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조조 모예스 지음, 송은주 옮김 / 살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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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46



‘값나가는 그림’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아요

―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조조 모예스 글

 송은주 옮김

 살림 펴냄, 2016.3.14. 15000원



  나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늘 가방에 둡니다. 아이들하고 늘 시골집에서 하루 내내 붙어서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혼자서 멀리 바깥일을 보러 다녀와야 할 적에는, 미리 가방에 둔 ‘아이들 그림’을 만지작거리면서 새삼스레 들여다봐요. 아이들이 기쁜 마음으로 그려서 아버지한테 선물한 조그마한 그림은 언제나 나한테 새롭게 기운을 북돋아 준다고 느낍니다.


  나도 아이들한테 때때로 그림 선물을 합니다. 큰아이 모습도 작은아이 모습도 조그맣게 종이인형으로 오려서 건네요. 소꿉놀이를 할 적에 쓰라고 선물로 줍니다. 여느 때에도 늘 싱그러이 웃고 노래하는 고운 숨결로 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건넵니다.



그가 램프를 들어 올렸을 때 희미한 불빛 속에 빛나는 것은 결혼 초기에 에두아르가 그려준 내 초상화였다. 탐스러운 머리숱을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화사하게 피어난 맑은 피부에 사랑받는 사람의 차분한 태도로 앞을 응시하는, 결혼 첫 해의 내가 있었다. (16쪽)


독일군에게 요리를 잘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부러 망치기도 겁이 났다. 오븐에서 구운 닭을 꺼내 육즙을 끼얹으면서 언젠가는 이 음식을 눈으로만 보면서도 즐길 수 있게 될지 모른다고 혼잣말을 했다. (48쪽)



  조조 모예스 님이 쓴 소설책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살림,2016)를 읽었습니다. 이 책에는 여러 사람들이 나오고, 여러 나라가 나옵니다. 줄거리를 놓고 보자면,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 한 점을 둘러싼 사람들이 나온다고 할 텐데, 소설이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는 ‘그림을 둘러싼 사람들 이야기’ 하나하고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 이야기’ 둘이지 싶습니다.



처음 한 달이 지나면서 사령관을 다른 이들에 대해 생각하듯이 짐승, 독일놈으로 치부해 버리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독일인들은 전부 다 야만적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들에게도 아내와 어머니, 아기가 있다고 상상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86쪽)


“그림과 남편의 자유를 맞바꿀 수 있을까요? 아니면 …… 저와 남편의 자유를 맞바꿔야 하나요?” (147쪽)



  먼저, 그림을 둘러싼 사람들로는 프랑스 시골마을에 있는 사람들하고, 이 프랑스 시골마을로 쳐들어온 독일 군인들입니다. 작은 시골마을 사람들은 어느 날 문득 ‘독일 점령지’가 된 마을에서 숨을 죽여야 합니다. 젊은 사내는 프랑스 군대로 끌려가든 독일 부역병으로 끌려가든 해야 합니다. 마을에는 아이랑 가시내랑 늙은 할배가 남을 수 있을 뿐입니다.


  첫째 세계대전이라 하는, 유럽에서 터진 커다란 싸움판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중앙집권을 이룬 나라는 군대를 키워서 이웃나라로 쳐들어갑니다. 왜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느냐 하면, 돈을 더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하자원을 가로채고, 사람들을 종처럼 부리며, 땅(나라땅·국토)을 넓히겠다는 뜻이에요.


  소설책에 흐르는 줄거리를 돌아봅니다. 점령지가 된 프랑스 시골마을에서 사람들은 독일 군인 눈치를 살펴야 합니다. 누군가는 독일군한테 빌붙으면서 한결 나은 살림을 이루는 듯합니다. 누군가는 독일군이 시키는 대로 따르면서 한숨을 짓습니다. 누군가는 독일군 앞에서 씩씩하게 삿대질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두려움이 쿵쾅거립니다.


  군대를 키워서 이웃나라로 쳐들어간 독일은 참말로 가난한 나라였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나라살림은 군대나 전쟁무기가 아닌 ‘사람들 살림살이 가꾸는 길’에 썼다면, 중앙집권 권력을 키우지 말고 수수하게 오순도순 짓는 고운 나라살림이 되도록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하자원을 더 얻어서 경제를 북돋우는 길 말고는 살림살이를 펴는 길이 없었을까요?



