25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2007.6.25.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녀도 배우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니지 않으나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마치고 나면 더 배우지 않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녀야 배우고, 학교를 안 다니면 안 배울까요. 왜 어떤 사람은 학교를 안 다녀도 배우고, 학교에 다녀도 안 배울까요.


  학교가 있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스스로 배운다면, 학교라는 곳은 왜 있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학교가 있을 때에만 배우고 학교가 없을 때에는 안 배운다면, 우리 삶은 무엇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 ‘불가사의하군. 저 둘은 그날의 운세점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밤이 되면 신경도 쓰지 않는다. 왜 검증도 하지 않고 믿을 생각부터 할까?’ (10쪽)

- ‘검증하는 것은 좋지만, 나에게 뭐가 좋은 일이고 뭐가 나쁜 일일까?’ (16쪽)

- “야단을 치지 않으면 리포트를 못 쓰나? 벌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건가? 그러면 뭣 때문에 대학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군. 대학이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 찾아내기 위해 오는 거라네.” (84쪽)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살랑살랑 춤을 춥니다.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은 고즈넉하면서 싱그럽습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숲에서 부는 바람은 우리 몸을 따사롭게 감쌉니다.


  바람은 아침저녁으로 다릅니다. 바람은 낮밤이 다릅니다. 뭍에서 부는 바람과 섬에서 부는 바람과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모두 다릅니다. 물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바람을 잘 읽어서 알아야 합니다. 들일이나 숲일을 하는 사람도 바람내음을 잘 헤아려서 알아야 합니다.


  물일을 하는 사람은 물빛을 읽습니다. 들일을 하는 사람은 들빛을 읽습니다. 물일을 하기에 물빛을 읽을 뿐 아니라, 흙내음을 함께 읽습니다. 냇물이나 바닷물은 물만 맑대서 맑지 않기 때문입니다. 숲에서 나무가 우거지고,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골짝물이나 빗물 따라 고운 흙이 냇바닥이나 갯바닥으로 찬찬히 흐를 때에 비로소 냇물과 바다가 싱그럽습니다.


  한편, 들일이나 숲일을 하는 사람도 흙내음이나 풀내음뿐 아니라 빗소리와 바람결을 모두 읽습니다. 들과 숲은 풀과 나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고 햇볕이 쬐면서 들과 숲이 푸릅니다. 지구별을 이루는 모든 넋과 숨결을 읽을 때에 비로소 들도 숲도 물도 바다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런 불확실한 것에 왜 인간은 몇 천 년이나 좌우되고 있을까요?” “누구나 불안하니까 남의 입을 통해 보증을 받고 싶은 게 아닐까요? 좋은 말을 들으면 그것만으로도 기쁘고요.” “현실감이 없어도 말입니까?” (24쪽)

- ‘당신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기쁘다. 그래.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인간은 수 천 년 전부터 내가 지금 느낀 기쁨, 그런 기쁨을 느끼기 위해, 아득히 먼 별들을 서로 이어 신화를 만들어 내고, 태양이나 달, 나무나 바람, 삼라만상에 의미를 부여해 왔는지도 모른다.’ (31∼32쪽)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그린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07) 스물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배움길을 멈추지 않는 유택 교수는 어릴 적부터 늘 새롭게 배우려는 마음이고, 젊은이였을 적에도 언제나 새롭게 배우려는 넋이며, 나이가 들어 손녀를 보는 때에도 한결같이 새롭게 배우려는 숨결입니다.


  그런데, 유택 교수네 아버지는 유택이라고 하는 사람한테 삶이나 살림이나 숲이나 들은 거의 못 보여주거나 안 보여주었지 싶어요. 아마, 유택 교수네 아버지도 몰랐으니 못 보여주거나 안 보여주었을 테며, 마음이나 눈길을 기울이지 않았으니 못 가르치거나 안 가르쳤겠지요.


  누군가 유택 교수한테 텃밭을 보여주거나 가르친다면 어떠할까요? 아마 유택 교수는 처음에는 여러모로 쓴맛을 보거나 잘 안 될 테지만, 어느새 흐름을 깨우치고는 즐겁게 밭일과 논일을 누리리라 생각합니다.





- “어린이도 빨간 불일 땐 기다려야지. 어른들도 빨간 불일 때 건너는 사람이 있단다. 아무리 행동이 어른스러워도 겉모양이 어린아이면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법이야.” (39쪽)

- “나는 어른이란 논리적인 두뇌를 갖추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어. 아버지가 전하려 했던 뜻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지금도 감정적으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단다.” (62쪽)



  배우려는 사람은 언제나 배웁니다. 공부를 해야 하거나 학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지 않습니다. 삶을 밝히고 싶기 때문에 배웁니다. 삶을 사랑하기에 배웁니다. 시험성적이 잘 나오기를 바라면서 배우지 않습니다. 삶을 한결 아름답게 가꾸고 싶기에 배웁니다. 1등이나 2등이 되려는 뜻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 따사롭게 보듬고 싶어서 배웁니다.


  배움이란 티가 없는 몸짓입니다. 가르침도 티가 없는 몸짓입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말 한 마디를 배울 적에는 티가 없습니다. 어버이도 아이한테 말 한 마디를 가르치면서 티가 없습니다. 둘 사이에는 오직 사랑과 믿음이 감돕니다.





- “유택이는, 유택이는 어중간한 걸 이해 못해. 그러니까 그 사람의 말 ‘뒷면’에 있는 의미를 모르는 거야. 사람의 더러운 부분을 몰라. 열등감을 이해 못해. 보통 사람이 평범하게 생각하는 걸 몰라.” (136∼137쪽)

- “글쎄, 너는 영리하지도 않고 요령도 없지만, 눈앞에 있는 문제에서 결코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맞서니까, 학교 공부를 넘어서, 언제나 평생, 진정한 의미의 공부를 계속하겠지.” (142∼143쪽)



  삶을 배우는 사람은 착합니다. 늘 배우기 때문에 착합니다. 늘 사랑을 배우기 때문에 착합니다. 왜냐하면, 삶이란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이에요. 그러니, 삶을 배우는 사람은 늘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로 하루를 지을 테니, 이녁은 늘 착하면서 참답고 아름답겠지요.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뿐 아니라, 우리 둘레 누구나 착하면서 아름다울 수 있기를 빕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뿐 아니라, 우리 모두 착하면서 아름답게 삶을 배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0.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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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덧셈 - 1942년으로 떠난 시간 여행 카르페디엠 33
제인 욜런 지음, 구자언 옮김 / 양철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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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17



누가 전쟁을 일으키는가

― 악마의 덧셈

 제인 욜런 글

 구자언 옮김

 양철북 펴냄, 2013.4.29.



  아주 어릴 적에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처음 받은 뒤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미사일과 총알이 날거나, 전투기나 폭격기가 하늘을 가르거나, 잠수함이나 군함이 바다를 헤치는 일만 전쟁이 아닙니다. 총질에 칼부림이 있어야만 전쟁이 아니고, 탱크가 논밭과 숲을 짓밟아야만 전쟁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골목에서 힘센 아이가 힘여린 아이를 두들겨패는 짓조차 전쟁입니다. 학교에서 ‘어른이라는 교사’가 아이를 때리거나 손찌검을 하거나 거친 말을 뱉어내는 일도 전쟁입니다. ‘어버이라는 사람’이 이녁 아이를 때리거나 큰소리로 꾸중하는 일도 전쟁입니다.


  몇몇 전쟁 미치광이가 일으키는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에 똑같이 전쟁이 도사리기 때문에, 이를 전쟁 미치광이가 살살 건드릴 뿐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싹을 심어서 키우기 때문에, 그예 전쟁이 터지고 우리 스스로 총알받이가 됩니다.



..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이젠 지긋지긋해요.” 한나는 차에 올라타면서 엄마에게 말했다. 따사로운 4월 햇살 탓인지 한나의 얼굴은 발그스름했고, 젤리빈과 부활절 사탕을 먹어서 입안은 끈적거렸다 … “할아버지는 왜 저렇게 난리지? 전부 다 옛날 일이잖아. 이젠 더 이상 강제수용소 따윈 있지도 않은데 왜 자꾸 입에 올리는 거야? 정말 혼란스러워. 나는 친구들이 할아버지를 만날까 봐 걱정돼. 할아버지가 친구들에게 소리 지르거나, 이상한 행동이라도 하면 어떡해? 댄 할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고함치지도, 전쟁을 얘기하지도 않잖아?” ..  (6, 15쪽)



  한국 정치에서 엿볼 수 있는 군사독재자가 여럿 있습니다. 군사독재자 숫자는 그야말로 한 줌조차 안 됩니다. 이들이 총이나 칼이나 탱크를 거머쥐었다고는 하지만, 온 나라 사람이 함께 들고 일어나면, 이들은 꽁무니가 빠져라 미국으로 내뺐을 테지요.


  그렇지만, 군사독재자 앞에서 모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아주 많은 이들이 일제부역을 했습니다. 혼자 먹고살려고 일제부역을 해요. 함께 어깨동무를 해서 함께 잘사는 길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에는 ‘가난한 한국에 달러를 끌어들이겠다’면서 베트남 이웃을 모질게 때려잡는 짓을 한국 젊은 사내가 저질렀습니다. 아직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쟁을 뉘우치지 않습니다. 그무렵 베트남에 가서 돈을 벌거나 베트남사람을 죽인 한국 젊은이도 제대로 뉘우친 적이 없습니다.


  1980년 전라도 광주에서 여느 사람들을 마구 때려잡아 죽인 이들은 얼마나 뉘우쳤을까요. 군사독재자를 아버지로 둔 딸은 얼마나 뉘우쳤을까요. 군사독재자 곁에서 권력을 누린 이들한테 ‘뉘우침’이라는 낱말이 있을까요.