모가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얹는다. “남자들은 참 이상해요. 당신이 전혀 문제없다는 말은 아니지만요. 아, 제기랄. 시간 좀 봐. 당신은 미친 달릭하러 나가야지요. 3시에 돌아와서 레스토랑에는 전화로 아파서 못 간다고 할게요. 우리 변덕이 죽 끓는 사내새끼들 욕이나 실컷 해 주고 그놈들한테 어룰릴 중세 형벌이라도 생각해 봐요.” (297쪽)



  다음으로,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로는 독일군 사령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책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에서 두 겹 얼거리를 이루는 2010년대 사람들이 있어요. 1910년대 프랑스 시골에서는 ‘아내와 아이를 고향에 두고’ 프랑스에서 군인으로 일해야 하는 독일군 사령관이 ‘그림에 깃든 멋과 꿈’을 사랑스레 알아차립니다. 2010년대 영국 런던에서는 ‘남편을 일찍 여읜 아주머니’가 이 그림을 더없이 사랑합니다. 남편이 선물한 뜻깊은 그림일 뿐 아니라, 돈값이 아닌 그림결로 마음을 사로잡아서 언제나 이 그림을 바라보지요. 2010년대 런던에서 사는 아주머니는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그림에 나오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그저 이 그림이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그런데 백 해를 사이에 둔 두 나라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일 하나가 불거집니다. 1910년대 프랑스 시골마을에서는 ‘교화소에 갇혔다는 남편’을 찾고 싶은 아주머니가 독일군 사령관한테 이 그림을 주고, 이 그림뿐 아니라 ‘다른 것’도 줄 테니 남편을 찾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빕니다. 2010년대 영국 런던에서는 ‘뒤늦게 그림값이 치솟은 어느 무명화가였던 사람이 남긴 작품’을 찾아내어 목돈을 손에 쥐려고 하는 ‘유족이라고 밝히는 사람들’이 그림을 찾아내려고 해요.



“그 사람들은 그 전까지는 소피 고모에 대해 관심도 없었어요. 이제 와서 왜 그들이 고모를 팔아서 이득을 봐야 합니까? 에두아르의 가족은 자기들 말고는 아무한테도 관심이 없어요. 오로지 돈, 돈, 돈뿐이지. 그들이 소송에서 졌으면 좋겠소.” (371쪽)



  500쪽 남짓 되는 소설책은 백 해라고 하는 틈을 어느 만큼 채울 수 있을까요. 이 소설책은 그림 하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마음과 삶과 사랑과 생채기와 꿈과 슬픔을 얼마만큼 달랠 수 있을까요.


  총칼하고 군홧발을 내세운 서슬퍼런 군인들 앞에서 시골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목숨이 날아간다고 하는 마당에 누가 ‘부역자’라고 할 만한가 하는 대목을 돌아봅니다.


  ‘경매에서 사고팔리는 값’이라든지 ‘그림을 그린 사람이 드날리는 이름값’은 하나도 따지지 않고 그저 그림을 사랑하는 숨결을 우리는 어느 만큼 받아들일 만한가 하는 대목을 생각합니다. 전시관이나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나 갤러리에 걸려야 ‘훌륭하거나 아름다운 그림’일까요? 여느 살림집 한쪽 벽에 걸어서 늘 바라보는 그림은 ‘안 훌륭하거나 안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점령지 군인이 가로챈 유물이나 그림이라면, 이 유물이나 그림을 되찾으려고 하는 몸짓은 매우 마땅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점령지 군인이 휘젓거나 짓밟은 자국 때문에 생긴 생채기를 씻으려고 하는 몸짓도 매우 마땅해야 하겠지요.



그의 팔을 잡은 손아귀 힘이 놀랄 만큼 억세다. “맥캐퍼티 씨, 당신에게 그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요, 인생에는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잔뜩 있다는 거예요.” (482쪽)



  사람은 누구나 예술가라는 이름을 얻으려고 태어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을 사랑하는 고운 숨결로 살림을 지으려는 마음으로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사람은 누구나 군인이나 ‘돈에 마음을 빼앗긴 채’ 태어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아끼고 보살피려는 따사로운 사랑을 곱게 품은 채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우리 아이들이 늘 그리는 아기자기한 그림을 다시 바라봅니다. 잘 보이려는 뜻도 없고, 돈을 받고 내다 팔려는 뜻도 아닌, 그저 즐거워서 그리는 그림을 바라봅니다. 내가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줄 적에도, 아이들하고 함께 텃밭을 일구어 씨앗을 심을 적에도, 우리는 늘 즐거운 살림과 삶을 생각합니다. 소설책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에 나오는 사람들도 모두 ‘마음에 심을 따스한 사랑’을 되새기려고 하는 몸짓이리라 하고 헤아려 봅니다. 비록 어느 한때에는 돈에 눈이 팔릴 수 있고, 어느 한때에는 그만 남이 시키는 대로 휘둘린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아갈 길이란 서로 아끼면서 보살필 줄 아는 따스한 사랑이리라 생각합니다.


  군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이 소설책에서 2010년대 주인공으로 나오는 ‘리브’라는 아주머니는 아주 뜻있는 일을 한 가지 합니다. 1910년대를 살던 ‘소피’라는 아주머니가 남긴 자취 가운데 두 가지를 불로 태워서 없애 주어요. ‘소피’라고 하는 아주머니가 1910년대에 ‘그런 사람으로 살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두 가지 자취를 불에 태우지요. ‘리브’는 이 일을 하고 나면 남편이 남겨준 집에다가 그림까지 몽땅 빼앗기고 마는 줄 알지만, 그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2016.4.1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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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잡동사니 대장 동화는 내 친구 16
폴라 폭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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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43



사랑스런 손길로 놀잇감을 아이랑 함께 지어요

― 나는 잡동사니 대장

 폴라 폭스 글

 잉그리드 페츠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00.3.25. 6000원



  플라스틱이 없던 옛날에는 모든 놀잇감을 어버이가 손수 깎아서 아이한테 선물로 주었습니다. 옛날에는 모든 아이들 모든 놀잇감은 집집마다 달랐고, 아이마다 달랐어요. 똑같은 놀잇감은 하나조차 없었고, 아이들은 오직 저 한 사람만 생각하며 어버이가 지어서 선물한 놀잇감을 무척 알뜰히 여기고 보듬으면서 자랐어요.


  플라스틱이 넘치는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놀잇감을 어버이가 돈으로 사서 줍니다. 아이들은 아직 돈 흐름을 깊거나 넓게 알지 못하니, 길을 가다가 가게에서 보는 장난감을 보면 ‘저거 사 줘!’ 하면서 떼를 쓰다가 악을 쓰다가 앙앙 울기도 합니다. 사랑이 깃든 오직 하나뿐인 놀잇감을 선물로 받지 못한 아이들은 ‘플라스틱으로 찍은 값비싼 장난감’을 쌓고 쌓아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아서 자꾸 ‘다른’ 장난감을 더 얻어서 모으고 싶습니다.



모리스의 부모님은 종종 손님들한테 이렇게 말했다. 모리스의 방을 보면, 한 동네에 쓰레기가 이렇게 많았나 싶어 새삼 놀란다고. 또 엄마는 모리스가 잡동사니를 모으는 덕분에 거리가 깨끗해졌다고 모리스를 두둔했다. (12쪽)


클랭크 아저씨는 모리스의 수집품만큼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한번은 모리스한테 캐러멜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음, 넌 물건 보는 눈이 있어. 비록 잡동사니를 모으긴 하지만. 네 마음속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 같단 말이야.” (25쪽)



  폴라 폭스 님이 글을 쓰고, 잉그리드 페츠 님이 그림을 넣은 《나는 잡동사니 대장》(논장,2000)을 읽으면서 가만히 살림살이를 돌아봅니다. 내가 뜻했건 뜻하지 않건 우리 집에도 플라스틱이 참 많습니다. 냉장고나 세탁기 껍데기도 플라스틱이고, 셈틀을 쓸 적에 두들기는 글판도 플라스틱입니다. 볼펜 자루도 플라스틱이요, 바닥에 끼는 물이끼를 벗기는 솔도 플라스틱입니다.


  밥그릇이나 수저는 플라스틱이 아닌 것으로 장만해서 쓰지만, 아이들 장난감을 하나하나 살피면 플라스틱 아닌 것이 매우 드물다시피 합니다. 짚이나 나무나 돌로 엮거나 깎은 장난감은 매우 드물구나 싶어요.



모리스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어젯밤에 어둠 속에서 팻시를 감시하느라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팻시는 모리스보다 먼저 곯아떨어졌고, 그래서 모리스의 물건을 하나도 훔쳐가지 못했다. (43쪽)



  우리는 아이들한테 플라스틱을 물려주어도 될까요? 비닐봉지는 백 해가 흘러도 안 썩는다고 하는데, 안 썩는 비닐이나 플라스틱으로 된 것을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늘 만지면서 놀아도 될까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돌이나 나무나 모래나 흙이나 풀이나 나무를 만지지 못한 채 자라도 될까요? 따스한 숨결이 깃든 장난감을 어버이한테서 고이 선물로 받지 못한 채 자라는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다른 집 얘기가 아니라 우리 집 얘기로 돌아봅니다. 나는 어버이로서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놀잇감을 내주었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일찍 깨달았든 늦게 깨달았든, 아무튼 깨달았으면 몸을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은 시골집이요, 나무를 얻기 퍽 손쉽다 할 만합니다. 그러니, 나는 손이 닿는 대로 얻는 나무를 칼로 잘 깎아서 아이하고 함께 새 놀잇감을 빚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무를 만지는 기쁨이나 재미를 아이들도 느끼고 어버이인 나도 더 깊이 느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흙길이 펼쳐졌다. 트럭이 심하게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건물도, 주유소도, 표지판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푸른 산과 나무와 전선에 앉아 있는 새들뿐이었다. (92쪽)