  이웃과 동무를 죽인 이들은 으레 ‘빨갱이’라는 이름을 입에 붙입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빨갱이만 없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들 바람대로 모두 죽일 노릇입니다. 모두 죽여서,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도 없고,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는 사람도 없고, 버스나 전철을 모는 사람도 없고, 발전소를 지키는 사람도 없고, 오직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교육이나 행정을 하는 ‘빨갱이 아닌 그네’들만 남으라고 할 노릇입니다.


  우리 사회 어느 한쪽에서 자꾸 ‘빨갱이’라는 말을 함부로 주워섬기는 이들은 언제나 한 가지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신분사회와 계급사회로 단단하기를 바랍니다. 피라미드 아래쪽이 될 여느 사람들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기를 바랍니다. 피라미드 위쪽에서 전쟁을 일으키면 아래쪽 사람들은 고분고분 총알받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피라미드 위쪽에서 물건을 새로 만들면 아래쪽 사람들이 고분고분 사들여서 쓰기를 바랍니다. 피라미드 아래쪽 사람들은 위쪽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야 할 뿐입니다.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니 총칼을 만들어서 짓밟습니다. 전쟁을 일으켜서 죽이려 합니다. 종이 되어 굽신거리도록 할 뜻으로 우리 사회를 신분사회와 계급사회뿐 아니라 대학졸업장으로 옥죄고, 은행계좌로 옥죌 뿐 아니라, 서울 강아랫마을 값비싼 아파트로 옥죕니다.



.. 할아버지 집에 가면 온통 벨 할머니 가족들 사진만 있고, 윌 할아버지의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수용소에서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안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고모할머니가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우리가 바로 사진인 셈이지. 우리의 기억 속에만 새겨져 있을 뿐이란다. 우리가 죽으면, 전부 사라지겠지.” … 한나는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교실에서 나누었던 토론들을 더 많이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죽음의 수용소와 화장터에 대해서. 잔인한 나치와 잔인하게 죽어 간 6백만 명의 유대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무서운 걸까? 아니면 모르는 것이 무서운 걸까 ..  (60, 99쪽)



  전쟁은 언제 어디에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 스스로 평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오직 평화로 이룹니다. 평화를 이룰 수 있는 평화란, 사랑스러운 삶으로 이룹니다.


  평화는 탱크나 총칼로 이루지 않습니다. 탱크나 총칼은 전쟁을 하려고 만든 무기, 그러니까 전쟁무기입니다. 평화를 이룰 적에는 무기를 안 씁니다. ‘평화무기’란 없습니다. 평화에서는 오직 한 가지 사랑만 나누지요. 다시 말하자면 ‘평화사랑’일 뿐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일으켜서 ‘빨갱이 사냥’을 일삼는 이들 때문에 무섭다고요? 무서우면 어떡해야 할까요? 전쟁 미치광이하고 똑같이 ‘빨갱이 사냥’을 함께 해야 하나요? ‘빨갱이 사냥’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제주에서, 여수와 순천에서, 이 나라 골골샅샅에서, 끔찍한 죽임이 판칠 적에, 전쟁 미치광이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참말 무섭다면, 무서움을 내려놓고, 그네들이 바라는 대로 죽어 주면 됩니다. 모두 죽어 주면 됩니다. 그네들이 대통령도 하고 기자도 하고 교수도 하고 의사도 되고 하라면서 다 죽어 주면 됩니다. 그래서, 그네들끼리 도시를 지어서 살라 하면 됩니다.


  자, 생각해 보셔요. 우리가 독재부역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네들은 ‘일을 시킬 종’이 없겠지요? 그네들이 ‘일을 시킬 종’이 없으면 어찌 될까요? 그네들이 손수 농사를 지어야 하고, 공장을 돌려야 하며, 버스와 기차를 몰아야 하고, 발전소를 지켜야 하고, 모든 일을 그네들이 스스로 해야겠지요.


  그네들이라고 하는 그네들, 전쟁 미치광이가 왜 더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으르렁거리는가 하면, 바로 우리들한테 ‘종살이’를 시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종으로 만들어, 기계 부속품으로 삼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를 못 깨달아요. 똑같이 기계 부속품이 되고 맙니다. 날마다 쳇바퀴를 돌면서 돈을 벌기만 합니다. 삶은 짓지 못하고 돈만 손에 쥡니다. 날마다 지겨운 출퇴근을 하면서 돈을 벌 뿐, 내 아이조차 제대로 아끼거나 사랑하지 못한 채 너무 바쁩니다.



.. “넌 이것을 기억해야만 해. 잊어버리는 순간, 네 삶은 정말 끝난 것일 테니까.” 문힌을 하는 펜이 한나의 살을 태웠고, 손목 위에 푸른색으로 J197241이라는 숫자가 새겨졌자 … 작업이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어떤 일은 수용소가 잘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막사, 부엌, 병원, 경비병의 집 청소하기, 땔감용 나무 자르고 운반하기 ..  (138, 171)



  제인 욜런 님이 쓴 《악마의 덧셈》(양철북,2013)을 읽습니다. 1942년에 있던 어떤 끔찍한 ‘죽음잔치’를 적은 글입니다. 이 책을 쓴 분은 《강물이 흘러가도록》이나 《나의 삼촌 에밀리》 같은 그림책에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따사로운 마음으로 따사로운 사랑을 들려주는 글을 쓰는 분입니다. 이런 제인 욜런 님이 쓴 《악마의 덧셈》은 어떤 책일까요?


  청소년문학 《악마의 덧셈》은 ‘주인공 청소년’이 시간여행을 하면서 1942년에 가 보도록 해 줍니다. 겉보기로 평화스러운 2000년대 어느 날에 ‘주인공 청소년’이 있도록 하지 않고, 1942년 그무렵 전쟁 미치광이 피바람이 부는 한복판에 ‘주인공 청소년’이 서도록 해 줍니다.



.. “여기에서 사람은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선택’되는 것일 뿐이야. 화덕 안에서 화장되는 게 아니라, 그저 ‘처리되는’ 거지. 시체는 없어. ‘쓰레기’, ‘헌 옷’, ‘걸레’만 있을 뿐이야.” “하지만 왜?” 한나가 묻자 이번에는 레예가 대답했다. “왜냐고? 기록되지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니까. 그게 바로 그들이 원하는 거야. 그러니 그런 식으로 처리되어야만 하는 거고.” ..  (177쪽)



  평화를 모르는 오늘날 사람들은 2000년대 이 자리가 아닌 1900년대 지난날에 서 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내세우는 바보들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몸소 겪어야지 싶습니다. 1800년대나 1700년대 조선 사회에 서면서, 그무렵 권력자가 시골사람을 얼마나 짓밟거나 얕잡거나 괴롭히거나 들볶았는지 몸소 겪어야지 싶습니다.


  궁궐에서 태어나 궁궐에서 살다가 궁궐에서 죽은 ‘임금 한 사람’과 곁에서 임금을 보살피는 수많은 ‘종’은 삶을 얼마나 알았을까요? 흙 한 줌 스스로 만지지 않고도 밥을 먹고 옷을 입은 ‘임금 한 사람’과 곁에서 임금을 보살핀 수많은 ‘종’은 사랑을 얼마나 알았을까요?


  누가 전쟁을 일으킬까요? 어리석은 정치 지도자가 전쟁 명령을 내리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이 어리석지 않다면, 정치 지도자가 어리석은 짓을 시켜도 꼼짝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어리석지 않다면, 어리석은 정치 지도자가 나올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어리석지 않다면, 신분차별과 계급차별을 단단히 세우려고 하는 어리석은 지식인이나 권력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전쟁이 자꾸 터지는 까닭은 우리가 아직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전쟁무기를 자꾸 늘리는 바보짓을 정치나 행정이라는 핑계를 내세워 일삼는 까닭도 우리가 아직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서 평화를 바라고 사랑을 꿈꿀 때에 비로소 전쟁과 전쟁무기는 모두 사라집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바라는 평화와 사랑으로 하루를 새롭게 지을 때에, 지구별에 따사로운 바람이 붑니다.


  대학교는 학문을 깊이 다스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대학교는 학력차별과 신분사회로 나아가는 디딤돌 구실을 그만해야 합니다. 돈은 즐겁게 벌어서 아름답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돈으로 이웃과 동무를 괴롭히거나 짓밟는 짓은 이제 그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서 전쟁을 지우고 평화와 사랑을 씨앗으로 심기를 바랍니다. 4347.10.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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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41
김지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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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1



시와 말밥

― 花開

 김지하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2.6.25.



  해가 천천히 기우는 네 시 무렵, 우리 집 마당에서 홀로 날아다니는 노랑나비를 봅니다. 시월 한복판에 깨어나서 날아다니는 나비라니, 틀림없이 우리 집 나무나 풀밭에서 깨어난 아이인 듯합니다. 네 철 푸른 잎사귀를 매단 후박나무에 깃드는 나비 애벌레가 많습니다. 초피나무와 감나무와 모과나무와 매화나무와 뽕나무에도 살몃살몃 여러 애벌레가 깃듭니다. 맛나게 먹을 잎사귀가 있으면 온갖 풀벌레와 날벌레가 알을 낳아 이녁 새끼를 낳습니다.


  이 가을에 새롭게 깨어난 노랑나비는 어디에서 먹이를 찾을까요. 아마, 가을날 한껏 흐드러진 고들빼기꽃을 먹을 테고, 쑥부쟁이꽃도 먹을 테며, 가을민들레나 코스모스도 먹을 테지요.



.. 주먹구구로 살아왔네 / 아직도 서투른 구구 ..  (구구)



  시월이 천천히 무르익으니 들빛은 샛노랗습니다. 일찌감치 볍씨를 심은 논은 기계를 불러 볏포기를 벱니다. 요즈음 시골은 옛날과 달라 손으로 벼를 베는 들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같이 기계를 부려서 벼를 벱니다. 더욱이, 요즈음 시골을 보면 ‘유전자 건드린’ 볍씨이다 보니, 사람이 손을 써서 낫으로 베기에 퍽 어렵다 할 만합니다. 옛날 벼는 줄기가 굵고 길었으나, 요즘 벼는 줄기가 가늘고 짜리몽땅입니다.