  어린이문학 《나는 잡동사니 대장》에 나오는 아이는 ‘잡동사니 모으기’를 합니다. 다만, 어른들이 보기에 ‘잡동사니’입니다. 그러면 아이가 보기에는? 아이는 언제나 ‘보물’을 모아요.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 재미나게 갖고 놀 장난감을 모읍니다. 다만, 아이는 길을 가면서 둘레를 살피다가 ‘버려진 것’ 가운데에서 장난감을 찾아서 모을 뿐입니다. 버려진 매트리스도, 버려진 매트리스 용수철도, 이 아이한테는 더없이 멋지고 재미나며 훌륭한 장난감입니다. 이 아이네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언제나 한숨을 폭폭 쉬거나 잔소리를 할 뿐입니다. 아이하고 함께 ‘아름답고 신나며 기쁜 놀잇감을 손수 지어서 누리자’는 생각까지 나아가지 못해요.



그밖에도 가죽이나 나무, 쇠붙이로 만들어진 물건들이 많았는데, 모리스는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굵은 햇살 한 줄기가 바닥에 드리워졌다. 뒤를 돌아보니, 아빠가 문가에 서 있었다. 건초 부스러기와 먼지가 아빠 주위를 떠다녔다. (103쪽)


“맨 먼저 뭘 할 건데?” 모리스가 말했다. “일단 물건들의 이름부터 알아내야지.” 제이콥이 물었다. “왜?” 모리스는 의젓하게 대답했다. “원래 처음엔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알았어?” (106쪽)



  가게에서 무엇이든 살 적마다 쓰레기가 하나씩 생깁니다. 비닐봉지가 생기고, 비닐로 된 껍데기나 싸개가 생깁니다. 다 쓰고 난 빈 통도 쓰레기가 됩니다. 이를 되살리면 재미난 놀잇감이 될 수 있습니다만, 모든 생활쓰레기를 되살리기는 벅찰 만해요. 게다가, 생활쓰레기를 되살리는 길을 가기보다는, 처음부터 생활쓰레기가 아닌 살림을 가꿀 적에 더욱 재미나면서 알차리라 느껴요. 손수 짓고 가꾼다면, 손수 아끼면서 보듬을 수 있다면, 이런 살림살이에서는 근심이나 걱정이 차츰 가시겠지요?


  어린이문학 《나는 잡동사니 대장》에서는 아버지가 크게 다짐을 합니다. 이대로는 도무지 안 된다고 여겨서 집을 옮겨요. 도무지 더 견딜 수 없기에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지요. 마당이 있고 헛간이 있는 시골에서 살기로 해요. 아버지는 일터로 오가는 품이나 겨를이 많이 든다고 해도, 아이를 헤아려서 시골살이를 다짐합니다. 이러면서 시골집 헛간을 통째로 아이한테 주어요. 시골집 헛간에 있는 모든 ‘농사 연장’을 아이가 마음껏 만지면서 ‘새로운 놀이살림’을 지을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이 책에 나오듯이 오늘날 도시에 있는 집집마다 ‘아이가 흙과 연장을 마음껏 다룰 시골집을 찾아서 새로운 길로 떠나기’를 하기는 수월하지 않을 듯합니다. 다만, 수월하지 않더라도 못할 만하지는 않으리라 느껴요. 해 보면 되지요. 그리고 아주 조그맣더라도 어버이 스스로 놀잇감을 깎고 다듬어서 아이하고 함께 놀 수 있어요. 뜨개질로 인형을 뜨고, 나무를 깎아 놀잇감을 지을 만해요. 아이더러 ‘잡동사니 그만 모아!’ 하고 다그치기보다는 ‘우리 함께 멋진 놀잇감을 손수 지어 볼까?’ 하고 물어보는 길이 한결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살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2016.4.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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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여우 12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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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19



생각을 지어 새로운 길을 걷는다

― 은여우 12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11.30. 5000원



  씨앗에서 싹이 트는 모습을 지켜보면 무척 재미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 작은 씨앗을 그저 땅에 묻을 뿐이지만, 이 작은 손짓으로 새로운 숨결이 깨어나요. 더욱이 작은 씨앗 한 톨은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서 위로 옆으로 퍼지면서 꽃을 피우지요.


  땅에 씨앗을 심어서 틔우듯이, 사람은 마음에 생각을 심는다고 느낍니다. 작은 씨앗이 고운 꽃을 피워서 넉넉한 열매를 맺듯이, 사람은 작은 생각 한 가지에 고운 꽃을 피워서 너른 꿈을 이루리라 느낍니다.