  그래도 들빛은 들빛대로 가을빛입니다. 샛노랗게 잘 익은 나락으로 가득한 들길을 아이들과 걷거나 자전거로 오갑니다. 요즈막에는 아침저녁으로 날이 쌀쌀한데, 이러한 날씨가 되니, 들마다 조물조물 푸른 잎사귀가 새로 오릅니다. 날이 추울 때에 싹이 터서 올라오는 갓이며 유채입니다.


  누가 따로 심지 않아도 갓과 유채는 씩씩하게 가을바람을 먹으면서 싹을 틔웁니다. 모두 깊이 겨울잠을 자는 철에 갓과 유채는 기운차게 줄기를 올리고 잎사귀를 벌립니다. 일찍 올라온 갓과 유채는 한겨울에도 노랗게 꽃송이를 벌립니다. 참으로 대견하면서 놀라운 아이들입니다. 



.. 감기 들린 작은놈 콜록 소리 / 내 가슴에 천둥 치는 소리 / 손에 끼었던 담배 / 저절로 떨어지고 / 춥다 / 그리고 덥다 ..  (短詩 셋)



  아이들을 모두 재운 깊은 밤에 살짝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엊그제까지 보름이던 달이 차츰 이웁니다. 이틀이나 사흘 뒤면 반달이 될 듯한데, 보름 아닌 달이면서도 하얀 빛이 무척 밝습니다. 마당이 훤하고 밤하늘 구름까지 또렷합니다.


  시골마을 달빛과 별빛을 올려다보며 생각합니다. 시골에서는 밤에 등불을 안 켜도 달빛과 별빛으로 환하면서 곱습니다. 자꾸 전기를 끌어들여 등불을 켜지 않아도 됩니다. 밤길이 어두울 일은 없습니다. 그믐달이 되면 조금 어둡다 할 만하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뿐 아니라, 시골에서 여러 해 지낸 사람은 밤눈을 틔웁니다. 게다가, 그믐날은 별빛이 더욱 밝으니, 별빛을 등에 지면서 다닐 수 있어요.



.. 창 너머 / 내가 늘 바라다보는 / 감나무 한 그루에 / 감꽃이 숱하게 피었다 ..  (短詩 다섯)



  별이 있으니 별을 봅니다. 달이 있으니 달을 봅니다. 그렇지요. 별과 달을 가리는 곳에서는 별도 달도 못 봅니다. 높직한 건물이 별과 달을 가리는 데에서는 자꾸 전기를 끌어들여 등불을 켜야 합니다. 높직한 건물에다가 자동차가 넘치는 데에서는 곳곳에 전기로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등불을 켜니 달과 별을 잊습니다. 등불을 켜니 한낮에도 컴컴한 건물에서 햇볕과 햇빛을 잊은 채 지냅니다. 등불을 바라보니 도시에서는 지하상가와 높은 건물을 자꾸 늘리며, 등불로 문명과 문화를 만드니, 도시에서는 흙과 풀과 숲을 자꾸 밀어내거나 없애는 정책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별과 달과 해가 없다면, 지구에서는 아무 바람이 불 수 없습니다. 별도 달도 해도 잊는다면, 지구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습니다. 나락을 익게 하는 힘은 해입니다. 능금이나 배나 포도나 감을 익게 하는 기운은 해입니다. 그리고, 달과 별입니다. 하늘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별은 서로 보살피고 가꿉니다. 온누리를 이루는 수많은 별은 서로 돌보고 어루만집니다.



.. 내 귓속에 / 한 사람 / 얼굴 없는 사람이 앉아 / 귀 기울이고 있다 ..  (그때)



  김지하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花開》(실천문학사,2002)를 읽습니다. 김지하 님은 학문도 하고 문학도 하니, 글멋을 부려서 ‘花開’와 같은 이름을 붙입니다. 시집 《花開》에는 ‘短詩’라는 이름을 붙인 시도 있고, 이밖에 한자로 이름을 붙인 시가 제법 많습니다.


  고려나 조선이나 일제강점기도 아닌 오늘날 한국에서 한자로 시집 이름을 삼거나 한자를 빌어 시를 쓰는 분을 볼 때면 살짝 궁금합니다. 누가 읽으라고 쓰는 시일까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할매나 할배더러 읽으라고 하는 시는 아니겠지요? 어린이가 푸름이가 읽으라고 하는 시는 아니겠지요? 학교 문턱을 밟지 않은 사람들더러 읽으라고 하는 시는 아니겠지요?


  꽃이 핍니다. 꽃길이 열립니다. 꽃내음이 퍼집니다. 꽃송이가 터집니다. 사람이 먹는 밥이란, 벼라고 하는 풀이 맺은 열매인 ‘벼알’인데, 벼알이 맺으려면 벼꽃이 피어야 합니다. 감알을 먹으려 해도 감꽃이 피어야 하고, 포도알을 먹으려 해도 포도꽃이 피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남새와 열매는 꽃이 피고 나서 곱게 진 뒤에라야 얻습니다.