“신을 믿고 섬기는 일, 인간과의 사이를 이어주는 일, 신과 함께 사는 일. 나도 줄곧 집에서 느껴 온 것에 대한 답이 나온 것 같아서.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곳을 너와 함께 보며 갈 수 있다면.” (12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5) 열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열둘째 권에서는 ‘일본 신사’를 돌보는 일을 맡은 아버지가 어떤 꿈을 품고서 이 일을 했는가 하는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처음에는 ‘일본 옛술’을 담가서 마을에 파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내였고, 그저 집안일을 잇겠거니 하고 여기면서 살다가 ‘신사집 딸’한테 마음이 끌려요. 어릴 적부터 ‘나중에 집안일을 물려받겠구나’ 하고 느끼면서 ‘내 앞날을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살던’ 아이는 ‘마음이 끌리는 사람’을 만나면서 비로소 생각을 처음으로 품습니다. 어떤 생각을 품느냐 하면 ‘그냥 이대로 아무 생각이 없이 집안일을 물려받아도 내 삶이 즐거울까?’ 하는 생각을 품어요. 이러고 나서 이 생각을 잇고 가꾸고 가다듬고 돌아보면서 ‘내가 스스로 여는 내 삶길은 무엇일까?’ 하고 다시 스스로 수수께끼를 냅니다.



“아빠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 아직 먼 미래의 일이고 어떻게 될지는 신만이 알고 계시겠지. 뭐, 어떻게든 될 거야.” (51쪽)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한때의 감정인지는 지금 본인이 누구보다 깊이 생각하고 있겠죠. 그러니 어떻게 되든 이쪽도 그저 지켜볼 생각입니다.” (56쪽)



  어버이가 잘 가꾸어 놓은 집안일을 물려받는 일은 이 일대로 즐거울 만합니다. 아이가 어버이하고는 다른 길을 새롭게 갈고닦으면서 씩씩하게 나아가려는 일은 이러한 일대로 즐거울 만해요. 어느 쪽이든 즐겁고, 어느 길이든 기운을 내어 나아가면 돼요. 집안일을 물려받더라도 이 집안일에 어떤 넋이 깃들었는가 하는 대목을 생각할 노릇이고, 내 길을 내가 새롭게 닦으려 한다면 이러한 삶에서도 스스로 어떤 꿈을 가꾸면서 웃음꽃을 피우려 하는가를 생각할 노릇이에요.



“유코는 이곳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겼기에 제게도 소중한 곳이 됐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둘이 함께 이곳을 지켜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88쪽)


“인간은 태어날 때 신의 세계에서 왔다가, 죽으면 신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하거든. 할머니도, 신이 되어서 지켜보고 계실 거야. 우리 모습도.” (139쪽)



  생각을 지어서 새로운 길을 걷습니다. 생각을 짓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못 걷기도 하지만, 이냥저냥 흘러온 길에서도 기운을 내거나 웃음을 틔우기가 수월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밥 한 그릇을 지을 적에도 생각을 해야 밥맛이 나요. 옷 한 벌을 빨 적에도 생각을 해야 한결 깔끔하면서 고운 옷으로 보듬을 수 있어요. 가벼운 놀이를 할 적에도 생각을 해야 신나게 웃고 뛰놀 만해요.

  만화책 《은여우》는 열두 권에 이르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동안 톡톡 튀거나 대단하다 싶은 대목을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씨앗을 땅에 심어서 가꾸는 흐름처럼, 우리가 마음에 심을 고운 생각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스스로 기운을 내고 활짝 웃느냐 하는 대목을 건드립니다.


  주어진 길대로 가든, 새로운 길을 내든, 아이들이 스스로 마음자리에 꿈씨를 심을 수 있으면 됩니다.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마을에서든, 아이들은 슬기로운 어버이 곁에서 삶을 생각하는 기운을 물려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2016.4.1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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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은 말 - 시인의 일상어사전
권혁웅 지음, 김수옥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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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45



나이도 모르면서 “너 몇 학번이야?”라는 반말

― 외롭지 않은 말

 권혁웅 글

 마음산책 펴냄, 2016.3.25. 13000원



  오늘 나는 시골에서 살지만, 아직 도시에서 살던 무렵을 문득 떠올려 봅니다. 도시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으레 나한테 이렇게 묻습니다. “몇 학번이시지요?” 그러면 나는 언제나처럼 “저는 대학교를 안 나왔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학번을 묻는 분은 다시 “아내 분은 몇 학번이시지요?” 하고도 묻기 마련입니다. 이때에 나는 다시금 “곁님은 고등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학번 숫자하고 어느 대학교를 나왔는지 궁금해 하던 사람은 멋쩍은지 한동안 말이 없습니다. 이른바 ‘접점’이라고 하는 서로 이어질 만한 끈이 없는 이 사람들은 뭔가 하고 여기는 투입니다. ‘한놈은 대학교를 안 나왔고 한놈은 고졸도 아닌 고퇴라고?’ 하고 여길는지도 모릅니다.