.. 나는 / 아파트에다 / 토담집을 짓는다 // 아파트 사이사이로 / 돌아 나가는 강물이 있어 / 산책길에 / 내 발을 적신다 ..  (아파트 꿈)



  씨앗과 꽃과 열매입니다. 뿌리와 줄기와 잎입니다. 풀과 나무요, 숲과 들입니다. 하늘과 땅이며, 냇물과 바다이고, 뭍과 섬입니다. 너와 내가 있고,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누구나 알던 이야기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한자나 한문이나 책이 없었어도 누구나 알던 이야기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임금이나 양반이나 사대부나 지식인이나 권력자나 종교지도자나 싸울아비나 이것이나 저것이나 없었어도, 시골에서 흙을 만지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던 이야기입니다.



.. 꽃 터질 때마다 / 울리는 쇠북 소리 // 바람 / 잎가에 서성거리고 // 대낮에도 / 별들이 반짝인다 // 다시 태어나고 싶다 // 이 봄에 / 스며들듯 / 죽고 싶다 ..  (부끄러움)



  시를 써야 시를 알지 않습니다. 시를 읽어야 시를 알지 않습니다. 삶을 누리면 시를 압니다. 삶을 가꾸면 시를 알아요.


  시는 문학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시는 이론으로 쓰지 않습니다. 시는 비평이나 평론으로 읽지 않으며, 시는 학문도 예술도 문화도 교육도 아닌, 오직 삶입니다. 김지하 님이 빚은 시집 《花開》는 바로 김지하 님 삶입니다.


  그러면, 시를 쓴 김지하 님은 어떤 삶을 스스로 가꾸는가요? 시커멓고 까마득하던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무렵에는 옥살이를 하거나 숨어서 살던 대로 시를 썼을 테지요. ‘시체장사꾼’이라는 말을 읊다가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던 엊그제에는 엊그제대로 시를 쓸 테지요. 지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때 받은 쓰라린 생채기를 법원에서 ‘15억 원 국가배상 판결’을 받은 이즈음에는 이즈음대로 시를 쓸 테지요.



.. 돋보기를 써도 / 앞이 부옇다 // 아마 / 데리다는 영영 / 못 읽을 것이다 ..  (쉰둘)



  김지하 님은 데리다를 안 읽어도 됩니다. 읽고 싶으면 읽어도 됩니다. 스스로 종이책을 펼쳐서 읽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사람을 불러서 소리내어 읊어 달라 하면 됩니다.


  그런데, 왜 데리다를 읽고 싶을까요. 수없이 많은 사람 가운데 왜 데리다일까요.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이웃 가운데 왜 데리다일까요. 수없이 많은 목숨과 숨결 가운데 왜 데리다일까요.


  동백꽃을 읽어 보셔요. 사광이풀을 읽어 보셔요. 코딱지나물꽃을 읽어 보셔요. 모과나무를 읽어 보셔요. 모과나무 모과꽃을 읽어 보고, 수세미꽃을 읽어 보셔요. 하늘타리꽃과 여뀌꽃을 읽어 보셔요. 억새꽃과 갈대꽃을 읽어 보셔요. 흙내음을 읽고 바람결을 읽어 보셔요. 우리 곁에 있는 살가운 이웃이 흘리는 눈물을 읽고, 우리 둘레에 있는 사랑스러운 동무가 짓는 웃음을 읽어 보셔요.



.. 병으로 / 오래 외롭다 보니 // 사람이 사람에게 / 한울님인 걸 알겠다 ..  (한울)



  꽃은 들에서 들꽃입니다. 들꽃은 열매를 맺고 씨앗을 터뜨립니다.


  꽃은 사람한테서 사람꽃입니다. 사람은 노래꽃과 웃음꽃과 눈물꽃과 이야기꽃을 낳습니다.


  김지하 님이 나아갈 길은 김지하 님이 스스로 가꿀 텐데, 아무쪼록, 말밥을 일으키는 삶길이 아니라, 사랑밥을 나누는 삶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꿈밥을 지어서 노래밥을 이웃하고 오순도순 나누다가, 삶밥 한 그릇 넉넉히 자시기를 바랍니다. 4347.10.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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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와 사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1
제임스 도허티 글, 그림 |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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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44



내 마음에 담는 꿈 하나

― 앤디와 사자

 제임스 도허티 글·그림

 이선아 옮김

 시공사 펴냄, 1995.2.24.



  숲을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숲을 만납니다. 나무가 아주 많아 커다랗게 우거진 숲을 만날 수 있고, 숲을 찍은 사진을 만날 수 있으며, 손바닥만큼 조그마한 풀숲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숲은 모두 숲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숲도 숲이요, 두 눈으로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어서 지나갈 수 있는 숲도 숲입니다. 나비나 잠자리가 날갯짓을 쉬려고 가볍게 내려앉는 조그마한 풀숲도 숲이며, 시골마을 한쪽에 조그맣게 있는 뒷동산 숲도 숲입니다.