귀요미도 이런 용어다. ‘그녀가 귀엽다’는 것은 그녀가 ‘예쁘고 곱고 애교가 있어서 사랑스럽다’는 뜻이지만, 그것은 사실 그녀에게 속한 속성이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내가 부여한 속성이다. (29쪽)


변한 건 당신이다. 기억은 마모 작용을 이기지 못하고 형상을 깎아낸다. (47쪽)



  시를 쓰는 권혁웅 님이 쓴 《외롭지 않은 말》(마음산책,2016)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에는 ‘시인의 일상어사전’이라는 이름이 더 붙습니다. 권혁웅 시인 나름대로 ‘한국 사회 유행말’을 풀이해서 들려주는 이야기꾸러미예요. 이를테면 ‘교회 오빠’나 ‘친구 누나’나 ‘귀요미’나 ‘꿀벅지’나 ‘넘사벽’이나 ‘먹방’이나 ‘모태솔로’ 같은 말을 두고서 사회에서 주고받는 생각을 슬쩍 짚다가는 시인 나름대로 생각한 이야기를 곁들입니다. ‘네가 처음이야’나 ‘나 요즘 살쪘지’나 ‘너 몇 학번이야’나 ‘늙으면 죽어야지’나 ‘방법이 없네’나 ‘언제 밥 한번 먹자’ 같은 말이 겉뜻하고 속뜻이 얼마나 벌어지는가 하는 대목을 짓궂거나 재미나거나 의뭉스럽게 건드립니다.



여자가 나 잡아봐라, 하고 외친다고 해서 남자가 아무 여자나 추격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가 빛일 때에만, 그러니까 빛의 속도로 달아날 때에만 남자는 슬로모션으로 그녀를 따르기 시작한다. (50쪽)


안타깝게도 ‘높임’이란 ‘낮춤’과 한 짝이어서 우리말에는 존대만큼이나 하대가 발달했다. 신분제 사회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 말싸움의 결론이 늘 “당신 몇 살이야?”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며, 이것이 학벌과 결합해서 나온 말이 “너 몇 학번이야?”다. “학번이 깡패다”라는 단정과 짝을 이룬 말이지만 실은 이상한 질문이다. 몇 학번인지도 모르면서 왜 처음부터 반말일까? (62, 63쪽)



  여러 가지 이야기 가운데 ‘너 몇 학번이야’ 같은 말을 다루는 대목에서 쓰겁게 웃습니다. 권혁웅 님 말마따나 한국 사회는 아직 신분이나 계급으로 갈린 얼거리입니다. 그래서 높임말 못지않게 낮춤말이 발돋움했어요. 이를테면 한자말 ‘변’은 높임말로 여기고 ‘똥’은 낮춤말로 여기지요. 한자말 ‘식사’도 높임말로 여기면서 ‘밥’은 낮춤말이라도 되는 듯이 여겨요. 회사나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과장이나 부장이나 사장쯤 되는 분들은 ‘밥’을 먹지 않아요. 언제나 ‘식사’만 하시지요.


  그나저나 나이가 몇 살인지도, 학번이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왜 처음부터 반말”로 “너 몇 학번이야?” 하고 묻는 사람이 많을까요? 왜 나이도 아닌 학벌까지 앞세우면서 목소리를 높이려고 할까요? 그나마 학번이라도 있으면 한숨을 돌리고, 학번조차 없으면 ‘대학교도 못 나온 놈’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오, 각선미 죽이는데? 가슴이 좀 작군. 입술이 섹시해. 남자들은 늘 이렇게 여성들을 대상화해 왔다. 그런데 그 각선미 죽이는 아가씨가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던 거다. 난 루저라고. (96쪽)


‘요즘은 자꾸 빨간 게 좋아’서, 2016년 현재 여당마저도 빨간 옷을 입고 다닌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색맹들께서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렇게 말한다. 종북, 종북, 종북. 정신의 딸꾹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131∼132쪽)



  재미나면서도 의뭉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권혁웅 님은 2016년 오늘날 ‘빨갛게 물든 옷’을 입고서 허리를 깊게 숙여서 절을 하는 여당 정치꾼 이야기를 살며시 섞습니다. 왜 한입으로는 ‘빨갱이’나 ‘종북’을 외치면서, 왜 한손에는 ‘빨갱이 옷’을 걸치고 ‘빨갱이 깃발’을 펄럭일까요? 참말로 “정신의 딸꾹질”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런 딸꾹질은 어쩔 수 없는 우리 사회 모습일는지 몰라요. ‘차카게 살자(착하게 살자)’ 같은 말이라든지 ‘바르게 살기’ 같은 말은 착함이나 바름하고는 동떨어진 자리에서 흔히 쓰이거든요. 착하게 살기로 하지 않으면서 ‘착함’을 외치는 사회요, 바르게 살지 않으면서 ‘바름’을 사람들한테 윽박지른 정치이니까요.



〈우정의 무대〉는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모아서 만든 이상한 극장이다. 프로그램 제목이 내세우는 덕목은 ‘우정’이며, 사회자가 경례할 때 내세우는 구호는 ‘충성’인데, 무대 위의 공연이 보여주는 콘셉트는 ‘섹시’이고,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요구되는 감정은 ‘모성애’다. 거기에 홍보 영상 속 사병들이 내보이는 저 눈빛은 적의 어떤 도발에도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살기’다. (224∼225쪽)



  어제 낮에 큰아이하고 밭뙈기를 일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반장 선거를 할 적에 으레 ‘1등이 반장’이라면 ‘2등이 부반장’을 맡습니다. 반장 선거는 다른 말로는 ‘부반장 선거’이기도 해요. 그리고, 이 선거에 나온 모든 아이들이 으레 ‘총무부장’이든 ‘청소부장’이든 뭔가 하나씩 맡기 마련이에요.


  이런 얼거리처럼 나라에서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군수를 뽑을 적에 ‘1등만 뽑지’ 말고, 2등도 3등도 4등도 모두 나라살림을 함께 맡도록 자리를 나눈다면 어떠할까 싶더군요. 이를테면 51:49로 한 사람이 붙고 한 사람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셔요. 51로 붙은 사람만 일을 하기보다는, 51인 사람은 ‘반장’ 노릇을, 49인 사람은 ‘부반장’ 노릇으로 서로 도우면서 일을 할 적에 나라살림이 아늑하면서 다툼도 가시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만히 본다면 오늘날 선거는 민주 제도이기는 하지만 다른 모습으로는 ‘1등 뽑기’이기도 합니다.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안 되고 말아요. 우리 사회가 보이는 모습은 바로 ‘1등주의’에 ‘성적주의’에 ‘경제개발주의’이거든요.


  먼저 심은 씨앗도 나중 심은 씨앗도 함께 돋고, 오늘 심은 씨앗도 어제 심은 씨앗도 모두 돋아요. 어버이도 씨앗을 심고 아이들도 씨앗을 심어요. 함께 기쁨으로 짓는 살림이 되고, 서로 사랑으로 나누는 말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오늘도 아이들하고 밭을 더 일구려 합니다. 시골은 온통 봄일로 바쁜 사월 한복판입니다. 바쁜 봄철이라서 국회의원 뽑는 일은 ‘미리’ 느긋하게 했습니다. 2016.4.1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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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탄카 세계 거장들의 그림책 7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글, 타티야나 코르메르 그림, 이수경 옮김 / 살림어린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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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7



개 한 마리는 ‘새 삶’ 찾는 홀로서기를 할까?

― 카시탄카

 안톤 체호프 글

 타티야나 코르메르 그림

 우시경 옮김

 살림어린이 펴냄. 2015.8.25. 12000원



  안톤 체호프 님이 쓴 글에 타티야나 코르메르 님이 그림을 넣은 《카시탄카》(살림어린이,2015)를 가만히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카시탄카’는 개입니다. 꼭 여우를 닮았다고 하는 개예요. 그런데 이 개 카시탄카는 처음 태어나서 자란 집에서 그리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밥을 주는 아저씨도, 그 집 아이도 카시탄카를 아끼거나 따스히 보살피기보다는 함부로 다루고 마구 괴롭히기 일쑤였습니다.


  그렇지만 여우를 닮은 개 카시탄카는 그 집에서 떠나지 않아요. 그 집 말고는 다른 보금자리나 삶자리를 그리지 못합니다. 오직 그 집에서만 지내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여겨요. 괴롭힘을 받으면서도 씩씩하게 떠날 줄 모르고, 이래저래 시달리면서도 새로운 길로 나설 줄 모릅니다.


  어쩌면 카시탄카를 낳은 개도 카시탄카와 같은 삶을 보냈을 수 있어요. 카시탄카 어미를 낳은 어미도 모두 똑같은 삶을 보냈을 수 있어요. 사람 눈으로 보자면 ‘사람 곁에 있는 짐승’이지만, 짐승으로서는 집에 얽매인 채 다른 곳으로 씩씩하게 떠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힌 목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긴긴 겨울밤, 예전 주인이 대패질을 하거나 소리 내어 잡지를 읽을 때면 아들 페듀시카와 장난치곤 했던 일을 떠올렸지요. 페듀시카는 카시탄카를 작업대 밑에서 끌어내기 위해 카시탄카의 뒷발을 잡아당기는 장난을 즐겼습니다. 얼마나 힘껏 당겼는지 카시탄카는 눈앞이 노래지고 온몸 마디마디가 아플 정도였습니다 … 또 어떤 때는 종을 치듯이 꼬리를 힘껏 잡아당겨 카시탄카가 비명을 지르게 했고, 담배 냄새도 강제로 맡게 했습니다. 그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장난은 …… (10쪽)



  그림책이기 앞서 짧은소설로 나온 이야기 ‘카시탄카’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1860년에 태어나 1904년에 숨을 거둔 안톤 체호프 님이 러시아에서 겪은 삶이나 그무렵 러시아에서 마주하던 사람들 삶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사람들을 모질게 다루는 전제 군주와 땅임자를 생각해 봅니다. ‘땅을 짓지 않아’도 계급하고 신분하고 돈을 물려받아서 ‘땅을 짓는 이’를 얼마든지 부리거나 괴롭히던 이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림책 《카시탄카》에 나오는 개 한 마리는 그저 개 한 마리를 보여줄 뿐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개 한 마리 이야기를 빌어서 러시아 사회를 이야기하고, 러시아 정치를 다루며, 모진 사회와 정치에 억눌린 채 그만 홀로서기를 잊거나 잃고 만 수많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셈이라고 느껴요.