  마음 가득 숲을 담기에 언제나 숲내음을 맡습니다. 마음에 숲노래를 싣기에 언제이든 숲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 아주 맑은 날이었습니다. 산들바람이 깃발을 팔랑팔랑 흔들고 있습니다. 앤디는 도서관에 가서 사자도감을 빌려 와, 읽고 또 읽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읽고 ..  (3∼6쪽)





  아이들은 놀 생각을 합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놀 생각을 합니다. 뛰놀 생각을 하고, 뒹굴며 놀 생각을 합니다. 뛰놀 적에는 온몸에 땀을 내면서 즐겁습니다. 뒹굴며 놀 적에는 이불을 뒤집거나 옷장을 헤집으면서 즐겁습니다.


  노는 동안에는 놀이만 생각합니다. 오직 놀이만 생각하기에, 놀면서 무엇을 어지르는지 쳐다보지 않습니다. 아니, 한창 놀 적에는 어지른다는 생각조차 없습니다. 이것을 갖고 놀다가 저것을 갖고 놀아요. 이것저것 갖고 놀다가 다리가 아프거나 지치면 바닥에 털썩 주저앉습니다. 바닥은 온갖 장난감이 널브러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칠 생각마저 안 하면서 다시금 까르르 웃으면서 놉니다. 놀이로 가득한 마음이니, 놀면서 노래하고, 노래하며 놀 수 있습니다.



.. 해님이 창으로 들여다보고, 강아지 프린스가 이불을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사자는 사라졌지만, 앤디의 머릿속은 사자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14쪽)




  제임스 도허티 님이 1938년에 처음 빚었다고 하는 그림책 《앤디와 사자》(시공사,1995)를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 ‘앤디’는 어느 날 도서관에 가서 ‘사자’를 다룬 책을 빌렸다고 합니다. 앤디라는 아이는 그만 사자에 폭 빠집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사자를 생각합니다. 밥을 먹건 잠을 자건 오직 사자 생각입니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늘 사자 생각입니다.


  이리하여 사자가 참말 앤디 앞에 나타납니다. 앤디는 사자를 참말 만납니다. 사자를 머릿속에 담고 다시 담던 앤디는 깜짝 놀랍니다. 아니, 사자가 책이 아닌 내 눈앞에 있다니!


  자, 앤디는 어떡하지요? 사자를 보고 싶던 마음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참말 보다니요. 사자가 앤디를 잡아먹을까요. 앤디는 사자를 물리칠까요. 사자는 왜 앤디한테 나타났을까요. 앤디는 사자를 만나면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요.



.. 마침내 둘 다 숨이 찼습니다. 사자는 앞발을 내밀어 앤디에게 보였습니다. 사자의 발에는 커다란 가시가 박혀 있었습니다. 그때, 앤디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앤디는 사자에게 가시를 뽑아 줄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말했습니다 ..  (38∼40쪽)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하고픈 일을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에 품은 대로 하루를 엽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걷고 싶은 길을 걷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에 지은 생각대로 하루를 누립니다.


  앤디는 오직 사자 하나를 마음에 담으며 지내다가 사자를 만나서, 사자와 동무가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에 무엇을 담으면서 하루를 지어 어떻게 삶을 가꾸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사랑을 바라나요? 사랑을 바란다면 오직 사랑을 생각해요. 평화를 바라나요? 평화를 바란다면 오직 평화를 생각해요. 이래야 사랑이고 저래야 안 사랑이 아닙니다. 전쟁무기가 있어야 평화가 아니고, 간디 같은 분이 우리 곁에 있어야 평화가 아닙니다. 사랑을 바라면 한결같이 사랑을 마음에 담으면 됩니다. 평화를 바라면 가없이 넓고 깊게 평화를 마음에 담으면 돼요.


  가을바람이 부는 들에 섭니다. 높다랗게 잘 자란 나무 곁에 섭니다. 가을바람은 누런 들판을 지나 내 곁에 있는 나뭇가지를 살그마니 건드립니다. 나는 나무 곁에서 들내음과 나무내음이 섞인 가을바람을 마십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속에 꿈을 씨앗 한 톨로 심습니다. 나는 내 꿈을 내 삶에서 이룰 수 있도록 내 길을 즐겁게 걸어갈 생각입니다. 4347.10.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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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마을의 유치원 웅진 세계그림책 146
나카야 미와 글.그림, 김난주 옮김 / 웅진주니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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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43



예쁘장한 숲 놀이터에서

― 도토리 마을의 유치원

 나카야 미와 글·그림

 김난주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14.9.11.



  빵집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빵내음을 맡고 자랍니다. 언제나 어깨너머로 빵굽기를 들여다봅니다. 밥집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밥내음을 맡고 자랍니다. 언제나 어깨너머로 밥짓기를 살펴봅니다. 가겟집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온갖 손님을 마주하며 자랍니다. 언제나 어깨너머로 사람맞이를 바라봅니다.