한 달 뒤에는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표도르 티모페이치를 대신할 정도로 잘할 수 있었지요. 아줌마는 열심히 배웠고 스스로도 자신의 능수능란한 동작에 만족했습니다. 훈련용 밧줄에 묶여 혀를 빼고 달리는 것, 둥근 테를 뛰어넘는 것, 나이 든 표도르 티모페이치를 타고 달리는 것은 아줌마에게 아주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22쪽)



  《카시탄카》에 나오는 카시탄카는 어느 날 길을 잃습니다. 여느 때처럼 ‘주인 아저씨’를 따라서 집 밖으로 나왔다가 군악대 행진을 보고는 그만 넋이 나가라 구경하다가 주인을 잃어요.


  길도 집도 모두 잃은 카시탄카는 그만 떠돌이가 됩니다. 어디로 가야 할는지 모릅니다. 카시탄카를 부리던 사람도 이 개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눈길조차 두지 않습니다. 아끼지도 사랑하지도 보살피지도 않은 채 그저 먹이만 주었을 뿐이니까요.


  어쩌면 ‘주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카시탄카가 어디로 사라진지도 모르거나 아예 생각조차 안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고달프거나 힘겹게 살림을 꾸리는지를 모르는 전제 군주나 독재자처럼 말이지요.


  길도 집도 없이 배고픈 카시탄카는 한길에서 어떻게 먹이를 찾아야 하는가를 모릅니다. 어디에 깃들어 자야 하는가도 모릅니다. 이러다가 따스한 손길을 만나요. 예전 주인하고는 너무도 다르게 따스한 손길을 만나지요.


  다만, 새로운 주인은 ‘서커스’를 하는 사람입니다. 서커스를 하는 사람은 카시탄카를 거두어 알뜰히 보살피다가 재주를 가르칩니다. 카시탄카는 예전과 달리 괴롭힘도 시달림도 없는 터전에서 즐겁게 재주를 익힙니다. 새로운 동무를 사귀고 아무런 걱정이 없는 나날을 누려요. 오직 한 가지가 없다면 ‘스스로 일어서서 스스로 살아가기’를 할 마음이 없다뿐입니다.



카시탄카는 두 사람의 등을 바라봤습니다. 마치 자신이 오래전부터 그들 뒤를 따라가고 있었고, 삶이 단 한순간도 자신을 내버리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카시탄카는 그 순간 지저분한 벽지가 있는 방, 거위, 표도르 티모페이치, 맛있는 식사, 훈련, 서커스를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마치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나긴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39쪽)



  그림책 《카시탄카》는 카시탄카가 서커스를 하는 새로운 주인 곁을 떠나서 예전 주인한테 돌아가는 줄거리로 끝을 맺습니다. 서커스 공연 무대에 옛 주인하고 아들이 보러 왔고, 옛 주인 아들은 카시탄카를 알아봅니다. 카시탄카는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주인을 만나서 아무 걱정이 없이 살았지만, 걱정도 괴롭힘도 시달림도 없는 새로운 터전을 내버리고 예전 주인한테 달려갑니다.


  카시탄카는 아무래도 예전 주인한테 돌아갈 수밖에 없는 마음결이었지 싶습니다. 스스로 옭매인 삶인데 옭매인 줄 모르는 마음결이기 때문이겠지요. 스스로 설 줄 모르고 남이 시키는 몸짓만 하면서 밥을 얻어먹는 데에서 삶을 그치는 터라, 새롭게 나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못한다고 할 만해요.


  그러면, 나는 얼마나 홀로서기를 한다고 할 수 있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나는 굴레나 쳇바퀴에 안 갇힌 삶이라고 할 만한가 하는 대목을 되새깁니다. 내가 걷는 길은 그야말로 스스로 다스리거나 보살피거나 가꾸는 삶길이라고 할 만하느냐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안톤 체호프라는 분이 살던 백 몇 해 앞선 러시아하고 2010년대 오늘날 한국은 얼마나 다르거나 같은가 하고 가늠해 봅니다. 카시탄카 이야기를 읽는 나는 얼마나 ‘나다운 새로운 살림’이라고 할 수 있는지 곰곰이 짚어 봅니다. 2016.4.1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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