  요즈음 거의 모든 아이들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랍니다. 요즈음 거의 모든 아이들은 시골을 모르고, 시골살이는 생각하지 않으며, 시골일을 알 턱이 없습니다. 이러면서 거의 모든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보고, 만화영화에서 흐르는 도시 모습을 다시금 들여다봅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학교에 들어가면,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끄는 대로 ‘진로 교육’을 받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도시에서 돈을 버는 일자리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일이나 바다에서 김을 훑거나 고기를 낚는 일을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교사는 없습니다.





.. 나뭇잎이 휘리리 날아올랐다가 사르르 떨어졌어요. “깜짝 놀랐네!” 잠시 마음을 놓았을 때예요. “휘잉! 회오리바람이다!” 코타가 떨어진 나뭇잎을 두 손 가득 모아 하늘을 향해 휙 던졌어요 ..  (10쪽)



  어릴 적부터 빵내음을 맡고 자란 아이 가운데에는 빵이라면 보기 싫은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빵내음을 맡고 자랐기에 누구보다 빵내음을 살가이 여기면서 새롭게 빵굽기를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학자 집안에서 학자가 나오고, 교사 집안에서 교사가 나오며, 정치꾼 집안에서 정치꾼이 나오듯이, 노동자 집안에서 노동자가 나오곤 하고, 노래꾼 집안에서 노래꾼이 나오곤 해요. 그렇지만, 시골마을 농사꾼 집안에서 농사꾼이 나오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빵집이 되려면 누군가 밀씨를 심어서 밀알을 거두어야 합니다. 밥집이 되려면 누군가 볍씨를 심어서 벼알을 거두어야 합니다. 빵집이나 밥집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빵과 밥을 먹으니, 누군가는 밀씨와 볍씨를 심어서 가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학교와 사회와 마을에서는 농사꾼 이야기를 보여주지도 들려주지도 알려주지도 않을까요. 왜 우리 교육과 사회와 정치는 아이들한테 ‘스스로 삶을 짓는 길(자급자곡)’을 안 보여주고 안 들려주며 안 알려줄까요.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어요. “엄마, 가게 놀이 축제 때 초대할 거니까 꼭 와야 돼요!” ..  (20쪽)



  나카야 미와 님이 빚은 예쁜 그림책 《도토리 마을의 유치원》(웅진주니어,2014)을 읽습니다. 도토리 마을은 숲에 있습니다. 모두 도토리이니 숲에 마을이 있고 유치원이 있겠지요. 저마다 나무가 낳은 아이인 도토리입니다. 도토리 마을 유치원을 보면, 올망졸망 이쁘장한 도토리 아이가 나옵니다. 이 도토리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어버이가 저마다 다른 살림을 꾸리면서 돌봅니다.


  도토리 마을 유치원에서는 늘 ‘숲놀이’를 합니다. 숲에 있는 마을 유치원이니 ‘숲 유치원’이기도 합니다. 나뭇잎이 동무이고, 흙이 벗이며, 햇볕과 바람이 곁님입니다. 도토리 아이들은 저마다 꿈을 하나씩 키웁니다. 저마다 제 어버이가 하는 일을 어깨너머로 살피면서 ‘나도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되겠어요!’ 하는 꿈을 키워요.


  도토리 아이를 낳은 도토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주 기쁘리라 생각해요. 무척 보람을 느끼리라 생각해요. 조그마한 숲에서 조그맣게 마을을 이루는 도토리 이웃들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삶을 짓습니다. 다투거나 싸우는 하루가 아닌, 아끼며 보살피는 하루입니다. 그러니, 도토리 아이들은 도토리 어버이한테서 즐거운 노래를 물려받을 테지요.





.. 선생님들이 손님들에게 우산을 나눠 주었어요. 아이들도 선생님을 도왔지요. “우산 가게가 있어서 다행이네!” 손님들이 말했어요. “우와, 정말 멋지다!” 우산을 펼치니 친구들이 그린 그림이 조각조각 붙어 있었어요 ..  (31쪽)



  도토리 마을 유치원에서 가을잔치를 엽니다. 도토리 아이들은 스스로 잔치를 마련하여 엽니다. 도토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듯이 밥을 짓고 빵을 굽는 시늉을 합니다. 흙과 열매와 잎으로 모든 일을 해요. 도토리 유치원 교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잔치를 열도록 도우면서 조용히 한 가지를 챙깁니다. 비가 올 수 있기에 우산을 챙겨요. 우산에는 도토리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붙였고요.


  아이들은 어른을 믿으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바라보면서 즐겁게 웃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을 믿으며 신나게 뛰놀며 큽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마주보면서 즐겁게 하루를 짓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숲마을 이야기인 《도토리 마을의 유치원》인데, 이러한 모습이 도토리 아이들뿐 아니라 사람마을 아이들한테서도 흐른다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모든 아이들이 맑게 웃고 노래하면서 꿈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시 한복판에도 숲이 있기를 바라고, 도시에서도 텃밭을 가꾸어 푸성귀와 열매를 싱그러이 얻어서 누릴 수 있기를 바라요. 아이들이 기쁘게 보고 배울 만한 사회와 마을과 터전을 어른들이 알뜰살뜰 새로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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